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기관의 대표 성공사례. 3번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개소

박귀환 목사의 목회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목회' (God's Ministry)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회도 아니고, 따르는 양 무리의 비위나 맞추며 끌려가는 목회도 아니다. 하나님의 목회를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 오해와 멸시와 환난이 있다 해도 흔들리거나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며, 반면에 칭찬과 자랑과 기쁨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교만하거나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그 열매와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려는 목회신학이다.


반세기 역사 동천교회, 부흥의 10년
▲ 동천교회는 지역의 복음전파를 위해 반세기 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진리와 은혜의 말씀, 성도들의 기쁨과 감사의 열매가 자랑인 동천교회는 다양한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배우고 있다.
반세기의 역사 속에서 최근 10여 년 동안 거대한 성장을 이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동천교회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지역교회가 다 같이 부흥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아산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던 동천교회(http://www.fdc1004.com/)는 1961년 개척되어 교회의 이름을 딴 거리명칭이 있을 정도로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성지로 유명하다. 특히 동천교회는 최근 지역 최대 규모의 비전센터를 완공하고 배방읍 공수리 배방산 기슭으로 위치를 옮겨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동천교회의 비전센터는 인근 국철개설과 KTX역사가 근접해 추후 배방·탕정지구에 주거단지 개발이 마무리되면 아산지역은 물론 신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신도시를 대상으로 다양한 선교사역을 펼쳐 가슴으로 다가가는 선교의 본질을 일깨울 예정이다.

박 목사는 “당초 작지만 영향력 있는 교회를 목표로 교회신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건축은 교인들이 너무 힘든 짐을 지는 일이고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규모를 키우고자하는 생각이 없었기에 교회를 짓고 보니 하나님이 기적의 현장을 주신 것에 거룩한 부담감이 크다. 하나님의 은혜로 해마다 교인들의 증가로 부득이 하게 교회이전을 검토해야 했지만 교인들에게 대형교회가 싫다고 말하던 내가 그것을 번복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사도행전 10: 14~15 베드로가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저는 일찍이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입에 대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을 통해 혹시 내가 생각하는 목회, 내가 선한목회를 밑바닥에 두고 나의 좋은 모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와 환난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짐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자신에 대한 오해와 질타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성직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 동천교회 박귀환 담임목사

한편 박귀환 목사는 건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대구대 사회개발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수료, 장신대 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상담학), 미국 유나이티드 신학대학원 졸업(신학박사) 하였고 현재 여성가족부 강사, 한국상담협회 충남지부장, 한국복음신학회 부회장, 대전기독교방속국 운영이사, 충남성서신학원 교수,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조정위원,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상담전문위원장,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사, 아산시 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아산경찰서 경목,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아산지부 이사장, 아산가정성상담지원센터 대표소장 등 지역사회 치유 회복과 한국교회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CTS 기독교 TV(유선채널 29번)에서 그의 방송설교를 만나 볼 수 있다.


 

종합 가정법률상담으로 지역민의 고충해소

▲ 9월 7일 입당예배를 드리는 동천교회 비전센터는 7층(부지 1만8150㎡에 연면적 6600㎡)으로 설계되어 본당 1800석과 교회의 다목적시설을 비롯해 24시간 개방되는 콘서트홀(300석), 상담소 등 지역민 누구나 휴식할 수 있는 종합문화센터로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는 7일 입당예배를 드리는 동천교회 비전센터는 7층(부지 1만8150㎡에 연면적 6600㎡)으로 설계되어 본당 1800석과 교회의 다목적시설을 비롯해 24시간 개방되는 중보기도실, 콘서트홀(300석), 상담소, 어린이집, 카페, 세미나실, 도서실, 개인 및 그룹기도실, 숙소, 샤워실, 주차장 등 지역민 누구나 찾아와 휴식할 수 있는 종합문화센터로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동천교회의 성장의 동력이자 아산지역 사회복지기관의 대표로 손꼽히는 법률상담소(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아산지부)를 새 성전의 가장 좋은 공간에 마련해 계속적인 지역민의 고충을 가슴으로 치유해 주고 있다. 이미 아산지역민을 위해 세 개의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동천교회는 가정법률과 가정폭력 및 성폭력 등의 상담사역을 펼쳐 왔다. 이는 어려운 일을 당해도 법률 상담의 문턱이 높아 쉽게 찾지 못했던 지역의 소외 계층에게 무료로 전문상담을 제공해 줌으로서 개인과 가정이 회복되는데 큰 반향을 일으킨 중요 사역이다. 벌써 아산인근지역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호응도가 높아 내방, 인터넷, 전화 등으로 하루 평균 30여건의 상담사역을 감당하고 있어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 방법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 건국대와 이화여대 법대 출신인 박귀환 목사와 김혜린 사모는 함께 법률상담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성가족부 산하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법무부 소속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아산지부를 개원하기에 이른다.

