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열차의 3등칸은 영혼의 1등석

아프리카에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나는 늘 기차를 이용한다. 특히 가능하면 오랜 시간을 천천히 달리는(그 옛날 우리의 비둘기호같은...) 기차를 좋아한다. 운송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되어 버린 지금 문명에 역행 하는 듯 하지만 열차 바퀴의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여행의 낭만을 더 해주는 것 같아 좋다. 아프리카에서 3등석 열차를 타면 나는 그곳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차내를 마음대로 다니고 아무데서나 식사하는 그 자유로움이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좋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들의 자유로움과 상반된 자유가 일으키는 작은 소동이 좋다. 아프리카의 3등석 열차는 기차 밖에서 누렸던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 또는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동등해 진다. 그곳에선 다른 어떤 나라, 장소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왜 굳이 3등석만 고집하십니까?’
‘4등석이 없어서요.’
슈바이처, 그는 아프리카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갈 땐 언제나 3등석 기차를 탔다. 아프리카 가봉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일생을 소외받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한 슈바이처 박사.  영혼이 1등인 사람만 탈 수 있는 3등석!
그의 3등석에는 평소 말동무가 되는 친구들과 그가 지쳤을 때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백인이 아닌 흑인 친구들, 외양은 검지만 영혼은 맑디 맑은 그의 흑인 친구들!

3등칸은 인생과 축생이 공존하는 곳

많은 아프리카의 열차도 이제는 현대식으로 변하고 있지만 화장실엔 달랑 구멍하나만 뚫려있는 그런 기차가 아직은 대부분이다. 3등석은 언제나 시끌벅적 하다. 앞사람의 호흡소리도 들리고 옆 사람의 미끈거리는 팔꿈치와 허벅지는 이미 남의 살이라는 느낌마저 없는 곳, 눈을 감으면 옛날 수인선 협궤열차의 정경이 오버랩된다. 수인선 보따리 아주머니들의 대화내용이 들린다. 우리 아들 녀석이 성적을 잘 받았다거나 뉘 집 딸이 결혼을 했는데 혼수가 그게 뭐냐는 둥 또는 누구네 할머니가 엊저녁에 돌아가셨다는 등등의 얘기인 것 같다.  
닭이나 오리, 염소 등을 목줄만 감고는 방치해 버려서 안 그래도 좁은 열차 안이 가축우리인지 객차인지의 구분이 안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를 탓하는 현지인은 없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나를 오히려 외계인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게다가 그가축들은 3등칸 화장실의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을 비웃기라도 하듯 통로 전체가 놈들의 배설물로 화장실이 된다. 그래도 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현지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보다.
필자가 탄자니아에서 무려 47시간을 달리는 기차를 탔을 때 매일 아침 6시마다 3등석 사람들을 잠에서 깨워주던 닭이 생각난다. 그 소리에 깨서 서로 어이없다는 듯이 웃던 검은 얼굴 흰 이, 맑은 눈의 천사들이 그립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신원 박문수 slambib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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