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회화기법으로 국제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권정찬 경북도립대학 교수


한국건축에서 그림은 집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그림이나 글씨는 건조물(建造物)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이며,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집안의 유용한 장식품이었다. 이런 생활미술품 중 집안 행사에서 소품으로도 요긴하게 쓰이는 병풍에는 행사의 내용이나 집안의 분위기에 맞추어 다양한 민화가 그려지곤 했다.‘겨레그림’이라고도 하는 민화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 속에는 세속적 욕망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소박하지만 파격적이고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장동미 국장  이태향 기자

‘2008 동아시아 예술시각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품을 전시했던 권정찬 교수(경북도립대학 스타일코디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난 10월 7일부터 12일, 대구 남구문화원이 기획한“우리의 민화, 그 숨결”전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한국 전통 겨레그림(민화)과 권교수의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자리여서 전통적인 것을 창조적으로 되살리는 콘텐츠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었고,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연이어 11월 16일에서 22일까지는 대구 대덕문화전당 제 1,2 전시실에서‘경북도립대학 발전기금 마련을 위한 권정찬 교수 작품전’을 열어 경향각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전시에서 권정찬 교수는 수묵화인 문인화 와 산수화는 물론 전통채색화와 서양적 기법을 도입한 최근작까지 출품, 발전과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난해하지 않아 대중적 소통이 가능하면서도 품위 있는 그림

▲ 대구 대덕문화전당 전시실에서 권정찬 교수
마티스(Henri Matisse)는“예술은 안락의자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좋은 그림은 소장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예술작품에 내재한 보편성이 있지 않고서는 일반 대중들이 공감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가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미국이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흑인예술의 가치와 잉카문명을 소중히 다루는 것처럼, 한국 미술의 보편성과 세계성을 겨레그림(민화)의 모티브에서 찾는다면 한국미의 새로운 조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이브 벨(Clive Bell)의 미학적 가설에 따르면 회화가 우리에게 고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그것이 어떤 것의 재현이나 모사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만의 의미 있는 형식, 즉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된 선과 색채, 형태와 형태간의 관계”때문이다. 회화의 선과 색은 그 자체의 조화와 배치에 따라 파악하고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개인적인 경험이든 집단적인 경험이든 보편성을 배제하고서는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 대중적인 소통을 품격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 있다면 예술의 효용은 극대화 될 것이다.

氣韻生動 권정찬 교수는 그림을 평가하는 첫 번째 기준으로‘기운생동’을 들었다. 묘사할 대상의 기질이나 성격이 화면에 생생하게 표현되는 것을 뜻하는 기운생동은 작가의 인격이 화면에 반영되는 것으로 동양화의 근본적인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운이 충일(充溢)한 그림이 가장 잘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이 동양회화의 미학은 작가가 작품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감흥과 감동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젊음과 생명력의 이미지이다. 권정찬 교수의 작품은‘氣가 나오는 그림’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하는데,“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건강하고 기운찬 그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 구애를 하고 있는 호랑이. 권정찬 교수의 그림에는 익살과 유머가 가득하다
色 권정찬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전통 오방색(五方色)이다. 노랑색[黃], 푸른색[靑], 흰색[白], 붉은색[赤], 검정색[黑]의 이 다섯 가지는 예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해오던 색일 뿐 아니라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색의 조화와 변화는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적인 뜻이 담겨있고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귀를 몰아내기 위해 혼례 때 신부가 연지곤지를 바르는 것이나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돌이나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것,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두르는 것, 잔칫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궁궐?사찰 등의 단청, 고구려의 고분벽화나 조각보 등의 공예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색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색의 빛깔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색과는 전혀 다른 차별성이 있는 권정찬 교수 그림의 색채는 발색의 차원이 한 단계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기존의 수묵화에다 채색을 더한 그의 그림은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낸다. 특히 주걱, 방망이, 빨래판, 부채 등을 이용한 전통적인 소재의 오브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 하게 하는 깜찍한 색감이 살아 있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한국 고유의 전통 조형세계와 미의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해 낸다.

構圖 권정찬 교수 그림의 구도는,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 현대적인 관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를 한 화면에 놀게 하고, 봄과 가을이 어우러져 있는 등 엉뚱한 면이 있다. 산보다 꽃이나 사람을 크게 그리거나 소실점이 상실된 구도는 민화의 특징이다. 민화는 민화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민화를 그린 사람들은 그들의 염원을 담기 위해 풍수나 부적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구도, 즉 대칭이나 나열의 구도를 즐겨 쓸 수밖에 없었고, 기도와 함께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하게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염원을 풀어주는 효능 있는 그림으로 사람들은 믿었을 것이다.

