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연기 입문 40년, 끝나지 않은 그의 배우인생 이야기

Q 벌써‘기막힌 사내들’이 다시 무대에 오른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소감이 어떤가
- 항상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미심쩍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가, 과연 얼마만큼 전달되었나하는 것이다. 이 공연을 통해 삶에 기쁨과 슬픔을 주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이 순간 우리의 연기를 보기 위해 찾아오신 관객들인데, 과연 그분들 삶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늘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심정이다.
Q 7년 만에 복귀하는 대학로 무대인데, 17년 전과 같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오랜만에 대학로 무대에 선다는 설렘과 중압감에 많은 고민을 했다. 기막힌 사내들은 내가 1992년 바탕골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작품으로,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롭다. 허접한 코미디 공연이 판을 치는 대학로에 뭔가 자극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연극적으로 완성도가 있고 배우 예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조사를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진행하던 중, 이 작품을 기억하게 됐다.
Q 초연 당시와 지금의‘기막힌 사내들’, 극에 있어 어떤 변화가 있었나
- 17년 전 초연 당시에는 굉장히 희극적 요소가 많았다.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캐릭터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연출의 초점을 잡았다. 아무래도 심리전이 중심이 되다보니 연기하는 배우들 또한 힘든 점이 많았다. 다행이도 예술 감독이 배우이다 보니, 감독이 직접 참여함은 물론 적극적인 도움을 펼쳐 잘 진행되고 있다.
Q 이번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일확천금을 원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하룻밤의 꿈과 희망을 품고 일확천금의 욕심으로 서로 싸우지만, 결국 다시 우정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상황에서, 우리도 복권이 당첨되길 바라는 꿈을 한 번씩 꾸지 않는가. 바로 이렇게 죽지 않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사회가 양극화된 지금 현실에서 꼭 관람해야할 연극이 아닌가, 이 시대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정말로 갈 데 없고, 존재할 의미도 없는 소시민들이라 해도 나름대로의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 작품은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 있다.
Q 17년 전과 같은 작품, 같은 배역에 임하는 부담은 없나
- 연극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이 작품은 인간심리를 아주 세심하게 표현해야하는 연극이기 때문에 온몸의 세포를 총동원해 집중해서 표현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 7년 만에 컴백하는 작품이라 두려움도 앞섰고.. 그래도 17년 전 이 작품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고, 이렇게 다시 같은 작품에 같은 배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벅차기도 하다. 열정을 쏟은 만큼 초연 때처럼 연극다운 연극이란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누가 보더라도 마음껏 웃고, 즐기고, 결국엔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또 바랄 게 있을까.
Q 7년 만에 대학로 연극무대로 복귀했는데, 그간의 변화가 느껴지는지

그간 극단도 많이 생기고 젊은 친구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물론, 양적인 팽창보다 질적인 변화가 먼저 왔으면 하는 것이 선배의 입장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지금의 대학로 현실이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흑백TV 시대에 콧수염 붙이면 다 어른이 되는 것처럼, 단지 흉내만 내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있다. 내가 왜 이 연극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지금 이 순간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Q 대학로 연극무대를 떠난 공백기 동안 어떻게 지냈나. 통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 연극을 아예 벗어났던 건 아니다. 그동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개인보다는 연극과 연극인들을 위한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연기에 대한 갈증도 여전했다. 그래서 4년 동안 미국 달라스의 교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시름을 달랬다. 지금 이 대학로에 날 던지는 것보다는 고국을 떠나 고국문화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공연예술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나에 대한 명분도 생기고, 이국의 삶에 좀 더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었다. 교포라고는 고작 5만 명 남짓의 도시에서 매회 800명 이상의 관객으로 매진되는 진기록과 매 공연마다 기립박수에 우는 사람들..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체에 배우로서 엄청난 보람을 느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Q 올해로 벌써 연기 입문 40주년을 맞이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 그간 연극,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파노라마처럼 살아온 것 같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다. 어느 한 순간 날 놓친 적은 없으니까.. 단, 그때 거기에서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지금의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생각은 해본다. 그래서인지 항상 모자람을 느끼고, 그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한다. 간혹 후배들의 행동에 쉬운 비판은 가했지만, 과연 내가 선배다운 선배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까하는 두려움도 있다.
Q 연기자의 길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원래 내 꿈은 정치가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나름대로 정치학과로의 입학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보따리를 싸서 고향으로 가려는데 누님이 은근히 연극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 고 2 학예회 때‘금산의 피’라는 공연에서 연산군 역을 맡았었는데, 그때 누나가 유심히 지켜봤던 것 같다. 앞으로는 개성의 시대가 올 테니 그쪽으로 진로를 전향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귀향하려는 나를 극구 만류했다.
Q 누님의 설득으로 연기자가 됐는데,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나
- 우연찮게 내 인생이 180도 돌아섰지만, 내 선택에 후회하진 않는다. 남들은 예술이니 뭐니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수 천 수만 가지의 직업 중 이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 삶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간혹 비판 받을 수도, 또 칭찬 받을 수도 있고, 너무 욕심을 낼 이유는 없는 것 같다.
Q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한국연극협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했는데
- 개인보다는 연극과 연극인을 위해 정신이 없었다. 당시 50억 원에 불과했던 국고지원을 110억 원으로 늘렸고, 소극장개선사업, 목동천막극장의 국고지원 등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또, 지방 연극인들을 위해 도지사나 시장을 만날 때 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위해 전국로드도 마다하지 않았고, 포항바다연극제 태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 나의 세월보다 후배들에게, 모든 연극인들에게 더 풍족한 여건 마련을 위해 내 능력껏 최선을 다했다는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Q 7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대학로 연극무대를 진단한다면

