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사는 사람들의 한옥 자랑은 대단하다. 한옥 예찬론자들은 사람이 좋아하는 집과 몸이 좋아하는 집이 따로 있는데 한옥이야말로‘내 몸이 좋아하는 집’이라고 입을 모은다. 생태주택인 한옥은 우리 몸이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웰빙 공간이라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비울수록 채워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묘한 집이 한옥이라고 설파한다. 한옥에서 가장 비어있는 공간인 마당을 건물의 중심으로 삼은 점이 이 같은 특징을 뒷받침한다. 요즘처럼 바쁘고 모든 것이 기계화된 세상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한 박자 느린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한옥의 장점으로 꼽힌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한옥 거주에 관한 수요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9%가 한옥 거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0~50대 연령의 중장년층과 월 평균 3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의 선호도가 높았다. 20대 여성 중 35%가 한옥 거주를 희망한다는 결과도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한옥의 매력에 반해 살기 편한 아파트를 버리고 한옥으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나는 가운데, 가칭‘한옥 통장’을 만들어 20~30년 후에라도 한옥에서 살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젊은 층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옥 보급화 캠페인 물결 속에 한옥생활체험관도 성행 중
▲ 한옥에 살진 않더라도 하룻밤쯤 한옥에 묵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숙박과 전통문화체험이 가능한 전국 145개 한옥에 대한 각종 정보가 한 곳에 모여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통한옥체험숙박 통합홈페이지인‘한옥에서의 하루’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전통한옥 숙박시설의 위치는 물론, 주변 관광지, 체험 프로그램, 가격, 예약방법 등 상세한 정보를 살필 수 있고 지역별, 유형별로 한옥 검색도 가능하다.
지난해 시정개발연구원 전수조사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전체 한옥은 1만 3,000채 정도로, 사대문안만 3,400채 정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옥은‘불법 건축물’에 속한다. 1962년 건축법은 한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규로 건축행위를 하면 불법으로 간주돼 그 당시 이후 한옥은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 이후 2001년부터 서울시 차원에서 북촌 가꾸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100만㎡에 달하는 마을에 자리한 1,022채 한옥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수리등록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수리를 신청한 이들은 보조금 3,000만원과 융자 2,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9년이 지난 현재, 지난 6월부터는 지원 액수가 2배 늘어 시에서는 보조금 6,000만원과 융자 4,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옥의 보존과 신규조성 활성화는 비단 서울뿐 아니라 전주시와 전남에서도 추진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 3월 인사동, 돈화문로, 운형궁 주변 한옥 소유자들에게 북촌과 마찬가지로 집수리 지원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도 의정부 민락지구에 최근 한옥마을을 새롭게 조성하고자‘新 한옥공모전’을 개최했으며,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존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한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 2007년 인사동 학고재에서‘우리집은 한옥이다’라는 전시회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미국 4대 도시에 서울의 한옥을 선보이는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렇듯 국제적으로도 한옥의 명성이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도 한옥을 보존, 확산시키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한옥에 적합한 건축기준을 만드는 법 개정과 진흥법 제정, 산업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이 그 예다. 이러한 한옥 보급화 캠페인의 물결 속에 단연 모범이 되고 있는 곳은 다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한옥마을이다. 이곳은 뒤로는 북악산이 있는데다 저층인 한옥이 밀집한 마을로 피로한 일상을 던지고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다. 현재 북촌한옥마을엔 디자이너와 장인, 연예인 등 한옥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엔 아토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촌으로 온 사람과 어렸을 적 살았던 북촌 한옥에 결혼 후 귀향한 사람도 있다. 특히, 북촌한옥마을 골목골목에서는 심심찮게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단체 관광 중인 일본인, 중국인부터 가족이나 친구끼리 자유여행을 온 유럽인들도 눈에 띈다. 조영희 문화유산해설자는“서양의 건축양식은 내부에 많은 것을 채우는 방식이지만, 한옥은‘비움의 미학’에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며,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한옥 건물에 매료되는 것 역시 한가운데 넓은 공간을 비워둔 비움의 미학”이라고 설명했다.
