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선 세 번째, 소수 인종 히스패닉계로선 처음인 대법관으로 주목받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가 8월8일(미국 현지 시간) 취임식을 갖고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이날 미 대법원 역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된 취임식에서 소토마요르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에게 모두 공평무사하게 판결하겠다.”고 선서했다. 공화당 의원 40명 중 31명이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 힘겹게 의회 인준에 성공한 소토마요르에 대해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한 미국의 여성운동계는 “미국에서 가장 빈번히 차별을 경험하는 비주류, 즉 여성이자 히스패닉계란 소토마요르의 개인적 경험이 대법원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고, 동시에 대법원이 평등과 정의란 대의명분을 향해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열렬한 환영을 표했다. 한편 NOW는 이번 소토마요르의 대법관 임명을 계기로 대법원의 성평등한 구성을 재차 촉구했다. 1981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은퇴)가 여성 첫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 1993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이어서 이번 소토마요르 임명까지 포함해 대법원에서의 여성 비율은 갓 20%를 넘었을 뿐이라는 것. 따라서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 대법관이 최소 4명에 이르기까지 여성운동계가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 소토마요르는 소아당뇨와 가난을 딛고 프린스턴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예일대 로스쿨에선 학회지 편집장을 맡아 활약했다. 그는 로스쿨 졸업 후 뉴욕지방검찰청과 로펌에 재직하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삶을 살아왔다.
유진박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전 소속사 ‘감금-학대’ 논란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명문 줄리아드 음대 출신인 유진박은 한때 천재음악가로 방송에 자주 모습을 보이며 주목받았지만 한동안 대중의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혔었다. 그런데 유진박이 다시 크게 거론된 것은 인터넷에 '유진박이 소속사로부터 감금 폭행을 당하며 소규모 행사장을 전전하고 있다'라는 제보 글이 화제를 모은 다음부터다. 처음에는 단순 루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일정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유진박의 전 소속사가 유진박의 자유를 억압당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행사 공연을 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건이 커지자 유진박 본인도 입을 열었다. 각종 방송 인터뷰를 하며 전 소속사에게 당했던 일을 어렵게 고백했다. 유진박은 “최근의 모든 의혹을 종식시키고 싶다. 더 이상 음악 하는데 이런 것들로 힘들고 싶지 않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모텔에서 사는 게 좀 이상했다. 좀 살기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이 남자는 나 때릴 거다. 사람들을 때리는데 그거 때문에 무서웠다”고 전 소속사의 감금 폭행에 대해 폭로했다. 또한 그는 “바이올린 잡기도 힘들었다. 2~3번 공연 안 하면 바이올린을 안 줬다”며 연습을 방해한 사실과 “운동을 너무 개처럼 시켰다. 막 '운동해! 뛰어! 뛰어! 한번만 더!'라고 이상한 걸 심하게 시켰다”고 학대한 사실을 밝혔다. 이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인터넷으로 유진박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친박연대 김을동의원은 인터넷여론을 통해 불거진 천재 음악가 ‘유진 박’씨에 대한 전 소속사측의 부당계약과 협박 및 감금?학대혐의에 대하여 검찰의 철저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였다.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현정은 회장,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방북 길에 오른 현정은 회장은 현대아산직원인 유씨 석방 문제와 함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개성관광 재개 문제도 함께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8월 14일 유씨가 석방되었고 다섯 번이나 평양 체류 일정을 연장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결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현 회장이 북한을 방문한 지 7일 만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8월16일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면담하고 오찬을 함께했다고 이날 저녁 9시께 보도했다. 현정은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은 이번이 네 번째. 8월 10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평양에 들어갔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6일 체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해 당초 2박3일이었던 일정이 7박8일로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일정을 연기한 끝에 결국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현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 후 올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의 교류 사업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번 현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뿐 아니라 금강산 관광 재개도 합의함에 다라 1년 이상 경색된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조속한 금강산 관광 재개와 함께 금강산 비로봉에 대한 관광도 새로 시작키로 했다. 현대의 백두산 관광 사업도 준비되는 대로 추진키로 했다. 또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과 북측지역 체류를 원상회복하는 동시에 개성관광 재개와 개성공업지구사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추석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기로 했다. 민간 사업자의 자격으로 대북 사업에 대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게 됐다는 점이 현 회장이 얻어낸 커다란 성과다.
