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당(栢堂) 김기진 시인의 시는 말 그대로 잣나무의 집에서 풍기는 싱싱함과 너그러움을 담고 있다. 미사여구도, 복잡한 기교도 부리지 않지만 인생을 대하는 정직하고 순수한 자세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공명을 일으킨다. 천 년에 한 번 운다는 금조처럼 생을 정리할 때 쯤 한 권으로 시를 정리하려 했으나‘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시가 마냥 안타깝다’는 주위의 조언을 받아 시의 집을 만들어 주었다는 김기진 시인. 그를 인사동‘여유당’에서 만났다.
Q. 현재 활동하고 계신‘메트로 시낭송회’에 대해 말씀해 달라.
매월‘시가 흐르는 서울’이라는 주제로 종각역에서 시 낭송회를 열고 있다. 기존의 시 낭송회는 대부분 시인들끼리 모이는 폐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형화된 장소에서 시인끼리 소통하는 것만이 과연 시 낭송회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일반 대중들과 시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한 시 낭송회가 어느 덧 7회째가 되었다. 1부는 전문 낭송가, 2부는 자작시를 읊는 것으로 마지막 3부는 참석한 사람 또는 지나가는 시민들 중 신청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발굴된 사람들도 제법 있다. 또한 저희 시 낭송회를 보시고 찾아오셔서‘시를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겠는가’하고 물어 오시는 분들도 많다. 시를 아주 잘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시는 평생에 한 편 쓸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윤동주, 황금찬 시인처럼 유명한 시인들의 시도 사람들이 줄줄 외울 정도로 사랑받고, 아주 좋다고 평가받는 시는 다섯 개 이내이다. 때문에 그러한 시를 목표로 하진 말자는 것이 내 주의이다. 나 자신을‘생활시인’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시상을 일상생활에서 얻기 때문이다. 지난 83년 8월 3일에 친척 댁에 간 일이 있다. 친척들은 다 놀러 나가고 97세의 할머니만 혼자 계셨다. 손자들을 다 기억 못하실 만도 한데“기진이 왔냐”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절을 하고 용돈을 3만원 쥐어 드렸더니“아니, 왜 이렇게 많이 주나”하시며 고쟁이 바지에 꼬깃꼬깃 넣으셨다. 간다고 인사드렸더니“가냐”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더라.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때의 일을 시로 쓴 것이‘오전 아즈매’이다.
간다 하니 아즈매가 우신다 가라 가라 하시며 아즈매가 우신다
생전에 다시 못 볼 것 같아 저러신다 싶어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조금 드린 용돈 웬걸 이리 많이 하시며 꼬깃꼬깃 고쟁이 춤에 넣으시는 양이
당신의 노잣돈 챙기시는 것 같아 안쓰럽다
97세 고갯길이 힘드신가보다 숨 쉬는 소리가 아야 아야 하신다
또 뵙겠다는 인사가 왠지 내가 미덥지않다 글을 쓰며 눈물이 쏟아진다
저의 시는 모두 이런 식이다. 요새 저에게 시를 너무 짧게 쓴다는 사람도 있지만 길고 짧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어떤 날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는데‘보고싶다’는 글밖에 쓸 수가 없었다.(웃음)
Q. 메트로 시낭송회 초대회장이시다. 이후에 다른 활동을 할 계획이 있는가.
현재 진행 중인 메트로 시낭송회에 한국 문인협회의 명예회장 성기조 선생님이 와주셨다. 저와 안면이 있는 황금찬, 도종환시인 등 내년부터는 대중을 위해 유명 시인들을 초대할 생각이다. 또한 세계의 모든 지하철 플랫폼에서 시낭송회를 열고 싶다. 우선은 일본 문인들을 초대하여 시로써 교류하고 싶다. 그들에게 숙박비 등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재워주고 밥을 먹여주고, 또 반대로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되어 갔을 때에도 그들의 일상 속에 함께 녹아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교류를 하고 싶은 것이다.
Q. 언제부터 시를 쓰셨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썼다.‘그림 그리기’라는 시는 최초로 쓴 시이자, 등단 시이다. 사실 등단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耳順)의 나이가 가까워 오면서 등단하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시를 쓰다보면 내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가 다르다. 예를 들면 시집의 맨 첫 장에 있는‘일출처럼 노을처럼’이 그것이다. 사실 나는 잘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독자 분들이 굉장히 사랑해주셔서 가장 처음에 실었다. 일출과 일몰은 눈으로 구별하기가 어렵다. 일출은 세상에 태어난 아기와 똑같다. 아기만큼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 죽을 때도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을 감자는 생각에서 쓴 시이다.
일출처럼 노을처럼
아침 해 빛내며 하늘 오를 때 눈부시도록 찬란히 아름다운 것은 오늘 하루 희망 때문이고
저녁 하늘 노란 황금빛 환희롭게 노을 져 물들이는 것은 오늘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요
내 세상 빛 처음 만날 때 온 세상 축복 가없이 받았던 것은 눈 초롱 맑은 희망 때문이고
이 세상 알뜰히 살고서 눈짓으로 고별할 때 눈물지으며 손 잡아줄 한 사람 있는 내 생에도 노을져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Q. 시인으로서 시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아리스토텔레스도 시론을 많이 썼다. 하지만 시가 이렇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그래서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생각으로는‘시를 쓰는 사람들은 선(善)의 지향’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잘 하겠다는 식의 시를 쓴다. 나쁘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선(善)을 지향하고 희망을 갖고 자신을 향해 다짐을 하고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시인들이 많기를 바란다. 시인들의 사회에서는 시인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인의 자격도 없는 아무나, 누구 나를 등단시키는 것은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시인의 대접을 받으려면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고 노력하면 분명 발전하게 된다. 그런 경우를 실제로 많이 보았다. 시는 너무나 방대하고 깊기 때문에 어떤 한 사람이 시가 어떻다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며 시를 어떻게 써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말 한 것도 내 개인의 생각일 뿐이지 정답을 말 할 수는 없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은?
황금찬 선생님을 몹시 존경한다. 작년에 만나서 댁까지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아니야, 저기 가면 버스있어”하시며 홀로 가셨다. 보내놓고 나니 후회막급이었다. 버스에 함께 올라타 마중을 했어야 했다. 한편 그 분은 음식점에서도 식사를 마치시면 그릇을 다 정리하시고 사용하신 휴지도 가지런히 모아 치우시는 분이 손쉽게 치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이시다. 황금찬 선생님을 보면서“그래, 바로 저런 모습이 시인의 모습이 아니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시인도 사람이다 보니 항상 아름다운 내면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항상 선(善)을 지향해야 한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