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전여옥

난세에 주인을 바꾸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을 바꿈으로 해서 역사적인 인물이 된 예가 삼국지에는 허다하다. 대표적으로는 가후와 순욱을 들 수가 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리사욕으로 인한 변절이기 때문에 그렇다.


언어는‘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언어 없이는 존재도 없으며, 인간은 곧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언어를 확장하고 다듬고 포장하는 것은 존재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전여옥, 그녀가 입을 열면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단어 선택의 신랄함과 기발함은 그녀의 역작‘일본은 없다’로부터 비롯됐다.

전여옥, 말을 갈아타다

‘일본은 없다.’‘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이후 그녀는 대중에게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다 난 데 없이 화려하게 나타났다. 지난 대선 때 정몽준 후보의 대변인으로 컴백한 것이다. 그때 그녀는 TV토론에 나와서 정몽준의 경력, 인물, 국제 감각들을 열거하며 정몽준이 대통령감이라고 추켜세웠다. 당시에 한나라당을 향해 그녀는‘더 말할 나위도 없이 부패한 당’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몽준의 패착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결별이었다. 이런 그녀에게 한나라당의 최병렬대표가 윙크를 보냈다. 거침없이 말을 갈아탔다. 당시 박대표는 최고위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당에 큰 시련이 닥쳐왔다. 탄핵 역풍으로 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박 대표는 당의 대표를 맡아 총선을 치러야 하는 난관을 맞게 됐다. 이 때 전여옥은 한 매체에 기고한‘포스트최병렬이 박근혜라니’란 제목의 칼럼에서“박 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라는 여성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다”며“박정희는 죽었지만‘정치적 왕조’로서 딸 박근혜를 통해 일종의‘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는 당 대표를 맡아 공천권을 관장하는 상황에서 공천심사위원회를 통해, 입당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전 의원에게 비례대표 중에서도 상위인 7번에 앉혔다. 그야말로‘원수를 사랑한’성녀역할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박대표의 방패와 창이 되었다. 짧은 정치 경력 속에서 두 번의 주인을 바꾼 끝에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것이다.

전여옥의 말, 말, 말

“노무현 대통령은 정신적 미숙아”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 (고졸 학력인 노 대통령을 겨냥하며)
“노(盧)대통령이 노(老)대통령을 입원시켰다” (국민의 정부 당시에도 도청이 있었다는 검찰 발표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하자)
“이게 사람입니까 민족의 반역자입니다“(정동영 당의장을 향해)
“한나라당의 지역정권만이 부패했다고 합니다. 날강도 같은 소립니다.” (정동영 당의장을 향해)
“겉도 빨간 속도 빨간 토마토 같은 이종석“
“날건달들이 모인게 열린우리당입니다.”
“언젠가 토론에서 나에게 깨지고 난 뒤에 보고도 그냥 가버립니다.”(유시민 장관을 향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유엔사무총장에 입후보한 반기문장관을 향해)
“615선언은 돈으로 산겁니다.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주니까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게 615선언아닙니까.”
간단히 정리해 본 전여옥의 어록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전여옥이라고 하는 그 이름이 독설과 망언의 대명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자신이 날린‘말의 비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상처와 고통으로 남을지에 대해 반성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또“말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지극히 신중해야 하고, 특히‘그 말이 대상이 되는 사람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짐승과 달리 언어를 이용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덕목”이라고 전여옥 의원을 훈계했다.“칼에 찔린 상처는 아물면 곧 잊혀지지만 말에 찔린 상처는 평생 남아서 오랫동안 치유해야 하며, 2ㆍ30대 들었던 모욕적 언사를 6ㆍ70대까지도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근혜와 전여옥

