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의 생명인 숨구멍을 살려야 한다.

<장인을 찾아서 - 오대옹기 박민수 선생>

180년 전통, 5대째 내려오는 옹기장인
“옹기의 생명인 숨구멍을 제대로 살려내야한다”

옹기는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낸다. 실내외 어디에 위치하여도 잘 어울리며, 음식저장 기능 등 실생활에서도 그 용도가 꽤 다양하다. 이에 옹기 발전을 위하여 늘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고 있는 박민수 선생을 만나, 40년 세월의 옹기장인 인생을 들어보았다.


▲ 박민수 대표는 옹기 흙으로 분청을 제작하는 창작품과 함께하고 있다.
약토라는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의 총칭인 옹기의 옹(甕)은‘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다. 또한 소래기, 단지, 식초병, 시루, 거름통, 약탕기 등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생활용기들을 뜻한다. 가장 큰 특성으로는 통기성&#8228;저장성&#8228;발효성&#8228;경제성, 그리고 쓰임새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이에“5대조 할아버지(1820년생)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도 광주로 숨어들어서 최초로 배운 것이 옹기 만드는 일”이었다는 옹기장인, 박민수 선생은“그것이 180년이나 이어오며 5대째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5대조 할아버지부터 광주, 공주, 천안, 안성 등지를 전전하며, 그 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옹기 공장을 하면서 옹기 만드시는 걸 보고 성장했다”는 박 선생은 아버지의 권유로 16세에 본격적으로 옹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부친에게 직접 전수를 받은 후엔, 옹기계의 전설인 오승팔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그는“아버지께서는 저의 스승으로 오승팔 선생님을 소개해주었고, 옹기계의 전설적인 분이셨던 스승님은 나에게 외낭부터 가르치셨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외낭은 벼씨앗 등을 저장할 수 있는 커다란 옹기로, 꽤나 어려운 작업이다. 한편, 태국과 중국 등에도 옹기를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옹기가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박 선생은“시장 논리에 의해 자꾸만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옹기가 누구보다 한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옹기의 진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그가 몸소 증명하고 있기에 아직 희망은 있다.

전통적 타래기법은 옹기를 만드는 중요 기술이다
▲ 투박스런 옹기도 색이 곱고 멋스럽게 창작된다.
46년째 옹기를 빚고 있는 박민수 선생은“요즘 옹기들은 만들어지는 작업이 기계화 되어 있어 전통적인 옹기의 특성이 심하게 변질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자연스레 숨 쉬는 옹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들은 지양하고, 전통적인 옹기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업적 옹기 생산자도 옛날 전통방식으로 돌아와야 옹기와 관련한 모두가 살길이라는 것이다.“대량 생산되는 옹기를 순수한 우리 전통옹기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전한 박 선생은“옹기는 흙에 숨구멍이 생겨야만 음식물 등을 담아 저장하고, 숙성시키는데 적합해진다”고 말했다. 대량생산을 하다 보면, 옹기의 생명인 숨구멍이 제대로 살아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 조상들이 옹기를 장독으로 많이 사용한 것도 모두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전통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자기 기법과 타래기법을 모두 습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만 가지고 있는 타래기법은 옹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기술임을 강조한 박 선생은“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이며 작업하는 도자기 기법과 달리 양손과 양발 모두를 자유롭게 써야 되는 타래기법은 우리 옹기만의 기법이며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작품관이 돋보였던 등잔 도예전은 소박하지만 화려한 멋을 지닌 작품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 바 있다. 옹기토와 백토를 혼합하여 전통색은 보전하고, 직접 고안한 유약을 발라 관상용으로서 멋스러움을 강조한 것이 비결이다. 이처럼 독특한 작품세계로 그의 작품들은 중국 칭화대학에도 전시될 만큼 우수한 평을 받고 있다.

순수한 비밀을 가진 옹기 그 자체가 삶이며, 동반자
▲ 옹기는 자연과도 잘 어울린다.
일본 최고 박물관의 메인 자리에는 우리 옹기가 전시되어 있다.“세계에서 옹기의 효용이 더 높게 평가 받고 있는 현시점에도 사라지는 옹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힌 박민수 선생은“우리의 옹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후계자 양성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전통옹기의 맥은 끊어질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수백 년 내려온 이 옹기 제작 비법을 전수받을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제자가 거쳐 갔지만, 쉽지 않은 옹기 제작 비법에 두 손을 들고 떠나갔다는 것이다.“이 일에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평생을 들여 옹기 제작에 몰두할 사람이 있다면 내 기꺼이 그 사람을 제자로 삼아 전수할 것이다.”이에“10여 명으로 구성되는 한 팀이라도 정부의 주체로 지원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박 선생은 제언했다. 한편, 특유의 장인 정신을 고집하는 가운데에서도 남다른 창의력으로 1년 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박민수 선생. 그는 옹기 흙으로 분청을 제작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호응이 좋아 작품화를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유약을 바르지 않고 나무의 숯으로 옹기 고유의 빛깔을 내는(나무재가 유약역할) 시도를 하여, 옹기토로 만든 무유약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외에도 등잔과 십자가 테마전 등 옹기토를 이용한 새로운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재양성과 옹기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것에 남은 생을 다 마치리라 다짐한 그는“예술이란 삶이다”라고 말했다. 옹기 흙 채굴과정, 옹기 제작 비법, 전통적인 옹기판매 풍습, 옹기장이의 생활 등에 이르기까지 옹기에 관한 일생일대의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둘레 4m 30cm의 초대형 옹기를 재현해보고자 한다”는 그는 그만한 크기의 대형 가마와 인력, 그리고 대형 작업실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오전에는 옹기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박민수 선생은 오후엔 옹기 서적 제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생활하고 있다.“스스로 좋아서 하는 예술”이라는 박민수 선생에겐 순수한 비밀을 가진 옹기 그 자체가 삶이며, 동반자였다. 1년 중 3월과 5월, 6~7회 장작가마 불 떼는 날에는 옹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초대해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는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오늘도 장작가마와 함께 뜨겁게 지속되고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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