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는 서로 상대방 안에 스며들어있는 거다.”

황동규 시인을 만나러 가는 그 길에는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봄의 정취, 채 사라지지 못한 겨울의 싸늘한 공기. 2월 말이라는 분위기가 주는 묘한 뉘앙스까지. 마치‘삶이란 이런 거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풍경을 스쳐 황동규 시인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황동규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꽃의 고요>를 접했을 때 기자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인생을 그가 써내려간 시들의 자취를 더듬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일까. 이번 시집에서 그는 무언가 의미를 이루기 전에 먼저 마음의 공명을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꽃이 피는 자연 현상들과 일상의 무늬를 이루는 사소하거나 복잡한 삶의 사건들 앞에서 그의 시는 과연 어떤 의미들을 속삭이고 있을까?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의미화 되기 이전 마음의 섬세한 움직임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동규 시인이 적어 내려간 시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빛의 흔들림에 따라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시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는 글자가 표현하지 않은 무한의 의미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타자에 대하여

나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인이 되었다. 후회는 없다. 시인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아마도 작곡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시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황동규 시인의 연구실에 나지막하게 깔리던 클래식의 선율이 그의 지난 꿈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꽃의 고요>라는 시집에서 나는 일상을 보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점점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시인에게 묻는다. 나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라는 우문을 던지고 말았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일까?“맞아요. 그렇게 봐주었다면 저야 좋습니다.”라고 반색을 하는 시인과 조금은 가슴 떨리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황동규 시인에게 물었다. 그가 지금까지 줄곧 놓지 않고 이어온 시 속의 화두에 대해서 말이다.“자꾸 변한다. 살면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내가 간 다음에 어떤 젊은 비평가가 황동규 시인은 이렇게 변해왔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이 내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려는 방향과 상황이 부딪히게 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유마경’을 읽은 나의 상황과 현실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사실 유마경은 10여 년 전부터 읽으려고 끊임없이 시도를 해왔던 것인데 도저히 읽혀지지가 않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히더라. 그것도 변한 것이다. 예전에 읽혀지지 않던 책이 비로소 이번에 읽혀지는 것. 그것도 나에게는 변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자아를 긍정해서 자아를 긍정하는 타인과 만나는 선(禪), 바로‘내 마음 속의 타자’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유마경의 흔적은 없다. 아마 다음 시집에서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유마경이 무엇이길래 시인을 그동안 이리도 헤매게 만들었던 것인가.“대승불교가 처음에는 공사상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화엄이나 공사상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많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유마경은 그 가운데 쯤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하나 묻고 싶어졌다. 이번 <꽃의 고요>라는 시집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어떤 젊은 비평가는 이번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그간 시의 절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뭐, 어떻게 해석을 하고 받아들이든지 모두 맞는 얘기이다.”나이 든 시인의 여유로움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자니 우리가 앉아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어느 시간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가고 있었다. 마치 죽음이라는 것, 삶이라는 것의 비밀스러움을 알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그는 이야기한다. 문득 젊은 시절의 꿈에 대하여.
“클래식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 내가 본 서울의 모든 곳은 시각적인 환희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르네상스의 청각적인 환희에 나는 사로잡혔다. 혼자서 작곡 공부를 했다. 그런데 친구인 김영욱과 함께 바이올린 협주곡의 밤을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친구는 들은 음을 그대로 휘파람으로 따라하더라. 나도 함께 휘파람을 불었는데 똑같이 따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작곡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사실 성악가가 아닌 이상 듣는 것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였는데... 굴렌굴드 역시도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하는 허밍은 조금씩 음치의 기질을 보였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시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전에도 습작으로 많은 글들을 써왔다. 잘하면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순간 인터뷰 시간 내내 우리와 함께 하는 공기 중에 흐르던 클래식 음악이 비로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음악과 글이 함께 하는 그의 공간이 운치 있어 보인다.
그는 이야기한다.“50년대 중반의 파괴된 거리는 참으로 보기 싫었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전혀 없었다. 초기 시에‘눈’이 많이 나왔던 것도 눈이 내리면 온통 하얗게 덮어버렸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 눈이로군. 그리고 가만히 다닌 길이로군. 입김 뒤에 희고 고요한 아침. 잠깐잠깐의 고요한 부재. 오 눈이로군. 어떤 돌아옴의 언저리. 어떤 낮은 하늘의 빛. 한 점 빛을 가진 죽음이 되기 위하여 나는 꿈꾼다, 꿈꾼다, 눈빛 가까이 한 가리운 얼굴을, 한 차고 밝은 보행을.’(-황동규 시인의「눈」전문)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중 일부)