박 목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힘겹게 목회와 상담소운영을 지원해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좋은 환경에서 목회를 하다 동지역에 올 때 지인들의 만류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나 가족을 생각해서도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름 받은 곳이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옮기고 싶은 적은 없었지만 큰 교회에서의 청빙도 많았다. 그 때마다 상담소가 가장 크게 맘에 걸렸고 교회가 회복되고 잘 될 때는 떠날 수 있어도 빚진 자로서 갈수가 없었다. 처음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목회에 전념하시지 왜 상담소를 하시냐?’는 교인도 많았다. 태백에서 강의를 다닐 때 대구대학교 설립자이신 이영식 목사님의 아들인 이태영 대구대학교 총장님의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의 일화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였던 이태영 변호사의 제자인 아내와 함께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교인들에게 ‘법률상담소’를 만들어 지역사회 개인의 인간관계의 원만함을 개선하고 싶었다. 목회만으로도 바쁘고 힘들었지만 예배만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좋은 것을 배웠기에 남들과 나누어야 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박 목사의 이러한 노력으로 시간이 지나며 기존의 갈등은 사라지고 갈라진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항상 하나님의 목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지금도 매일 기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말씀으로 교회의 근본이 바로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임 10년 만에 100여명에서 2,000여명으로 성장

▲ 역사 속에서 지역민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치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전파를 통한 생활문화개선·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온 동천교회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지역교회가 다 같이 부흥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동천교회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염로국지역이었던 수도권과 충남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한반도의 중앙부·충남의 최 서북단인 아산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서해안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장항선 등으로 전국어디든 소통이 유리하여 지역개발 잠재력이 풍부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쪽은 차령산맥의 여맥에 속하는 낮은 구릉성산지를 이루고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곡교천이 서류하여 유역에 평야가 많아 농축산의 각광지로 손꼽힌다. 현재는 대한민국의 중부권의 위치한 떠오르는 중심도시로 과거 도시 전체가 오랜 역사동안 뿌리내린 신화와 미신등 유교사상이 가득 찬 지역으로 기독교부흥에 어려움이 많은 지역이다.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 침체기와 같은 시대적 아픔과 우상의 제약 속에서 정치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악조건 속에서도 동천교회는 말씀을 통한 선교와 나눔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지역 최대 규모의 교회로 발전 하였다.

▲ 박 목사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운 것처럼 초대교회의 열정을 본받아 G-12(Government of 12)사역으로 교회의 회복을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박 목사는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목회자로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상담사역을 펼쳐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후에 교회에 등록인원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말씀 중심의 강해설교와 새벽기도 또한 교회의 치유와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모태신앙인 그는 모친을 통해 항상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삶속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 목사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 지금의 특목고에 해당하는 금오공고를 졸업하면서 RNTC 2기 하사관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박 목사는 군대생활을 했던 대천에서 ‘서머나 군인교회’를 개척 해 군종담당관으로 교회를 섬겼고, 현재 이 교회는 30여 년 동안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제대 후 사법시험을 수년간 응시하던 박 목사는 고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 태백 예수원 생활을 시작으로 목회에 뛰어든다. 그는 후에 서울 영등포 시온성교회(윤길원 원로목사)와 대치동 서울교회(이종윤 목사)에서 부목사로 8년 동안 시무하기도 했다.

▲ 박 목사는 “교인들의 노고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동천교회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본인을 믿고 따라준 교인들에게 항상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0년 전 재적 교인 100여명에 불과하던 동천교회는 1999년 박 목사가 부임하며 현 2000여명의 성도들이 상주하는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 목사는 이대 법대 출신인 김혜린 사모와 함께 직접 법률 상담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성가족부 산하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법무부 소속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아산지부를 개원해 전문 변호사 무료 법률상담 운영(박영구, 위석현 변호사)하기에 이른다.


 

 

 

▲ 동천교회는 시대에 맞추어 사회와 이웃을 수용·사랑하기위해 문화사역 및 구제 사업을 통해 영혼구원전도사역을 극대화시켜 교회의 진정성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
또 갈등이 있던 교회의 회복을 위해 동천성경대학 개설을 시작으로 열두제자 컨퍼런스 등 하나님의 요구하는 인재양성을 위한 다방면의 사역을 주도하였고 외국인 노동자를 돕기 위한 바자회, 홍성교도소 옥중 세례식, 군 합동세례식(2700여명) 사랑의 헌혈. 국제종합기증센타 장기기증 운동, 심장병어린이돕기 사랑의음악회, 일본·인도네시아·필리핀·카자흐스탄 알마티 등 단기 선교를 비롯한 선교사 파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충남노회 가입 등 지난 10여간 진정성 있는 사역으로 교회의 융합을 이끌어 낸다. 특히 교회 임원들과의 갈등이 있었던 전임 목회자의 교회 이전에 2000여만 원을 지원하는 등 상처받은 이들의 갈등을 치유하고 융화되는 일에 주위의 오해와 질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오랜 세월동안 현실적으로 이루지 못했던 지역교회의 화합을 위해 교회 안팎의 집회나 행사시 지역의 목회자들과의 교류와 지원을 해왔다.


▲ ‘교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에 바로선 예배와 설교이다.’고 말하는 박 목사는 부임 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주관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통해 교회의 회복과 융합을 이끈다.

이외에도 동천교회는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임시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생들을 비롯한 청소년, 청년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모자가정, 독거인 등 도움의 손길이 시급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나누는 선교사역을 시행하고 있다. 또 군 선교사역(박 목사가 30여 년 전 직접 개척한 서머나 군인교회 지원 외)으로 벌써 수천 명에 이르는 이들에게 세례와 말씀 전파에 힘쓰고 있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후원을 해주고 있다. 이는 그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말씀을 접하기 힘든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제 2의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열매를 맺는 중요 사역이다.


▲ 인터뷰 중 박 목사는 “어제 카자흐스탄으로 출발한 7명의 청년들이 남긴 편지를 받았다. 행여 선교 중 어려움을 겪을 것을 감안해 자신들이 원하는 일이었다는 내용의 유서와 손톱,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세계선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 밖에 동천교회는 신축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에도 30여 곳에 이르는 교회기관, 선교단체, 미자립교회 등을 도우며 다 같이 부흥하는 한국교회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박 목사는 “교인들의 노고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동천교회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회복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 전파를 하는 것이 당연지사라 여기며 살아온 입장에서 칭송받는 게 민망하기도 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본인을 믿고 따라준 교인들에게 항상 감사드린다.”고 말했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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