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단-도박의 중독성

도박중독은 의학용어로는 병적도박(pathological gambling disorder)이라고 하는데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이다. 쉽게 말하면 너무 욕구가 강해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절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요즘 문제가 되는 사이버 중독, 쇼핑중독 등과 같은 일종의 중독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심각한‘병’인 도박중독. 도박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나라 도박중독 클리닉의 1인자라 불리는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교수를 만나 보았다.

▲ 상북삼성병원 도박중독클리닉 신영철 교수
#신영철 교수는 1999-2000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중독센터를 연수 후 귀국하여 도박중독클리닉을 운영하고 있고 여러 사행산업장의 자문의를 맡고 있으며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의 차기이사장으로 선출되어 활동 중이다.

#강북삼성병원의 도박중독 클리닉은 2000년 정신과에서는 국내 최초로 개설되었고 현재까지 1천명 이상(신환)의 도박중독 환자를 진료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 외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내원시 평가와 함께 치료가 진행된다(개인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집단인지행동치료 등). 집단치료는 매주 1회 저녁 7-9시에 실시 중으로 먼저 외래 진료 후 필요에 의해 실시된다(5-10명 정도가 참가, 주 1회 8주간 실시. 가족치료도 1회 추가로 실시). 200명 이상이 집단치료를 완료하였고 비교적 참여도와 효과가 좋다. 특히 개인으로 접근시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비슷한 사람끼리 공감대가 형성되어 치료 동기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병원 치료와 함께 단도박 모임의 참여도 권유하고 있다.

Why gamble?

사람들은 왜 도박을 하는가? 이 물음에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병적인 도박중독 상태가 아닌, 일반적인 도박의 원인을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재미에 있다. 처음부터 돈을 따기 위해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심심풀이, 재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이들 중 일부의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스트레스 해소의 작용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의 긍정적 기능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도박중독과 연관된 연구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독이라고 하면 우리는 마약을 비롯한 약물, 술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물질들이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많다. 그러나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도박, 인터넷, 쇼핑중독 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실정인데 특히 생물학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초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도박중독에 대해서 서구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가 진행 중인데 물질중독과 마찬가지로 같은 뇌의 보상회로가 관련된다는 보고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중독들을 일종의 행위중독이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결론적으로 물질중독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임상에서는 도박중독자를 크게 Action Gambler / Escape Gambler, 두 유형으로 나눈다. 앞의 유형을 저자는 자극추구형, 뒤의 경우를 현실도피/적응장애형이라고 부른다. 자극추구형 환자들은 쉽게 말하면 타고나는 도박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전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발병하는 경향이 높다. 이들의 어린 시절 성장과정을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내기를 좋아하고, 경쟁적이고, 호기심, 모험심이 많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해서 지면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흔히 있다. 도박을 하는 종류도 비교적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카지노, 경마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유형이다. 또한 도박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hypoarousal state(각성이 낮은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서고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Cloninger의 성격유형에 따르면 novelty seeking(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고 harm avoidance(해롭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피하는) 는 낮은 쪽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성향을 종합해 보면 에너지는 많은데 이 에너지의 방향이 잘못될 경우 쉽게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유형이다. 현실도피/적응장애형은 스트레스와 관계가 많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늦은 나이에 도박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성 도박중독자들이 흔히 이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혼이나 가정적 문제, 우울과 불안과 같은 환경적,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박을 하는 동안은 만사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또한 현실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도박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극추구형과 달리 hyperarousal state(각성이 높은 상태)를 회피하는 도구로 도박이 이용되는 것이다. 성격상 내성적이고 대인관계가 많지 않고 세상 다른 재미를 잘 모르고 살아온 사람 가운데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꼭 현실도피형 중독자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도박행위가 스트레스와 연관된다는 간접적인 증거는 많다. 특히 재발을 한 도박중독자들에게 왜 다시 도박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물론 스트레스만으로 재발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유발인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똑같이 도박을 하는데 왜 누구는 중독이 되고 누구는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적인 설명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에는 뇌의 충동조절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연구가 주류를 이룬다. 일종의 뇌 기능장애인 셈이다. 인간의 뇌에는 충동을 조절하는 회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한다. 불행히도 어떤 원인이든 이 회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술을 접하면 쉽게 알코올 중독이 되고 도박을 시작하면 도박중독자가 되기 쉽다는 말이다. 따라서 알코올 중독에 흔히 쓰이는 약물들이 이런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여 도박 욕구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박중독자의 사례