시인의 일생에 대하여 생각하다

기자는 가끔 생각한다. 시를 쓰는 이의 외로운 밤 시간을 혹은 문득 영감이 떠오르는 새벽녘의 어스름한 푸른빛을 그리고 펜을 놓고 있는 순간에도 시라는 존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인의 일생에 대하여 말이다. 시인을 옭아매고 있는 시라는 올가미를 말이다. 시마다 각기 다른 자세로 대하고 있다는 황동규 시인에게서 그의 삶을 유추해본다. 이번 시집에서 강한 어조로 다가온 시 한 편이 있다.‘시여 터져라!’라는 제목의 시이다. 그 시가 과연 현재 시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
‘시여 터져라. 생살 계속 돋는 이 삶의 맛을 이제 제대로 담고 가기가 너무 벅차다. 반쯤 따라가다 왜 여기 왔지...(중략)...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설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날려와 귀싸대기 때리는 싸락눈을. 시여!’(「시여 터져라!」중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를 쓰는 감각에 대해서 말이다.“늙어가면서 감각이 무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감각을 놓지 않겠다. 그런 거다. 감각이 죽기는 했지만 아직 상상력은 죽지 않았다. 사실 문학을 하는데 있어서는 감각이 중요하다. 내 시가 추상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도 끝까지 감각을 놓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감각을 버리면 안 된다.”
지금까지도 감각을 놓지 않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황동규 시인. 그렇다면 예술적인 측면에서 감각이라는 것이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상당히 유지가 된다. 시와 음악, 문학 등의 모든 예술 분야는 출발이 감각이다. 감각을 버리면 추상화되어버리고 만다. 그걸 포기하면 누가 시를 문학을 읽겠는가.”

내 시는 지성적이지 않다. 다른 시가 비지성적일 뿐

그런데 사람들이 더 이상 문학을 읽지 않는다.
“소설의 경우 전업소설가가 너무 많아졌다. 외국 소설가는 3년을 고민하고 낸 책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1년에 3권 이상을 내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된다. 우리 때는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직업 가지고 살면서 책을 냈다. 사실 겸업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경우 전업 작가보다 불리하다. 그게 외국 작가들한테 지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시 의 경우, 전업 시인은 거의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나는 이제 은퇴해서 전업시인이 됐지만...(웃음)내가 전업시인이 되고나서 쓴 시여서 더욱 여유롭게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전업 시인이 되고 나서 시를 쓰는 것이 어떤가? 행복한가?“아무래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생활이 됐다면 아마 시만 썼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황동규 시인을 가리켜 말하기를 발레리처럼 지성의 향취를 풍기는 시편들을 발표해왔다고 했다. 지성적인 시인이라는 평가에 대한 어떤 부담감은 없는 것일까?“나를 지성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다른 시들이 비지성적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지성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감성을 깔고 가는 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생과 사, 그 조화로움에 대하여

삼년 만에 시집을 출간한 요즘,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또 다시 시를 쓰기 위해 마음을 비워내고 있을까? 요즘 그가 관심가지는 것들에 대해서 물었다.“인간의 특징이 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거다. 그러면서 어떻게 같이 살아가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난 다 뭉쳐서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같이 살면서 다르게 살기, 그리고 다르게 살면서 같이 살기. 그건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는 거다. 둘 간의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고 말이다. 넓은 의미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그것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황동규의 시에서는 항상 생과 사라는 문제가 이야기된다. 그것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해보자.“인간은 죽도록 던져진 존재가 아닌가? 그 둘은 서로 상대방속으로 스며들어있는 거다. 논리적이 아니라, 감각 속에서 문학이란 틀 속에서 그걸 보여 줘야하는 거다. 죽음에서 삶을 바라볼 때 더욱 절실해지는 거다. 절실하게 살기 위해서다. 삶을 양쪽에서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집 발간한 이후로 그는 다시 시를 쓰고 있다.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계속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타성이 생긴다. 예술은 젊은 시절 철없을 때 말고는 참 힘든 작업이다. 공들인 만큼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자기가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의 고요>라는 시집의 첫 장을 펴면‘참을 수 없을 만큼’이라는 제목의 시가 나온다. 나 역시 그 시를 읽으며 무언가 참을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으며 곧 흐를 것만 같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죽음이 그리고 삶이 공존하는 그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참을 수 없었으며 그 긴장감이 또 나의 일상임을 감지했을 때의 나의 간사함을 참을 수 없었다.

‘사진은 계속 웃고 있더구나. 이 드러낸 채. 그동안 지탱해준 내장 더 애먹이지 말고 예순 몇 해 같이 살아준 몸의 진 더 빼지 말고 슬쩍 내뺐구나! 생각을 이 한 곳으로 몰며 아들 또래들이 정신없이 고스톱 치며 살아 있는 방을 건너 빈소를 나왔다. 이팝나무가 문등(門燈)을 뒤로하고 앞을 막았다 온 가지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을 수 없을 만큼 하얀 밥풀 가득 달고.’이것 더 먹고 가라!‘이거였니, 감각들이 온몸에서 썰물처럼 빠질 때 네 마지막으로 느끼고 본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동체(胴體)부듯 욕정이 치밀었다. 나무 앞에서 멈칫하는 사이 너는 환한 어둑발 속으로 뛰어들었다.’(-「참을 수 없을 만큼」전문)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