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In.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주의 선언]
따뜻한 자유주의와 성숙한 민주주의 실현
기회 공평성과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하라
이념의 골이 너무나 깊은 우리나라는 보수의 끝은 우(右)로, 진보의 끝은 좌(左)로 치닫고 있다. 극단적인 대립과 균열들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혜안이 시급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중반기 국정철학으로‘중도실용’을 선언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실용주의를 중심으로 한 창조적 중도실용의 길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 갑작스런 방향전환이라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본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 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정부는‘이념의 시대’를 넘어‘실용의 시대’로 가야함을 강조, 진보와 보수사이에서 부화뇌동하는 절충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중도강화 정책이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서민들이 깊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과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가 되려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당면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중도실용 정책이다.” - 박형준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 제고

국가의 연속성과 발전을 위한 필수적 선택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헌법이념에 기반

통합과 소통을 표방하고 사회안전망 확충
원래 실용주의는 유럽의 계몽주의가 미국사회에 유입되면서 아메리카 신흥 중산층에 맞는 유용성의 원리로 뿌리내린 것이다. 이에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유럽적인 보편성과 미국적인 구체성을 미국 풍토에 맞게 통합한 실용주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며“실천적 가치를 갖지 못한 관념과 사상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다양성 중시,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존중,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창조적 실용주의라는 표어는 참모들이 입안했겠지만, 이것이 국정철학으로 격상될 수 있었던 데는 실질과 성과를 중시하는 최고경영자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선호도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한 윤평중 교수는“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주창한‘이념에서 실용으로’도 이런 맥락에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창조적 실용주의의 내용을 보면, 이명박 정부 초기 정책 추진의 압도적인 가중치는 경제 살리기에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당시 상황이나 국민적 여망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문제는 여기서의 경제가 대기업과 가진 자 위주의 발전국가적인 경제성장을 지향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 윤 교수는“분배와 통합 대신에 성장과 발전이 정권 차원의 일차 목표로 제시됐고, 新발전체제 구축이 국정 목표가 되어 한국형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전화됐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실용주의의 이념화라는 역설적 상황이 그 산물이었다는 것이다.“지난 1년 반 동안 MB정부가 겪은 시행착오는 상당 부분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한 윤평중 교수는“국민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민주정부가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하는 정부로 각인될 때‘날개 없는 추락’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국정철학을 창조적 실용주의에서 통합형 자유주의로 바꾸고, 중도실용을 선언한 것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무거운 성찰의 소산일 것”이라고 밝힌 윤 교수는“통합과 소통을 표방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며, 교육양극화를 시정하고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등의 전방위적 노력은 일단 방향을 잘 잡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발전과 성장도 중요하지만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서민층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이라는 내실을 획득해야 한다
중도실용론에 대해‘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에 대해 윤평중 교수는“그 자체가 중도실용론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를‘독재정권이며 유사 파시즘’이라 매도해온 여러 야당과 진보진영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다.“중도실용주의가 단순한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 추진이라는 내실을 획득할 때 얻게 될 정치적 위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 전한 윤 교수는“중도실용이‘뿌리 없는 기회주의이며 죽도 밥도 아닌 잡탕에 불과하다’는 보수우파로부터의 공격에 대해서도 의젓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극우나 극좌를 멀리하는 중도실용주의가 우리 헌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선언, 제4조에서는‘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고 나와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을 국가의 정치적 뼈대로 삼은 것이다. 이어 헌법 제119조는‘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제123조의 조항, 즉 지역 간의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육성, 농어업과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 등에 대한 국가 의무는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곧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원칙을 통합, 사회경제적으로는‘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헌법 제119조)’하는 것이다. 또한 분배정의와 경제민주화의 정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도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 할 수 있다. 중도실용주의가 우리 헌법가치에 충실한 입론인가에 대해서도 윤 교수는“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극우나 극좌 모두 자유민주적 공화정의 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중도실용주의는 시의적절한 담론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의 여부다. 만약 중도실용을 정략적 표어로만 구사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앞날은 어두울 것”이라 전한 윤평중 교수는“중도실용이 제대로 구현될 때, 국가 발전에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체계 사이에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정책과 외부환경 변화와의 괴리를 해소하는 방법을 창조적으로 모색하는 일은 중도실용론의 핵심이다. 성장 혹은 분배라는 이분법 대신 성장을 토대로 두 가지 이질적 요소를 통합하는 정책이 가능하며(휴먼뉴딜), 성장 혹은 환경이란 이분법 대신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정책으로 통합할 수 있다(녹색성장).”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 교수
사회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중도강화론은 이념이 매개된 정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서민들이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이런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보수도 서민을 위할 수 있다는‘서민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중도강화론의 핵심”이라고 정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사회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제시한 중도강화론의 등장에 대해 김형준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하여 정치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이념이 매개된 정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의 이념 지형은 중도가 강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이념 갈등이 증폭되는 역설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KBS와 동서리서치가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심각하다’는 의견이 84.7%로 높게 나왔다. 특히‘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적 갈등(78.1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에는 진보(40%)와 보수(40%)가 균등하게 대세를 이루고, 중도(20%)는 약한 이른바‘쌍봉형의 이념 지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로 중도층이 두터워지는 이른바‘단봉형 이념 지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중도층은 강화되고 있는데 대통령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보수 편향으로 인식되어, 국민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념 성향에 대한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대선 당시(2007년 11월) 이명박 후보는 국민 전체 평균(5.2점)과 가장 근접한 5.4점으로 중도적인 후보로 인식됐다. 하지만 2008년 11월에는 6.4점, 2009년 6월에는 7.0점으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의 이탈이 가속화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지만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한 중도층 비율도 26.7%로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정책을 추구하려는 중도노선은 이탈한 지지 기반 복원을 위한 매우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장인정신과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적 가치지향
둘째,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핵심엔‘친서민적 행보’가 자리 잡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주된 이유는 현 정부가‘서민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유층 등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강부자·고소영 내각’으로 상징되는 초기 개각 실패로‘이 대통령은 부자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도강화론은 바로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셋째, 국민통합의 길을 열어가기 위한 고육책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특정 이슈와 정책에 대해 대안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고 혐오하는‘배타적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중도층에서 진보에 대해‘좋다’는 비율이 28.5%인 반면, 보수가 좋다는 비율은 19.3%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러한 보수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보수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좌파 정책이라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나“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서민을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서민을 대변하고, 보수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김형준 교수는 특히“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도강화론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변화와 통합을 위한 토대가 돼야 할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창조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이에 덧붙여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 교수 또한 기고문을 통해“정부의 정책 집행에서 분명한 가치지향과 창의적인 정책의 결합이 핵심”이라며“이와 동시에 명분이나 학벌보다 장인정신과 실질을 숭상하는 실용적인 가치지향이 국민의 생활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NP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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