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응축의 시간이 만들어낸 문장의 미학에 대하여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문장에도 각기 다른 이미지가 존재한다. 어떤 이의 글은 한없이 상냥하고 어떤 이의 글은 냉소적이기 그지없고 때로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음에도 아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 양 뻔뻔스럽기도 하다가 혹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극히 일부만을 살짝 보여주는 비밀스러운 글이 있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다. 어쩌면 매순간이 고통일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을 응축시켜 글자 하나하나에 담아내는 작업이 쉬우리라고 어느 누구도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가 오정희 역시 쉽게 글을 써내는 사람이 아니다. 천천히 느린 템포로 자신의 생각들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의 무늬>를 읽으면서 산책을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등단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이번<내 마음의 무늬>는 두 번째 산문집이다. 물론 소설도 과작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책장을 넘기는 그 손길에 묻어나는 떨림을 느꼈던 것과 한 글자마다 설렘을 가지고 읽어 내려간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세월을 돌아보고 일상을 풀어나가며

▲ 기자 간담회 중의 오정희 작가
"무늬라는 것은 제게 대단히 매혹적인 단어입니다."
이번 산문집에서 오정희 작가는 읽는 이들을 아련함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현재 춘천에 살고 있고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서면을 통하여 그녀를 알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오정희 작가와 가장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글로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그녀의 어떤 한 부분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정희 작가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 역시 춘천이라는 도시에 대하여 가지는 조금의 낭만스러운 감정들이 있기에 그녀의 글들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부끄러운 고백을 하면서 말이다.
<내 마음의 무늬>에서 차분히 세월을 되돌아보고 일상의 의미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 부분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마치 봄날의 부드러운 흙 위에 새싹이라도 틔울 것 같은 간지러움을 생각나게 하고 있었다. 오 작가에게 이번 산문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작가들이 책을 낼 때는 의식하든 의식치 않든 자신의 한 시기를 정리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 실제의 ‘나’를 끌어내어 쓰게 되는 산문들을 더러 쓰기는 했지만 책으로 묶어 낸다는 일에는 별반 관심도 흥미도 갖지 못하고 있었는데 50대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면서 정말 ‘어느날 문득’ 마음을 내었지요. 출판사측의 강력한 권고도 한 역할을 하였답니다. 사실 어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든 사람살이, 특히 여성으로서의 살아가면서 일렁이고 새겨지는 마음의 무늬는 누구든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의 출간에 나름대로 ‘나눔’의 의미도 부여하였지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표현의 욕망이다. 모든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표현하고 존재증명을 하려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작가란 개인적 삶의 방법으로부터 인생과 세계를 읽고 해석하기, 보다 좋은 세상을 향한 꿈꾸기와 실현 등을 글쓰기로 이루어보려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글로써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때로 참을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작 글을 쓰는 과정은 몹시 힘이 듭니다. 또한 글을 쓰게끔 하는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존재라는 것, 살아간다는 일에 대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느끼는 슬픔과 쓸쓸함의 힘입니다.”라고 그녀의 글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오 작가의 산문집에서 마음을 설레이게 했던 단어는 바로‘무늬’라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동시에 고통스러운 느낌의 그 무늬라는 단어를 오정희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선택하고 있었던 것일까.“무늬라는 것은 제게 대단히 매혹적인 단어입니다. 외면의 것과 나의 내면의 것들이 끊임없이 삼투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내는 어떤 것으로 매우 가변적이지요. 모이고 흩어지고 흘러가는가 하면 무서운 응집력으로 어떤 형상을 이루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 무엇인가를 쓰거나 느낀다는 것은 그 무늬의 읽음에 다름 아닐까 합니다.”