Q 지금의 대학로 세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 현장성을 모르고 내세운 정부정책이 문제다. 연극계에 자주 대학교수들이 자문을 오는데 그분들이 이론만 강했지, 현장을 얼마나 알겠나. 무대 뒤의 아픔이나 문제들을 얼마나 알겠냔 말이다. 그러니 자문을 얻은들 얼마나 소용이 있겠나. 관의 공무원들도 전문적인 인력이 없으니 이랬으면 좋겠다는 추상적인 기획이 전부다. 지원금이나 툭툭 던져주는 거지.. 게다가 지금은 나이든 배우를 무대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로에 120여개의 소극장이 있는데 내가 아는 배우가 거의 없을 정도다. 개런티를 많이 줘야하니 어린 배우가 수염 붙이고 어른 흉내를 낸다. 희극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본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인데, 지금은 누구나 다 코미디를 하고 있다. 단순한 말장난으로 희극적이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 이건 오로지 웃기기 위해 노는 걸로 착각하고 무대에 올리는 거다. 그러니 초라하고 저질일 수밖에..
Q 초대권 문화에서 보이듯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인식도 문제인 것 같다. 최근 그 대안으로 떠오른‘하프티켓’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 초대권이 남발하는 현 공연시장에서 예매할인율을 적용한 하프티켓의 아이디어는 올바른 공연문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정금액을 사회후원과 기부를 통해 다시 사회에 환원하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한편의 공연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전문가의 의견은 물론, 사전에 세부적인 공연정보지식을 제공하니 관객들 또한 양질의 콘텐츠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현재 세계 공연의 중심지라 불리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모퉁이에는 당일 브로드웨이 공연티켓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티켓 판매소가 있다. 이곳은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들로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는 영국 런던도 마찬가지다. 초대권 문화의 경우, 그간 초대권을 막 뿌려왔던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하프티켓 같은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 또한 외국과 같은 공연문화 조성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Q 이제 중견배우로서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 나이 60을 지나오며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부분의 옳고 그름을 정리할 시간인 것 같다. 인생은 각자 설계하기 나름이지만‘OO답게 살자는 것’이 내 모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또 선배는 선배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산다면 자기 인생의 발전도 될 수 있을뿐더러, 그 모습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80이 넘어서도 무대에 오르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만, 이제는 정말 연극의 발전을 위해 올인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 시절 가지지 못했던 조건들을 후배들에게 만들어주는 것이 선배다운 선배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린다
- 연극계가 어느새 연예계의 한 범주가 된 것 같다. 몸 바치고 돈 바치고 별 짓 다하는 연예계의 모습이 연극계까지 그림자를 드리운 것 같다. 사람들 인식이 연극무대는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지 못해 한 맺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안다. 배우 스스로도 그쪽으로 가기 위한 간이역으로 생각한다면 말 다 했지.. 못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듬어 제대로 상품화시키면 자연스럽게 스카우트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 빌빌대면서 겨우 8~9등급 대우 받으면서 드라마나 기웃거리고.. 그건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목적성과 방향성의 강한 신념을 갖고 연기에 담아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 연극을 해야 하는지, 왜 하고 있는지,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연기를 통한 궁극적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 탤런트로 살아온 최종원의 연기 인생 40년. 지난해 그는 5대양 6대주 가운데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말리를 다녀왔다. 단단한 모래바람 사이에서 그는 인간 삶의 갖가지 색깔들을 찾아냈다. “되도록 가지 마라. 다만, 자신의 한계와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면, 진정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면, 가라.” 그가 청년들에게 보내는 제언이다. 자신의 한계와 세상의 끝, 바로 거기에서 제 삶이 다시 움트고 세상의 시작과 맞닥뜨린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이제 거침이 없다. NP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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