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혐의’로 얼룩진 쓸쓸했던 생애

팝의 황제는 한 줌의 재로 남았지만,
그의 영혼은 전 세계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지난 6월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이 급성 심정지로 51세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전 세계의 사람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망 원인, 유산문제, 자녀 양육권 등을 놓고 온갖 말들이 난무했다. 지난 8월 그의 사망원인이‘살인’으로 결정되면서 전 세계 팬들에게 안타까움만을 남긴 채 팝의 황제는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는 현재까지 총 7억 5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했으며 그래미 시상식에서 13개의 상을 수상한 기록을 보유한‘King Of Pop’이다. 지난 10월 에는 잭슨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화'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발매 첫 주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해 식지 않는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이 팝의 황제는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는 그의 여운이 남아있다. 마이클잭슨의 갑작스러운 사망, 그가 우리에게 남긴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나, 올해로 딱 51세이다. 그는 9남매 중 7째로 5살 때 4명의 형들과 함께‘The Jackson Five’의 리드싱어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부모님에게 있다. 그의 부친인 조셉은 크레인 기사로 그룹 팝콘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그의 모친인 캐서린은 클라리넷 연주가로 아이들에게 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치곤 했다.‘The Jackson Five’는‘ABC’,‘The love you save’,‘I'll be there’을 연속 히트시키며 데뷔 때부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첫 솔로앨범인‘Off the Wall’은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을 넘게 팔아 대중, 전문가들에게까지 호평을 받았으며‘Thriller’는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다. 이 앨범은 마이클잭슨이 세계적인 가수 대열에 오르는데 큰 공헌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Billie Jean’의‘문 워크’춤으로 전 세계 팬들을 설레게 해 보컬, 작곡, 댄스까지 섭렵한 슈퍼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1987년에는‘bad’를 발표‘Thriller’의 명성을 이으며 이때부터‘팝의 황제’라는 호칭을 얻는다. 1988년에는‘Moon Walk’을 출판하였고,‘Jackson 5’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의 유년 시절을 고백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 후 4집‘Dangerous’를 발표하였지만 갑자기 아동성추행 문제가 불거져 한 동안 모든 활동을 접고 공백기를 갖게 된다. 2001년, 공백기를 깨고 마지막 정규 앨범인 ‘INVINCIBLE’을 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또 침체기를 겪는다. 2009년 3월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컴백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순회공연 콘서트를 열겠다고 발표, 콘서트를 보름 남겨둔 6월 25일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화려한 성공 뒤에 그의 생에 가득 드리운 그림자

▲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며 배우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마이클 잭슨은 그녀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다고 언급했으나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그와의 결혼생활이 끔찍했다고 말해 그들의 결혼생활을 짐작케 했다.
미국 연예매체 TMZ닷컴은 잭슨이 사망 전 3개월간 무려 179차례 성형수술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부검 결과 입술, 머리 윗부분, 눈썹, 눈 아래 등에 문신의 흔적이 있었으며 얼굴과 목에 과도한 성형 자국, 귀 뒤, 코 주변 어깨, 목까지 성형의 흔적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성형에 집착은 1984년으로 거쳐 올라간다. 그는 1984년 광고 촬영 중 심한 화상을 입어 백반증에 시달렸다. 증세가 점점 악화되자 백반증이 전신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는 새하얀 화장으로 백반증을 가려야만 했다. 또한 컴백을 할 때마다 달라진 코는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로 한 차례 수술을 받은 후, 1979년 그의 첫 솔로 앨범이 나오던 해 공연 리허설 중 사고로 코를 다치면서 두 번의 수술을 거쳤다. 하지만 그의 코 변형과정을 본다면 아마도 여러 번 성형을 거쳤을 거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세 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로 끝나버렸으며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 얻은 두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도 미궁에 빠진 상태이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는 사건은 성추행 혐의였다. 1993년 마이클 잭슨은 월드 투어 중 조단 챈들러라는 아이를 성추행 한 혐의로 고소되었다. 그는 투어 중이라 이 같은 일에 대응해 재판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3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주고 합의를 했지만 성 추행범이라는 오명은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2003년 이 같은 일이 또 반복되었다. 당시 13살이었던 개빈과 함께 잤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언론은 앞서 일어났던 사건과 연관 짖고 그를 파렴치한 성 추행범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개빈은 당시‘마이클과 포용과 키스는 물론 성관계까지 가졌다. 그러한 관계가 4개월간 지속됐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성 추행범이라는 오명은 더 거세게 그의 목을 조르는 형국이 되었다. 그의 사망 후 당시 마이클을 성 추행범으로 몰아넣었던 조단 챈들러가 아버지의 계략으로 거짓 증언을 해 죄책감으로 고통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사후에 증명된 마이클의 결백으로 팬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그는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세계적인 스타다. 소소한 행복을 누릴 기회 대신 얻은 세계적인 명성은 그를 약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결혼생활도 어려웠고 형제들과의 정도 나눌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순진하고 여린 그의 성품은 성 추행범으로 낙인찍혀 죽기 전까지 그의 닉네임처럼 따라다녔다.

