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터뷰-2011 젊은 연극인 김진만 연출가

올 초 젊은 방송시나리오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지면서 연극, 뮤지컬 등 문화/예술계의 현실에 대한 고찰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가난한 예술가’가 덕목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예술인들. 그들 중‘2011 젊은 연극인상’에 빛나는 김진만 연출가 겸 극작가를 만나 연극인으로써의 그의 삶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아직은 스산한 겨울 기운이 남아있는 3월의 어느 날.‘2011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고 고전명작인‘노인과 바다’를 극화하여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진만 연출가를 만나기 위해 대학로의 한 극장을 찾았다. 시종일관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 준 김진만 연출가 덕분에 한 시간여의 인터뷰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Q. <2011 올해의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는 등 연출가이자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데뷔하게 된 동기와 그동안의 삶이 궁금하다.
A. 20대에는 영화나 연극 등에 출연하며 연기를 했었어요.‘보리피리’,‘귀촉',‘신은 인간의 땅을 떠나라’등등 20여 편 정도에 참여했었죠. 큰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으나 단편영화‘나의지구를 지켜줘’에서는 주연으로 연기해 최우수 작품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남는 좋은 작품이었죠.‘링’이란 영화에서는 배두나를 사랑한 오빠 역할로 출연했어요. 김기덕 감독과 서너편 정도 했습니다.‘수취인불명’,‘나쁜 남자’,‘실제상황’등 몇몇 작업들을 하면서 영화를 적극적으로 하려던 시기에 전업을 결심했습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거치면서 극작, 연출공부를 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인생이 바뀐 거죠. 2년간에 걸쳐 문예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공연예술아카데미 극작평론반 수업을 받았어요.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명망 높은 선생님들께 거의 개인교습에 가까운 수업을 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 극작반 학생들이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었죠. 그분들이 저한테 새로운 삶에 대한 자극을 주신 거예요. 극작가이자 담임선생님이었던 현재 서울예대 교수 이강백 선생님, 평론계의 대단한 실력자인 안치훈 교수님, 돌아가신 작가이자 연출가 한상철, 윤영선 선생님, 연출계에서 이름 높은 이병훈 선생님 등 뛰어난 선생님 밑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어요. 이후 습작을 열심히 했고 졸업이후 극작가이자 연출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2인극 페스티벌’에서‘우중산책’을 연출해 우수상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Q. <2인극 페스티벌>의 창시자로 알고 있다.
A. 네 맞아요.‘팔판동 9인회’활동 당시‘2인극 페스티벌’을 기획했죠.‘팔판동 9인회’는 당시 여건상 제작환경이 무척 어려웠기에 젊은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창의적인 작업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 진 모임이에요. 저도 최초 구성원 중 하나였고 9명의 극작가, 배우, 연출가로 구성 되어 9명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자리를 누군가 이어가는 방식이었어요. 그곳에서 좋은 창작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고 다양한 활동의 계기도 마련했어요. 지금은 다들 자기 색깔이 명확한 예술가들로 성장하여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 멤버로는 작가 겸 연출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낙형, 김학선, 민복희, 유수미 씨 등이 있고 드라마와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는 박원상, 최덕문, 박정석, 그리고 연출가 하일호 씨 등이 있습니다. 초기멤버들 후에 장우재, 정세혁 등 유명한 연출가이자 작가들을 많이 배출됐죠. 그러한‘팔판동 9인회’활동 도중 탄생한 것이‘2인극 페스티벌’이예요. 제가‘2인극페스티벌’을 제안했고 2000년 동숭아트센터에서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신선한 발상과 정신을 높게 사 두 달간 무료대관을 해주기도 했죠. 10년 가까운 배우생활을 접고 연출가이자 극작가로의 삶에 들어선 것이 올해로 벌써 12년 정도 되었네요.

Q. <노인과 바다>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연극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연출했는가.
