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대표격인 2635세대(26세~35세). 근ㆍ현대 중 가장 풍요로움을 누리며 핵가족 속에서 자라서 개인주의, 자기 중심주의를 지닌 이들은 취업난의 그늘을 겪으며 학점과 스펙을 갖춰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하므로 정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조금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그 놈이 그 놈’같은 혐오스러운 정치판에 다시 질려 냉소주의와 귀차니즘에 빠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 세대’, 그들의‘정치적 무관심’요인은? “경제적 풍요에 따른 개인주의와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한 현실”
대표적‘정치 무관심세대’라고 불리는 2635세대들은 386세대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국가 중심적 규율에 맞서 싸우며 활발하게 정치적 문제에 참여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2635세대는 386세대로부터 이미 민주화된 사회를, 그리고 기성세대로부터 경제적인 풍요를 물려받은 세대로 80년대 초반 대부분 유복하게 자랐다. 그래서 기성세대처럼 내키지 않는데도 자신의 몫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이러한 경제적 풍요속에서 개인주의를 배우게 되어, 주관적 자아실현과 감성과 개성을 중시하며 자기 중심주의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갑자기 늘어난 청년실업자와 30~40대의 조기퇴직 붐은 이러한 2635세대를‘현실’의 길로 내몰았다. 풍요로운 성장기와 달리 대학문을 나온 이들에게는 변변한 일자리 하나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고, 한 청춘시트콤의 대사로도 등장했던 '청년실업이 80만에 육박하는 현실의 냉혹함을 배운 것이다. 그러면서 2635세대는 정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자신의 취업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고‘믿을 건 나뿐’이라는 개인주의적 생각이 더욱 팽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청년실업대란 속에서‘내 코가 석자’인 만큼 정치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에 신경을 쓸 만 한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온통 관심을 쏟을 뿐,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적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긴다.
선거ㆍ정치에 무관심, 학점ㆍ취업이 우선인 대학생들
특히 선거를 실시할 때 대학생들의 개인주의로 인한 정치 무관심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학교 곳곳에 선거 관련 혹은 부재자 투표관련의 대자보들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에 대한 글을 눈여겨보는 학생들은 결코 많지 않다. 정치권에 너무 무관심해져 있어 자신의 지역구에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그들의 관심은 학점이나, 토익점수, 취업관련 분야로 옮겨져 있어 곳곳에 붙은 대자보들도 그들의 시선을 잡지는 못한다. 이들에게 과거의 대학생들이 정치의 민주화를 위해 피흘린 투쟁의 역사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동떨어진 사건이 되어 버렸다. 386세대가‘투쟁’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면 이들은 취업을 걱정하며 도서관, 학원으로 향한다. 왜 대학생들은 정치나 사회참여에 무관심해지고 있을까? K대에 재학 중인 김 모(25)씨는“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내놓는 정책들이 하나같이 학생들에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S대에 재학 중인 임 모(20)씨는“정당에 대한 불신감이 크고, 선거를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지금은 우리 사회가 많이 민주화돼 독재와 불의가 많이 줄어든 만큼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변화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에서 학생 3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정치참여가 줄어든 원인'에 대해 39.2%의 학생들이‘개인화 풍토 때문’이라고 답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38.9%의 학생들이‘취업에 매진하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이어‘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줄어들어서’란 답이 11%였다. 실제로 S대에 재학 중인 강 모(25)씨는“예전에는 공동의 적이 있었고 투표로 무언가를 바꿔야 할 의무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를 거의 못 느낀다”고 말했다. 결국 투표를 할 특별한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첫 투표를 행사하게 될 Y대 재학 중인 이 모(19)씨는“아직 저학년이지만 취업난에 대한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며“정치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에는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영어공부 등 취직 준비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후보나 공약에 대해 따로 검토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질병‘귀차니즘’도 한 몫 “투표일은‘선거권을 행사하여 정치에 반영하는 날?’vs‘직장ㆍ학교 안가는 날’”
▲ 한 지역선거의 투표장. 투표하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 무관심의 요인으로는 현대인의 일명‘귀차니즘’현상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귀차니즘이란‘귀찮다’라는 단어의 어간에 영어의 접미사‘~ism’을 붙여 만든 단어로써 네티즌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 단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개인의 행동과 사고력의 범위를 양심적 도덕적 신념이나 물질적 권력 지향적 목표, 혹은 무력적 정치적 강제에 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자기 자신의 두뇌를 포함한 신체’를 가능한 한 귀찮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귀차니즘’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닌 일체의 일을 귀찮아하는 개인주의에 그 근본을 두고 있으며,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능하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기 싫어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게으름, 불성실과 나태가 사회의 비판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를 떳떳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이런 상태에 대해서 과거보다 너그럽게 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언가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귀차니즘 때문에~”라면서 마치 핑계를 대듯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이렇게‘귀차니즘’현상이 팽배하게 된 원인은 경제적 풍요와 인터넷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하여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크게 