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애매한 태도와 부패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

은퇴한 학교장을 매개로‘뒷돈’챙겨
이 같이 단독적으로 계약이 가능했던 것은 서울교육청 수학여행 지침 상 총 경비 2000만 원 이하까지는 한 업체에서만 견적을 받아도 수의(隨意)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총 경비 5000만원까지도 두 곳 이상 업체에 견적을 받기만 하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업체선정은 교장이 원하는 대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도 허용한 이유는 학교장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청 관계자는“최저가 입찰 방식 등으로 업체를 선정하게 되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업체가 들어올 수 있다”면서“학생의 안전을 고려하면 학교장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장들은 이러한 믿음을 악용하여 뒷돈을 챙겨온 것이다. 학교장들은 수학여행 업체로부터 2박 3일을 기준으로 학생 한 명당 8000~1만2000원씩 뒷돈을 받았으며 버스회사에서는 한 대당 하루 2반~3만원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에 의하면 학교장들에게 돈을 준 업자들이 다음 번 수련회, 소풍 때에도 선정되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심지어 행사가 취소되면 그 돈을 돌려주기까지 하는‘수수료’개념으로 뒷돈을 주고받았다. 학교장과 업체들은 은퇴한 전직 학교장을 매개로 하여 접촉했으며 은퇴한 학교장이 아예 업체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이러한 학교장의 부정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에는 부적합한 칠판을 사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현직 교장 13명이 적발됐으며 그해 8월, 운동기구를 납품하게 해 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초등학교장이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금품향응이 가능한 것은 학교운영과 관련하여 교장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교장이 학교와 관련한 거의 모든 재정권한을 갖고 있으며 근무평정 등 교사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마저 손에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3~5년을 주기로 실시되는 교육청 종합감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상부기관의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아 학교장을 견제할 수 있는 감시기관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학교장의 절대적 권력은 약해지기는커녕 강화되는 추세다. 교육당국은 최근‘학교장 책임경영’개념을 일선 학교에 도입하면서 학교장의 교사 초빙권, 전보유예 요청권 등 인사권한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어 그들이 마음껏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교사촌지는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사회의 반영
‘기프트콘 촌지’ 촌지도 첨단화
학교장의 비리도 문제지만 학생을 직접 담당하는 일반교사의 촌지 챙기기는 더욱 심각하다. 본디 촌지(寸志)의 참뜻은 촌심(寸心) 즉,‘속으로 품은 조그만 마음’으로‘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고마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우리 교육계는 이런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부모가 교사에게 자신의 학생을 다른 학생들보다 특별히 더 예뻐해 주고 잘 봐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에서 건네주는 일종의 뇌물로 변질됐다. 이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간의 불신이 자연히 커졌으며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의 교육적 가치관을 혼돈케 만들었다. 정부와 교육계는 이러한 음성적 촌지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해 왔으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지적만 받아왔다. 방지대책이 임시방편에 그친 것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제도의 부실과 지나친 교육열,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사회에서 기인한다. 오히려 금지하고 계도할수록 촌지문화는 교육계와 밀착되었으며 이제는 근절시킬 방법조차 없어져 버린듯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촌지의 액수도 커졌고 수법도 다양해졌다. 스승의 날이나 소풍날, 교사의 생일, 명절, 기타 기념일 등을 빙자하여 학부모들은 담임교사나 학과 담당교사에게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 통상 의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안도하게 되는 씁쓸한 세상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교사의 책상서랍에 봉투를 몰래 넣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최근에는 학생회간부 자리를 놓고 몇 백이 훌쩍 넘는 거액이 건네진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는 한 병에 수십만 원이 넘는 발렌타인 30년이나 로얄 살루트와 같은 고급양주를 선물로 건네기도 한다. 더욱이 조그마한 성의를 넘어선 금품향응을 받고도 동료교사들에게 은근히 자랑하면서 뽐내는 자격미달의 교사도 허다하다. 특히 상류층 학부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부 교사는 향응과 금전적 도움을 받으면서 해당학생에게 온갖 편의와 부정행위를 제공한다. 일부 여성학부모는 교사들에게 회식을 제공한 뒤에 뒤풀이를 하자며 노래방은 물론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 심지어는 학부모와 교사 간의 넘지 말아야 할선까지 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선물과 이모티콘의 합친 말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온라인 쿠폰인‘기프트콘’을 이용한 촌지도 성행하고 있다. 일부 강남권 학부모들은 기프트 콘을 이용해 새로운 촌지문화를 선도하고 있었다. 강남 지역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추석선물이라며 휴대전화로 기프트 콘을 보냈다. 이는 선불카드 20만 원권으로 선물이라고 보기에는 액수가 많았다. 물론 일부 학부모에 한한 것이지만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전파된 사례는 수없이 많이 있어왔다.“이렇게 보내봤더니 편하더라”,“얼굴 붉힐 일 없어 좋더라”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유행처럼 번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특히 현금이나 물품이 아닌 기프트 콘으로 받은 촌지는 돌려줄 방법도 모호하여 더욱 곤란하다. 이러한 부정부패가 워낙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교사집단에서는 공연한 비밀로 은폐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벌주의와 천민자본주의의 야합

