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극‘방문자’로 3대 신인연극인상 수상의 영광 누려

지난 1996년, 박은 연출의‘거울보기’로 연극무대에 데뷔한 김수현은 이후‘봄날’, ‘일출’등에 출연하며 세간에 얼굴을 알려왔다. 그 후 1999년, 영화‘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지난해 연극‘쿡크박사의 정원’에서 젊은 의사 짐 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극단 산울림의‘방문자’에서 프로이드의 내면 갈등을 끌어내는 미지의 남자 역을 거뜬히 소화해내며 단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젊은 배우로 떠올랐다.

김수현은 연극‘방문자’를 통해 지난해 말 3대 신인연극인상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제 45회 동아연극상의 유인촌신인연기상, 2008 대한민국연극대상의 남자신인연기상, 2008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히서연극상은 역대 수상자의 면모에서 드러나듯이 우리 연극무대를 꿋꿋하게 지키고, 자신의 예술혼을 우리 문화와 연극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보태온 연극인들에게 시상하는 의미 깊은 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히서씨는 김수현에 대해“부친을 뛰어넘는 성실하고 훌륭한 배우로, 무대 위에서 좋은 재목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버리지 못한 연기의 끈이 지금의 기쁨 가져다줘
“처음 희서연극상을 받았을 때는 태어나서 상 받은 게 처음이라 얼떨떨하게 받았는데, 이후 거짓말처럼 연거푸 세 번을 받게 됐다. 솔직히 마지막에 동아연극상을 받을 때는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더라.” 한 번도 누리기 힘든 영광을 세 번이나, 그것도 연속으로 얻은 김수현은 오히려 마음속에서 생겨난 이질감들로 인해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평소 스스로를 물고 늘어지며 어지간히도 괴롭힌다는 그는 지난해 연극‘방문자’로 무대에 오르는 두 달 내내 고민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했다. 하지만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공연을 끝내면서까지 그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연기를 잘하던 못하던 그 자체를 즐기는 배우들을 보면 참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이는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의 단편이 아닐까. 특히, 그는 이미 데뷔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늦깎이 신인배우다.
“정확히 1995년도로 기억한다. 당시 학과 교수님께서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그 성과가 좋아 새로이 팀을 꾸려 연장공연을 하게 됐다. 교수님의 제의로 얼떨결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후 96년, 98년에도 무대에 오르게 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연기를 전공한 그였지만, 그 무렵 늦은 방황을 거치며 다시는 무대 위에 오르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간혹 영화 속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에 대한 감 정도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7~8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2006년도쯤인가 이건 연기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버리지 못할 거면 다시 제대로 시작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다시 이 바닥에 들어오기 힘들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후 그는 연극무대에서 활동 중인 주변 친구들을 수소문해 호시탐탐 연극무대 복귀로의 길을 다졌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왔다. 이로써 9년 만에 다시 연극무대에 오른 그는 바로 다음해 연극‘방문자’를 만나며 지금의 얼떨떨한 기쁨을 소중히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보통 연차 때문에 꾸준히 무대에 올랐던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동안 무대에 오른 건 손에 꼽기 때문에 정말 신인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난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작품은 몇 안 되는데 한 작품을 통해 바로 상들을 휩쓸었으니, 당시 그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화가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지나고 보면 결과적으론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아했어야 할 일인데, 잠시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2008년은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셀로’는 또 다른 도전이자, ‘방문자’와의 새로운 동행
지난 5월 24일, 김수현은 연극‘오셀로’의 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쳤다. 오셀로는 그간 연극인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지나친 각색이나 해석으로 원전에서 빗나간 작품들도 많았다. 그간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심재찬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사랑이 이아고의 악마적 계략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에 그동안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갇혀 있었던 캐릭터들이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났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수현은 이번 작품에서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하는 현대의 사이코패스로 재해석된‘이아고’역을 맡아 방문자에 이어 또 한 번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생기는 단점이 많았을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얘기는 들어왔지만, 극 전체의 이미지를 낱낱이 파악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특히,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일종의 특명으로 인해 숱한 고민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 특명은 바로, ‘굉장히 감정적인 오셀로에 비해, 이아고는 아주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기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몰입돼 격양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연출가 선생님께서 요만한(손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감정의 폭 안에서 놀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배우로서 반드시 어떤 부분까지 뻗어나가야 하는 감정이 있는데, 그걸 최대한 자제해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결과적으로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게다가 이미‘방문자’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심재찬 연출가, 배우 이남희)과의 새로운 동행은 그에게 더없는 버팀목이 됐다. “‘방문자’에서 두 달 내내 많은 얘기를 나누며 호흡을 맞췄었기 때문에 일종의 믿음, 동료애랄까,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잘 맞는 무언가가 생겨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워낙 만만치 않은 캐릭터라 처음엔 부담도 컸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공부가 돼서 기쁘다.”

지금의 과제는 배우로서 다양한 비장의 카드 마련하는 것
김수현의 부친은 배우 김인태, 모친은 백수련으로 그 끼를 고스란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배우로의 꿈을 키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배우는 물론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꿈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 싶은 과가 없더라. 나중에 예쁜 집 한 채 지어놓고 살면 좋겠다 싶은 마음은 있어 고 3 진로선택 때 그냥 건축과를 선택했다. 결국 낙방하고 재수를 하게 됐지만.. 그런데 어느 날 별안간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지더니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더라.” 다시생각해도 웃음이 난다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그도 정말 진지한 선택을 감행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이후 한 번에 떡하니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으니, 아마 그도 모르는 사이‘배우의 피’가 그의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김수현은 완성된 배우로의 길을 위해 다양한 비장의 카드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거듭날지는 모르겠지만, 배우생활에 있어 꼭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이 있다. 바로, 배우는 품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많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가진 최대한의 카드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이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부족한 부분이고, 앞으로 내가 해결해나가야 할 일종의 과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는 미래 자신의 모습에 어떤 청사진을 띄어놓고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예전에도 누가 비슷한 질문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공연을 보다 보면 그 스토리에 얽혀서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스토리를 떠나 배우들이 정말 열정을 다해 공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
불혹의 늦깎이 신인배우 김수현은 아직 미혼이다. 간혹 결혼한 친구들의 아이를 보면 세삼 잊어버렸던 나이를 실감하기도 한다는 그는, 그래도 동화 속 피터팬처럼 마냥 꿈꾸는 기분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특히, 요즘엔 문득 칠순의 나이가 되도 멜로가 어울리는 로맨틱한 배우를 꿈꿔본다는 그의 말에 왠지 나이 너머에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현대판 피터팬이 바로 그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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