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활자, 그리고 생활여행자로 지내온 10년간의 여행기록

여행은 언제나 애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안에도 일상의 구질구질함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정체된 도로 한가운데서 지난 여행길에 보았던 숭고한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일상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고 그날의 여행을 추억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여행의 힘이자, 의미일지 모른다.

여행과 생활이 구운몽의 이야기처럼 서로 몽중몽의 느낌을 갖고 있어‘여행생활자’와‘생활여행자’라는 말로 자신을 수식하는 유성용씨는 지난해 10월 <생활여행자>라는 책을 펴냈다. 이는 4년 전, <여행생활자>를 출간한 지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여행생활자>의 삶 속에서 최대한 자신을 죽이고 이국의 삶과 그 풍경에 최대한 집중했던 그는, 다시 <생활여행자>가 되어 여행 속에서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활 속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밖의 풍경과 사건들 속을 헤맸다.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 속을 걸으며 생활을 여행한 것이다.

여행생활자,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 <여행생활자> 中 -
▲ 유성용씨의 <여행생활자>는 단순한 여행가이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기록이다. 2004년 초 여행을 시작해 1년 6개월 동안 티베트와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지를 떠돌며 여행한 그는 남루함과 가난 외에는 찾을 것 없는 외진 세상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그 속에서 빛나는 삶의 진실들을 발견했다.
여행이 나를 굴리고 다녀서, 나는 여행생활자가 되었다. 일생을 여행으로 늙어버린 사람은 다만 홀로 함구하고 바람 속을 걷다가 사라지거나 하겠지만, 그리고 가끔은 그 소외의 몇 구절이 함부로 자유의 이름으로 팔려나가기도 하겠지만, 여행생활자란 말은 내 입 밖으로 뱉어진 그 자리에서 시작해 이미 나를 넘어서서 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돌멩이처럼 그 길 위에서 부림을 당하였다. 문득 떠나와 1년 반이 흘렀다. 길 위에서 수많은 곳을 들락거릴 때마다 내가 알거나 혹은 모르는 것들이 하나같이 그 어떤 장소가 되어서는 내 앞에 펼쳐졌다. 과거도, 그리고 상처의 기억도 장소이며, 계절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처럼 살아보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이 있다. <여행생활자>는 단순한 여행가이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기록이다. 2004년 초 여행을 시작해 1년 6개월 동안 티베트와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지를 떠돌며 여행한 유성용씨는 남루함과 가난 외에는 찾을 것 없는 외진 세상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그 속에서 빛나는 삶의 진실들을 발견했다.
지난 2007년 여름 출간된 <여행생활자>는 일 년도 채 못돼 6쇄를 찍어냈을 정도로 넘쳐나는 여행 관련 서적 중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여행과 생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둘이 결합해 낭만과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냉소와 허영이라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위치가 묘한 감정을 주는 것 같다.” <여행생활자>가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에 대한 유성용씨 나름의 해석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이 여행 위에 덧칠하고자 하는 낭만의 색을 철저히 차단한다. 한 발 나아가 여행을 하지 말라고, 꿈꾸지 말라고 말한다. <여행생활자> 속엔 이런 글귀가 있다. ‘여행자들은 생활에 지쳐 여행을 떠나지만, 그것이 며칠짜리 레저가 아니라면 결국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다.’
“처음 갔던 곳이 태국이었다. 동남아를 돌다가 중국 운남성에서 티베트를 거쳐 네팔과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일 년 반 동안 진행된 여행은 나보다 더 거대한 무엇이 되어 나를 볼품없는 물건처럼 막 굴리고 다녔다. 일 년이 지나니까 마치 나의 바깥으로 나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념도 없이 그냥 타박타박 걷고 있더라. 여행이 끝난 계기도 너무 코믹하다. 중국 신장 자치구 우루무치 지역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얼음호수와 사막, 설산을 배경으로 전봇대가 박혀 있는 그림이 있는 거대한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동행하게 된 한 일행이 저기에 다시 가고 싶냐고 묻더라. 대답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래서 곧장 귀국했다. 여행이 문득 시작된 것처럼 문득 끝났다.”