박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과 독신이라는 점,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점. 여성 최초로 당의 대표를 맡은 박 대표에게는 전 의원에게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당의 수많은 남성의원들 가운데서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정치 전반을 보더라도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인데 같은 여성으로서 박 대표에게 전 의원의 존재는 상당히 크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독설가다. 또 그런 만큼 전 의원의 발언마다 엄청난 반격이 돌아왔다. 박 대표와 전 의원의 결합은 바로 이런 점에서 상생의 결합이다. 흔히 박 대표의 정치 스타일을‘이미지 정치’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정치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마당쇠'같은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박 대표로서는 당의 대변인을 맡아 독설을 날리며 다른 당으로부터 날아오는 돌멩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전 의원이 자신의 정치 스타일에도 반드시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의원 역시 박 대표를 보좌하는 마당쇠 역할을 통해 당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힐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동질감이라는 요소와 실리적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된 유기적 관계인 것이다. 전 의원은 작년 말 대변인직을 사퇴하고 이계진 의원에게 바통을 넘겼다. 이는 한나라당이 작년 10.26 재보선에서 완승을 거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지지도 1위를 차지해 한나라당에서 박 대표의 위상이 공고해졌다는 판단에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 내에서 전 의원만큼 박 대표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전 의원과 더불어 박 대표 사람이었던 김무성 전 사무총장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재오 의원과 맞붙어 패했다. 외부적으로는 박 대표의 위상이 높아졌을지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 또한 박 대표 사람으로 분류됐던 의원들도 행정도시건설법 등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박 대표에게 등을 돌리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지지하고 나서는 등 박 대표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더구나 당 내 원희룡, 남경필, 김문수 등 소장파 의원들과의 갈등도 점차 커져가는 상황에서 박 대표는 전 의원을 오히려 더욱 가까이 둘 것이다.

한나라당 측의 한 당직자는“박 대표가 2004년 탄핵 이후 바닥으로 떨어진 당의 지지율을 2년동안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놨는데, 쉽사리 당권을 내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그것을 위해서라도 전 의원을 더욱 가까이 두려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오는 7월 한나라당은 당 대표를 새롭게 선출한다. 만약 7월에 박 대표가 당권을 다시 잡는데 성공한다면 박 대표는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박 대표는 정치무대의 뒷전에서 허성이게 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 대표는 더욱 전 의원을 절실히 찾게 될 것이다.“빨리 일어나야죠. 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떡해….”지난해 11월경 서울의 한 종합병원 입원실. 계속된 과로로 쓰러져 입원한 전 대변인을 찾은 박근혜 대표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동행했던 수행원들은 박 대표의 표정과 말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다른 사람 같으면‘빨리 일어나셔야죠. 피곤하시죠 정도로 그쳤을 것”이라는 게 한 배석자의 설명이다. 박 대표의 전의원에 대한 감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 대표는 남성 의원과 나눌 수 없는 세심한 결의 대화도 같은 여성 정치인인 전의원과 나눈다고 한다.“전 대변인이 박 대표의 측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안 것은 우연히 두 사람이 여자 화장실에 함께 가는 것을 본 뒤다. 박 대표는 화장실에서 종종 긴요한 통화를 하는 등 주요한 정치 무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
은근한 질투를 느낄 수 있는 한나라당의 한 남성 핵심 당직자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것이다.

인간 전여옥

1959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대학원에서 일본정치 전공으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KBS에 입사, 10여 년간 문화부, 사회부, 국제부, 편집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1년 방송 여기자 사상 최초의 해외 특파원이 되어 도쿄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늘 보이지 않는‘혼네(속마음)’로 움직이면서 언제나‘다테마에(겉치레)’로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의 이중성을 폭로하는‘일본은 없다’를 써내 출간 1년여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 한국 독서계를 일본 논쟁으로 달아오르게 했다. 이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쓴‘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와 왜곡된 성문화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지적하고, 성을 향한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 등의 도발적인 작품들이 있다. 한나라당의 대변인으로서 박근혜 대표를 보좌하는 측근으로서 그가 보여 줬던 일련의 행동과 그의 발언들을 보면 공인으로서의 전여옥은 매우 사려 깊고 본분을 지킬 줄 알고 또 지조있라는 평이 있다. 또한 개인을 크게 내세우지 않은 것으로 봐서 사심도 없는 것 같다. 블로그 등을 통해 본 그녀의 일상사를 보면 평범한 우리들 못지 않게 매우 따뜻하며 여성스럽다는 평도 있다. 그녀에게 가장 어려웠던 때를 묻는 질문에“대통령 대졸 발언으로 뜨거운 맛을 봤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티백(teabag)과 여자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라는 것을 봐도 그녀의 독설이 본인의 의지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사심이 없다는 것은‘사학법 투쟁’ 당시 여느 정치인들은 박대표 옆에 운집하여 카메라발을 한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카메라를 따라 우왕좌왕했지만 그녀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후문을 통해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석에서 유시민장관을 평하는데 “유시민 의원이 참 대단하다. 한나라당에는 유시민처럼 욕 먹어가면서도 순수하게 자기 몸 던져서 당과 대통령을 보호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한나라당은 대선에서도 안 질 것이다.”라는 말을 놓고 그녀를 감히 판단해 본다면 앞서 말했던 진실된 憂黨衷情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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