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숫자, 불과 몇 세기 전에는?

2011년 6월 2일 아침, 깨어보니 7시 30분이다. 연신 시계를 보며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마음은 급한데 10층, 9층…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선다. 지각을 면하려고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탄다. 차가 밀려서 기본요금보다 더 나왔다. 2600원. 10000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가려는데 교통카드 잔액이 780원이다. 300원만 더 있었어도….아침시간 불과 30여 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내용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다음 두 이야기와 비교해보자. 먼저 1580년, 당대에 가장 박식했던 몽테뉴의 글이다.“나는 농가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의 가산(家産)을 나보다 앞서 소유했던 이들이 떠난 뒤부터 나는 직접 집안일을 관장한다. 그런데 나는 펜으로도 패(牌)로도 셈하는 법을 모른다”(몽테뉴『수상록』제2권) 몽테뉴는 셈하는 법을 몰랐는데, 이를 아주 떳떳하게 밝히고 있다!또 하나, 중세의 어느 부유한 상인 이야기다. 아들에게 상업 교육을 시키려는 그는 아들을 어떤 학교에 맡기는 게 좋을지 물으려고 전문가를 찾아갔다. 전문가의 대답.“만약 아드님에게 덧셈과 뺄셈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면 독일이나 프랑스의 아무 대학에 보내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 곱셈이나 나눗셈까지 배우게 하고 싶다면(물론 그런 걸 배울 만한 능력이 되어야겠지만!) 이탈리아 학교에 보내야만 합니다”이 책은 한 마디로‘숫자의 세계사’혹은‘숫자 발명의 역사’다. 인류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끈 것은 불의 사용, 농경의 발달, 문자의 사용 등과 같은 발견과 발명이다. 여기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숫자’다. 숫자는―문자보다 먼저 발명되었다―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처럼 천부(天賦)의 능력으로 치부되었다. 실제로 까마득히 먼 옛날, 사람들은 숫자에 미신적인 두려움을 품고 때로 숫자를 어떤 힘, 말하자면 행운이나 액운을 가져오는 신들과 동일시했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숫자 발명의 오묘함을“신이 정수(正數)를 창조했고, 그 밖에 나머지는 인간의 작품이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의 발명이다. 몇 천 년 혹은 몇 만 년에 걸쳐, 세계 곳곳의 문명을 통해 숫자는 발명에 발명을 거듭했다.‘숫자의 탄생’은 인간의 지성이 보편적이라는 것, 그리고 진보가 인류의 집단적이고 문화적이며 정신적인 장비를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 준다. 수는 일단 한번 받아들여지면 어디에서나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전 세계에 4천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고 그중 수백 개는 폭넓게 전파되었다. 또 수십여 종의 알파벳과 문자언어 체계가 언어를 옮겨 적는 데 쓰이고 있다. 하지만 기술(記述) 기수법은 현재 오직 하나뿐이다. 오늘날 숫자야말로‘진실로 유일한 세계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숫자는 어디서 온 걸까? 옛날에는 어떻게 셈을 했을까? 누가 0을 발명했을까? 이 책은 이런 어린아이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숫자 혹은 셈 능력은 말하기나 걷기처럼 자연스러워, 마치 타고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숫자는 불의 사용이나 농경의 발달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인류가 발명에 발명을 거듭해 오늘 이 모습에 이르렀다. 숫자의 역사는 그래서 선사시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인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 여행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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