생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으므로 나태하고 불성실하게 되었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컴퓨터 오락이나 만화, 엽기물 등의 수많은 등장으로 현실도피를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증가하였으며 성공과 자아실현의 기회가 제한됨으로 만성적 무기력과 현실도피성향이 더욱 확산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수의 공통 성향으로 발전시켜‘귀차니즘’이 탄생되었고 선거 및 정치에 관한 무관심에도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투표일이‘자신의 선거권을 행사하여 정치에 반영하는 날’이라기보다는 그저‘직장, 학교에 안가는 빨간 날, 혹은 휴일’이라는 이미지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 주소지와 현재 거주지가 다를 경우 부재자 신고를 하고 부재자 투표를 행하면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부재자 신고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런 방법을 찾는 것 또한 귀찮아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태반이다.“투표하려면 구청까지 가야하고, 절차도 너무 복잡하다. 학교에 투표소가 있으면 모를까, 귀찮아서…”J대에 재학중인 김 모씨(22)의 말이다. 김씨는 부재자 투표 신고도, 투표를 위한 귀향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울러 김씨는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절차가 복잡하고, 귀찮다”고 일축했다. 이어“굳이 투표를 위해 주소지를 옮길 이유도 없고, 서울에 살면서 고향지역에 나온 후보들을 찍는 것이 진정한 국민 참여냐”고 반문했다. 또한 김씨는“투표일은 학생들에게 쉬는 날 이상의 의미는 없다”며“취업이나 학업성적 때문에 바쁜데 다른 이슈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소지에 살고 있더라도 투표일에 참여하지 못하면 부재자로 신고하고 얼마든지 투표에 참석할 수 있다. 일찌감치 부재자 투표에 참여한 뒤 투표 당일을 온전히 쉴 수 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는 젊은 유권자가 더 많은 현실이다.
정치적 냉소, 정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 “각종 비리를 저지르거나 당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잘못이 커”
▲ 당쟁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치 참여를 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이다. 냉소주의는 정치 구조에 대한 불신감이나 정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냉소주의는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당론에 얽매여 당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잘못이 원인이다. 국민을 대변하여 정치를 행하는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보다는 항상 무력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국회의 정치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지역주의, 파벌주의, 연고주의 형태를 항상 띠고 있었으며, 정치판과 정치인들은 언제나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있었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정치 자금이 불투명하게 오고가며, 부정으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지 않고 권력이 있는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집행되는 등 정치인에게는 법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증명되어 왔다. 이렇게 대한민국 정치인과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더욱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얽매여져서 국민들은 정치인은‘누가 뽑히든지 다 똑같다’,‘어차피 해보나 마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식으로 여기며 불신하게 되었다. 또한 분단 이후 극심한 이념의 대립 및 이데올로기의 왜곡과 조작으로 비슷한 색깔을 가진 보수정당 뿐 뚜렷이 차별화 되는 정당이 없어‘어떤 정당을 선택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식의 선택권이 무력화되고, 할거주의의 양태로 나타나는 패거리 정치문화의 악순환으로 국민들은 정치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국민들은 새롭게 정치계로 진입하려고 하는 입후보자들에게도 어떠한 희망도 바라지 않는다. 후보들 간에 차별성 있는 정책들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들도 실현 가능성이나 타당성 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국민들에게 주관심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공약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막상 당선이 되면 그 공약들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냉소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자신이 선거를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며, 이런 정치 무력감은 다시 냉소주의와 무관심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 기성세대의 정치 무관심 정도와 대학생의 무관심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일간지에서 실시한‘정치에 무관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2%(264명)가‘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껴서’라고 대답했다. 대학생들 역시 대립과 반목, 당리당략과 비리에 얼룩진 정치판의 모습이 보기조차 싫다는 것이다. 대학생 정 모(26)씨는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에 대해“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아닌 싸움질하는 국회에 넌더리가 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 모(27)씨도“정책은 없고 당리당략과 기득권 유지에 바쁜 정치는 가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외에도‘나와 상관없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29.4%(172명),‘아직 어리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9.6%(56명)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현대의 정치과정의 거대화와 복잡화 “어렵다, 복잡하다” 현대 정치 과정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일반 대중은 무력감과 소외감을 갖게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무력감은 마침내 무관심의 온상이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정치는 어려워서 일반인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정치는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뜻대로 되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정치는 전문적인 정치가에 전적으로 일임해 두려고 하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태도, 일상생활에는 별로 정치적 지식이 필요 없으므로 오히려 사적 생활에만 전념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도피적인 태도 등으로 나타나기 쉽다.