조오련 수영선수 한국 수영의 별이 지다
'아시아의 물개' 한국 수영의 대부 조오련이 4일 오전 11시32분께 전남 해남군 계곡면 자택 안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을 둘째 아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낮 12시 45분께 숨졌다. 50여 개의 한국 신기록을 세워 '아시아의 물개'로 명성을 날리던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한국 수영 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내년 여름 자신의 대한해협 횡단 30주년과 광복 65주년을 기념해 대한해협 횡단에 나서겠다고 밝힌 조오련은 도전을 위해 제주도에 캠프를 차리고 체력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지만 대장정을 1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조오련은 은퇴 후에도 수영을 놓지 않았다. 또한 그는 국토에 대한 애국심이 대단했다. 1980년 13시간16분 만에 대한해협을 횡단하며 수영장을 떠나 바다에 도전하기 시작한 그는 2000년 대한해협을 재 횡단했고, 2003년 8월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수영으로 완주하며 한국인의 기상을 과시했다. 특히, 독도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2005년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 93㎞를 18시간 만에 횡단하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였다. 이어 지난해 7월에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독도 33바퀴를 헤엄치는 대장정을 마쳤다. 지난 70, 80년대 대한민국 수영의 갖가지 기록을 갈아 치우며 불굴의 도전정신과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줬던 조오련은 비록 필생의 꿈인 대한해협 두 번째 횡단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끝없는 도전 정신은 한국수영의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육락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 “간도는 우리 땅” 국회 시민 네티즌 되찾기 열기 거세다 간도지역을 되찾기 위해 보다 시급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육략현(65)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는 오는 9월 4일로 청일간도협약이 만료되는 것과 관련, “국민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13일 육대표는 “통상 국제조약의 만료는 100년이지만 시효규정은 없다. 하지만 조약이 만료되는 시점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국가 간 분쟁이 되더라도 판결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법에 따르면 영토문제는 국가 간의 소송으로만 해결가능하다”며 “하지만 국가의 행동이전에 NGO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했다. 정부가 중국과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머뭇거린다면 국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 정부를 움직여야한다는 주장이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는 지난 4월 국회자료전시 및 학술대회를 열어 간도 되찾기의 필요성을 알리고 간도 문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조사했다. 육대표는 “국회 외교통상위에 간도 되찾기 안건을 상정할 것”이라며 “조만간 청일간도협약 무효 기자회견도 준비 중”이라 대답했다. 그는 기자회견 외에도 '간도의 날' 선포 4주년 행사도 기획 중이라 말했다. 올해는 1909년 일본과 청 사이에 맺은 간도협약이 100주년 되는 해다. 간도협약은 그해 9월 4일 일본이 만주 철도부설권과 탄광채굴권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넘기며 청과 체결한 조약이다. 영토학자 및 누리꾼들은 “을사조약과 간도협약은 무효”라며 간도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데니스 오니엘 미국 연방 소방대학장 중앙소방학교, 미국 소방대학장 '데니스 오니엘' 초빙
중앙소방학교는 '미국 연방 소방대학장' 데니스 오니엘(Denis Onieal)을 초빙해 10일부터 14일까지 '소방·비상관리 행정'을 주제로 강의했다. 데니스 오니엘 학장은 1960년대에 주한 미군으로 복무한 전력이 있으며 이번 초빙 강의를 계기로 4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오니엘 학장은 소방사로부터 소방서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해 왔으며, 미국 재난 대응분야의 전문가로 '9?11테러'와 '카트리나' 허리케인의 재난현장에서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데니스 오니엘 미국 연방소방대학 학장은 2001년 9ㆍ11테러 당시 뉴욕 인근의 뉴저지 소방서장으로서 현장을 지휘한 소회를 밝히며 "수많은 시민과 소방관 동료들이 희생된 현장에서 작전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며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 처음엔 무척 당황했지만 여러 기관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분업 체계를 가동해 효율적으로 활동을 펼쳤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소방기관과의 교류 계획에 대해 "재난관리 분야의 파트너십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며 "올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소방ㆍ방재 국제 콘퍼런스'에 적절한 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미국의 국토안보부와 재난관리청, 연방소방대학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니엘 학장은 소방관의 지위와 관련, "미국 사회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숭고하게 여기고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소방관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니엘 학장은 1971년부터 소방관으로 근무를 시작하여 1995년까지 뉴저지 소방서 소방서장(Fire Chief)으로서 600여 명을 지휘하였고, 1995년에 미국 연방소방대학장으로 임명되어 지금까지 미국 연방 소방?재난관리 교육을 총괄하고 있다.
