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 김정희

봄은 이미 이마까지 차올랐고 저마다 피워 올린 몽우리들의 향취로 그득하다. 독일문학의 영원한 연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꽃을 주는 건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자연을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연금술에 기꺼이 몸과 맘을 맡긴 플로리스트 김정희를 만났다.

말하는 꽃

짝사랑하는 남자선생님 책상에 남몰래 꽃을 두고 혼자 설레어 지켜보는 단발머리 여고생의 모습, 이미 우리에겐 친숙한 컷이다. 30여 년 전 플로리스트 김정희(49) 또한 그녀의 운명이 된 꽃과 그러한 에피소드로 만나게 된다. 이제 그녀에게 꽃은 삶 그 자체다.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꽃 이전에, 그녀를 존립시켜 주는 정체성으로서의 꽃, 삶의 보람과 긍지를 주는 원동력으로서의 꽃 말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적 또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왔을 때란다. 그녀는 꽃 작품에도 철학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철학이 담긴 꽃꽂이 작품은 그 자체로 발화자가 된다. 말하는 꽃, 그것이 바로 그녀가 추구하는 꽃꽂이 세계이다.

▲ (사)한국꽃예술작가협회 이사 김정희

대가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

현재 그녀는 30년 전통의 (사)한국꽃예술작가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동시에 개인 아트 둥지인 김정희 아트 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 내내 우리의 목과 가슴을 적셔 주었던 자스민꽃차, 그보다 짙은 그녀의 사람 향기가 지금도 여전한 체취로 묻어난다. 한국재활복지대학 생활환경 디자인과 화훼디자인 강사이기도 한 그녀는, 신체적 장애에 구애받아 결국 자신의 삶에서도 장애자로 전락하는 이들에게 꽃으로써 희망이 되고 싶단다. 특히 학생들의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참가를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그녀의 정연한 눈빛에서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진리를 꽃 속에서 찾은 그녀는 36.5도의 체온을 지닌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꿈 또한 함께 성장한다. 금년 6월에 개최되는 아시안컵 출전 자격을 딴 그녀는, 한국의 전통적 미를 선보이기 위한 작품 구상으로 분주해 보였다. 평소에 플라워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는 그녀로서도, 플라워 디자인은 하면 할수록 어렵단다. 색채의 이론과 실제 도입은, 질감과 양감의 조화까지 고려할 때 그리 쉽지 않은 문제임이 분명하다. 직접 꽃꽂이로 작품을 경험하면서 몸으로 체득하는 것만이 최선이란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평생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모른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그리고 대가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 이번 대회를 계기로 또 하나의 꿈을 꾼다는 그녀는, 그러나 진정 사심 없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그것은 대가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진정 삶을 이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인생이여 고마워라

그녀가 매일 정성스레 다루는 꽃처럼, 그녀는 마냥 함박꽃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밝고 긍정적이고 솔직하며 당당할까 싶었다. 세상의 뒤틀린 모든 어두운 것들이 그녀에게로 와서 반듯하고 빛나는 존재로 재해석되는 듯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다름 아닌, 암 선고였다. 지난 해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은 그녀는, 지금도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초기라고 해서 한 숨 돌렸으나, 실제 항암 치료 과정은 초기든 말기든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암 투병으로 힘겨운 한 해를 보냈음에도 그녀는 조금의 불평이나 원망도 없다. 외려 그녀가 던진 말은 “인생이여 고마워라”였다. 이제껏 지녀왔던 삶에 대한 자세를 좀 더 긍정적으로 재교정하는 시기였다고. 자신도 놀랄 만큼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와 더불어, 스스로의 욕심에서 가벼워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히 높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틈틈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근교의 서오능 숲을 정원 삼아 매일 같이 걷기 운동을 하는 그녀는, 그 부지런함으로 암 투병 중에도 글을 써서, 이번 4월 『성공하는 꽃집 창업하기』이라는 제목으로 크라운출판사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꽃집 창업을 위한 실전 강의 지침서로서, 실전을 기반으로 한 꽃집 유통이나 마케팅 관련 지침서가 국내 출판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운 맘에 글을 시작하게 되었단다. 특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는 책이었음 좋겠다고, 그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색채를 다루는 사람답게 평소 그림 또한 몹시 좋아한다는 그녀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더불어 그녀의 홈페이지에도 실린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작품을 가장 애틋이 여겼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열 두 살의 나이에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을 때,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준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그림과 관련하여 다음의 말을 홈페이지에 남겼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만나 면을 이뤄 입체의 공간을 창조하는 그의 작업은, 꽃의 형태를 이룩하는 나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김환기와 그녀, 언뜻 봐선 닮은꼴인지 쉽게 와 닿지 않지만, 그녀의 이런 말을 통해 그 관련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김환기의 작품에 위안을 얻었듯이, 그녀의 작품에 감동을 받는 이 또한 존재할 것이다. “나는 꽃을 팔고 돈을 받지만, 나는 감동으로 손님을 산다.”라는 말을 조금의 주저함 없이 당당히 말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것 또한 “손님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믿고 맡긴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가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그녀에게 와서 비로소 제 빛깔과 향기를 찾는다. 플로리스트 김정희, 그녀는 진정 행복한 연금술사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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