최근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로 영화감독으로의 첫 데뷔 신고

지난 1992년‘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로 데뷔한 원태연 시인은 그동안‘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사용설명서’, ‘안녕’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500만 부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해왔다. 당시 감성적인 시로 젊은 세대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베스트셀러 시인이었던 그는 이후 작사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변신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의 극본 및 연출을 맡아 영화감독으로의 첫 데뷔를 신고했다.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의‘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로, 벌써부터 최고의 슬픔을 담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크랭크인을 이틀 앞둔 지난 12월 19일, 영화 준비에 한창인 원태연 감독을 만났다.

Q. 영화감독 데뷔를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떤가
- 떨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웃음) 잘해보고 싶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한번 뜨겁게 눈물 흘리시고 일어나셨을 때 기분이 산뜻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슬프지만 결코 찝찝하지 않은 영화 말이다.

Q.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어떤 영화인가
- 오 헨리의‘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보면 남편은 시계를 팔아 부인의 고급 머리빗을 사고, 부인은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칼을 팔아 남편의 시계 줄을 사지 않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죽어가는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보다 착하고, 건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얘기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슬픈 사랑이야기다. 물론 거기에 더 슬픈 이야기가 반전으로 숨어 있다.

Q. 배우 캐스팅은 만족하나
- 만족하는 게 아니라, 아주 흡족하다.(웃음) 며칠 전 내가 시를 썼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단역 분들에게 부탁드린 게 있다. 시가 받침 하나로 뜻이 달라지듯이, 난 그 분들이 영화의 받침이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그만큼 받침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단역이지만‘진짜로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주연, 조연배우 분들에게도‘진짜처럼만 해주시면’하는 것만 부탁드리고 있다. 이 영화가 큰 자본이 들어가거나 엄청난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 않나. 그럼 결국 등장하는 인물들의 진짜 연기를 통해 감정으로 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Q. 시인에서 영화감독이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 간단하게 얘기하면 시인이었을 때는 혼자 밥을 먹었고, 영화감독이 된 후로는 30명 정도 되는 스텝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거다.(웃음) 영화를 하며 느낀 것은 영화는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내 잘못을 인정하고, 내 생각이 잘됐다고 하는데 가만히 들어봐서 아닌 것 같으면 채워주고.. 그런 작업들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Q. 체육학을 전공했는데, 시인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하면 웃기는 얘기가 되는 거고..(웃음) 문학적인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시가 좋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시가 좋아서 시를 썼는데, 쓰다 보니까 발표하고 싶어지더라. 창작자들의 본능인 것 같다.(웃음) 그래서 시집을 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데 기회를 잘 안 주더라. 당시만 해도 등단을 해야만 책을 낼 수 있었는데, 난 등단 시스템에서 밀렸고.. 그래서 무작정 들고 다녔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준 게 계기가 됐다.

Q. 주로 사랑 얘기를 많이 다뤘는데, 경험담에서 우러나온 건가
- 나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쓴 게 아니라, 외로움에 대한 얘기를 쓴 거다. 그런데 그게 사랑이라는 주제가 되어버린 거지.. 내가 뭔가를 쓰면 나를 여자로 아는 사람도 있고, 죽었다고 아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이런 말 진짜 싫은데 왜 창조적 자아라고 있지 않나. 나는 그냥 영화를 준비하는 38살의 아저씨일 뿐인데, 이 사람이 모니터 앞에 앉거나 배우들을 만나면 자아가 달라지는 거다. 나는 시를 쓸 때 그저 내가 감동받은 걸 적는다. 그냥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들이 온다. 그럼 그냥 적는 거다. 그게 시인이 할 일이다. 사실 그렇게 사랑 경험이 많지도 않다.(웃음) 그냥 사람 사는 얘기들이다. 그래서 내 시를 읽으면 친근감이 생길 것이다. 그 친근감이 지나쳐서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단어들을 쓰기도 하고.. 너무 사랑 얘기만 쓰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문학적인 가치로 편향된 것 아닌가. 그것도 굉장히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Q. 아까 등단시스템을 얘기했듯이, 그래서 문학계의 비주류로 분리되기도 했는데
- 비주류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왜 사람들에게 한 가지 색깔만을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정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또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정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나. 난 외로움에 대해 얘기한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제일 넓은 건 외로움이 아닌가 싶다. 사회를 얘기하는 사람도, 우정을 얘기하는 사람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당연히 그 포괄 사이즈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 건데, 그 시각이 커졌다고 해서 이것만 한다, 저것만 한다는 시각 자체가 유아적이라고 본다.

Q. 작사가, 뮤직비디오로도 활동했는데, 문화적 관심이 많은가
- 관심이라기보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자극에 민감하면 그만큼 창작욕이 있을 거 아닌가. 누가 날 자극하면 그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거다. 그럼 이왕 하는 거 좀 오리지널하게 해보고 싶은 거지.

Q. 물론 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겠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분야가 있었나
- 나는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라 그때그때마다 그 매력에 빠진다. 얼마 전 이 영화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을 때는 그 소설에 빠져 있었고, 지금은 영화감독 작업에 빠져 있다.

Q. 소설이 영화화 됐을 때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나
▲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 소설은 영화와 상관없이 소설을 쓴 거고, 영화는 소설과 상관없이 영화를 만든 거다. 얘기는 하나지만, 소설은 소설 같고 영화는 영화 같다. 굳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그저 하나의 얘기를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소설이 각색자나 감독의 손을 거치면 희석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난 모두 다 내가 한 거니까 희석된 부분이 없지 않겠는가.

Q, 지금까지 그 수많은 창작욕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나.(웃음) 내가 쓴 시 중에‘그냥 좋은 것’이라는 시가 김포공항 어딘가에 걸려있다고 하더라.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마음에 들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순 없는 사람. 어느 순간에 식상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라는 시인데, 그 시가 공항에 걸렸을 때 사람들이 좋아했을 거 아닌가. 그런 욕구도 그냥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Q. 다시 시를 쓸 생각은 없는가
- 2001년도에‘안녕’이라는 시집을 내고 정말 안녕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내가 시를 쓰고 있더라. 나는 분명 시를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시집을 내려고 그렇게 시를 쓰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 그래서 다음에 원태연을 만나게 되면 이런 모습은 아닐 거라고 전하며 최선을 다하고 떠났다. 이후 7~8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요즘 아저씨 얘기를 시로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슬슬 생긴다. 대한민국 아저씨 말이다.

Q. 그러고 보니 올해가 30대의 마지막이다. 기분이 어떤가
- 난 지금 누가 나에게 피곤한지, 어떤지 물어보면 나한테 관심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내 기분과 스트레스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피곤하면 어쩔 거고, 아프면 어쩔 건가. 안할 순 없는 건데. 아예 무시를 해버리는 거다. 나중에 다 끝나고 쉬라고..(웃음)

Q. 어디선가 제 2의 원태연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 당신들이 맞으니까 흔들리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 대신 열심히 하되 진짜 중요한 게 뭔지는 알고 가야 한다. 지금 당신이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혹시 당신이 그런 작품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멋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멋있는 작품을 만들었던 사람이 될 것인가는 굉장히 큰 차이다.

Q. 마지막으로 영화를 기다리는 팬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내가 얘기하는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지, 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나를 느끼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위해 내가 그동안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지 전달이 될 것이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느끼셨던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해드리고 싶다.

원태연 감독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편견’이라고 했다. 목마르면 물마시듯, 타오르는 갈증을 해소했을 뿐인데 그에게 늘 돌아오는 것은 삐뚤어진 시선이었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꼭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지금의 경기불황도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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