다음 사례자들은 강북삼성병원에서 실제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① 대학에 다닐 때부터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제법‘고수’소리도 듣고 돈도 많이 땄었다는 28세의 미혼남자. 그는 친구들과의 카드놀이에 흥미를 잃어갈 때 즈음 우연히 경마장 출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베팅이 맞아 하루 100만원 정도의 돈을 따게 되었고 이후 점차로 출입 횟수가 늘어나면서 베팅 액수도 커지고 돈을 잃게 되었다. 1000만원 정도의 빚이 생겼으나 언제나 만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는 말을 못하고 본전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출입하게 되었으나 결과는 더 큰 빚으로 돌아왔다. 결국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고 돈을 갚았다고 한다. 이후 2년 정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내며 열심히 취직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계속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고시촌에서 생활하던 중 우연히 인터넷‘바카라’사이트 선전을 보고 심심풀이로 접근했다가 다시 돈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6,0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게 된다. 생활 리듬이 깨지고 거의 정상적 생활을 못하는 지경이 되어 가족과 상담 후 약물치료와 집단치료를 실시했다. 이후 단도박 모임에도 다니며 현재 6개월째 단도박 중이다. 그러나 아직 재발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지속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야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낮에는 학원 공부를 하는 등 착실히 공무원 준비 중이라고 한다.
② 경마, 경륜, 카지노 등 과거 안 해본 도박이 없을 정도로 모든 도박을 섭렵했다는 42세의 기혼남자. 점차 도박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 회사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권유로 치료를 시작하여 약물치료와 외래 상담을 실시하였으나 본인은 치료의 동기가 부족하여 3개월 만에 치료를 끊었다. 1년이 지나 병원을 찾은 남자는 당시 도박을 끊고 회사에 열심히 다녔으나 6개월 후 재발하여 공금 2000만원을 횡령했다고 한다. 결국 직장에서도 쫓겨난 그는 우연히 성인 PC방에서‘바둑이’를 접하고 거의 매일 출입하며 1억 가량의 빚을 지게 되었다. 다시 약물 및 상담 치료 중이며 심한 금단증상으로 고생했으나 어느 정도 호전된 상태라고 한다. 아직 욕구가 남아있어 힘들다고 호소하나 잘 넘기고 있는 중이다. 최근 빚을 갚기 위해 야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③ 회사원인 36세의 기혼남자. 그는 주말에 거의 카지노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되었으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도박을 했다.‘바둑이’, 성인오락실,‘바카라’등 종류가 늘어나면서 점점 빚이 늘었다고 한다. 부모의 설득으로 외래 상담과 집단치료를 병행하는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회사는 지속하고 있어 빚 6000만원은 장기대출로 전환 후 갚을 계획에 있다. 4년 정도 갚으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다시 헬스를 시작하는 등 과거 도박으로 멀어졌던 일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도박중독, 그 심각한 폐해