▲ 한옥체험을 통해 관광객이 느끼는 가장 큰 한옥의 매력은 인간 친화적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주거공간이라는 점이다. 한옥생활체험관‘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숙 한옥사랑모임회장은“대부분의 투숙객들이 호텔의 편리성을 마다하고 한국 고유의 숙박체험을 하고 싶어 방문한다”며, “외국인들에게 한옥체험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옥에 살진 않더라도 하룻밤쯤 한옥에 묵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숙박과 전통문화체험이 가능한 전국 145개 한옥에 대한 각종 정보가 한 곳에 모여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통한옥체험숙박 통합홈페이지인‘한옥에서의 하루’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전통한옥 숙박시설의 위치는 물론, 주변 관광지, 체험 프로그램, 가격, 예약방법 등 상세한 정보를 살필 수 있고 지역별, 유형별로 한옥 검색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한옥 호텔로 손꼽히는‘락고재’는 서울 계동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한국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필수 방문코스로 소개될 정도로 그 입소문이 자자하다. 락고재를 찾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옥의 고풍스러운 멋과 기품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엉덩이를 지지는 듯한 뜨끈한 온돌체험은 으뜸으로 꼽혀 락고재의‘아궁이 찜질방’은 늘 만원이다. 락고재의 직원 김유순씨는“아궁이에 직접 장작불을 피워 시골스러운 느낌을 주고 정통 한정식으로 식사를 대접한다”며, “일본인 투숙객이 80%를 넘을 정도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한옥생활체험관‘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숙 한옥사랑모임회장은“대부분의 투숙객들이 호텔의 편리성을 마다하고 한국 고유의 숙박체험을 하고 싶어 방문한다”며, “절반 이상이 일본인들이고 프랑스인이나 미국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전통 한옥에 묵는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 차려내는 순수한 밥상과 평범한 여유를 즐기고 싶어한다”며, “외국인들에게 한옥체험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옥체험을 통해 관광객이 느끼는 가장 큰 한옥의 매력은 인간 친화적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주거공간이라는 점이다. 이 밖에 경주의 양동 민속마을, 충남 아산의 외암리 민속마을, 제주 성읍마을 등도 전통 한옥이 그대로 보존돼 인기가 높다.
전통문화의 재발견과 산업화로 실생활에 파고드는 한옥 디자인
▲ 국토해양부는 전통문화의 재발견과 산업화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목적 아래 한옥기술개발 및 한옥건축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한옥을 문화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2~3년 전부터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생활공간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아파트 내부를 한옥식 인테리어로 꾸미는 사람들이 늘어남은 물론, 한옥형 아파트도 조만간 등장할 예정이다.
현재 북촌한옥마을의 경우 새로 전입해 오는 가구가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었으며, 비용 부담이 덜한 전세도 희망자가 많아 매물이 나오자마자 계약이 성사되곤 한다. (사)한옥문화원의 신영훈 원장은“집이란 사람들이 그 땅의 풍토에 적응하면서 만들어낸 가장 적당한 생활방식의 집약체인 만큼 우리 몸에는 한옥이 가장 적합하다”며, “목조가 아닌 시멘트로 지어진 밀폐된 공간에서 살다 보니 아토피 같은 피부병도 나타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최근에는 아파트에도 대청마루처럼 거실을 목조로 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이는 옛날에 살아왔던 모습이 더 몸에 맞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신 원장에게 있어 한옥이란‘우리에게 맞는 집’이다. 개개인의 개성이 함양되는 공간이 집인 만큼 개성이 뚜렷한 한옥에 살면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도 창조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그는“전통 한옥도 물론 잘 보전돼야 하지만, 새 시대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21세기형 한옥을 짓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해양부는 전통문화의 재발견과 산업화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목적 아래 한옥기술개발 및 한옥건축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곤 건축문화팀 사무관은“현행 한옥 관련 건축법령을 개선하는 한편, 한옥형 건축물을 육성하는 가칭‘한옥진흥법’을 제정할 계획”이라며, “그동안 한옥을 문화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2~3년 전부터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생활공간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아파트 내부를 한옥식 인테리어로 꾸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100채가 넘는 한옥을 고쳐 지은 한옥전문 건축가 김장권 북촌HRC 대표는“삶의 형태나 문화가 달라진 만큼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지어진 한옥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한옥이 갖고 있는 기본 틀과 외형, 자재 등은 유지하는 대신 화장실이나 주방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편리성을 가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앞으로 옛 건축물의 전통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에 맞추는 실험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옥형 아파트도 조만간 등장할 예정이다. 대한주택공사는 공동주택에 전통 한옥의 디자인 요소들을 적용시키는 한옥 디자인을 개발, 연내 적용할 계획이다. 한옥의 대표적 평면 유형인‘ㄱ’자 및‘ㄷ’자 집을 기본으로 아파트 평면에 마당 개념을 도입했으며, 특히 저층부는 돌기단을 형상화한‘가구식’과 화방벽을 형상화한‘벽식’, 골목길을 형상화한‘골목식’디자인을 개발했다. 