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주재 객원기자 김 숙 원

우리는 EU라는 국제기구에 대해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긴 하지만, 이 기구가 유럽인의 일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막연히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유럽인이라 할 수 있는 센드라의 일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센드라는 유럽에서 태어나 자랐고 유럽에 살고 있는 지극히 유럽적인 유럽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국제적인 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했으며, 파리에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 뮌헨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해마다 그리스, 스페인, 덴마크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을 두루 여행하면서 휴가를 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한 우리나라 직업여성도 센드라와 같은 국제적 경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유럽여성일 뿐이다.

그녀는 회사에서 부하직원을 거느리기보다 상관들 눈치 보기에 바쁘고, 봉급도 서구 유럽인으로서 평균수준에 이르는 정도이다. 그리고 대학시절부터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를 보태야 할 만큼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녀가 적은 재정형편으로 폭넓은 해외경험을 쌓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그녀는 EU의 후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교류 프로그램

센드라는 EU의 대학생 해외유학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ERASMUS-Programme)에 참가하여 1년간 파리에서 대학을 다녔다. 1987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EU 내에서 학생들에게 해외 유학을 고무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이 더 나은 취업 전망을 성취하도록 지원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참가 학생에게 해외 교통비와 유학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를 부분적으로 제공하며, 또 대학은 어학코스, 도서관 출입, 기숙사 제공 등 에라스무스 학생의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대학생의 해외 체류 기간은 3-12개월로 제한되며, 교수의 경우 1주일-6개월을 원칙으로 한다. EU는 학생 교류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학점과 학위를 인정하는 유럽식 학점체제 (European Credit Transfer and Accumulation System)를 도입하여 유학으로 인해 학생들이 감수해야 할 장애를 제거하고 학생 교류를 위한 대학 행정과 커리큘럼 개발을 추진하여 유럽 대학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에라스무스에 대한 관심도와 인기도는 해를 거듭하면서 상승하고 있는데, 2003년 135.586명 학생과 18.496 명의 교수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였으며, 31개국 즉 25개 EU 회원국과 유럽 자유 무역 연합국인 노르웨이, 리히텐쉬타인 그리고 EU 가입 협상 대상국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2000여 유럽 대학들이 여기에 참가하고 있다. 센드라의 경우, 유럽인이기 때문에 유럽 학생 아닌 경우 해당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제한 없이 유학 생활동안 일주일에 12시간, 대학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의 큰 도움 없이 유학생활을 보냈다. 한편, 그녀의 남동생 멜콤도 현재 EU의 직업교육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년간 오스트리아에서 직업연수를 받고 있다.

취업과 고용의 무제한적 자유

센드라는 현재 뮌헨에 위치하고 있는 어느 보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녀는 EU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치된 네트워크인 EURES (European Employment Service)를 통해 직장을 구했으며, 또 이를 통해 커다란 어려움 없이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네트워크는 1993년 EU 집행위원회에 의해 기획된 것으로 각 국가와 시에서 운영하는 5000개가 넘는 Employment Office와 노동조합, 기업체, 지방관공서, 지방단체 그리고 EU 집행위원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유럽 내에서 취업에 따른 이동을 지원하고 고용자와 고용주, 기업체들이 국가 차원에서만 아니라 전 유럽적 차원에서 서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EU 집행위원회의 지원으로 유럽 내에서 취업에 따른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교육을 받은 약 600명의 EURES 상담자들은 IT를 통해 직업정보를 제공하며, 각 개인에 접근하여 직업상담할 뿐 아니라 직장 때문에 국경을 넘어 이동해야 하는데 따르는 법적, 행정적 또는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정보와 개인적 상담을 모든 유럽인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EURES는 각 회원국의 국경경계지역에 위에서 언급한 기관들로 구성된 공동협력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서로 다른 사회체제와 법 체제 등으로 인해 국경 경계 지역 주민들, 이를 테면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독일에 직장을 구해 매일 국경을 넘어야 하는 직장인들이 겪어야 할 장애들을 조절하고 그들에게 해당나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재 13개 EG 국가들에 의한 약 20개의 공동협력 파트너쉽이 결성되어 있다. EU 신규회원국가에 대해선 이동의 자유가 일정하게 제한돼 직장을 구한 다음에야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여행의 무제한적 자유

