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1)

재벌(財閥)! 인간에게 아주 특별한 위치와 의미를 주는 말이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개발의 주역이라는 찬사와 시장경제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 및 권력형 정경유착비리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또한 그들이 이루는 재벌가(家)의 혼맥(婚脈)은 재벌천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재벌을 잉태한 정경유착
요즘은 재벌의 부류가 다양하다. 기업재벌, 스포츠재벌, 연예인재벌, 부동산재벌, 주식재벌 등 그만큼 재벌을 보는 시각이 다양화 돼 있다. 한국경제는 박정희정권시절부터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했다. 수출만이 살길이었고 수출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정부는 많은 기업에 골고루 해택을 주기 보다는 특정기업을 키워 경제목표를 달성하는데 치중하였다. 이것이 지금소위 우리가 말하는‘재벌’이란 이름으로 잉태돼온 것이다. 기업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부가 주는 혜택을 바탕으로 거대성장을 해 왔으며 국내에서는 경쟁자 없는 경제활동을 구가했다. 그러한 혜택을 통하여 기업은 국가산업에 공헌했고 한국경제를 눈부시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이런 정경유착으로 말미암아 기업의 경영부실화를 초래하는 병폐를 낳기도 했다. 기업은 부풀려진 몸둥이를 감당 못하고 쓰러져 갔으며 자신이 키워논 기업들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 또한 사면초가에 빠지기도 했다. 거품이 빠지자 국가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IMF에 구제를 받는 창피를 톡톡히 겪어야 했다. 정부는 재벌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랜 시절부터 이어 오던 정경유착의 고리는 쉽게 단절되지 않았다. 기업이 파산하자 그 여파는 서민경제를 무섭게 파괴시켰다. 몰아주기 식 재벌 체제로 성장한 우리의 기업이 정경유착으로 인한 체질 부실로 이어질 때 기업 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벌중심체제

기업은 반드시 이익을 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을 이루려면 걸출한 인재등용과 경영기법,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내부적 요인이라면 정치적 압력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이익집단간의 혈연 등은 외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벌의 생존 유지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담보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일반인들은 흔히 재벌이라고 하면 기업집단의 개념과 더불어 특수한 신분의 사회계층을 떠올리게 된다. 때문에 재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의 초점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그에 걸맞은 생활상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하나의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각 회사들이 계열사로 편입되어 기업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두고 재벌중심체제라 말한다. 엄격하게 따지면 우리의 재벌체제는 유럽이나 미국의 재벌과는 그 성격을 좀 달리한다. 즉, 우리나라의 재벌체제는 지배구조가 대기업총수에게 있지만 미국의 경우는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점에서 다르다. 재벌중심체제는 불투명한 족벌경영과 부의세습, 비민주적의사결정, 비자금 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반면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과 추진력이 있고, 탄력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전문경영인이 성과에 따른 대접을 받기에 근로자 해고, 공장폐쇠 등 손쉬운 방법을 통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경영효과만을 높이려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실패하면 물러나면 그만이라는 편견에 봉착할 수 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그 재벌의 총수가 망하게 되므로 실적만을 보이기 위한 경영은 하지 않는다. 재벌이 형성되면 산업간 기업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연관 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지금의 산업체계는 어느 일부만 발달하여 성장하기 힘들기에 그 기업의 생산과 판매까지 처음부터 관련을 갖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의 재벌은 지금까지의 재벌의 병폐였던 문제점만 과감히 고친다면 오히려 국민경제발전의 견인차로서 긍정적인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재벌과 부자

우리는 흔히 재벌과 부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재벌과 부자란 조금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재벌은 거대자본을 가진 혈연적인 기업체군을 의미하지만. 부자란 단순히 살림살이가 풍부하거나 많은 재산을 소유한자를 의미한다. 즉 부자는 그냥 돈 많은 사람을 말한다면, 재벌은 거대 기업과 그 소유자 등 모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재벌을 논할땐 거대 기업보다는 그 소유주나 경영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부자라고 하면 적어도 10억대 이상의 자산을 갖고 있어야 우리사회에선 부자라고 인정할 수 있다. 한때 ‘부자되기’, ‘10억 만들기’가 유행된 적 있었는데, 이것은 그 정도의 자산을 소유해야만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부자라고 인정하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10억 정도면 자신의 집과 차를 소유할 수 있으며 그 외에 부동산도 가질 수 있어서이다. 그러나 재벌은 이정도의 자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선 재벌이 되려면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한 기업체군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기업체군을 가질려면 부자들이 이룬 부와는 달리 그 밑바탕엔 더 광범위한 무엇이 있어야한다. 때문에 기업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적어도 수백억에서 수천억 이상의 자산을 소유해야 재벌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재벌들의 신(新)혼맥 경영

