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영어 두 마리 토끼 잡고 싶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새싹이 따사한 봄 햇살에 고개를 내밀던 3월 어느 날, 봄을 시기라도 하듯이 때아닌 폭설이 전국을 강타했다. 추위와 함께 거리는 새하얀 솜사탕으로 가득했던 날 어느 카페에서 김영철을 만났다. 기자를 처음 만나 어색할 만도 한데 그는 개의치 않고 대뜸 자신이‘funny guy’라며 웃어 보였다. 분위기를 리드해야할 기자는 그의 한 마디에 모든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 그는 타고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어디를 가든 주목을 받는 아이었다고 했다.
#“go with the flow!”인생도 자연스럽게 흐름대로 살아요!
Q. 방송에 임하는 자세는.
나는 방송과 평소의 모습이 유사하다. 대중들은 개그맨들이 평소에는 웃기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제로 진지하신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실제와 유사하다. 못하는 것을 못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것. 이를 실천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가식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연습 중에 있다. 방송도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성이 없는 방송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한다.
# SBS‘찾아라 녹색황금’,‘강심장’, MBC‘맛있는 TV’, KBS‘달콤한 밤’을 비롯해‘박명수의 거성쇼’까지 김영철은 5개가 넘는 고정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서울예술전문학교 호텔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각종 강연까지 그는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Q 새삼 김영철이 이 같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Q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계기가 있나.
1년 반 동안 최유라, 조영남 선생님과 라디오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영어 특강에 가다가 조영남 선생님을 뵈었다. 당시 나는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데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웃기고 오라고 하셨다. 이 외에도 조영남 선생님은 내게는 너무 많은 깨달음을 주신다. 조영남 선생님과 함께 하는 매 순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또한 내가 이제 나이도 30대 중반이 넘지 않았나. 이러한 부분도 여유를 갖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Q.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의 강점은 영어인 것 같다. 일단 내가 증거물을 제시하지 않았나. 두 권의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제는 선배들도 나를 인정해주신다. 강호동 선배님, 이경규 선배님, 이경실 선배님 등 선배님들의 나를 인정하는 눈빛을 느끼곤 한다. 나 스스로도 영어를 하면서 자심감이 많이 생겼다. 실제로도 여러 대학이나 기업 등에서 나를 불러주시는데 대해 상당히 뿌듯하다. 이러한 자신감이 방송, 강연회에서도 엿보이지 않겠나 싶다. (웃음)
Q. 김영철을 떠올리면 우선 성대모사가 생각난다. 무엇보다 하춘화 선생님 성대모사가 압권인데. 그러한 시선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수식어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김영철’하면 하춘화 선생님 흉내 내는 개그맨을 떠올리다가 이제는‘영어 잘하는 개그맨’으로 생각해주신다. 그 점은 너무도 감사하다. 나는 성대모사 잘하는‘김영철’로 인식된다는 것도 감사하다. 고정된 시선이 내게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하춘화 선생님께서도 내 표정을 따라하시기도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원본이 복제본을 따라하는 셈 아닌가. 어쨌든, 내가 그 성대모사로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춘화 선생님은 내게는 영원한 숙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지금의 실력이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영철은 엉뚱하게도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의 휴대폰은 주인이 과연 한국인인가라는 의심을 품을 만큼 영어가 가득했다. 그의 말인즉슨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가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는 휴대폰을 통해 수시로 영어 방송을 듣고 영어 잡지를 읽는다고 했다. 그것이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비결이라는 것이다. 영어의 생활화가 곧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영어 잘하는 비결을 배우기 전에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욕심과 열정이 먼저 보였다. 그는 영어를 좋아했다. 즐기고 있었다. 그 외에 영어 잘 하는 다른 비결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Q. 유학파가 아니고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강단에 선다. 두려움은 없었나.
부담과 두려움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이제 극복했다. 나는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틀리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재미있게 강의하고 학생들의 반응 또한 좋다.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 아니겠는가. 개그맨으로서 영어 강의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이다.
Q. 방송과 영어, 김영철의 인생에 비중을 따지자면.

Q. 지난해 인터뷰에서 누차 올해 미국 유명대학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곁눈질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학은 안 가기로 한 것인가.
올해 9월 학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올해 운이 좋게도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다 포기하고 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내 프로필이 외국에서는 좋다고 한다. 코미디를 10년 했고 영어로 책을 냈다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을 길게 쉴 수 없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1년 정도 단기 코스로 유학을 갈 생각이 있다.
#“문자를 보세요.”인터뷰 중에도 그는 서슴없이 기자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여줬다. 인터뷰 내내 자신은 가식 없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만큼 그는 방송인 김영철과 한 인간으로서 김영철이 일치하고 있었다.
Q. 올해로 37살이다. 사회적 성공도 좋지만 이제 결혼도 생각할 나이다.

Q.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데, 김영철에게 정해진 틀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는 다양한 개인기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러한 나를 부러워할 수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인기가 많으면 되레 토크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나. 연기, 앨범, 코미디, 강의 등 혹자는 내게 하나만이라도 잘 하라고 한다. 물론 그 말도 맞다. 지금은 내가 어느 것을 잘 하는지 모른다. 나는 성장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Q. 김영철의 지향점은.
2003년 즈음부터 영어 공부에 도전했고 교회에도 다녔다. 그 때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교회를 다니면서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웠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다. 또 앞서 말했듯이‘영어 잘하는 웃기는 놈’으로 기억되고 싶다. NP
이민선 기자
dalpangee@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