A.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는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함께 탄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에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무대화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기에 5년간 연구를 했어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작품이라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워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자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우선 무대화에 상당한 공력이 필요함을 느끼고‘노인과 바다’에 관한 전 세계의 논문을 읽으며 다양한 시각의 해석을 섭렵한 후 헤밍웨이의 활자 뒤에 숨겨진 이면의 깊은 세계를 바라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후 배우들과 함께 무대언어로 새롭게 표현되는 부분에 대한 2차 연구를 했어요. 소설은 묘사지만 무대언어는 구체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행위들로 표현이 되어야 하므로 효과적인 장면이 필요해요. 헤밍웨이가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부분을 끌어내고자 노력했어요.‘노인과 바다’는 단편소설이지만 극화하면 분량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노인의 모놀로그와 전지적 작가시점이 들어간 작품이다 보니 무대화시키기도 쉽지 않았죠. 여러번 고비를 맞으며 왜 그동안 이 작품이 무대화되지 않았는가를 실감했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었어요. 그렇지만‘당시 헤밍웨이가 가졌던 생각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냈어요. 비극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노인의 삶을 작품에 투영시키겠다고 다짐했었죠. 노인과 바다에 연결되는 이미지를 찾고 어부들의 표정이나 손짓, 웃음, 손때 묻은 배 등을 보기위해 동해안을 찾아 며칠씩 숙박을 하기도 했었죠. 소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무대언어로 승화 시키는데 포커스를 맞춰 작품을 구현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잘못 연출하면 비난을 피&#54643;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Q. 약 50여개가 넘는 공연 및 뮤지컬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어떤 것이며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
A. 사람들은‘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나를 떠올린다고 해요. 익스트림 스포츠를 접목시킨‘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은 국립 하늘극장에서 2005년도에 오픈한 작품으로 당시 굉장한 화제가 되었어요. 2006년에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발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바퀴를 모티브로 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적이면서도 빠르게 전개되는 사랑과 인생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무대화한 작품이에요. 인라인 스케이트 중에서도‘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Aggressive inline skate)’를 사용했어요. 다른 인라인 스케이트에 비해 공격적이고 스피드가 빠르기 때문이었죠.‘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로 놀라운 높이의 점프가 가능했어요. 또한 도약과 회전을 가미하면서 거의 묘기에 가까운 연기로 풀어낸 작품이에요. 세계최초로 시도 된 것이었기에 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반응도 엄청나게 뜨거웠죠. 대중적이면서도 쇼킹했던 것이죠. 눈앞에서 배우들이 스트릿보드와 외발자전거를 타고 점프와 공중회전을 하는 등 바퀴에 관한 상당한 것들이 작품에 녹아들어 많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나 문예회관 투어 등 연극제에 많은 러브콜을 받고 해외에도 초청이 되었지만 거대한 세트의 한계로 인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어요. 우선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적었고 전문 배우들이 필요한 작품이다 보니 그들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익스트림 스포츠 환경이 척박하다보니 전문배우들은 은행, 공장, 회사 등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장기적으로 그들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공연을 올릴 수 없어요. 기업이나 회사에서 뒷받침 해주어 재정적인 여력이 충분하다면 좋은 배우들과 익스트림 스포츠 전문 배우들을 관리하고 활성화하면서 이어나가고 싶어요.‘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한 좋은 사례로 호주 브리스번 셰익스피어 학술대회에 정식으로 소개되기도 했을 만큼 유명하고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댄스뮤지컬‘스피노디사인’이 있어요.‘라스트 포언’이라는 우리나라 대표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보이팀 12명과 함께 만든 작품인데 퍼포먼스 댄스뮤지컬로 영국 웨스트엔드에 있는 극장에서 첫 오픈을 했어요. 많은 사랑을 받아 영국 전역을 순회공연 했었죠. 국내에서도 앵콜 공연을 했고 한중수교 15주년 기념으로 중국순회공연도 했으며 싱가폴 아트페스티벌에도 소개되었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안아주세요’란 작품이에요. 현재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사랑과 아픔, 상처를 보듬어 주고자 하는 의미가 담긴 따뜻한 작품이에요. 꾸준히 활성화시켜서 소재를 늘려 공연을 할 계획에 있어요. 남자 둘, 여자 하나. 세 명의 배우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요. 우리 이웃, 우리 동료. 저마다 힘겹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지수가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희망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우리 얘기’를 하고 싶어서 무대화한 작품이에요. 앞으로도 많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서로 보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Q. 연출한 작품들의 발상이 독특하다. 극작이나 연출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무대화 하는가.
일상생활 속 모든 것들이 소재죠. 연극‘안아주세요’를 구상할 때는 우렁이 된장국을 먹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이 시대에 우렁각시 같은 사람이 누구나 필요하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 헌신하고 내 아픔을 보듬어 주고 내가 없을 때 대신 힘든 일을 해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우렁각시 설화를 찾아보고. 그러다 점진적으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안아주세요’가 탄생했죠.‘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또한 자동차 바퀴를 들여다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러다‘로미오와 줄리엣’에 접목시킬 수 있었어요. 2000년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2005년에 형상화 했으니 5년의 연구를 한 것이죠. 다른 작품을 진행하면서도 자료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아요. 아이디어를 통한 연구가 충분히 숙성이 되었을 때 작품으로 끄집어냅니다. 덕분에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에요. 어떤 작품에 어떤 장르로 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는 작품 수만 13개 정도 돼요. 언젠가는 모두 무대에 올릴 겁니다.

