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구직자들의 치열하고도 서글픈 현실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인해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까지 정규직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당분간 이들의 아르바이트 시장 유입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청년층의 전유물이었던 아르바이트가 중·장년층의 생계형 일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직종에는 주유소, 편의점 등의 매장관리와 패스트푸드점의 주방보조나 배달직 등이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실직이나 소득감소는 물론 자녀들이 크면서 늘어나는 생활비와 교육비 등 생계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이들을 취업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유소 등 이른바 10대 아르바이트 시장에 고학력 중‧장년층들의 구직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주유소에 몇일전 취직한 이 모(46)씨는 낮에는 공공근로를 하고, 야간에 주유소에서 일하는 투잡족이다. 이씨는 중견기업에 다니다 퇴직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지만, 한 달 수입이 160만원에 그쳐 4식구 가장으로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창전동에서 주유소 알바를 하는 김 모(54)씨도“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 하루아침에 실직자신세가 됐다”며“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주유소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는“경기가 어려워 그나마 있는 자리도 없어지는 판에 이 자리(주유소)도 만족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대문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태희 소장은“이력서를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예전에는 10대들이 용돈을 벌기위해 알바를 찾곤 했는데 지금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알아주는 기업에 근무했던 나이 지긋한 중년층이 많이 지원해 뽑기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전했다. 고용시장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중‧장년층. 이들은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비정규직 중에서도 근무조건이 가장 열악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장년층 고용 불황의 그늘

불황의 그늘이 갈수록 짙어지면서 중․장년층의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 연령층 별 실업급여 신청자 증가율이 40대가 48.7%로 가장 높게 나왔다. 향후 기업이 구조조정을 가시화할 경우 주 타깃은 중․장년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장년층은 한번 실직하면 재취업이 어렵고,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침체로 바로 이어져 사회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 ▲ 지난 2006년 회사를 명예퇴직한 후 백수 4년차에 접어든 박모(50)씨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기업의 간부로 근무했었다. 하지만 퇴직 후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그를 고용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관록은 나이라는 벽에 부딪혀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는 경비직이나 아파트 관리직을 찾기 위해 주택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그나마도 취직에는 별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는“두 자녀가 아직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다보니 가장으로서 면목도 서질 않는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했던 김모(49)씨는 퇴직 이후 동종 업계 벤처로 옮겼다가 3개월 후 다시 퇴사했다. 김씨는“십 수 년 간 근무한 환경과 달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씁쓸해 했다. ▲ 김모(38)씨 권고사직 형태로 퇴사해 하수도 보수공사 일을 하다 지난 해 8월 그만 두었지만 6개월 넘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막일이라도 좋다. 중학교 2학년 아들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며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 건실한 중견기업에 다니던 최모(35)씨는 다니던 부서가 없어지면서 퇴직했다. 최씨는 금방 재취업이 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6개월 간 받고 1년이 넘도록 취업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일할 곳을 찾지 못해 몇 해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청년 실업도 문제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실업자로 전락한 40~50대 중‧장년층의 구직난은 배우자의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자녀들의 교육과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가족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알바시장의 또 다른 풍속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시장에 극심한 불황으로 40~50대 중‧장년층이 몰리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탈 알바몬이‘4월 아르바이트 신규가입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대가 작년보다 57.74%, 50대는 66.02% 증가해 50대 증가율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4월 신규 가입자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10대 26.13%, 20대 35.84%, 30대 18.43%로 모든 연령대에서 꾸준하게 증가했다. 특히, 40대는 작년보다 57.74%, 50대는 66.02% 증가해 중‧장년층의 아르바이트 시장유입이 증가한 것이 큰 특징이다.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아르바이트로의 유입 증가가 뚜렷한 것은 그만큼 고용환경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10~20대의 용돈 벌이었던 알바가 중‧장년층의‘생계형 일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현재의 취업난을 반영하는 알바시장의 또 다른 풍속도다. 이들이 주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직종은 주유소, 편의점 등의 매장관리와 패스트푸드점의 주방보조나 배달직 등이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100만원도 채 안된다. 주부들의 알바 직종 선택폭은 더 넓다. ‘주부 가능’채용 공고 7518건 중 매장관리․서빙․판매 51.60%, 배달․생산․단순노무직이 15.10%, 상담 11.94%, 사무․교육‧강사 11%, 기타 10.36% 순으로 차지하고 있다. 40~50대 아르바이트에 대해“중‧장년층은 책임감이 강하고 이직률이 낮다는 장점이 있어 선호하는 편이다”며 업체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3월 22일‘연령차별금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고령자 대상의 직종이 다양해졌다. 그러나 경제난이 지속되고, 직장내 고용불안이 심각해지면서 청년 구직자가 중심을 이루던 비정규 시장으로의 중년 구직자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르바이트 및 비정규직을 희망하는 이력서 중 62.17%가 남성 구직자라는 사실은 현재 우리의 사회 취업 시장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케 한다. 구직자의 연령 및 성별에 구애치 않고 모든 구직자가 일할 수 있는 취업 시장의 안정이 절실하다.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주부들