깊은 울림이 되는 행간의 세계를 꿈꾼다

오정희 작가가 써내는 문장들은 고통스러운 만큼 아름답다. 밀도와 긴장감을 유지하고 어휘의 선택을 함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납득이 간다. 그녀에게 문장은 일상이고 의식 없이 쓰여지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심지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자신도 모르게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에“어쩌면 나는 어쩌면 좋은 문장가가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많이 생각하고 오래 삭히어 빚어내는 한 줄의 고요하고 단정한 문장과 깊은 울림으로 숨쉬는 행간의 세계는 모든 글 쓰는 자, 글 읽는 자들의 꿈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녀의 글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문장들은 오정희 작가 자체였을 것이다.

산문집에서 스무 살은 다른 세상을 향해 열리는 문이었다. 서른 살이 되는 아침의 심정은 착잡했다.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라며 차분하게 세월을 돌아보고 있는 오 작가에게 물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말이다.“글쓰기에 대한 ‘순결한 초발심’은 등단하던 2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문학의 위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야 어떻든 문학에 대한 제 순정은 여전하다는 뜻이지요. 저는 작가생활을 시작하던 무렵 어느 선생님께 ‘--- 인생이 제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라는 편지를 드린 적이 있는데 다분히 관념의 발로였던 그 문구의 실체를 그 이후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리고 오랜 공백기간을 거치면서, 문학하는 일에 있어서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그 어떤 보상이나 영광을 기대함이 없어도 오롯이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호젓한 충만감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요.”오 작가는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 중 하나인 과작의 작가라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직업작가에게 ‘과작의 작가’ 라는 호칭은 사실 좀 부끄러운 일이지요. 다른 동료작가들에 비해 쓰는 속도가 매우 더딘 편인 것 같습니다. 집필하는 동안의 생활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습니다.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밥 짓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마감 때가 가까워지면 속이 타고 초조해지고 거의 발작상태에 이르지만 이제껏 일상적인 일들과 글 쓰는 작업의 칸막이가 지어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육체적인 움직임으로 글쓰기의 긴장이나 초조감을 해소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요즘 들어 글쓰기란 훈련이고 습관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박경리 선생께서 소설쓰기란 장부가 일생을 걸고 할만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오정희 작가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생에서‘소설’이라는 또 하나의 장대한 세계를 거느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후배 작가들 역시 열심히 살고 열심히 쓰시라는 말을 진정으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춘천에서 오정희...

현재 오정희 작가는 동화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영원한 화두인‘아이들’에게 전하는 글이 될 것이다. 요즘 걷기를 즐기는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오정희 작가다. 기자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와 썩 어울리는 일상이다. 밤이든 낮이든 짬이 날 때마다 집 주변이든 야산이든 시가지이든 걸어 다닌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터질 듯 복잡한 머리를 흔들며 걷다보면 생물학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해준 듯한 느낌이 들고 살아간다는 일이 이처럼 단순히 두 다리의 움직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새삼스런 자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의 소통의 방법, 혹은 기대를 글쓰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오정희 작가. <내 마음의 무늬>를 통해서 이번에 어떠한 마음을 풀어내려고 했을까.“이 책에 실린 글들은 주로 저처럼 나이 들어가는 여성이거나 글쓰기에의 향수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저의 마음열기의 한 방편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지만 저는 이제껏 제가 쓰는 글로써 누군가에게 배움을 주겠다거나 깨우침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나 자신이 자주 남의 글에서 아픈 마음을 달래고 위로를 받았듯이 읽은 이들이 이 책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누구든 그 애환이나 일렁이는 마음의 무늬는 다를 바 없다는 작은 공감과 위안을 받는다면 고마운 일입니다.”라고 겸손한 이야기로 오정희 작가와의 이야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메일을 보내던 날의 춘천을 설명하는 오정희 작가의 이야기로 마칠까 한다.
‘모처럼 내린 눈에 춘천도 은세계인데 얼음을 녹이며 흐르는 냇물소리와 바람이 벌써 봄기운을 전하네요.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좀 그래서 연둣빛 목도리를 두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논둑길을 걸었답니다. 춘천 오정희 드림’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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