그의 말처럼, 문득 시작돼 문득 끝나버린 여행 속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너무 당연시하는 인간의 품성이 당연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 꿈, 희망, 사랑 같은 것들이 각박한 세상의 반작용으로 너무 과대 포장돼 있고, 귀신처럼 도시를 떠돌고 다니는 것 같았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꿈이나 희망 등에 대한 강박이 별로 없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어떤 원주민 할아버지께‘당신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꿈이란 게 뭐냐’고 반문 하시더라. 그들은 꿈에 대한 강박 없이 그냥 일상을 살고 있었다. 거대한 꿈이나 성과주의로 자신을 몰아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여행생활자에서 생활여행자가 되기까지

- <생활여행자> 中 -
▲ 유성용씨는 2003년 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서울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을 <생활여행자>에 고스란히 담았다. <여행생활자>가 생경한 공간을 빌어 그가 겪어온 시간들을 거슬러 여행한 흔적이었다면, <생활여행자>는 일상 속의 시간들을 빌어 그가 이미 떠나온 공간과 그 속에서 닿았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한 기록이다.
생활여행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활에서 나의 집을 잃고, 나의 가족을 잃고, 나의 친구와 애인을 잃고 뿌리 없이 사는 이야기다. 마치 여행 속에서 우리가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활 속에서 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내 밖의 풍경과 사건들 속을 헤매면서 나의 것도 되지 못하는 누군가의 일상 속을 걷는 일이다. 급박하고 변화무쌍하면서도 한편 너무 따분한 이생에서 우리가 뭔가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늦은 일이다. 사랑하면 당신의 사랑은 이미 고갯마루를 넘어선 것이며, 이제 너무 혼자라면 그대는 이미 혼자인 시간들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죽고 싶다면 이미 살만해지는 것이고, 살만하다면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두 늦어버린 것들의 기록이다.

“집 앞 산책이 먼 히말라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라는 존재를 생활 속에서 회의해보는 시간이었다. 인생이 경험의 총체라고 한다면, 그것을 극진히 체험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생활자>가 생경한 공간을 빌어 그가 겪어온 시간들을 거슬러 여행한 흔적이었다면, <생활여행자>는 일상 속의 시간들을 빌어 그가 이미 떠나온 공간과 그 속에서 닿았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한 기록이다.
여기 하나의 놀이가 있다. 모인 사람의 숫자보다 한 개가 모자란 의자들 주위를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빙빙 돌다가 노래가 멈추면 의자로 달려가 앉는 놀이다. 가장 느리고, 가장 덜 난폭하고, 어쩌면 가장 재수 없는 아이 한 명만이 홀로 남게 된다. 안착하지 못했다함은 이런 상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나머지 것들은 시스템 속에서 착착 잘 굴러가는데, 오직 나만이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 유성용씨는 시종일관 세상이 굴러가는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에게는 원래부터 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하게 일상 속을 떠돌지만, 그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악착같이 의자를 누리려 했으나 결국 그 밖으로 밀려나고 마는, 혹은 요행으로 의자를 차지했으나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신세 진 것 없이 충고를 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교양적인 충고들 앞에서는 일단 딴청 부리는 기술이 필요함을 말하며, 무리하게 세상과 싸우기보다는 우선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또한, 철원 평강고원에서 냉면을 먹으며 통일을 생각하고, 남당항에서 국화빵을 먹으며‘하루를 살면, 하루가 고통이지’라는 국화빵 장수의 말에 자신의 삶을 가늠해보곤 한다. 한편으론, Eva Cassidy의‘Autumn leaves’를 듣고 유서를 써달라는 기이한 청탁 전화에 자살에 관한 짤막한 유서와 가난한 몇몇 살림살이에 대한 소유관계를 적어두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익살과 냉소만으로 지울 수 없는 아득한 풍경이 있다. 그와 그의 아이들은 고수부지에서 연을 날리며 엄마를 기다리다 벤치에 앉아 엄마가 출장길에 사온 귤을 먹는다. 바람이 없는 날 연을 날리느라 아이들의 얼굴엔 땀이 흐르고, 그러다 문득 이어지는 글은 오래된 노래‘메기의 추억’ 원문이다.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돈다. 