“금품향응, 촌지 엄연한 불법, 형사처리 될 수 있어야”
촌지파파라치, 일시적인 처벌 효과 없다
2007년 10월 촌지문화를 없애기 위해 촌지를 줄 경우,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도록 한 바 있다. 또한 촌지를 제공한 학부모의 자녀는 학교의 각종 포상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토록 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그동안 학부모가 교사에게 촌지를 줬다가 적발되면 교사를 징계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는 해당 학생에게도 학교 내, 외부 포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불이익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학부모회 등의 단체가 학교지원 명목으로 찬조금품을 모금하는 일도 금지대상이다. 학부모회 등이 불법 찬조금으로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거나 학교행사를 지원하면 금품향응 수수 행위에 준해서 관련자들이 처벌받게 된다. 또 급식재료와 학교비품, 공사수주와 관련된 업체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교직원은 엄중 징계되고 금품을 준 업체는 향후 계약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과 동시에 검찰에 고발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시되고 있음에도 올해 건국이래 최대 교육비리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는 지금까지의 정책이 전혀 촌지, 금품향응 근절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더불어 지난 해 7월부터 서울지역 교사의 촌지수수나 비리를 신고하면 최고 3천만 원의 보상금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어 왔다. 교육계의 촌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극약처방인 셈이다. 또한 금품, 향응 수수는 해당액의 10배 이내, 직무와 관련한 부당이득은 추징액의 20%이내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비리에 대한 신고는 서면과 전화, 팩스, 우편과 함께 시교육청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며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이 거셌다. 또한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는 서울교육청이 충분한 여론수렴도 없이 조례를 만들었다며 반발했다. 당시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촌지를 근절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나, 이와 같은 방식은 교사들의 사기저하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들의 반응은 그들의 처지를 궁색하게만 한다. 거리낄 것이 없다면 신고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도 반겼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의 불신, 사기저하 등의 궁색한 변명을 내세워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태도는 공교육의 불신은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한편 이러한 촌지 파파라치 제도가 교육의 부조리를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은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제기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의 촌지수수나 일반 교육공무원의 비리를 신고하면 최고 3000만원까지 보상하는 조례안을 보면 비리 감시망을 넓혀 교육계 내부 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신고하면 보상금을 주기로 한 것이 특이사항이다. 즉, 사회 여러 분야의 파파라치 제도를 교육계에 도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교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누구나 수긍하지만 신고보상금제로 과연 뒷돈거래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한 교육계의 반발 등 적지 않은 파장도 문제가 된다. 그동안 촌지와 학교급식 등을 둘러싼 납품 비리는 교육계의 해묵은 병폐로 특효약이 없었다. 촌지관련 각종 신고센터운영과 학부모는 물론 학생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등 처벌을 강화해도 그때뿐이다.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이 교사를 방문할 때 어떤 선물을 가져갈지 고민하고 스승의 날이면 촌지걱정에 학교 문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면 표면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더욱 은밀하게 촌지가 오고가는 것이 그 결과였다. 교원단체에서“교사들의 자정능력을 믿어 달라”는 말도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교사들마다 태도가 제각각이어서 촌지사양 공문을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애매한 태도를 보여 학부모에게 기념일마다‘얼마를 넣어야 적정선인지, 금액이 적어 망신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아무것도 주지 않고 학기말에 책 한권 선물하는 것이 나은지’하는 고민을 갖게 한다. 교육계가 정말 외부로부터의 개입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최소한 촌지사양 공문 정도는 책임지고 모두 학부모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직사회의 부패불감증이 근본적인 원인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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