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년 백제의 흥망성쇠를 담은 산중고찰 고왕암
그만큼 암자는 세상의 이면에서 소리 없이 오랜 세월 우리역사의 발자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훌륭한 문화재다. 반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만큼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 곳도 드물다. 계룡산 고왕암에서 이뤄지는 ‘백제왕 추모제’는 1300년 전 백제의 찬란한 역사를 되새기는 자리로 지역민들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매년 10월 첫째 주 주말 오전 계룡산에서 ‘백제왕 추모제’가 봉행되고 있다. 백제를 창건한 제왕자모 소서노와 온조왕부터 의자왕까지 31명의 왕 그리고 융 태자와 풍 태자, 충마(忠馬), 백제유민의 위패가 봉안된 계룡산 고왕암에서 올해로 3번째 추모제가 열린다. ‘백제왕 추모제’는 백제의 왕들을 추모하고, 나라의 안녕을 위해 목숨 받쳤던 백제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고왕암 주지 견진스님과 공주시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백제왕 추모제’는 백제시대 산성인 공주 공산성 쌍수정에서 제를 지내고, 위패를 고왕암 백왕전으로 옮긴 뒤 위패 봉안식을 거행한다. 봉행절차는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애국가 제창, 백제왕과 충의장졸 및 유민들에 대한 묵념, 백제왕 청혼 법고 공양, 백제왕 추모제사, 축원, 백제왕 추모가 합창, 추모사, 사홍서원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작년 추모제에는 고왕암 주지 견진스님을 비롯한 전국 각 사찰의 스님과 신도, 이동섭 공주시의회의장, 공주시장을 대신하여 이형복 주민자치국장과 장동철 공주시청불자회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최근 ‘백제왕 추모제’는 그 뜻이 널리 알려지면서 ‘백제문화제’와 더불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부임 직후 곧바로 치러진 ‘백제왕 추모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견진스님의 숨은 노력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고왕암은 2007년 스님이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중수하고, 통천문을 불사하는 등 사찰을 재정비해 새롭게 태어났다. 스님은“처음 고왕암에 왔을 때 제대로 된 전각조차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제1회 ‘백제왕 추모제’와 함께 백왕전 현판식을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 더욱 내실 있는 행사로 이어 나가 고왕암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견진 스님은 ‘백제왕가’를 직접 작사해 합창단이 추모제에 부르게 했다.
계룡산 중턱에 위치한 고왕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중 하나인 신원사의 산내암자다. 서기 660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명으로 부설거사의 아들 등운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가 완성되기도 전에 백제가 멸망하는 등 오랜 수난 속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에 나당연합군이 침략했을 당시 의자왕의 아들 융 태자가 피난처로 삶았던 곳으로 이곳에서 붙잡혀갈 때까지 7년을 지냈다고 전해진다. 암자의 이름을 고왕(古王)이라 한 것도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고왕암 주변으로는 융 태자가 피난했었다는 융피굴과 융 태자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충마(忠馬)가 슬피 울다 떨어져죽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마명암(馬鳴庵) 터가 있다. 이외에도 신원사를 창건한 보덕(普德)화상의 열반경을 청강하기 위해 신라의 원효대사가 머물며 수행을 했었다는 최초의 자연굴법당 원효굴, 정도령 비서에도 등장하는 우물인 계룡석정 등이 있다.
특히 원효굴은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이 탄생하게 된 배경장소로 추정되는 곳으로 지금도 신비로운 자연 불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견진스님은“‘백제왕 추모제’가 고왕암에서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 고왕암을 찾는 이들에게 그 뜻을 제대로 알리고,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구도 도량으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NP (위덕관세음보살 불사를 위한 고왕암 연락처 041-852-4589)
백제왕가(백왕대제)
1절
백제건국 제왕자모 소서노와 제왕대신
계룡산하 고왕암 백왕전에 좌정하고
온조에서 의자까지 향로전에 모두모여
다반향기 즐기시고 부강나라 이루소서
정과 웃음 많은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예와 도를 아는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2절
삼족오가 손을 잡고 대한민국 건설하니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한민족을 통일할제
단군님과 계룡산신 부처님을 대신하여
금계소리 들려올때 세계평화 이룩하네
정과 웃음 많은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예와 도를 아는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고왕암 주지 견진스님 작사, 신원사 합창단 서근영 작곡)
견진스님은 5세에 반야심경을 외우고, 1982년 보경사로 출가하여 벽암 큰스님을 은사로 법주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조계종 교육원 연수국장, 교육국장, 전등사 기획실장, 개운사 주지를 역임한 후 서울 수선사를 종단에 희사하고 계룡산 고왕암으로 내려와 수행정진 중에 있다.
최성욱 기자
press98@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