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심우영 원장

21세기는 부연의 여지없이 문화의 시대다. 문화의 강세가 세계적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류라는 문화의 흐름 덕에 국외 인지도가 월등히 높아진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뿌리 없는 문화는 그 주어진 자리를 공고히 다질 수 없다. 문화에도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고, 그 중심축에는 다름 아닌 우리의 특징적 전통문화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심우영(沈宇泳, 66세) 원장을 만나보았다.

성리학의 꽃, 한국국학진흥원이 이어가다

▲ 심우영 원장
성리학의 본산지는 중국이나 그 숭고한 꽃은 한국 안동 땅에서 피어났다. 일본과 중국의 성리학 후학들이 안동을 되짚어 찾아 올만큼, 안동은 이미 성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이는 한국 성리학의 최고 학자인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 등 영남 사림의 본산답게 수많은 명헌거유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 지역의 서원은 남한 전체 서원 수의 약 32%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유교적인 종법제도의 상징인 종가나 재사 등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그야말로 종가 하나 끼고 돌아가지 않는 골이 없고 서원 하나 안고 흐르지 않는 내가 없을 정도이다. 심우영 원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하 국학원)은 안동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20여㎞되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는 퇴계가 만년에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국학원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약 5년 동안 모두 18만 2천여 점에 이르는 한국학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지정학적인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국학원은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학 자료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설립취지를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에 둥지를 틀고 있다. 국학진흥 사업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는데, 자료수집 · 연구 · 전시 · 교육이 그것이다. 자료수집은 민가소유의 기록유산인 문집 · 문서 · 목판 등을 수집하여, 완벽한 항온 · 항습 그리고 보안시설이 철저한 수장고에 정리하여 보관하는 것이다. 연구사업은 이렇게 수집 · 정리된 자료를 기반으로 종합적인 연구 활동을 통해 학계에 알리고,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시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학 자료 가운데 특히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문화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촉발된 국학원 건립운동은, 1996년 12월 문화관광부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음으로써 본격화되었다. 이후 5년여의 공사 끝에 2001년 4월 본관인 ‘홍익의 집’을 완공하였고, 같은 해 퇴계 이황(1501-1570)의 탄신 500주년을 기념해 안동시에서 열린 세계유교문화축제에 맞춰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구를 위한 연구는 버려라

심우영 원장은 제 10회 행정고등고시 출신으로 제 14대 총무처 차관, 경상북도지사,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등을 거쳐 제 32대 총무처 장관을 지냈다. 그는 총무처 장관을 그만 둔 뒤 행정학 박사 소지자로서 세명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석학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행정학 분야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국학원 원장직을 수행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내재해 있다. 안동이 본향인 그는 청와대 행정수석 당시, 이제 막 기초를 확립하는 단계에 있던 한국국학진흥원의 원장직을 제의받게 된다.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그의 행정관리차원의 능력을 높이 샀던 것이다. 이로써 그는 국학원의 원장으로 2001년 개원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대에 국학이 재조명 될 만한 정체성과 당위성에 대해 그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활용할 수 있는 연구로서의 국학”을 강조했다. 정신문화 중에서도 특히 유교문화의 장점을 현대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해석 하는 작업, 즉 온고지신의 자세가 국학을 연구하는 그의 기본 마음가짐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국내·외 학술대회를 주최하고 있고, 국내 120명의 관련 학자들을 동원하여 유학사상대계전집을 2010년까지 1년에 2권씩 출간하는 작업 또한 진행 중이다. 역시 행정학을 전공하고 국학을 체득한 사람답게 실학자적 신념이 굳건해 보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록을 앞두고

▲ 한국국학진흥원 본관
특히 그는 현재 5만 장을 육박해 성공적으로 진행 중인 목판 10만 장 모으기 목표가 달성되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계획이다. 목판은 지식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에서 지적활동의 최종적 결집체이면서, 확산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자료이다. 더욱이 민간에서 제작된 목판은 한국선비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방치되어 왔음에 유의하여 국내에서 유일하게 민간 소장 유교목판을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만큼 진행되기 까지는 그의 숨은 노력이 빛을 발했다. 그가 지금껏 원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풀기 어려웠던 과제 또한 고서 · 고문서 · 목판 등의 기록자료 보존 문제였다. 민가의 기록유산은 해당 민가에선 제대로 보존되기 어려운 상태이기에 국가적 시스템으로 관리하려 해도, 선조의 유산을 선뜻 기증하는 이들은 드물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나온 대책이 바로 위탁보관방법이었다. 기탁 의사를 밝힌 문중에 대해서는 인수 전용 차량을 동원하여 안전하게 국학자료를 인수하고, 기탁자에게는 국학자료보관증서 및 보관자료 목록을 교부한다. 이러한 위탁관리 제도는 소유권은 원소장자에게 그대로 인정해 주고 보관과 관리만 무료로 대행해 주는 가장 합리적인 자료수집 방식인 것이다. 그는 목판자료만 보더라도 아직 20~30만장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민간소장 기록유산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것은 단순히 해당 민가의 것만이 아닌, 이미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국학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대중 속으로 뛰어든 국학

국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단 나아진 형편이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겐 여전히 국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자연히 한국국학진흥원에 대한 인지도도 아직은 그리 높지 않다. 표기 그대로 한국 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학원은 대중과 더불어 가는 길을 필연적으로 택했다.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장판각과 국학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본관으로서의 홍익의 집 이외에도, 금년 6월에 유교박물관과 10월에 생활관이 잇달아 개관한다. 유교박물관은 연면적 4,414㎡의 4층 건물로서, 영남학파의 본산이라는 국학원의 지정학적 특징을 고려하여 한국의 유교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설계되었다. 총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생활관의 경우 연면적 7,160㎡의 지상 4층 건물로서, 연구목적으로 국학원 체류를 희망하는 외부 연구자들과 국학원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교육생 그리고 전통문화의 현장을 체험하려는 이들에게 숙박의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이로써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간 국학원은 이와 관련한 연수프로그램창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이외에도, 국학교육총서 발간 및 디지털국학실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를 홈페이지에 마련해 놓았다.

국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절실

그는 지금껏 한 일 못지않게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한편, 사명감으로 의지를 다졌다. 특히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정부의 관심 부족과 이에 따른 정책적 지원의 미흡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유일본 복사 작업과 국역 시스템 정비는 국학원의 당면 과제임에도, 예산부족으로 자료 수집에만 급급한 형편이라고 언급했다. 힘들게 모은 자료들이 제 값어치를 해내려면 자료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 실정에 비춰볼 수 있게끔 자료를 재해석 하는 과정이 핵심적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도움을 주는 기관들과 더불어 간다면 그리 먼 길만은 아닐 것임을 그 또한 믿는다. 국학원이 아니라면 그대로 방치되었을 민간소장 기록유산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의미 있는 작업에 일조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보람이 된다는 심우영 원장. 문답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던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행방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꿈꾸는 세계유교문화 허브센터로서의 한국국학진흥원의 내일을, 우리 또한 오늘로 맞이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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