‘귀차니즘’과‘개인주의’,‘냉소주의’에 빠져있던 2635세대가 달라졌다. 지구 곳곳에서 분노한 청년들이 독재, 불의, 부정, 부패, 비리, 실업에 항거하고 나섰고 그 구심점에는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자리 잡고 있다. 금년 1월 튀니지의 가난한 시골에서 한 젊은 채소행상이 여경한테 손수레를 빼앗기고 스스로 몸을 불태워 분노를 말할 때 그것이 재스민 혁명의 시발이 되리라고 세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분신이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를 타고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아랍권에 민중항쟁을 촉발하리라고 말이다. 아랍권에서는 알자지라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관제언론이 관급기사만 배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SNS가 진실을 말하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랍권이 분노하고 연대하고 있다. 분노의 물결이 국경을 넘고 넘어 유럽 전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 태양의 문 광장에‘분노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삽시간에 5만 명으로 불어났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연대한 청년들이었다. 국가의 불공정한 처우와 정책, 청년실업 문제, 등록금 문제 등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체제에 순응해왔던 그들이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소통의 도구가 되어 형성된 공동체에는 지도부가 없고 비폭력적이다.‘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난 그들은 자발적이고 개인적으로 광장에 나간다. 거기서 정치권력의 부패, 경제정책의 실패를 질타하며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말한다. 광장에서는 거대담론만 말하지 않고 이웃으로 다가가 고통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 6월 마드리드에서는 그들이 70대 노인의 집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값 폭락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힌 집이 차압될 처지에 놓이자 그들이 막아섰던 것이다.
‘2635세대’의 관심이 필요한 때
한국 젊은이들의 분노의 불길은 이미 2008년 5월 촛불로 나타났다. 어린 여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먹고 잘 시간도 빼앗는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쯤으로 치부될 듯 했지만 그 촛불이 삽시간에‘미친 소 반대’로 옮겨 붙어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더니 들불처럼 번지며 밤마다 분노를 태웠다. 수만, 수십만, 백만의 함성에도 권력은 귀를 틀어막았다. 돌아온 메아리는 물대포, 방패, 곤봉, 군화 발, 체포조란 유혈진압이었다. 촛불이 꺼진 다음에도 현장채증 사진을 갖고 끝까지 추적해 처벌했다.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 검찰, 법원이 결탁해 수천 명에게 수 백 만원씩 벌금을 때렸던 것이다. 촛불 저항이 비폭력 시민불복종운동이었지만 말이다.‘2635세대’들은 거기에서 굴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 토론방에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며 촛불을 들었다. 그들은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참여자라 운동가요도 지도부도 없었다. 물론 중현(衆賢-smart mob)의 특성을 이해 못한 탓인지 지도부라고 자처한
인사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분노한 사람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네트워크를 형성한 공동체였다. 족벌신문과 관제방송에 대한 불신이 인터넷 생중계,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1인 미디어를 불러내 거짓 없는 생생한 현장을 전달했다. 3년이 지나 지금은 이동성과 휴대성이 훨씬 진화된 스마트폰이 무기로 등장했다, 그 스마트폰이 소통의 구심점이 되어 트위터, 뉴페이스가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아직도 모를 것이다. 4ㆍ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천당이라는 분당에서 왜 패배했는지, 대학가가 왜 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나 반값 등록금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는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반년 넘는 고공투쟁에 왜 박수를 보내며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가는지 말이다. 족벌신문과 관제방송이 아무리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더라도 소셜 네트워크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 이제‘정치적 무관심’의 대표주자였던‘2635세대’는 스마트한 신종기기들로 무장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정치판의 열혈 선두주자’로 앞장 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