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지재권 분야 최고 로펌으로 나아갈 터”

과거 변호사들은 법조계 종사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항상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의뢰인보다 높게 설정해 두고 상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법무법인 법여울 박영만 대표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변호사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보수를 주고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사람에 대하여 돈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법률적 지원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의뢰인과 변호인이 함께 걸어가야 한다. 서로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다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박 변호사는“고객과 변호사가 함께 호흡해야 승소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건설. 지재권 분야 최고의 로펌으로 자리매김
▲ 법무법인 법여울 박영만 변호사
"'법여울'을 5년 내에 건설과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가장 전문화된 로펌으로 만들겠다"며 법무법인 법여울 박영만 대표변호사는 이같이 건설 및 지재권 두 분야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법여울은 2006년도에 설립된 이후 건설 및 지재권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법여울은 중소로펌이지만 변호사는 물론 직원들도 건설과 지재권 분야에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건설과 지재권 분야를 뒷받침하고 있는 여러 팀의 조직이 체계적일 뿐 아니라 뛰어난 팀원 개개인의 역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이같이 밝혔다. 실제로 법여울은 건설 분야에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 외에 총 4개 팀이 이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6명(중국 변호사 1명 포함)인 변호사도 5년 내에 20~30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박영만 대표는 경춘선 철도공사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는 설계서를 변경하면서까지 공사금액을 올려준 최초 사례다. 특히 이 사건은 철도협회에서 법여울이 아닌 다른 로펌에 수차례 의뢰했다 승소가능이 없다고 반려한 상태에서 박 대표가 맡아 승소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박 대표는“설계서상 오류가 분명한데 계약서를 변경해 공사대금을 올려준 사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로펌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며“전례가 없더라도 분명한 오류라고 판단,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건설은 종합법률서비스가 필요한 분야”라며“법여울은 건설특허ㆍ투자자문ㆍ분쟁해결 등 다양한 사건들을 일괄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쪽 일은 법률문제나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부분이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나름의 보람이 있다고 했다. 한편 법여울의 또 한 축인 지재권 분야에서는 뉴스 기사 권리에 대한 인식이 수립되지 않은 지난 2003년 처음으로 국내 한 언론사로부터 인터넷 상에 게재된 기사에 대한 저작권 사건을 의뢰받았었다. 그리고 법정에서 일부 저작권을 인정하는 결정문을 받아냈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6개월여에 걸쳐 불법 뉴스 기사물 전제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대응방안 체계인‘저작권 전담 관리팀’을 구축해 2003년 부터 꾸준히 운영해 오고 있다. 이는 중소형 로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최근에 지재권에 대한 권리보호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첨단 정보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진 사례나 문헌 수집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박대표는 설명했다. 또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해 약 2년전부터 미국 및 중국 로펌 각 1곳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박 대표는“관련 변호사가 2개월에 1회씩 직접 미국으로 넘어가 시장 개방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해외 업무의 경우 꼭 건설이나 지재권 파트가 아니더라도 기업 관련 분야 전반에 걸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며“미국과 중국에 이어 2단계 일본 등 신흥아시아, 3단계로는 유럽 등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너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법조인으로 향후 차별화된 로펌
대학 입학후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계속 학교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교수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는 박 대표는 박사과정 이수 중 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다 역동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변호사 일을 하면서 실제 사건을 처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시험공부 할 당시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변호사가로 일을 막 시작할 당시의 힘들었던 점을 말했다. 또 변호사 업무를 하던 초창기 시절 법정에 들어가서 원고?피고석을 잘못 알고 앉아 한창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면서 그 당시 판사님과 방청객 모두 한바탕 웃은 변호사 초창기 때 실수에 대한 에피소드에 대한 얘기도 했다. 다른 모든 변호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문지식 습득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박대표는“항상 헌신적으로 젊은 변호사로 일하고 싶다”며“나이가 들어가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구태에 얽매여서 사물을 고정된 시각으로 보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박 대표의 솔직한 바람으로는“보다 차별화된 로펌을 설립하였으면 하는 데 끊임없이 변화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뢰인들에게 다양하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로펌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NP

<박영만 대표변호사 프로필>
▲1984년 대구 영남고 졸업
▲1988년 경북대학교 공법학과(수석입학) 졸업
▲2000년 경북대 법학대학원 졸업(박사)
▲2000년~2004년 연세대 법과대학 외래교수
▲2002년 사법연수원 출강
▲2003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석사)
▲2004년~2006년 국회윤리특별위원회 자문변호사(1호)
▲2004년~현재 연합뉴스 뉴스저작물 관리 전담변호사
현재 법무부 서울지방교정청 행정심판위원
▲2005년~현재 법무연수원 출강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법률고문
▲2006년~현재 (주)보광훼미리마트 가맹점계약체결 전담변호사
▲2008년~현재 충남 태안 유류유출사건 정책자문단 변호사
대한주택공사/신용보증기금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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