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멀어지면 행복에서 멀어진다”

바다처럼 강인한 자연보호의 파수꾼,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김문호 부총재

1986년 3월 1일, 국내 최초로 순수민간 차원의 자연보호 단체가 탄생되었다. 우리나라의 환경파수꾼으로 자연보호운동과 환경위기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선구자로서 유명준 총재가 전국자연보호중앙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리고 지금, 김문호(해병 357기) 부총재가 자연보호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전국자연보호중앙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SMS 환경감시단을 주축으로 자연과 인간을 구하다

▲ 김문호(해병 357기) 부총재가 자연보호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전국자연보호중앙회를 이끌어 가고 있
전국자연보호중앙회는 1986년 3월 1일,‘자연보호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강화도 마니산에서 발대식을 통해 첫 출발을 알렸다. 이 날 유명준 총재를 비롯하여 평소 국토를 사랑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고자 하는 이들 3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그들 대부분 산악전문가이며 잠수전문가인‘육해공군 특수부대 동지회’회원들이었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는 SMS 환경감시단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SEA(바다), MOUNTAIN(산), SKY(하늘) 3개분야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SMS 잠수대, SMS 산악대, SMS 항공대가 그것이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펼쳐온 모든 활동에는 이 SMS 환경감시단이 주축에 있었다. 김문호 부총재는 전국자연보호중앙회 부총재인 동시에 SMS 특수구조대 대장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거의 최초로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했던 그는 해병대 전역 후 스쿠버 장비를 구하러 갔다 우연히 유명준 총재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30년 넘게 자연보호의 뜻을 함께 실천해 오고 있다. 당시만 해도 환경운동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부각되었던 시절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전국자연보호중앙회의 활동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흐름을 파악한 유명준 총재와 김문호 부총재는 오물수거 및 생태계 조사를 실시하는 등 방심하는 우리 사회에 환경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환경오염과의 전투를 치렀다. 1987년 3월 1일, SMS 잠수대는 우리나라의 젖줄인 한강을 본격적으로 탐사했다. 한강교량의 수중부분 부식도 검사, 산소 함유량 변동 연구를 비롯해 성수대교 붕괴 및 삼풍백화점 붕괴 및 국가적 재난과 대형사고 때마다 적극적인 구명활동에 앞장섰다. 또한 김문호 부총재는 산악전우회 훈련대장이며 SMS 산악대의 일원으로서 산림보호 활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SMS 산악대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암벽 일원과 고지대에 널린 쓰레기를 특수장비를 사용하여 수거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더불어 산림보호와 산불방지를 위해 민간초소를 설치하여 운영해 온 것도 그의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산정상의 쓰레기는 치우기 어려워 정부도 선뜻 나서지 않았었는데 SMS 산악대가 삼성그룹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여 헬기를 지원받아 산정상 쓰레기 수거 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이 활동은 SMS 항공대의 출범과 1사 1산 가꾸기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현재 전국자연보호중앙회는 전국 100만 회원이 참여하는 범국민 의식개혁을 선도하는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국자연보호중앙회의 여러 활동이 부각되어 역대 대통령들도 자연환경보호의 필요성을 깨닫고 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하여 환경보호운동이 확대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현재 서울, 경기,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제주 등 각 시도 본부와 지역본부, 지역지부를 두고 있다. 그리고 80여 개의 환경감시단과 밀렵환경감시단, 전국하천감시단, SMS 특수구조단을 축으로 SMS 잠수대, SMS 산악대, SMS 항공대를 비롯해 인명구조대, 재난구조대, 수중구조대, 청소년 탐사단, 어린이 봉사단 등의 수많은 조직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일에 해병대 정신으로 임한다
김문호 부총재는 전국자연보호중앙회 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27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기도 한다. 가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김문호 부총재는 그에게 주어진 이 많은 일들을 모두 해병대 정신으로 해낸다고 한다. 김 부총재는 해병대 357기(허정무 국가대표감독과 김성남, 김강남 전국가대표와 동기) 출신이지만 원래의 꿈은 파일럿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큐가 142로 똘똘한 학생이었던 그에게 선생님도 운동보다 공부를 권했다. 하지만 이사를 자주해서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해병대도 본래 수색대에 가기를 희망했다. 선임하사에게 수색대로 보내 주십사 요청했지만 두 번이나 거절당해 결국 보급행정병과에 가게 되었고 오히려 그 덕분에 일찌감치 사업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해병대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각별하다. 그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어려운 시절을 많이 겪었다. 또한 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각오가 더욱 다부졌다. 고생 속 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아 열심히 살 수 있었고“나는 가난하지 않다. 건강한 육체를 부모님께서 주셨으니 내가 노력하면 된다”는 선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니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얻는 것이 많게 되었다. 그는 사무실 한 켠에 항상 마음에 품고 있는‘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자세, 선한 마음씨’를 적어서 걸어 놓고 늘 되새긴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하나님’이다. 그가 지금까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고초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덕분이었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자연보호 활동과 바른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컸다. 현재 강남중앙침례교회에 집사로 봉직하면서‘소년소녀가장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 덕분에‘해병대 전도왕’이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직선적인 성격으로 교회에서“베드로”라는 별명으로 부를 만큼 정의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결코 그의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와 강직한 품성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며 살겠다고 전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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