우사인볼트 육상선수 9초58 세계신기록 100m 우승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메이카 선수 우사인 볼트가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에서 ‘마의 9초 6대’를 깨고 9초58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9초69 세계신기록을 0.11초 앞당기게 된 것이다. 우사인 볼트는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세기의 대결에서 출발 반응 속도는 느렸지만 중반 이후부터 특유의 폭발적인 스퍼트를 선보이며 미국의 타이슨 가이(9초71)와 자국 선배인 아사파 파월(9초85)을 앞질러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우사인 볼트가 세운 세계신기록은 인간의 한계로 여겨진 9초6대를 깼다는 것에 의미가 남다르다.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는 9초6대, 9초5대를 잇따라 달성하면서 9초54까지 뛸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육상 100m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기 위해 피니시라인 20m전에서 속도만 늦추지 않았더라면 9초52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한편 육상계는 우사인 볼트가 어쩌면 9초5대의 기록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육상 100m에서 9초48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육상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이에 AP통신은 "세계신기록을 위해 뛴 것은 아니다"라는 볼트의 발언을 소개하며 그는 누누이 강조해왔던 것처럼 마의 기록인 9초4에 도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우사인볼트는 "내가 9초4까지 뛰겠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열심히 운동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양용은 골프선수 동양인 첫 메이저 정상 PGA 챔피언십 우승
'바람의 아들'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서 '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양용은은 8월 17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 헤이즐틴골프장(파72·7674야드)에서 막을 내린 '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서 이글 1개, 버디 2개와 보기 2개로 2타를 줄여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해 우즈를 제치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양용은은 지난 3월에 열린 '혼다오픈'에서 자신의 첫 PGA 우승을 차지한 이후 5개월 만에 2승째를 달성했다. 아울러 아시아인 최초로 PGA 메이저대회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또한 우승 상금 135만 달러(약 16억 7000만원)를 챙긴 양용은은 올 시즌 상금에서도 300만 달러(335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HSBC챔피언십에서 우즈를 꺾고 우승하며 세계 골프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양용은은 2년 9개월여 만에 다시 한 번 우즈를 제압했다. 특히 메이저대회 14승을 올린 우즈는 마지막 날 선두(혹은 공동선두)로 나선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한 적이 없었으나 이날 양용은에게 처음으로 역전패당하며 고개를 숙였다. 양용은은 경기 후 인터뷰서 "오늘 굉장히 침착하게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우승한 경험을 기억해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해서 우승을 차지한 것 같다"며 "아마도 한국에서도 난리가 날 것 같다. 국민들이 응원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은 박세리를 필두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호령했으나 남자 골프 선수로는 최경주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을 뿐 세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계 남자 골프의 벽은 높았기에 양용은의 우승은 한국 남자가 세계 골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