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추모하며
한국 정신계의 큰 별인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2월 16일 오후 6시 12분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1969년 추기경이 된 이후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이고 과감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적으로도 존경 받는 사회원로였다. 그는 교회가 공동선을 성취하려면 불의와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늘 말씀과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철학과 사상은 유신체제 아래 탄압을 받던 민주화 인사들의 인권에 공헌한 바 있으며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 원칙에 따라 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제시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30년간 맡아온 서울대교구장 재임 기간은 한국 사회 안에서 ‘명동성당’의 상징성을 새롭게 만들었다. 민주화와 사회 정의의 상징으로 명동성당이 온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金 추기경의 실천적 삶 덕분이다.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언하자 김 추기경은 TV로 생중계된 성탄미사에서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이 땅의 평화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국민을 지키는 수호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다”며 기독교 복음정신에 따른 보편적 인간상을 제시했다. 또한 “교회가 왜 노동문제에 개입하느냐”에 대한 답변 중 교황 비오 11세가 1931년 발표한 회칙 ‘사십주년’을 인용 하며 “공권력이 인권 탄압에 쓰이면 이것은 공권력이 아니요, 오히려 폭력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 “진리는 감춰지고 정의는 너무 무력한 세상”이라고 개탄하면서 명동성당을 민주화의 보루로 삼아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배려했다.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시작으로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 전주교구 7.18 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따라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자유 언론과 인권, 민주회복을 역설했다. 그의 용기는 천주교와 정권과의 대립의 각을 높이면서 천주교 내부에서조차 정치 개입에 대한 찬반 논란을 야기 시켰다. 그러나 추기경의 굳은 신념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사회 참여적 실천으로 화답해 나갔다.
1980년 1월 1일 인사차 찾아온 서슬 퍼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라고 은유적으로 비판했다. 그해 5.18광주민주화 항쟁 때는 “물리적 힘으로만 유지되는 침묵과 죽음의 질서를 바탕으로 해서는 폭력의 악순환이 거듭될 뿐”이라며 비상계엄 해제와 유혈사태 책임자 색출과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담화를 내기도 했다. 게다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전두환 독재 정부에 대항해서 시국 미사를 했고 특히 5.18 추모 미사 자리에서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 폭로는 6월 대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전두환 5공 독재가 판을 치고 있을 당시 “부정과 불의는 영속하지 못한다”는 예언자적 언행으로 총과 검으로 자유를 억압하던 어려운 시대에 용기와 신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갔다. 이어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시에는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 겸손하지만 단호하게 뱉은 그의 말은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날 것입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라고 한 말이다. 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체포하러 들어가려는 경찰과 맞서 끝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에 생명도 아끼지 아니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서로 사랑 하십시오” 라는 평범한 문구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선종 2∼3일 전부터 병실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남긴 말이다. 또한 안구를 기증해 두 사람에게 새 빛을 얻게 하는 마지막 봉사로 그의 육신(肉身)적 생애를 마쳤다. 그의 영혼은 큰 빛으로 남을 것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인도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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