국내 굴지의 모 재벌그룹 회장의 장남 A씨는 아버지 회사가 IMF이후 어려움을 겪던 시절 규모가 더 큰 재벌 집안 딸과 결혼했다. 사실 A씨는 혼전에 이미 결혼을 약속한 B양이 있었지만 결국 집안의 만류로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재벌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B양은 A씨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할 정도로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특히 A씨 아버지는 장차 며느리가 될 B양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A씨와의 결혼에 실패한 B양이 받은 충격은 컸다. 결국 그녀는 구설수를 두려워한 A씨 집안의 뜻에 따라 도망치듯 외국 유학을 떠났고, 그녀가 유학을 떠난 사이 A씨 집안은 재벌가의 며느리를 맞아들여 사돈을 맸었다. B양의 집안도 만만치 않은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가세가 기운다는 게 파혼 사유였다고 한다. 주변에선 “서로 격이 맞지 않은 탓도 있지만, 경영난을 겪던 이 재벌 기업이 정략적으로 다른 재벌가의 며느리를 맞아들인 것”이라는 소리가 당연히 나왔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혼맥으로 엮어진 재벌가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재벌가에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혼인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평범한사람’과의 결혼으로는 1999년 이건희 회장의 맏딸 부진씨가 단국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삼성 계열사 직원 임우재씨와 결혼한 것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재벌기업들이 이미 구축한 정관계 혼맥에 최근 재벌 3세들의 재벌간 ‘신혼맥’이 가미됨에 따라 재계와 정관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신판 혼맥도가 완성됐다. 1957년 당시 재계의 쌍두마차였던 삼성과 LG가 사돈을 맺은 이래 수십여년 동안 재벌간의 혼맥이 이루어져왔고 재벌 3세들 간의 혼사가 러시를 이루면서 현재는 재벌과 정관계의 혼맥이 한두 다리만 거치면 모두가 사돈지간이 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재벌 3세간 결혼의 시작은 1995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남인 의선씨와 정도원 강원산업 장학재단 이사장의 장녀 지선씨의 결혼을 기점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어 97년엔 현대와 LG가 사돈을 맺음으로써 당시 빅3 기업간의 통혼관계가 이뤄진다. 정주영, 구자경 두 명예회장이 사돈이 된 것에 대해 당시 재계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결혼으로 재계 순위 1∼3위를 다투던 현대 삼성 LG는 서로 주고받는 ‘순환 혼맥’을 완성했다. 현대는 2세대까지는 재벌가와의 혼맥이 비교적 단출한 편이었다. 정주영 전 회장이 가난한 농삿꾼 집안 출신답게 자식들에게 자유결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정주영 전 현대회장은 슬하에 8남1녀를 두었다. 이 중 재계 출신과 결혼한 자식은 5남 몽헌씨와 7남 몽윤씨 뿐이고, 이들의 결혼도 집안의 의사와는 무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현대는 3세대인 ‘선’자 돌림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재벌가다운 혼맥을 형성했다. 의선씨와 일선씨 외에도 정 회장의 장남 몽필씨의 차녀 유희씨가 쌍용 김석원 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혼인을 맺었다. 현대와 강원산업 결합에 이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부진씨와 임우재씨의 결혼식. 98년엔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는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와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의 결혼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양가의 어머니 홍라희씨와 박현주씨의 소개로 이뤄졌다고 한다.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은 딸만 둘이다. 임 명예회장은 자신의 대상 지분 중 대부분을 두 자녀에게 상속했는데, 세령씨가 삼성의 실질적인 후계자인 재용씨와 결혼함으로써 두 부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 당시 이들의 결혼은 각각 영호남의 대표기업이며 미원-미풍 전쟁으로 유명한 삼성과 미원(대상의 전신)이 사돈이 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정,관계와 최고의 혼맥을 갖고 있던 삼성이 재계와 혼맥을 만들며 ‘재벌 카르텔’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삼성과 다른 재벌가의 혼사는 57년 이병철 회장의 차녀인 숙희씨와 LG 구인회 회장의 3남 자학씨의 결혼 외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이 밖에도 최근 이뤄진 재벌 3세들간 혼사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금호가 재벌 혼맥 맺기에 나선 것은 고 박인천 회장 때부터다. 박회장은 영남의 명문가를 찾아다니며 사돈 맺기를 청했다는 후문이다. 박회장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금호의 혼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박회장의 셋째딸 현주씨는 호남기업인 대상의 며느리가 돼 금호는 대상과도 혼맥을 맺고 있다. 삼성과 대상의 혼사로 현주씨가 삼성 이재용씨의 장모가 됨으로써 삼성과도 다리 건너 사돈이 된 셈이다. 금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집안과도 직계 사돈간이다. 또한 금호는 LG와의 통혼을 통해 주요 재벌가의 상당수를 다리 건너 사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얽히고 섞인 재벌 혼맥도

