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불고 마술하는 76세의 청년 치과의사 , 이기형 원장
나이 든다고 다 여유로워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개발이 있지 않고서는 세월의 더께에 묻은 독선과 아집을 떨쳐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이런 좋은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우리 사회의 어른 중의 한 분인 이기형 원장을 만나보았다.
장동미 국장 이태향 기자
‘德建名立’덕을 가지고 세상일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이름도 서게 된다는 의미의 덕건명립. 천자문에 나오는 명귀이다. 이 구절을 이기형 원장(남가좌2동 제일치과)의 원장실 벽에 서 발견했을 때 이 글만큼 이 글을 아끼는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는 덕을 행할 때‘마음으로 우러나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희생을 하게 될 때도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기형 원장은 고희를 넘긴지 오래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들을 진료하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 나이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잠시라도 그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시내의 어느 다방을 빌려 댄스파티를 열었다는 대학시절의 청년 이기형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치과의사들이 봉사활동 단체인‘열린치과의사회’를 결성했을 때 이기형 원장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때부터 10년을 한 결 같이 소외받은 이웃을 위해 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열린치과의사회에서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노숙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위문 공연에도 빠지지 않고 나간다. 몸 뿐 아니라 마음도 같이 보듬어 안아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기형 원장은 도전적이다.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민선 교육위원을 선출할 때도 교육계 비경력자로서 부의장에 당선되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대문구를 위한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정을 쏟는다. 현재 서부신문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서대문구 체육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소박하다. 그 많은 직책과 업무를 소화하면서도 그는 아직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자가용과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없이 생활하기로 결심한 것은, 극작가인 차범석 선생이 현대인의 세 가지 무기인 이것들 없이 평생 생활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실천해 보기로 결심한 데서 시작했다. 치과병원의 세무관리 때문에 신용카드는 소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휴대전화와 자가용은 사용하지 않는다. 선덕학원의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더니 학교 수위에게 제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평범하고 소탈한 그의 모습을 보고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이라고 생각하기는 그 학교 수위나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신경과학의 연구에 의하면, 기억력 등을 의미하는 유동성 지능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반면, 지식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정성 지능은 올라간다고 한다. 특히 정보를 관리하고 판단하는 지능인 통괄성 지능은 훈련하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높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계발과 관리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77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연구를 했고,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도 80세에 걸작을 남겼다는 사실은,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일반적인 반증이 될 것이다.”

이기형 원장은 마술사다. 치과를 두려워하는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린이 병원의 환아들에게 찾아가 마술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을 찾아 갈 때 1톤 트럭의 반 정도 분량을 장난감으로 채워 가는 것도 이기형 원장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는 색소폰 연주자다. 색소폰은 혼자서 배웠다. 묵직한 악기 케이스를 들고 라이브 카페에 가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기분이 흥하면 즉석에서 연주를 하기도 한다. 자신이 즐겁고 신나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든 위문공연을 하든 힘이 든 줄 모른다고 한다. 젊은 치과의사들의 밴드인 자일리톨 밴드와 합동 공연을 하기도 한다.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웃의 정을 나눌 때 삶의 보람을 진하게 느낀다는 게 그의 진정어린 말이다.
그의 치과병원 원장실에는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운 국어사전이 세 권 있다. 열린치과의사회에서 매달 발행하는 ?열린뜻?지의‘낱말풀이’코너를 창간부터 지금까지 맡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염색할 때 물을 몇 번 빨아내는 것을 퇴염(退染)한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나온‘토렴’이라는 말은 밥이나 국수 등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이기형 원장이 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팁.
이기형 원장은 오늘도 걸어서 병원으로 출근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이웃과의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 색소폰을 어깨에 두른다. 젊은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의 말을 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염치(廉恥)’있는 사람이 되기를 부탁했다. 남을 대하기에 떳떳하여 도리에 맞고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를 갖추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참되고 실속 있도록 행할 수 있을 것[務實力行]이라는 말을 덧붙여 강조하는 그의 얼굴은 다비드보다도 젊어 보였다.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