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들의 멘토 윤석현 복싱클럽관장
권투의 전성기가 있었다. 세계챔피언이 탄생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영광을 누리던 황금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 시절엔 TV앞에 온 식구가 모여앉아 김연아를 환호하듯 홍수환을 외쳤고 아버지들은 인생을 사각의 링에 빗대어 설명하곤 했다. 1966년 김기수 선수를 시작으로 50명이 넘는 세계챔피언을 배출한 것이 우리나라 권투의 역사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권투의 좌표는 어디쯤인가.
흔히 권투를 인생에 빗대어 설명한다. 링에 오르면 상대가 쓰러지거나 내가 쓰러지기 전에는 링을 나갈 수도 없고, 누가 대신 팔을 뻗어주는 것도 아니며, 상대를 때리려면 맞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치열한 한판 인생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투는 매혹적이고 동시에 고독한 경기이다.
챔피언을 꿈꾸던 어린 소년

윤석현 관장(윤석현 복싱클럽, http://cafe.naver.com/8677742)은 1989년에 프로로 데뷔한 전 한국챔피언이며 전 OPBF 웰터급 동양챔피언이다. 최근 한국권투위원회(KBC)가 개최한 2009 WBC타이틀도전 코리안 콘텐더에서 우승하여 챔피언의 위용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승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세계에서 나는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떠나고 없는 빈 체육관에서 혼자 샌드백을 쳐댔습니다. 쓰러지더라도 링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윤석현 관장에게 권투는 단지 직업이거나 생계 수단일 수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링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그에게 있어 권투는 인생 그 자체인 듯이 보였다.
승승장구하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다
1995년 웰터급 한국챔피언이 되고, OPBF(동양태평양 복싱연맹, Oriental and Pacific Boxing Federation) 웰터급 챔피언으로 등극하면서 국내외에서 유망주로 주목을 받고 있던 때에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었다.
“당시는 권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권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폰서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게 되면서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호주 원정경기에서 타이틀도 뺏기고 나니 낙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슬럼프였다.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싸우고도 소속 체육관이 영세하기 때문에 승자가 되지 못 하는 현실이 무릎을 꺾게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글러브를 벗지 않을 것이다!”

“저는 싸울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싸웁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우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복싱은 많이 때리면 이기고 많이 맞으면 지는 스포츠거든요. 명쾌하고도 치열하지요.”
윤석현 관장은 권투가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랜 공백기를 깨고 2009 WBC타이틀도전 코리안 콘텐더에서 화려한 복귀를 했지만“권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한 홍보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타이틀 매치에 도전했다”고 하는 그는 이미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글러브를 벗지 않을 것이다.
“권투계가 중흥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인 선수들의 경우 대전료는 이들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지요. 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해주고 재정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유망한 선수의 맥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복싱클럽을 운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윤석현 관장은 권투계가 자성하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다이어트 복싱이 유행하고 TV쇼프로에서 권투를 소재로 대중적인 흥미를 진작시키고 있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대한민국의 권투관련 협회에서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복서들의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권투 중흥의 때를 다시 한 번 꿈꾸어 본다. <NP>
<윤석현 관장>
- 1995 KBC 한국 웰터급 챔피언(제29대 1995.07.22)
- 1996 웰터급 동양챔피언
- 2000 OPBF 동양 웰터급 챔피언
- 2000 IBF아시아 웰터급 챔피언
- 2002 KBC 한국 웰터급 챔피언 (제35대 2002.08.18)
- 2009 코리아콘텐더 미들급우승
- 2009 코리아콘텐더 MVP(최우수선수)
- 현재 미들급 랭킹1위(한국권투위원회 홈페이지 2010년 5월 랭킹(5/1발표))
- 윤석현 복싱클럽 관장
이태향 기자
ythsun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