한때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 부질없음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안다. 시간은 흐르고 맹세는 소용없다는 것을.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글의 행간을 이동하며 가슴이 저미어오는 것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우리 생의 남루함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버리지 못하는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3년 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서울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을 <생활여행자>에 고스란히 담은 유성용씨는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어가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의 시간들을 여행하며 경계를 아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생의 비릿한 진실들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애써 잠재우고 있었던 아프고 슬픈 기억들, 심지어 자신이 경험한 감정의 특이함을 몰라 그저 슬픈 줄로만 알았던 어떤 느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들어, 불편하지만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일상으로부터 훌쩍 떠나버린 지리산 여행
▲ 유성용씨는 고교 국어교사생활 3년 만에 돌연 지리산으로 떠났다.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교사생활을 하던 그가 행복에 대한 강박에 치이는 도시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지리산에서 내리 4년을 지낸 것이다. 남쪽 산자락에 작은 집을 얻어 사계절이 오가는 풍경에 몸을 맡긴 채 최소한으로 살면서 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자 했다.
유성용씨는 고교 국어교사생활 3년 만에 돌연 지리산으로 떠났다.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교사생활을 하던 그가 행복에 대한 강박에 치이는 도시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지리산에서 내리 4년을 지낸 것이다. 남쪽 산자락에 작은 집을 얻어 사계절이 오가는 풍경에 몸을 맡긴 채 최소한으로 살면서 그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자 했다. 그의 첫 번째 책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은 바로 그 시간에 대한 추억이다. “젊은 때는 관념적이지 않나. 나는 끝내 꿈꾸지 않고, 하나도 희망하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겹고 밋밋한 99%의 일상 속에서 아무 꿈도 없이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보겠다는 마음이었다. 어떤 꿈이나 희망, 자꾸 무언가를 지향하고 다음 단계로 가는 삶의 방식들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졌다.” 주위에서는 그런 삶이 용기가 필요하다 하고, 누군가는 치기어리다 했지만, 그는 막상 자신에게는 그런 용기도, 치기도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풀 하나, 꽃 한 송이, 바람 한 자락, 눈꽃 같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그리고 여러 사연을 갖고 산의 품에 안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그 시절은 외롭지만 황홀했던, 행복한 폐인의 날들”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렇게 아내, 그리고 첫 아이와 함께 지리산을 떠났던 그는 훌쩍 떠나버렸던 것처럼 다시 훌쩍 서울로 돌아왔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듯 유유히 떠나버렸던 그는 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까. “어떤 관계 속에서 큰 상처를 받고 무작정 강원도 깊은 산골에 쌀 한가마니와 김치 한통을 들고 들어갔다. 무릎까지 쌓이는 눈에 지붕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매일 밥과 김치만 먹고 살았다. 그때는 거의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 수많은 상념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파 그냥 걸었다. 걷다보니 동해를 거쳐 통일전망대까지 3박 4일을 걸었더라.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마침 서울행 버스가 첫 차였다. 너무 힘들었고 쉬고 싶어서 그냥 버스에 올라탔다. 눈을 떠보니 서울이더라. 친구의 우연한 연락에 일 년쯤 서울 친구 부부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결국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여행을 떠났다.”
