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고의 중화요리 전문점 하림각. 이곳은 국내외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오랜 전통의 고급 음식점일 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창업주이자 경영자는 바로‘남상해 회장’. 남 회장은 모진 가난을 딛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자장면 성공학’을 뭇 대중들에게 전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젊은이들에게‘꿈과 희망을 놓지 않는 한 누구나 위대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남 회장을 찾아가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김기영 부장 yamashiota@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남상해 회장
대한민국 최고의 중화요리 전문점인 하림각을 창업한 남상해 회장은 1938년 경남의령 남씨 삼성(三成)씨의 11남매 중 4남으로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에서 출생해 부친께서 일본에서 교편을 잡는 관계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홋카이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45년 8세에 해방이 되자 기대를 안고 돌아온 그를 한국 땅에서 맞이한 것은 가난과 절망뿐이었다. 그리고 여덟 형제 중 세 명의 형제가 굶어죽었다. 그때 그는 서울행을 결심한다. 그의 나이 열 살에 한글도 깨치지 못한 채 서울역 노숙자,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거쳐 중국집 주방보조까지 갖은 험한 일을 겪은 후 비로소 그는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고생 끝에 그는 우연히 중국집‘뽀이’로 일하게 된 일을 계기로 마침내 20대 후반에는 국제관광공사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한다. 워커힐 호텔 조리부장이 되어 그의 하림각에 대한 도전과 의지는 계속된다. 하지만 그는 국제관광공사에 정착한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단지 외식업에 진출하기 전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30살이 되던 1967년 국제관광공사를 퇴사하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을지로 명보극장 옆에 10평 규모의 중국 음식점‘동승루’를 개업하게 된다. 이후 동승루로 시작한 남 회장의 성공은 신해루, 열빈, 다리원 등 지금의 대한민국 최고의 중화요리 전문점 하림각까지 40여 년간 국내 최고의 중화요리 전문점을 이끌어 왔다. 하림각은 남 회장이 50세가 되던 1987년 3월 설립해 1993년에는 (주)하림각 법인이 되었다. 같은 해 남 회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고, 더불어 예식사업에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2001년 남 회장이 64세가 되던 해 그는 한국 최대 규모의 중국집 하림각 회장이 되었다. 끼니를 잇기 위해 온갖 일을 해왔던 10살 꼬마는 이제 세계 최고의 중국집 회장으로 우뚝 섰다.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전진했던 남 회장의 인내와 끈기, 열정이 지금의 남 회장을 만든 것이다. 남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가난으로 꿈을 잃은 많은 이들과 더불어 뭇 대중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서울 종로 부암동에 위치한 하림각은 본관, 신관, 맥반석 사우나 등 5개동이 9,200평 대지에 들어서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중국집으로 23년 전통의‘프리미어 중국 음식점’으로서 국내 굴지의 음식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목적이고 종합적인 컨벤션 센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이 같은 성공의 비결을 물으니 남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나의 경영 요체는‘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에 있다”고 말을 꺼냈다. 또 그는“‘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영어로 바꾸면‘SWOT’이 되는데(Strength, weakness, opportunities. threats)로 축약된다. 이는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을 뜻하는 영어의 머리글자를 합친 어원으로, 경영의 주체는‘나’라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해 결국 본인의 분석과 그에 대한 결과의 평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신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얻어내는 부분은‘세상 사람이 원하는 부분’에 대한 세상의 목소리에 솔직히 답하고 이에 대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영의 요체라는 것”이 남 회장의 설명이다. 더불어 남 회장이 언급하는 경영은‘성과를 내는 조직 만들기’이며, 조직인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한 몸처럼 합쳐지기도 하거니와 제각각 흩어지기도 하는데, 서로 불신하고 서로 협동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경영자가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성과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경영자부터 솔선수범해서 서로에게‘믿음’‘소망’과‘사랑’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기업의 수익인 매출과‘인간 경영학’의 요체가 되는 경영현실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경영자라면 꼭 알아야 할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둘째는 조직 구성원들이 맡은 바 소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셋째는 세상이 원하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즉 경영자는 항상‘관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면서 그는‘경영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내가 현장에서 체득한 경영비법은‘경영자는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는 경영자는 사막 한가운데 서있는 것과 같이 갑작스럽게 어느 지점에서 길을 잃고 물 한 모금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 밑에서 나 홀로 모래 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때문에 경영자는 늘 생각하고 관리하고 변화하는 경영을 염두에 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막을 건너기는커녕 오아시스를 발견하기도 전에 모래 폭풍 속에서 운명을 다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수없이 많은 봉사와 배움에 대한 열정
남 회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화요리 전문점 하림각의 수장만으로 충분히 그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간 그가 맡은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동안 남 회장이 맡아 온 각종 단체는 요식업협회를 비롯한 전문 직종 단체와 태권도 생활체육 등 체육관련 단체, 그리고 새마을운동, 재향군인회, 민족통일회 등 수많은 사회단체와 해외교류협회, 예술인모임, 검찰ㆍ경찰 선도회, 노인회, 대학동창회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수많은 단체를 이끌며 활성화와 발전에 견인차 역할로 더욱 유명한 인사다. 매스컴에서도 그는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성공신화가 전해졌다. 한국경제신문, 월간조선, 정경뉴스, 강원일보, 월간중앙, 시사저널, 문화일보 등에서 그의 기적 같은 성공 스토리를 전했고 방송에서 역시 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MBC‘뉴스데스크’, MBC‘성공시대’, 다솜방송, KBS‘아침마당’, CBS 기독교방송 등 숱한 방송사에서 그의 성공 신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었다. 이렇게 그의 성공의 비결에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데에는 남 회장의 열정과 노력이 만인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터득하려는 자세가 그의 열정과 더불어 남 회장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줬다. 실제로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행정경영대학원,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행정대학원, 연세대학교 언론 홍보 대학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경기대학교 보건대학원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또 아직도 늘 공부 중인 회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그가 국내 최고의‘하림각’의 회장으로서 경영 노하우와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 회장은“경영인 인간 경영에서부터 출발하며, 이는 가슴 속의 경험과 그에 대한 동기 부여가 중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현대문명의 이기 속에서 개성적이고 특수한 상황과 환경을 그대로 즐기고 있다”며“하지만 진정한 생활의 여유를 가지고 자기 삶에 대한 만족과 결과론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데는 상당히 나약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는 즉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과 이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남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경영자로서의 삶은‘해볼 만한 일’이며 오아시스를 만날 때까지는 경영에 죽기 살기로 매진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1938년에 태어나 올해로 73세가 된 남 회장은 아직도 꿈꾸고 있다. 가난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그때처럼‘꿈을 잃지 않으면 언젠간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지를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