작년 센드라는 이태리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올핸 포르투갈의 작은 섬을 휴가지로 계획하고 있지만, 그녀는 언제나 휴가직전 휴가지를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쉥엔 협약 (Schengen Convention)에 의해 유럽 내에선 국경을 넘나드는데 세관의 규제나 컨트롤 없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출퇴근하듯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센드라는 비자신청이나 국제 운전면허증, 여행자 보험 등으로 관청들을 드나들며 힘든 절차를 밟지 않고 또 불필요한 요금도 내지 않고 간단히 여행을 준비할 수 있다. 1985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가 쉥엔 협정(Schengen Agreement)을 통해 국경 통제를 제거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였으며, 1995년 쉥엔 협약을 통해 스페인, 이태리, 포르투갈, 그리스로 확장되었다. 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와 아이슬랜드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영국과 아일랜드, 신규회원국들은 쉥엔 협약에 해당되지 않는다. EU는 쉥엔 협약으로 비자와 국경통제에 대해 공동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유럽 내에서 이동할 때 유럽인들 뿐 아니라 외국 여행객들도 관세를 통과하지 않으며, 소지한 물품을 규제받지 않게 되었다. 센드라는 어릴 적 가족들과 여행할 때, 국경을 넘기 위해 길게 늘어서 4시간 또는 5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리던 자동차 행렬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또 그녀는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보험이 유럽 전역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국제 면허증을 수취하기 위해 따로 애쓸 필요 없고 자동차 사고의 위험에 대해서도 최대한으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 값싸지고 서비스도 좋아진 항공여행을 더 즐기는 편이다. 지금껏 독과점으로 진행되던 각 유럽 국가의 항공법이 EU에 의해 조절돼 공정거래가 형성됨으로서 항공 회사 간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화폐의 통합

이제 센드라는 이태리나 스페인으로 여행하기 위해 따로 환전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2002년 12개 EU 회원국들이 유로화로 화폐를 통합했기 때문이다. EU는 환율변동으로 인한 환위험 (currency risk)을 줄이고 거래과정 (transaction)에서 나타나는 비용도 줄여 경제를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통화를 통합하였으며,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적으로 통화를 정착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덴마크, 스웨덴, 영국은 통화통합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유로화 도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기존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10개 신규회원국들은 빠르면 2007년에야 유로화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통합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유럽중앙은행 (the European Central Bank)이 통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데, 통화 정책과 경제 정책은 원칙적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영역들이다. 그러나 통화 정책이 유럽적 차원에서 통일된 반면, 경제 정책은 나라마다 독자적인 정책으로 실행되고 있어, 일정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화폐 통합을 통한 부차적 부작용으로써 유로화 도입 후 서비스 업종을 비롯해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였는데, 이는 상인들에 의해 조작된 결과로 유럽 전반에 걸쳐 경제적 침체를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센드라와 같은 소시민들은 갑작스런 가계재정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아직도 그녀는 물가상승으로 재정의 어려움을 느끼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시장이 다소 조절되고 있음도 감지한다.

상품유통의 무제한적 자유

여행할 때 센드라는 여느 여자들처럼 쇼핑을 즐기는 편이다. 이전엔 면세점을 통해 고품질 상품들을 싸게 사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여러 제한들이 따랐고 세관이 그녀가 산 모든 물건들을 컨트롤했기 때문에, 번거로움과 규제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대륙을 하나의 커다란 국내시장 (domestic market)으로 실현시켜 어느 나라에서든 무엇이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어 그녀는 이전보다 쇼핑을 더 즐긴다. 또한 그녀는 이제 그곳 주민들처럼 상품 당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이 관세들이 각 나라마다 차이나기 때문에 동일한 상품에 대해 나라마다 가격도 다르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룩셈부르크가 15%, 독일이 16%로 가장 낮고, 스웨덴이 25%로 가장 높다. 따라서 센드라의 부모님은 독일에서 가전제품이며, TV, 비디오 등을 구입해 가계비를 절약한다. 특히 기름 값이 많이 오른 이때, 그녀의 부모님은 네덜란드에 근접한 룩셈부르크의 국경지역에서 기름을 구입하곤 한다.

유럽적 생활수준 보장

센드라는 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비교적 안정되고 만족한 생활을 유지한다. 해마다 저렴하게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EU가 유럽적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EU 회원국 간의 공동협력으로 센드라는 유럽 안에서 어디를 가든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EU가 방부제, 화학 첨부제 함유식품, 유전학적 조작으로 생산된 식품에 대해 규제 컨트롤하며,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등 음식물을 통해 전파될 악성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EU 이외지역과 식품을 유통할 경우 엄격한 통제와 컨트롤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센드라는 환경오염이 주는 폭력에 대해 기본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또 센드라의 부모님은 폴란드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것은 별다르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EU 회원국들의 공동협력으로 그녀의 부모님은 폴란드에 살면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노후연금을 받을 수 있으며, 폴란드의 경우 네덜란드에 비해 물가가 낮아 생활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같은 돈으로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센드라와 그녀의 가족들이 적은 수입에도 보장받는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기까지 그 배후엔 복잡하고 고도로 발전된 정치조직체인 EU가 존재한다. EU는 여러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대략적으로 EU 의회, EU 각료이사회, 정상회담, EU 법 재판소, EU 집행위원회 등을 손꼽아 볼 수 있다. EU에 대해 논하려면 당연히 이 기관들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 호엔 이 기관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일들을 담당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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