東道西器 권정찬 교수는 대학에서 서양화로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양화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수묵화는 그의 그림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교직에 몸을 담은 적도 있지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있던 시절 禪의 경험은 그의 그림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된다. 구도와 마음공부는 그를 자유롭게 해주었고 기존의 예술관은 뒤집히게 된다. 수묵에 채색을 더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그의 채색화에는 수묵적 감성이 남아 있고, 해외에서 더 많은 호평을 받을 정도로 보편적인 구도와 양식을 견지하면서도 신비로운 동양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그가 즐겨 쓰는 군청과 군록의 색감은 중국이나 일본의 채색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아함이 묻어 있다. 가식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색과 먹이 조화를 이룬 색채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느끼게 해 준다. 동양의 정신과 현대적 조형성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권정찬 교수의 그림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구현이라고 해도 한 치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遊 그는 겹겹이 쌓인 산을 그린다. 그 산 앞을 흐르는 맑은 물줄기와 조약돌, 그 위에 앉아 졸고 있는 새들, 동그란 연못 속의 연잎이나 연꽃, 작은 고기떼를 그린다. 자연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노니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그의 존재 방식이다. 그래서 권정찬 교수는 자신의 작품을 길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는 사람은 그리는 대로, 감상하는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즐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인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다. 악귀를 물리쳐주는 영험한 짐승의 이미지를 넘어 민중과 함께 어울리는 장난스러움과 익살의 매력을 더한다. 그의 호랑이는 꽃을 들고 구애를 하기도 하고 초식동물처럼 네모난 이로 나체의 여인을 깨물기도 한다. 전통 겨레그림(민화)에서 까치가 힘없는 서민을 나타낸다면 호랑이는 큰소리치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양반을 조롱하는 상징이라고 해석했을 때 권정찬의 그림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이 시대의 무엇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까. 풍만한 여체를 탐하고 있지만 오히려 순진무구한 느낌을 주는 호랑이에게서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어떤 의미의 웃음을 피워 올리게 되는 것일까.

막힘없이 자유롭고 즐거운 그림
솔거, 권정찬 교수의 어린 시절 별명이다. 병풍 속에 있는 호랑이나 토끼, 꿩, 사슴, 오리 등은 유년기의 권정찬과 교감하는 친구였고, 그는 그 친구들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내곤 했다. 이미 국내외에서 4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고, 브라질에서는‘동양을 대표하는 작가’로, 중국에서는‘한국적이고 매우 독특한 회화’라는 호평을 받는 중견화가인 권정찬 교수가 아직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유년시절의 즐거운 그림 그리기’와‘병풍에서 만난 민화의 흥겨움과 애정’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지금 그의 작품 도저에 묻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자부심이며 자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막힘없이 자유롭다. 현재 전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스타일코디학과는 뷰티관련 방송이나 연예 전문 코디네이터 양성을 위한 특성화된 학과이다. 시각 디자인과 관련하여 더 자유롭고 분방하게 분야를 넓혀서 강의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권정찬 교수의 작품세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색채와 필치를 바디페인팅이나 핸드페인팅 등의 실용적인 부분에 적용하면서 기존의 양식과 기법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걷는 그림의 세계
11월 9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한국미술의 빛(SCAF2009 Seoul Contemporary Art Festival)’전이 개막했다. 총 169명의 화가가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권정찬 교수는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전시회를 통해 미술의 대중화를 꾀하고 미술인들 사이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날 전시실에는 권정찬 교수의 작품과 함께 부인인 황연화 교수의 그림도 나란히 전시되었다. 무명 등의 전통 옷감에 수묵채색화를 선보였는데 종이에 채색을 한 권정찬 교수의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발랄함이 샘솟았다.“그림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하는 객관성이 있기 때문에 내 그림에 대한 아내의 조언에 항상 귀를 기울인다.”는 권정찬 교수는 자신을 긴장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을 살짝 덧붙였다. 권정찬 교수의 작업실은 세 군데에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학교가 그 하나이고, 밥 먹으며 그림을 그리는 집이 두 번째이며, 마음을 다스리며 그림을 그리는 토방이 세 번째 작업실이라고 했다. 산사 밑에 자리한 고즈넉한 토방 갤러리에서 그는 찾아온 손님과 다담을 나누기도 하고 혼자서 마음을 이해하고 사색하기도 한다고 했다. 유년시절에 병풍을 보고 혼자 배운 그림. 그 시각적 체험을 자산으로 혼자만의 외길을 걸어온 권정찬 교수. 서양적이고 현대적인 기술을 익혀 그의 미술세계는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에서의 기초교육 이외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고 사사받은 선생도 뚜렷이 없는 그는 홀로 다른 이의 본이 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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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찬 약력

○브라질 국립공화국박물관, 마떵 역사박물관, GAMS 초대개인전
○일본 도쿄 一穗堂갤러리(靑의 세계-신李朝민화전)
○오사카 上方銀花갤러리 초대개인전
○서울 조선화랑, 금호미술관 초대개인전
○프레야타운(기가 흐르는 그림 초대전)
○대구 대덕문화전당(우리의 민화, 그 숨결-권정찬전)
○맥향화랑, 송아당 초대개인전
○베이징, 상하이, 홍콩 한국화랑미술제
○KIAF, NICAF, 라스베가스 ART EXPO
○베이징2008올림픽공식행사-동아시아 시각예술전
○포천 아시아비엔날레-본 전시
○광주 비엔날레, 부산 청년비엔날레
○브라질 한국미술초대전(상파울로중앙예술원, 비엔날레관 외)
○월드컵 공식행사-2002세계깃발축제(서울월드컵공원)
○제1회 경주세계문화 EXPO/생명의 노래-중견작가전
○2009온고지신(서울평창가나아트센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현재 경북도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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