약물 과다 주입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
▲ 7월 7일 스테이플센터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에 자넷과 마이클 잭슨의 딸 캐서린 잭슨을 포함한 가족들과 유명 스타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그는 2009년 7월 런던 O2 아레나 등에서 콘서트‘This Is It’를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2009년 6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전 세계 팬들은 그의 죽음에 경악했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낮 12시에 소방서에 구조요청, 20분 후 긴급의료진이 자택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심장박동이 멈춘 상태였고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결국엔 사망했다.‘TMZ닷컴’은 잭슨의 생전 공연모습을 내보내며 UCLA병원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고 AFP통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FOX뉴스 등은 일제히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보도했다. 7월7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그의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에는 자넷 잭슨, 스티브 원더, 어셔, 라이오넬 리치, 제니퍼 허드슨, 저메인 잭슨 등이 참석했으며, 마이클 잭슨의 딸 캐서린 잭슨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은 눈물을 흘리며“내가 태어난 이후 아빠는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잭슨에 대한 사랑을 전해 팬들을 울렸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그의 비보를 듣고 일제히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지난 7월 AP통신은 그의 주치의인‘콘레드 머리’가 사망 24시간 전에 강력한 마취제를 주사하여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 8월 언론에서는 앞 다퉈 그의 죽음은‘치사량 수준’의 강력한 마취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잭슨은 생전에 잠을 청하기 위해 프로포폴 성분의 마취제를 투약해왔다. 그리고 잭슨이 죽기 전날 약물의 과다 주입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 LA카운티 검시소는 8월 마이클 잭슨의 사망 사인을'살인'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다. 검시소에 따르면 과도한 마취제 투여와 디프리밴으로 불리는 강력한 마취제인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으로 불리는 신경안정제 로라제팜의 과도한 투약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마이클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리에 대해 살인 용의자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이클의 부검결과에서 나타난 결과로는 그의 건상상태가 의외로 양호했다고 알려져 주치의의 과실로 인한 팝의 황제의 죽음이 더욱 부각되었다. 지난 달 말 미국의 한 외신은“경찰이 지난 8월 잭슨의 개인의사인 콘래드 머리의 라스베이거스 약국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제출한 영장에 따르면 콘래드 머리는 지난 6월25일 로스앤젤레스 소재 잭슨의 자택에서 잭슨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1시간 이상이 지난 오후 12시 22분에야 긴급구조 전화를 걸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보도해 또 한 번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끊임없는 잡음으로 팝의 황제는 죽은 뒤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아빠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패리스 마이클 캐서린


그가 우리에게 남긴 여운

▲ 그의 마지막 노래‘디스 이즈 잇(This is it)’은 이미 전 세계에서 400만 음반 판매고를 달성하였으며 마지막 리허설이 담긴 영화‘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은 개봉 후 5일 만에 1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천200억 원 정도를 벌어들였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원더걸스가 국내에서 붐을 일으켰던'80년대 복고'를 탄생시킨 80년대 음악, 패션, 댄스의 창시자였다. 마이클 잭슨은 80년대의 아이콘 중에 아이콘이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어쩌면 다시 그의 열풍이 되살아난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지막 노‘디스 이즈 잇(This is it)’이 발매 첫 주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으며, 그의 옛 음반‘넘버 원즈(Number Ones)’,‘디 에센셜 마이클 잭슨(The Essential Michael Jackson)’,‘스릴러(Thriller)’가 나란히 빌보드 종합 음악차트 1~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마지막 리허설이 담긴 영화‘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개봉해 관객들에게 아직도 그가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의 강한 감동과 환희를 전했다.‘마이클 잭슨 디스 이즈 잇’은 개봉 첫 주 약 1200억 원의 수익을 올림으로 영화 산업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콘서트 영화가 되었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잭슨의 추모 경매가 열려 잭슨이 생전 착용했던 물품들이 경매대에 올랐다. 잭슨의 옷장에 있던 의상 70여 벌을 포함해 대부분의 물건들이 당초 예상을 뒤엎을 정도로 고가에 낙찰되었는데 이 중에 보석 박힌 장갑이 4억 원의 가격에 낙찰되었다고 영국 연예 사이트 디지털스파이는 보도했다. 또한 최정상 프로듀서들이 참여한'마이클 잭슨:더 리믹스 수트'가 11월 초 발매되는 등 아직도 그의 존재 자체가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아직도 그의 신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공연 준비에 최선을 다해준 당신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관객들에게 현실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공연을 통해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마이클 잭슨이 마지막 공연 리허설 때 남긴 말이다. 그의 생생한 목소리가 곁에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다시는 그의 공연을 볼 수 없겠지만 그가 전 세계 팬들에게 남긴 영향력은 네버 엔딩일 것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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