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손학규 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출하고 출항했다. 손 대표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대권구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내년부터 본격화할 대권 경쟁에도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당장 민주당을 상대해야 하는 한나라당의 속내는 결코 편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여 십 수년간 한나라당에 몸담아 누구보다 당내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 적장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긴장감 감도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당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10월 3일 당원, 대의원이 모인 가운데 손학규 전 대표를 신임 당대표로 선출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향후 기존 정세균 대표 체제에서 굳혀졌던 지형에 손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로 급속히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두고 자웅을 다툴 한나라당과의 관계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한나라당에 긴장이 흐른다”는 말로 정황을 대신했다. 이유는 그가 한나라당 출신으로 적진의 내부를 소상이 알고 있다는 것. 한편, 민주당이 손학규 체제로 변화를 맞이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당내 세력 균형이다. 이는 기존 정세균 전 대표 체제가 약 2년여 순항하면서 굳혀진 기존 주류와 비주류의 입장이 크게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세균 전 대표 체제 당시, 당내 지도부와 당직을 장악했던 온건 소장파들의 2선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지난 정부 정국을 주도했던 486세력이 주축을 이뤄 활동해 왔는데 윤호중 전 의원을 비롯해, 지난 전대에도 출마했던 최재성 의원, 그리고 전병헌, 노영민 의원 등이 속한다. 정세균 체제의 몰락에 따라 세력의 중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또 있다. 지난해 서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친노 그룹’이 그들이다. 정세균 체제에서 친노인사들은 대선 패배 등의 악재를 딛고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며 존립에는 성공해 왔다. 그러나, 손학규 체제에서 이들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손 대표와 친노 간엔 지난 정부의 실정을 둔 책임론으로 앙금이 여전하다. 전대 직전 486 단일화에 앞장선 백원우 의원을 포함해,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강원지사가 각각 속한다. 당내 세력 변화에 이어 정치권 지형변화도 예측된다. 특히 기존 대권을 두고 각축을 벌여온 대선 구도에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손학규 체제 출범에 따라 긴장감이 도는 곳은 비단 당내만은 아니다. 오랜 칩거에 이어 단숨에 제1야당의 당권을 거머쥔 만큼, 향후 정국 주도권을 두고 다투게 될 한나라당의 촉각도 예민하다. 특히 손 대표의 등장이 대권 가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권 수위를 달려온 친박 측의 경계심도 예사롭지 않다.
손학규 지지율 상승세
▲ 민심 대장정을 돌며‘야성’이미지를 심은 손학규는 이제 진보와 중도를 아우르는 전략을 고민 중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당 대표 취임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당대회 이전에는 3~7% 수준이었던 손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달 18일 14.4%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30.9%)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는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 후인 지난달 5일 조사에서의 지지율 11.8%보다 2.6%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같은 날 <내일신문>에 따르면, 차기 대권 적임자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1위, 손 대표가 2위를 차지했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16.5%포인트로 여전히 작지 않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전과 비교하면 야권의 후보가 박 전 대표를 많이 쫓아간 셈이다. 지난 9월 이 신문이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1.3%,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9.0%, 한명숙 전 총리가 7.8%, 손 대표가 7.3%,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6.3%였다. 당시 박 전 대표와 유시민 원장의 지지율 격차는 22.3%포인트였다. 전당대회 한 달 전에 실시한 <프레시안>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의 지지율은 3.6%로 전체의 6위였던 것을 감안하면 급격한 상승이다. 야권의 대권 후보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서도 손 대표는 자리 굳히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내일신문> 조사 결과, 손 대표는 야권의 대권 후보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 35.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손 대표의 선출 이전까지 줄곧 야권의 대권 후보 1위 자리를 지켜왔던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17.5%로 2위에 머물렀다. 손학규 대표가 33.3%, 유시민 원장이 12.8%로 나타났던 지난달 5일 동서리서치 조사보다도 손 대표의 지지율은 다소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나라당에서는 손 대표를 향한‘견제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손 대표가 지난달 17일 경기도 남양주시 팔당 유기농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4대강 사업은 누가 보더라도 위장된 운하사업으로,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서 비롯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손학규 대표는 합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4대강사업을 위장된 운하사업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구태정치의 모습이라 실망스럽다”고 비판의 뚜껑을 열었다. 