LG가 삼성과 맺은 혼맥은 삼성과 사돈인 권세가들로 이어진다. 홍진기 회장은 노신영 전 총리와 양택식 전 서울시장,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 등과 직계 사돈이고, 박정희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복동 전 의원, 이후락 전 중정부장 등과는 다리 건너 사돈이다. 결국 LG는 박, 노 전 대통령과도 다리건너 사돈이 되는 셈이다. 혼맥도를 보면 LG로부터 뻗어나간 혼맥이 거의 모든 재벌가와 연결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LG와 현대가 통혼하면서 혼인관계가 없던 라이벌 기업인 삼성과 현대도 다리건너 사돈이 됐다. 엄격히 따져보면 현대와 삼성은 전부터 다리건너 사돈지간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장인은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장남: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다. 홍 전 장관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사돈인 노신영 전 총리 집안에 딸을 시집보냈다. 따라서 삼성과 현대는 노 전 총리 집안을 매개로 다리 건너 사돈간이 된다. 정몽준 의원의 장인인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가문을 따라가면 LG 허씨 일가와 조선일보로 이어진다. 현대는 LG와 직접 통혼 이전에도 LG 허씨 일가와 가까운 관계였던 셈이다. 같은 방법으로 혼맥도를 따라가면 삼성과 SK도 연결된다.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 가문은 김복동 전 국회의원 가문과 연결되고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태원 SK 회장과도 다리 건너 사돈간이 되는 것이다. 비교적 재계와 직접적인 통혼관계가 없는 SK도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을 맺는 바람에 결국 거대 혼맥의 일원이 된 것이다. 롯데는 한진을 거쳐 혼맥의 본산인 LG와 연결되는데 롯데의 일본 쪽 혼맥도 대단하다. 신회장의 차남 동빈씨(롯데 부회장)는 일본의 귀족 가문인 다이세이건설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사위다. 신 부회장의 아내는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다. 롯데에서 갈라져 나온 농심은 동부, 태평양과 혼맥을 맺고 이 혼맥은 다시 조선일보와 LG 허씨가문, 현대로 이어진다.