인테리어 전문업체인 한샘은 기존의 서양식 부엌가구에 한국의 전통 좌식마루를 적용시킨 신제품‘키친바흐 프레임 오크’를 개발해 선보였다. 식사가 주목적이었던 기존의 부엌공간을 가족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도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특히, 가회동의‘e-믿음치과’는 한옥의 무한변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곳은 지난 2005년 가을 문을 연 국내 첫 한옥 치과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한옥에 치과 시설을 들여놨다. 환자 대기실에서 녹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은 마치 인사동 전통찻집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 혜화동의 한옥 사무소도 이채롭다. 이곳은 종로구가 개인 한옥집을 매입, 3년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지난 2006년 11월 혜화동 우암길에 내놓은‘전국 최초의 한옥 동사무소’로, 직원들이 매월 하루 한복을 입고 근무해 방문객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심어주는 서울의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재개발로 사라질 뻔한 한옥 지켜낸 푸른 눈의 외국인
▲ 재개발로 사라질 뻔한 전통 한옥을 끝까지 지켜낸 당당한 외국인이 있다. 그는 지난 6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을 지키기 위해 재개발을 반대하는 소송을 내 승소한 푸른 눈의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씨다. 재개발 동의서를 들이밀며 갖은 협박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옥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개발로 사라질 뻔한 전통 한옥을 끝까지 지켜낸 당당한 외국인이 있다. 그는 지난 6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을 지키기 위해 재개발을 반대하는 소송을 내 승소한 푸른 눈의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씨다. 바돌로뮤씨의 한옥에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 2007년. 서울시는 그의 집을 포함한 인근 164개 동의 건축물을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는 35년간 공들여 가꾼 집이 구각의 무신경한 결정으로 철거될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바돌로뮤씨는 2007년 10월쯤 재개발구역 지정이 되려면 60% 이상이 돼야 하는 건물 노후도 조사 결과가 60.73%로 돼있는 것을 보고 구청의 조작을 확신한 뒤 소송을 시작했다. 실제로는 리모델링을 해 멀쩡한 건물도 가옥대장상 20년 이상이면 무조건 노후건물로 표기돼 있더라는 것이다. 서울 행정법원 재판부는 이 지역 정비대상 건축물 중 노후불량 비율은 58.75%라며, 이는 관련 조례에서 정한 기준 비율 60%에 미달하므로 이 지역에 대한 주택재개발정비구역 지정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돌로뮤씨는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한옥의 보존 가치 그 자체에 주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고 말했다. 법원은 동소문동 재개발구역의 노후 불량률이 법령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한옥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후하거나 불량한 건축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옥을 보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광복 이후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문제를 지적했다. 짧은 시간에 첨단도시가 형성되면서 전통건축의 맥이 단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지은 100년 밖에 안 된 한옥이라도 지금은 잇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귀한 건축 전통이 남아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을 없애는 일은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단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지난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처음 한국에 온 바돌로뮤씨는 강원도 강릉의 99칸짜리 한옥인선교장에 살면서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전공인 경제학이나 직업인 선박 컨설팅과 별 상관없는 건축학, 한국사 책을 뒤져가며 한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바돌로뮤씨에게 있어 한옥이란 한마디로 예술이고 문화다. 그는 안정적인 기하학적 비율을 이루고 있는 마루방 기둥, 정교하면서도 단아하게 조각된 문살, 듬직하게 지붕을 떠받친 용마루, 그 위로 절묘한 곡선을 그리면서 사뿐하게 얹혀 있는 기와, 기와지붕의 화룡정점인 막쇠 등을 차례로 얘기하며 한옥예찬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집주인의 철학과 지방색,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멋을 낼 수 있는 한옥은 건축과 실내장식, 목공예, 고미술, 문학 등이 혼합된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집을 손질하는 불편함은 또 다른 한옥의 매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전통 한옥들이 자꾸만 사라져 너무 안타깝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겉모습이 아닌, 진짜를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재개발 동의서를 들이밀며 갖은 협박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옥에 대한 이 같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바돌로뮤씨와 동소문동 재개발 반대 주민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고 있다. 재개발로 삶터를 잃을 위기에서 어렵사리 1심 재판에서 승소해 한숨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항소한데다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서울행정법원은 동소문동 6가 동선3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에 대해 지정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나온 뒤 서울시는“2심에서 승소 확률이 낮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피고 보조참가인이었던 재개발조합 설립추진위원회는 1심 판결에 불복해 6월 19일 항소했다. 