▲ 지난 해 전국주부교실중앙회와 학부모정보감시단 등 시민단체가 도박중독예방활동단체 출범식을 갖고 서울 청계광장 일대 거리행진을 하며 도박 중독의 심각성과 협의회 출범을 알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박중독자의 비율은 전 인구의 1-2%정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나라와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쉽게 접근이 가능할수록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독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약 4.1%가 도박중독 증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내국인을 위한 카지노가 생기고 경마, 경륜 등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합법적 도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시내 곳곳에는 성인오락실을 빙자한 불법 도박장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도박중독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파산, 실직, 이혼은 물론이거니와 자살율도 20%나 된다. 도박은 중독자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절도죄의 35%, 비폭력 범죄의 40%가 도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눈앞의 세금 수입에 연연해 도박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박이 병이라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다. 도박은 병이다.‘아니 고스톱 좀 치는 게 병입니까?’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물론 재미삼아 치는 고스톱에 시비를 걸자는 것은 아니다. 도박중독자들은 사교적인 모임에서 가끔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박을 할 때 밤을 새는 일은 드물다. 심심풀이로 친구들과 모여서 한 판을 벌이지만 스스로 절제할 줄 알고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에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중독자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박 생각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마련하려 하며 오직 돈을 딸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불행히도 중독 상태에 빠지면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서 도박에 거는 돈의 액수가 점점 더 커져야 한다. 판돈이 커지고 도박장을 향하는 횟수도 점차 늘어나게 된다. 술꾼이 술을 마시는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을 내성이라고 한다. 도박중독자들에 나타나는 특징적 증상이다.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이 금단증상인데 대부분의 도박꾼들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이거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이제 그만 해야지.’이런 결심을 안 해본 중독자는 없다. 불행히도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바로 금단증상 때문이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이 증상을 견딜 수가 없어 발걸음이 다시 도박장을 향한다. 희한하게도 패를 돌리는 순간 금단증상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만다. 드디어 본격적인 중독의 길에 들어 선 셈이다. 이 단계가 되면 안하고 싶어도 의지대로 쉽게 되지가 않는다. 잠시는 가능한 듯 보이지만 강력한 금단현상 앞에서는 천하장사도 소용이 없다. 오른손을 잘랐더니 왼손으로 하고 왼손을 잘랐더니 발가락에 끼워서 하더라는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파탄, 실직 등의 개인적, 가정적 문제와 함께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문제를 야기하는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불법, 음성적인 도박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볼 때 엄청난 잠재적 도박중독 환자들이 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불행히도 그동안 이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전문기관이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충동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는 약물과 함께 인지행동치료를 위주로 하는 상담, 집단치료가 개발되어 이들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물론 약물치료만으로 완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인지행동요법을 기본으로 하는 상담, 집단치료를 통해 이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대박의 환상에 사로 잡혀 있다. 언젠가는 큰 것 한방으로 모든 것을 만회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오늘도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의지가 약해서 못 끊는 것이라고 구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마약중독자들에게 스스로 끊으라고 호통을 치는 것과 같다. 모든 중독의 특성인 내성과 금단증상, 이것은 이미 본인 의지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도박중독, 치료는 가능한가?