경기불황과 가장들의 실직으로 생계부담이 커진 전업주부들이 취업전선에 나서고 있다. 주부들은 자기계발 차원에서 취업을 하기보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는‘생계형 취업’이 많다. 그러다보니 전문직보다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나 주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한다. 직장인 남성을 상대로 맞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가운데 4명이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남편들도 전업주부인 아내가 돈벌이에 나서는 걸 환영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기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5.2%가 현재 외벌이를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2.4%는 배우자에게 맞벌이를 제안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편의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전국 4200여 점포에서 근무 중인 아르바이트 현황을 분석한 결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가 지난해에 비해 36.4% 증가했다”며“일단 집에서 가깝고 원하는 시간대로 근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불황에 편의점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37)씨는“최근 남편 월급이 30%나 삭감된 데다 식료품 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 생활이 빠듯해졌다”며“결국 얼마 전부터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출근해 아이들이 하교하기 직전인 오후 3시까지 근무한다. 주부 김씨가 하루에 버는 돈은 2만원 정도로 시간당 4000원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5일만 근무하고, 수입은 한 달에 4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김씨는“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워낙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처음엔 편의점보다 보수가 많은 할인마트 계산원을 생각했지만,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선 저녁까지 근무할 수 없어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르바이트를 통해 가계에 보탬이 되려는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용증대를 위한 법률

2006년 중‧장년층 고용현황발표에 따르면 외국계 기업을 포함, 일반적으로 73년생 이후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 차장급의 경우는 70년생 이후가 가장 합격률이 높은 걸로 드러났다. 이는 200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기업 200여개 중 51%가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국내 연구 개발직의 경우에는 38세가 정년이다. 따라서 40세 이상의 중년층은 이직이나 재취업이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인 셈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법으로 정년을 연장, 65세까지의 고용 확보 등 종합적인 취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지역사회 서비스 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중‧고령 인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독일은 직업계속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호주는 중‧고령자에게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중‧고령자 수당’등을 제도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오바마 정부는 위기 대처방안으로 청‧장년층 대상의 공공일자리를 제시하였다. 이는 경쟁력 있는 실업자들의 생산성 저하를 막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낙오되지 않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우리 정부는 이와 유사한 정책으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영세기업 실직자와 폐업한 자영업자 중 30~40대 이상인 중‧장년층을 우선적으로 신공공근로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신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매월 100만 원정도의 생계비를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신공공근로사업은 사회적 파급효과는 있지만 임시방편적 정책으로 분명 한계가 있다.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임시직이어서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 또한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3월 22일부터 근로자의 모습, 승진, 해고, 퇴직, 전보 등 대한 전면적인 고용상의 연령차별금지가 실시 됐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2008년 3월 21일에 공포된 동법이 1년 후인 2009년 3월 22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사업주는 사원모집을 할 때 합리적인 이유없이 00세이하 등 연령제한을 할 수 없다. 2010년 1월 1일부터는 임금, 복리후생, 교육, 훈련, 배치, 전보, 승진, 퇴직, 해고 등의 경우에도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 전면 금지된다. 이는 중‧장년층의 고용증대를 위한 법률로 구직자들에게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소국’아일랜드
사회협약을 통한 경제위기의 대전환

사회적 협약이란 정부·노동·자본이 국가의 장래를 함께 모색하고, 여기에 필요한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이다. ‘강소국’인 아일랜드는 1980년대 중반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으나 사회적 협약을 통해 대전환을 맞았다. 아일랜드의 사례를 보면 4개의 노사정 협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사회협의회’를 구성해 국가발전전략의 기본을 세웠다. 그 성과로 1인당 국민 소득이 239% 성장했으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9%를 유지했으며, 실업률은 20%대에서 10%대 안으로 감소했다. 이는 협약에 익숙하지 않았던 노사를 한자리에 모아 이들의 양보와 희생을 뒷받침할 산업·조세·복지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계급정당이 수행할 정치적 갈등 조정까지 정부가 떠안았던 것이다. 강대국 경제에 대한 종속구조와 분권화‧파편화된 노조운동 등 사회체제 구성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아일랜드의 경제 위기 대전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 내는 정책적 역량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고용 정책 마련 시급

경기불황과 고용불안정의 일상화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 시장은 구조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업과 실직으로 인한 비정규직, 일용직노동자 수 증가를 들 수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교해 하는 일이나 업무량은 같지만 임금이나 휴가에 있어 차이가 난다. 노조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사회안전망 또한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항상 고용불안에 떨어야만 한다. 이러한 고용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정책은, 단순히 사회에 필요한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한시적 일자리가 아닌, 안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일자리 창출에 관한 기능 강화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 성과관리를 통한 실용적 효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실업급여 연장, 실업자 재취업 교육 강화 등과 같은 사회안전망 확충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 고용지원센터의 서비스인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부 취업지원업무를 민영화해야 한다. 평소에 구조조정기금을 마련해 불황기를 대비하는 등 정부는 단기적인 실업급여 제공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재취업을 촉진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직업교육과 고용촉진법을 증대시켜야 한다. 고용유지지원금 혜택의 폭을 넓히고, 신규고용촉진장려금과 직업훈련프로그램의 대상 기준을 45세로 하향 조정하여 보다 많은 중․장년층이 활용하도록 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상생의 차원에서 일자리 나누기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맨 마지막 카드로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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