재개발조합추진위의 한경록 총무는“지난번 노후·불량률 계산 때 빠진 몇 세대를 포함하면 노후·불량률이 60%를 넘어 2심에서는 승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개발 찬성 주민들인 조합 추진위 사람들은 항소장을 낸 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 앞에 수시로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추진위 관계자 30여명이 집 앞에 모여 막말을 하고 인신공격성 구호를 외치는 등 집에서 살 수 없게 한다”며, “재개발을 반대하는 우리들을 모두 이 동네에서 내쫓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돌로뮤씨도“내가 재판에서 승소한 뒤 추진위 쪽에서 여러 건의 소송을 걸어왔다”며, “내 집 앞에서 자주 시위까지 벌이니 생활도 불편하고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힘들어했다. 특히,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바돌로뮤씨의 주장이다. 그는“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바돌로뮤씨는 한옥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바돌로뮤씨는“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며,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느냐”고 작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일본이나 중국에 가면 곳곳에서 한국 고유의 주거문화를 많이 도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국인도, 아니 외국인이 먼저 지켜낸 우리의 전통한옥. 한국 전통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으로 우리의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新 한옥의 정취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NP
< 전통보존지구 성공사례 - ‘일본 구라시키의 마치나미’>
▲ 지난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처음 한국에 온 바돌로뮤씨는 강원도 강릉의 99칸짜리 한옥인선교장에 살면서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전공인 경제학이나 직업인 선박 컨설팅과 별 상관없는 건축학, 한국사 책을 뒤져가며 한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바돌로뮤씨에게 있어 한옥이란 한마디로 예술이고 문화다.
우리나라에는 전주 교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서울의 북촌한옥마을 등 오래된 한옥 보존지구가 몇 곳뿐이지만 일본에는 100곳 이상으로, 그 중 구라시키는 성공적인 보존지구로 손꼽힌다. 구라시키는 400여 년 전 에도막부시대에 막부의 직할지가 됨으로써 물류중심지인 창고마을로 번성했다. 140여 년 전에는 메이지시대에 창고마을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한편, 면화업 등의 공업이 시작되고 이전에 비해 잠시 쇠퇴의 길을 걷다 1960년대에 정부가 산업도시로 지정하는 바람에 다시 활기를 띈 마을이다. 마을 곳곳의 옛날 창고며 공장이 필요 없게 되자 40여 년 전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 전통보존의 출발이었다. 구라시키에서‘미관지구’로 지정돼 전통건축이 보존되고 있는 구역은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강 주변의 1800년대까지 거슬러가는 오래된 창고와 건물이 남아 있는 곳. 다른 하나는 1910년 전후 길거리에 죽 연달아 지은 가옥들 마치야가 모여 있는 곳이다. 오래된 창고며 공장은 민예관, 호텔로 용도는 바뀌었지만 전통을 최대한 지켜 개·보수돼 건축전통을 지키고 있다. 마치야 중 큰 가옥 역시 민예관, 고고관, 여관 등이 됐다. 이곳 역시 전통을 지켜 개·보수됐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가옥 마치야들이 늘어선 마치나미 역시 외양은 전통을 지켜 함부로 바꿀 수 없게 하고 집안은 거주자나 상인이 자유롭게 개·보수하도록 되어 있다.
▲ 일본 구라시키의 마치나미
구라사키가 전통보존지구 중 성공적인 마을로 손꼽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관광수입을 얻어 부촌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라시키는 한해 500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이 찾는 마을이다. 농촌체험, 지역 특성화, 도시의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는 1촌1사 운동 등을 벌이고 있는 다른 일본 마을들이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구라시키는 전통건축문화를 지켜 마을을 살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라시키에서 전통보존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그곳 지역재벌이고, 그 뒤를 이어받은 사람은 시민들이며, 다음으로 호응한 것은 시와 정부라는 것이다. 그 지역재벌은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을 만든 마고사부로 오하라와 그 아들 소이치로 오하라로, 정부와 시 당국은 그들 선각자에 이끌려 1968년 이 지역을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그 후 10년 뒤에야 비로소 문화적 중요성에 눈 뜬 듯 몇몇 건물을 국가중요전통건축물로 지정했다. 구라시키는 북촌한옥마을과 여러모로 다르다. 그곳은 주거지역이 대부분인 북촌과 달리 상업지역이 주를 이루는 데다, 작은 가옥 마치야들과 강과 높은 옛날 창고와 공장건물이 어우러져 있어 관광지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구라시키에서는 개·보수가 잘못되지 않도록 주민과 관료가 힘을 쏟고 지역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가들이 빈집을 사들여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관광객의 증가와 부동산 상속문제 등으로 앞으로 전통보존을 잘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늘 염려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과 유산을 지키자는 단체들의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늘어날 때 전통의 보존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