안 대표는 또“구시대적 억지, 정치공세는 포기하시기 바란다”며“만약 그렇지 않고 이런 공세를 계속하면 손 대표와 민주당은 결국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듯‘청계천에 놀란 가슴, 4대강에 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이어 받은 김무성 원내대표는“과거 14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손 대표가 한나라당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다소 강경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했지만 도가 지나친 것 같다”며“국민을 속이고 사안을 왜곡하는 발언은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여야 정치가 싸우지 않는 정치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제1야당의지도자는 자중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최고위원은“요즈음 손학규 대표가‘오바’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며“손 대표가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민주당의 대표가 되더니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멍에를 벗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본다”고 김 원내대표에 이어 손 대표가 한나라당 출신임을 공격 소재로 삼았다. 홍 최고위원은“지금 국민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손학규 대표에게 바라는 것은 정세균 대표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라며“국민을 보고 국가 지도자로 거듭나라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손학규-김문수의‘골프장 공방전’
▲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유기농단지에서 4대강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또 웃지못할 골프장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번 논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여야 잠룡간의 신경전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의 진원지는 지난달 13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김지사 취임 이후 골프장이 너무 늘었다’는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김 지사가“손 대표가 지사 시절 인허가를 했고 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도장만 찍었다”고 답한 게 발단이 됐다. 김 지사는 또“노무현 대통령이 관광산업을 촉진하고 활성화하면서 늘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경기도에 골프장이 난립하게 된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손 대표와 고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이“손학규 전 지사 재임 시 9개의 골프장을 인허가 했고, 김문수 지사가 취임한 2006년 7월 1일 현재까지 38개의 골프장을 인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 지사의 해명을 촉구하고 나서자 김 지사는 지난달 14일“내가 지사 재임 시 골프장 38개를 승인했는데, 이 중 25개가 손 전 지사가 계실 때 입안했던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어쨌든, 김 지사의 발언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설사, 그의 발언이 사실일지라도 최종 허가권을 행사해 놓고도 손 대표 측에 책임을 돌리는 데에 급급했던 것은 실망감을 더해줬다. 어쨌든, 세력이 막강해진 손 대표를 두고 한나라당은 연일 손학규 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손 대표가 전면에 내세운 기치인‘민심잡기’의 영향이 톡톡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손 대표는 지난달 17일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영화‘방가?방가!’를 관람했다. 지난달 14일엔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기로 확정된 아파트 상가에 방문했다. 또 12일에는 쌀값 폭락사태와 관련 경기도 평택에서 직접 벼를 베며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지난 5일에는 강원도 평창의 고랭지 배추밭에 갔다. 이처럼 서민의 삶 속에 파고드는 손 대표의 행보는‘국민생활 우선 정치’‘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면서 확실하게 서민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셈법의 일환이다. 아울러 이 같은 행보는 손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의지로 풀이된다. 또 한 전당대회 이후 발생한 당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당 대표가 꼭 필요한 일정은 제외하고 국회 밖 활동을 함으로써 껄끄러운 의원들과의 접촉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민생 행보는 대선 1년 전에 대표를 사퇴해야 한다는 핸디캡을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 대표가 대통령 후보직을 얻기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는 쌓여있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 출신인 만큼‘민주당 적자’라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때 정동영, 정세균 후보와 근소한 표차이로 대표에 당선된 점도 손 대표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손학규 불가론’이 고개를 들면 대권시동은 그대로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손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낙점이 될지 말지는 비주류를 포괄하는 당내 화합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