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주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대표

안동 소주는 쌀로 만든 고두밥에 물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원료를 증류하여 만든 증류주이다. 원 나라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일본 정벌을 위해 병참기지로 안동에 머무르는 동안 소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오랜 명맥이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인 조옥화 대표의 손끝을 거쳐 오늘도 안동땅에서 45도의 서늘하고도 달큼한 곡향으로 피어난다.

불처럼 취하고 물처럼 깨는 술

▲ 조옥화(우) 여사와 며느리가 쌀을 쪄서 누룩을 만들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2호인 안동소주는 빨리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다. 흔히들 말하는 ‘뒤끝이 없는’ 술인 셈이다.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이며 <민속주 안동소주> 대표이기도 한 조옥화(85) 여사의 말을 빌리자면, 술이 너무 빨리 깨서 안동소주 빚는 법을 잘 못 터득한 줄 알았단다. 그것이 바로 안동소주의 또 다른 매력이며, 여전히 애주가들로부터 사랑받으면서 살아있는 민속주로서의 입지를 지키게 해주는 원천이다. 처음 혀에 닿는 순간부터 쏘는 듯이 퍼지는 곡물 특유의 향취가 45도의 알코올 도수와 더불어 취기를 돋운다. 그러나 어쩐지 목 넘김이 너무 부드럽다. 그 순간 가슴 저 바닥에서부터 후끈한 기운이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긴장이 한 풀 풀리면서 맘까지 훈훈해 진다. 다시금 자연스레 술잔에 입이 간다. 만나본 안동사람들마다 안동소주는 더도 덜도 없이 45도가 딱 제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랜 시간동안 길들여진 입 맛 탓일 수도 있지만, 45도일 때 혀끝맛과 향이 가장 탁월하다고. 우리나라 민속주 가운데 가장 높은 도수를 자랑하며 불처럼 취하고 물처럼 깨는 술, 그게 바로 안동소주다.

조옥화 여사의 손길로 80여년 만에 부활하다

안동소주가 조옥화 여사의 민속주 안동소주로 부활하여 안동을 대표하는 전통 증류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안동지역에서 새마을 부녀회 활동을 하면서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부녀회장터에서 회원들과 함께 동동주를 빚어 팔았는데 장터 최고의 인기였다고 한다. 1982년 88올림픽을 앞두고 전통민속주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전국에 전통주를 찾게 되었고, 이 시기 담당공무원이 그녀를 찾아와 동동주를 안동민속주로 할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안동태생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친정집에서 약주를 빚고 소주를 내리는 것을 보아왔던 기억을 되살려 한동안 금주령으로 명맥이 끊어진 안동소주를 재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80여년 만에 안동소주가 재현되었고, 그녀는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동소주는 지금까지 소주라는 '주'자를 술 주(酒)자를 쓰지 않고 소주 주(酎)자를 쓰고 있는데, 이 소주 '주'자는 세 번 빚는 술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안동 소주는 20일간의 발효 과정을 거쳐 증류하여 만들어 지며 고도주이면서 농후한 미량성분과 깊고 진한 향을 가진 가장 재래적 방법에 의해 제조된 증류식소주로, 한때는 이 술 한 병을 사기위해 제조장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여지기도 했다고.

고부간에 전해지는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여사는 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요리를 전수하여 잊혀져가는 향토음식을 발굴·보급에도 힘쓰고 있으며, 1999년 4월 안동을 방문했던 영국여왕께 직접 여왕의 생일상을 손수 차려내기도 했다. 이런 그녀는 2000년 전통식품명인 제 20호에 지정되기도 했다. 안동소주를 포함한 그녀의 맛깔난 음식 솜씨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안동소주 · 전통음식 박물관도 있다. <민속주 안동소주> 제조장을 방문하면 일반인 누구나 관람이 허용되나, 제조장 전체를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 누룩제조실, 발효실, 증류실 등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다. 이 박물관에는 안동소주를 직접 빚어 볼 수 있는 체험관과 소주에 관한 유물이 200여점이 전시되어 있고, 조옥화 여사가 알고 있거나 개발한 전통음식 500점 이상이 소개되어 있다. 본 박물관 학예사로 재직 중인 배경화(55)씨는 조옥화 여사의 며느리로서, 안동소주 기능후보자로 등록되어 있다. 배씨는 쉰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 「안동소주의 전래과정에 관한 문헌적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구전으로 배운 기술을 며느리가 학술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배씨는 또 작년부터 안동소주의 성분에 대해 연구를 하기 위해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안동소주를 향한 고부간의 열정에선 젊은 사람들의 뜨거움과는 또 다른, 짙은 연륜의 체취가 묻어난다. 그 잔향이 45도의 민속주 안동소주를 꼭 빼닮아 있음을 그녀들은 알까. 조옥화 여사와 배경화씨 그리고 그녀들이 사랑한 안동소주, 사랑하면 닮는 다는 말은 연인들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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