도박중독의 치료 Ⅰ: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중독”이라는 병이 다 그렇지만 도박중독의 치료도 쉽지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무지 치료 받을 생각을 안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박장을 찾고, 수억의 빚을 지고도 자신은 중독자는 아니라고 우긴다.“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습니다”이것이 대부분의 중독자가 하는 소리다. 정말 마음을 굳게 먹으면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정신과의사들은 중독을‘90일병’이라고 부른다. 굳게 결심하면 일정기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곧 한계가 오는데 평균 90일이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도박을 끊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유지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도박중독자들은 스스로 중독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절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도박중독에 빠져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더 이상 도박장을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도박행동이 비록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이들에게 엄청난 재미를 준 것도 사실이다. 중독자들 입장에서 이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엄청난 고통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많은 빚은 어쩌란 말인가? 최소한 도박을 하는 동안은 이런 걱정에서 자유롭다. 한방이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동안 현실적인 걱정따위는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과에서는 도박중독을 어떻게 치료하는 것일까? 먼저 치료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평가를 하는 것이다. 똑같이 도박을 하지만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다. 원인이 다양하니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도박행동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지만 정서적인 이유나 성격적인 요인도 파악을 해야 한다. 때로는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과적 질병이 도박행동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이런 검사들을 통해서 치료 계획을 세우게 된다.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알려진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다. 약물 치료에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항갈망제다.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사용하면 술을 마시는 욕구가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도박을 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쾌감을 주는데 이 약물이 도파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서 도박에 대한 욕구를 줄여주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란 쉽게 말하면 중독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도박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치료다. 도박은 종류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술이 다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일종의 확률일 뿐인데 중독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로 이 확률을 조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돈을 잃으면 운이 나쁘다거나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길 경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늘 과거의 승리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발걸음이 도박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아울러 미신적인 생각도 많은데 좋은 꿈을 꾸었을 때 복권을 사는 행동과 같이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 생각이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잘못된 생각과 믿음을 체계적으로 교정하여 도박충동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기본이며 이와 더불어 도박충동을 부추기는 상황을 피하는 기술, 스트레스 관리, 가정 및 사회에서의 적응훈련 등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는 작업 등이 포함된다. 중독자를 설득해 정신과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다행히도 단도박 모임(www.dandobak.co.kr, www.dandobak.or.kr )이 잘 조직되어 있다. 도박을 끊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병원에 거부감이 있다면 먼저 이곳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좋겠다. 본인이 어렵다면 가족이라도 먼저 찾아가 선배들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박중독의 치료 Ⅱ: 36계 전법
싸움판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법이 있다. 나보다 강한 놈을 만나면 도망가면 된다. 바로 36계 줄행랑 전법이다. 나보다 강한 상대와 붙으면 지는 것은 당연한 일, 도망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상대가 나보다 강한지 아닌지를 알아야 도망을 가지 않겠는가. 중독자들은 도박의 욕구 앞에 번번이 당하고 만다. 도박에 대한 욕구는 중독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대가 안 되는 강력한 힘이다. 이 힘 앞에서는 자신이 꼼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무서운 줄 알아야 미리 대책을 세우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않겠는가. 36계 전법, 이것이 급성기에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법이다.“저는 도박을 끊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도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납니다.”단도박 모임에 나오는 어느 협심자(모임 참석자들은 스스로를 협심자라고 부른다)의 이야기다. 바로 그거다. 이 사람은 그래서 10년간이나 도박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나에게는 아직도 도박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니 늘 조심하고 피해야만 한다.’이런 심정으로 10년을 살았기에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이제 다시는 안 합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불행히도 거의 대부분 다시 도박의 굴레에 빠진다. 무서운 줄 모르기 때문에 대비를 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도박 욕구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그런 때가 올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나는 도박 앞에서 무력함을 시인합니다’중독 치료의 12단계 중 첫 번째 나오는 구절이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도박중독 치료의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중독클리닉을 찾은 환자나 단도박 모임의 협심자들을 만나다 보면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 생생한 치료법들을 배우게 된다.“차비 좀 빌려 주세요”도박을 끊은 지 2년이 넘은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차비를 빌려달란다.“아니 당신 사장 아니요?”머리를 긁적이며 지갑을 열어 보여주는데 지갑이 텅 비어있지 않은가.“만원만 있어도 저는 도박장으로 갈 겁니다. 그래서 지갑에 늘 1000원만 넣고 다닙니다. 오늘은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다보니 차비가 부족해서요”.얼마나 기발한 전법인가. 어떤 치료법보다도 더 훌륭한 전법을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아무리 36계전법에 익숙해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유혹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게 되면 아무래도 치료에 대한 열정은 식기 마련이다. 이때 반드시 고비가 찾아오는 법이다. 분명 지난주 까지는 도박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다고 장담하던 청년이 다시 도박을 하고 나타났다. PC 방에 취직해서 일도 열심히 하고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침에 출근하니 손님이 스포츠 신문에 난 경마 기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행히도 주머니에는 어제 입금을 못한 돈 30만원이 고스란히 있었다. 하필 주말만 아니었어도 좋으련만 오늘은 토요일, 바로 경마하는 날이었다. 중독에 빠졌던 사람이 이런 유혹 앞에 견디기는 쉽지가 않다. 우연히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하필 내 앞에서 경마 기사를 읽고, 하필 주머니에 돈이 있고, 하필 그날이 토요일이라니. 그러나 중독자는 미리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 예상을 해야만 한다. 막연히 괜찮겠지, 안 가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때 어떤 전법을 구사할지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익히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다.
36계만으로 도박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법일 뿐이다. 단지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안하고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도박중독의 치료는 단지 도박을 끊는 기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방식을 배우는 마라톤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환자 자신의 치료받고자 하는 욕구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태도다. 전형적인 도박중독자들의 뒤에는 늘 마음씨 좋은 어머니나 부인이 있다. 엄청난 빚도 그들의 몫이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재미있는 도박을 그만둘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교육 또한 치료에 필수적이다.

도박중독은 병이다. 그냥 병이 아니라 심각한 병이다. 정신의학에서는 도박중독을 충동조절장애로 분류하는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도박중독이 더 이상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말이다. 다른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치료다. 후유증으로 본다면 도박중독은 오히려 마약중독보다도 더 심각한 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투어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있다. 눈앞의 작은 경제적 이득 때문에 언젠가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적절한 예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중독의 기간이 길어지면 인격적으로도 황폐화가 일어나는데 이런 경우 다시 사회로 복귀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중독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도박중독자들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가족과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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