지난 1999년, 지리산으로 떠난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았던 10년의 길고도 짧았던 여행기록. 그렇게 유성용씨의‘여행생활자’와‘생활여행자’는 탄생했다. 그에게 있어 여행생활자와 생활여행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행 중에 자신이 떠나온 생활 자리를 떠올리는 것은 마치 몽중몽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생활자라 하면 여행을 생활처럼 많이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난 여행정보가 많거나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생활이라는 개념을 여행과 엮어갔다는 게 유일한 의미다. 사람들은 여행을 사회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 정도로 보는데,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다. 동네 바깥을 산책하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성용씨는‘여행은 생활의 반작용이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말을 실천하듯,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자 노력한다. 집을 나설 때면 항상 자신의 이름자가 박힌 문패를 보고 짧은 인사를 건네는 그. 마치 자신을 두고 여행을 떠나오는 기분으로 유성용씨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곳저곳 떠돌며 물건처럼 살고 싶다
▲ 최근 두 명의 친구와 함께‘바깥’이란 이름의 출판사를 차리고 올 6월쯤‘다방기행’을 시작으로 책을 발간할 예정이라는 유성용씨는 이미 월간 와 <한겨레신문>에‘스쿠터 전국 다방기행’을 연재한 바 있다. 말 그대로 그는 스쿠터를 타고 전국 곳곳의 다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최근 두 명의 친구와 함께‘바깥’이란 이름의 출판사를 차리고 올 6월쯤‘다방기행’을 시작으로 책을 발간할 예정이라는 유성용씨는 이미 월간 <Paper>와 <한겨레신문>에‘스쿠터 전국 다방기행’을 연재한 바 있다. 말 그대로 그는 스쿠터를 타고 전국 곳곳의 다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가 스쿠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본화가 덜 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퀵서비스 일하시는 분, 택배일 하시는 분, 자장면 배달하시는 분들이 타는 게 바로 스쿠터다. 약자들이 모여 서로에 대해 배려의 눈빛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정다워 나 역시 스쿠터가 좋다.” 정말 많이 고장 나서 기껏 고쳐봐야 수리비 5만원이 나올까 말까 한다니, 경제적으로도 더없이 좋은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스쿠터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하필이면 다방기행이었을까. “초대받은 곳은 다 늪이었다. 전국의 지자체는 너도나도 앞 다퉈 관광지를 개발해 우리를 초대하지만, 그렇게 해서 간 곳은 예전의 그곳 같지 않다. 반면, 다방은 초대하지 않는다. 다방은 인정투쟁, 성과주의,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비켜난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가 찾아간 다방들은 옛 시청, 구청에 있던 자리와 같이 주로 구 번화가들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방은 과거의 기억을 안고 있는 곳이다. 즉, 사라진 것들을 찾아가는 이정표 같은 곳이다. 스쿠터를 타고 여행을 다니면서 다방 간판들이 보일 때마다 너무 고마웠다. 아무 목적과 방향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유성용씨가 스쿠터를 타고 다방기행에 나선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그의 지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통과 관록의 지역다방들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준 정보들을 따라 그는 그의 스타일처럼 발길 닿는 대로 스쿠터를 타고 떠났다. “다방기행을 하면서 지방 곳곳 안 가본 곳이 없다. 양복점이란 간판이 있어서 들어가 보면 화분을 팔고 있고, 소금이라고 써져 있는 곳에서는 연탄을 팔고 있었다. 하얀 소금을 사러 갔다가 검은 연탄을 사고, ‘희다방’이라는 곳에 순희를 찾으러 갔다가 영희를 만나 애 둘 낳고 이혼하는, 그런 게 세상이 아닌가 싶다.” 한번쯤 세상으로부터 따귀를 맞아본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괜찮다는 일시적인 진정제가 아니라, 애매한 세상에 대한 정확한 시각과 누군가의 어깨가 아닌 허공에 기대는 기술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성용이라는 사람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해 5월과 8월 각각 멕시코와 이란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의 여행기가‘EBS 세계테마기행’을 통해 방송되면서부터다.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게시판은 방송후기와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떠들썩했고, 그의 홈페이지‘맹물(孟物)’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 팬들은 어느덧 오프라인 모임에 60여명이 모일 정도로 많아졌다. 유성용씨는‘물건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증폭시키고 피워 올리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단말기처럼 세상에 반응하며 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탁자에 음식을 올려놓으면 식탁이 되고, 앉으면 의자가 된다. 탁자가 자신은 탁자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우리가‘나’를 주장하는 모습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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