재계 혼맥의 핵 LG

재계에선 LG를 ‘한국 상류사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LG 구인회 회장이 형제가 6명이고 슬하에 자녀가 6남4녀인데 아들 6형제의 자녀가 20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가족 구성원이 이렇듯 많다 보니 다른 기업들보다 수월하게 혼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LG는 직접적으로 사돈을 맺고 있는 재벌만 삼성 현대 두산 한일 한진 벽산 금호 대림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LG가 재벌간 ‘혼맥 카르텔’의 연결고리가 된 것은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혼맥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LG의 재계 혼맥 맺기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0년대 후반 삼성과 LG(럭키)는 재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 집안이 재계를 석권하기 위해 혼사를 맺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장남인 구자경 회장은 당시 대지주의 딸과 결혼했고, 차남 자집씨는 전경련 회장을 지낸 홍재선씨의 딸과 혼인을 맺었다. 차녀 자혜씨는 대림그룹 집안으로 시집갔고, 3녀 자영씨는 전 제일은행장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씨와 결혼했다. 삼성가의 사위가 된 구자경 명예회장 둘째 동생 자학씨의 차녀 명진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집안으로 시집을 갔고,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의 3남은 구인회 회장의 조카사위가 되었다. 구회장의 막내 동생 두회씨는 한일그룹과 혼맥을 맺었다. 3세들의 경우도 대부분이 재계와 통혼했다. 구자경 회장의 차남 본능씨는 전 희성금속 사장 강세원씨의 딸과, 장녀 선미씨와 차녀 미정씨는 각각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부사장 집안과 대한펄프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구자경 회장 형제들의 자녀들도 대부분 재벌가와 혼인을 선택했다. LG의 공동창업주인 허씨 일가의 혼맥 또한 만만치 않다. 구씨 가문은 허씨 일가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다리 건너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혼맥을 맺고 있다 보니 LG는 사돈들과의 악연도 갖고 있다. 사돈을 맺은 뒤 라디오서울과 동양텔레비전에 공동으로 출자, 사돈 간의 우애를 과시하던 LG와 삼성은 당시 금성의 아성이던 가전사업에 삼성이 진출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진 적이 있다. LG는 1999년, 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경영권 다툼 끝에 사돈인 현대그룹에 반도체 사업을 넘기면서 두 기업은 ‘사돈기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패였다고 한다.

귀족문화의 형성

퍼즐을 풀듯 혼맥도를 따라가다 보면 재계는 거대한 로열패밀리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재벌가에서는 3세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 중요한 특징 하나가 발견된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정계나 관계와 혼사를 맺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재벌끼리 혼사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재벌3세들이 정계보다 재벌가의 배우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3세들간의 결혼은 역설적으로 기업을 하는 데 있어 과거만큼 권력층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정략적인 결혼을 싫어하는 증거인 한편‘끼리끼리 문화’의 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벌가를 관통하는 ‘신혼맥’은 3세들의 이런 성향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재벌 3세들의 경우엔 연애결혼을 통해 혼맥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배타적인 사교관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만의 사교문화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철저히 배제하고, 비슷한 계층간 결혼을 통해 서구식 ‘귀족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인은 비슷한 집안끼리 하는 게 사회의 일반적 관습이다. 하지만 ‘가족경영’의 폐해가 자주 드러나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시각 또한 사실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피로 맺어진 혼맥도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근처엔 영원히 접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혼맥으로 무장한 ‘노블 클래스’는 앞으로 그들만의 혼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뻔하다.

재벌을 보는 우리의 시각

이렇듯 재벌을 이야기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점이 바로 혼맥인 것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설명된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재벌들은 정,관계와의 혼인비중이 높았다. 그 이후 재벌간 혼사 비중이 높아지면서 재벌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관계와 혼인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부침이 심한 정·관계보다는 오히려 같은 재벌끼리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재벌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다른 계층과는 단절된 채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끼리 문화’의 작용이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유학도 함께 가고 재벌가의 산모들이 원정출산을 가서도 특정 산부인과에서 같이 애를 낳는다고 한다. 또 재벌 안방마님들이 어울리다보면 자녀들 혼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 ‘끼리 문화’가 더욱 정착되는 것이다. 서구처럼 우리사회도 이제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귀족계층, 상류계층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재벌들은 그들의 혼맥이 세간에 곱지 않게 비쳐지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재벌들의 혼맥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 정경유착 등을 통해 그들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과 그들이 이룬“혼맥 카르텔”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사회든 세상은 달걀과 같아서 노른자위는 존재하는 것이고, 노른자위끼리 인맥을 형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지도층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그 의무를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은 것이다. 며칠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재8,000억 이란 큰돈을 사회에 환원한데이어 전 삼성가족들은 일정시간 사회 봉사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진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별로 썩 유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뭔가 좋은 그림을 보여주려 의식적으로 절치부심 판을 짠듯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들의 독주에 메스를 가한 것인지 메스가 두려워 독주를 잠시 멈춘 것인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재벌은 재벌로서 세상에 귀감이 돼야하고 정부는 재벌이 공정한 제도아래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NP <다음호에는 재벌2편 ‘재벌2세 그들은 특별한가?’를 연재합니다.>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