Q. 배우들의 지도나 극 연출 시 어떤 것에 가장 중점을 두는지.
요즘은 출연배우 하나만을 앞세워 극을 알리려는 이들이 많죠. 그렇지만 저는 각 배우들이나 스텝들의 전체적인 앙상블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팀워크에요. 공연은 종합예술인 만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서 예술적인 소양을 나누며 형상화 시켰을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어우러짐 속에 서로가 작품을 위해 의견을 내고 아이디어를 내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작품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요.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독창적인 창작물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렇지만 연습만큼은 힘들게 시키기로 유명해요.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서 연습하고 하드트레이닝 시키기 때문에 배우들이나 스텝들이 가끔은 힘들어 하죠. 그렇지만 연습과정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처절하지만 즐겁게. 처절한 연습과정을 거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을 수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Q. 최근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논란이 됐었다. 예술인으로서 문화예술계의 현실에 대해서 한마디 해 달라.
A. 일단은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에요. 예술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예술가들은 배가 고프다, 혹은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의 눈이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배고픔’이란 것. 즉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혼이 갈구하는 순수한 예술을 쫓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예술인들이 기본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사회적 인식’이 그들을 방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국가와 국민이 당연시하는 풍토 때문에 구조적인 장치 마련에 소홀해 사회복지 차원에서 최저생계를 구현하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개선책을 마련하는 아픈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장르들 중에서도 연극인들의 삶은 안타까울 정도로 비참한 것이 사실이에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영화인, 연극인 등 예술인들 중 부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극소수에요.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아직도 각고의 노력에 불구하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극단은 자발적공동체이며 누군가 떠밀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기에 가혹할 만큼 큰 책임이 뒤따르죠. 극단에 수익이 생기면 나눠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수입이 없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 이 업계의 현실입니다. 월급체제라는 것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요. 대다수의 배우들이나 스텝들이 안정적인 개런티를 받으며 공연을 하고 있지 못해요. 뮤지컬은 많이 상업화되면서 좀 나아졌지만 연극인들은 여전히 힘겹게‘투쟁하듯이’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예술인들이 예술에 혼을 쏟을 수 있는 구조적인 장치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극작이나 연출을 하면서 아직 못 보여준 이야기가 있다면.
A.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 편이에요. 10년째 연구하는 작품 중 하나가‘국내성’이라는 작품입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을 중심으로 당시 고구려 사회에 대한 얘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대본수정작업 중에 있는데 구상만 12년째네요. 태왕사신기 등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나오기도 전에 초고가 탈고되었지만 방대한 양의 대본과 스케일로 인해 국내성에 맞는 제작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무대에 올릴 수가 없어요. 좋은 제작여건을 만나게 된다면 올릴 수도,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못 올릴지도 모르겠네요. 또 우리나라의 씨름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연극을 5년 째 계획 중에 있어요. 씨름을 했던 배우들이나 선수들, 혹은 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용하고 싶어요. 육중하지만 노련한 씨름기술을 지닌 이들과 퍼포먼스를 구상하고 있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스포츠로서 씨름이 침체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시작했어요.

Q. 연출과 극작을 지망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A. 현실적이고 다부진 충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연극 혹은 연출을 하고자 찾아오면‘일단은 한번더 생각해보라’고 얘기해요. 정말 이 길이 아니면 못 살 것 같은지, 연극 혹은 연출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꿈이지만 막연한 동경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한번더 심각하게 생각해보라고 얘기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아니에요. 몇날 며칠 혹은 몇 년을 하루하루 쌓으며 험난하고 처절한 생활을 버틸 수 있어야 해요. 진정으로 창작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예술의 혼을 불태울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심한 순간부터는 죽기 살기로 노력함과 동시에 이것저것 재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너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동경만으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수차례 얘기합니다. 예술가에게 사람들이 왜 찬사를 보내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찬사를 보내지 않을 것이에요. 어려운 삶을 살아가면서 예술혼을 태우고 창작의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을 구현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충분히 상담을 합니다. 세 명을 상담하면 두 명은 돌려보내요. 한명이 남아도 견디다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결심이 확고하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직업임은 틀림없습니다. <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