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 전성시대

“엇, 금요일 밤 약속은 좀 곤란한데. 이번 주에 장재인이 떨어질지 허각이 떨어질지 확인해야 하거든. 문자로 투표도 해야하고” 몇 달 전 슈퍼스타K 시즌2가 한참 생방송을 하고 있을 때는, 금요일 저녁이니 만나자는 지인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리고 결국 존박이 우승하리라는 대다수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허각은 떨어지지 않았다. 최종 무대에 선 허각과 존박은 누가 봐도 극명한 스펙의 차이를 지닌 인물들이었으나, 대중은 허각을 선택했다. 이는‘개천에서 용난다’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주장의 현실성에 대한 대중의 로망이 불러낸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주장하듯이‘공정한 경쟁’에 의한 당연한 결과였을까.

브라운관 속 서바이벌 세상

MBC‘댄싱 위드 더 스타’,‘집드림’,‘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2’, SBS‘기적의 오디션’,‘김연아의 키스&크라이’,‘다이어트 서바이벌’,‘K팝 스타(12월 방송예정)’, KBS2‘휴먼서바이벌 도전자’,‘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불후의 명곡2’등이 지금 공중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바이벌 현장이다. 여기에 케이블 방송까지 더하면 두 배이상으로 훌쩍 늘어나며 거기에 케이블 방송에서 보여주는 외국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요즘엔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물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큰 틀은 같지만(많은 도전자가 등장해 특정한 룰에 따라 죽거나, 살아남아 다음 도전을 계속한다), 도전의 내용과 도전자의 면면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취향에 맞게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아닌 경우에는 잠깐 접하는 걸로는 특별한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는 약점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 예능프로그램과는 달리 매 장면 웃음에 대한 강박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청자가 채널을 돌린 그 순간 도전자가 엄청난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든가, 불우한 과거사를 들먹이며 눈물을 짓고 있다든가 하면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는 것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강점이다. 우리는 전 핸드폰 세일즈맨 폴 포츠의‘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한 곡만으로 그를 기억하게 되지 않았는가. 또한 임재범의‘너를 위해’는 시청자를 이유 없이 울렸다.

우리는 왜 서바이벌에 열광하는가-공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로망

모든 것은 경제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가장 상업적인 TV속 세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란 말에는‘어째서 요즘엔 TV만 켜면 서바이벌 프로그램 일색이냐’고 투덜거릴 수도 없게 된다. 그러면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서바이벌을 소모하고 있는 것일까? 현대는 토머스 홉스가 주장했던‘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의 시대’가 맞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힘겨운 경쟁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좌절시키는 건 나보다 좋은 조건에서 수십 보는 앞서 출발한 사람에게만 주목하는 세상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이 세상에는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공정한 규칙’이 그 곳에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침체된 경기와 과열 경쟁으로 지친 대중들에게 이미 수차례 좌절을 맛본 젊은이들의 치열한 도전은 그 자체로도 뜨거운 감정이입의 대상이 된다. 노력과 재능만으로‘개천에서 용나는’것을 보고 싶은 대중들의 로망이 불러일으킨 감동인 것이다.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묘미는 다듬어지지 않은‘원석’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전자의 노력, 좌절, 실망, 위안, 재기 등의 변화에 우리는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결과 뿐 아니라 과정과 흐름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희로애락과 감정의 진심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바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해 가장 성공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슈퍼스타K’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해 낸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단순한 노래의 경연만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스펙이 떨어지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열악하고 불우한 성장환경, 그리고 가수가 되고자하는 진정성 넘치는 노력과 열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제작진의 편집능력이 빛을 발한 프로그램이었다. 잔인하다고 욕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을 가져오며, 때로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감동을 자아내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정석’이었다.

우리는 왜 서바이벌에 열광하는가 - ‘리얼’보다 더‘리얼’한 그들의 경쟁

TV속 세상은 언제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장자연 사건’도 그러하고, 소위 말하는‘라인 타기’도 그러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프로그램들도 우리에게 TV속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줬으니까, TV속 세상이 정말로 TV속 로맨틱 드라마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정말로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TV속 포장된 세상을 보며 자꾸 진실을 잊기도 했다. 예능프로그램에는 예쁜 여자 스타들과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남자 스타들이 나와 짝짓기를 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심각하지 않은 실수담을 털어놓으면서 창피해한다. 예쁘게 포장된 TV속 세상을 보며 우리는 깔깔대고 웃기도 했지만, 사실은‘외적으로 나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인데 많은 것을 가진 그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예쁘기만 하던 여자 스타들에게 의외의 허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잘난 줄 알았던 그들이 사실은 무식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사실 그녀들의 민낯은 썩 예쁘지만도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작진이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던져준 미션에 맞게 나름의‘인간적인’반응을 보이는 스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짜증도 내고, 민망해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추한 모습도 보이는 그들이 조금 더 나와 비슷한 것 같아서 좋았다. 프로그램 제작 차원에서 보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제 또 식상해지기 시작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대신해 줄‘조금 더 리얼’하고,‘조금 더 감동’적이고, 그리고‘조금 더 나와 비슷한’느낌을 줄 수 있는 리얼 예능 형태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사전 대본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리얼 버라이어티의 출연자들은 제작자의 미션에 자신들이 반응하는 자체가 예능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이를 감안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모든 것이 진짜다.‘슈퍼스타K 시즌2’에서 김그림이 이기적으로 군 것도, 그래서 대중의 뭇매를 맞고 후회의 눈물을 흘린 것도,‘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탈락하자 이소라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도,‘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의 차가운 말 한 마디에 잔뜩 굳어버린 참가자의 모습도 진짜다. 100% 진짜일 수는 없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의 반응에 비하면 100%라 해도 좋을 정도로 진짜다. TV에서 진짜를 보는 일은 짜릿한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TV속 세상 체험은 더욱 생생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서바이벌에 열광하는가 - 내가 선택한 아웃사이더가 기회를 얻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기회를 잡기 힘든 일반인 아마추어들도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을 통해 당락이 결정되는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1970~1980년대에 대학가요제가 주류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지 못한 이들에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주었듯이, 오디션 프로그램도 대형 기획사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에게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디어 사용 환경의 변화이다. SNS시대가 열리며 우리는 참가자들의 생활과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보나 사용자들의 의견을 손쉽게 획득ㆍ유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생방송되는 오디션은 대부분 시청자의 문자 투표나 인터넷 투표의 결과가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이었는데, 이에 시청자들은 단지 서바이벌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결과를 바꾸고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참가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제도로 인해 승자가 실력보다 인기 위주로 뽑힐 수 있는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과거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이제 막 생겨난 것은 아니다. 50년대부터 방송사 주도로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가수를 만들어주는 노래자랑 프로그램 역시 서바이벌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연대회였던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등도 연례적으로 열렸고, 각종 경연대회를 통해 신인을 발굴하는 장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사장되기 일쑤였다. 지금 서바이벌이 단지 경연 장면 뿐 아니라 참가자의 개인사에 집중하거나, 경연을 준비하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주어 참가자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같은 음악이라도 더욱 감동적으로 와 닿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정말‘경연대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 및 산업의 흐름을 반영한 최근의 사례라면 2001년‘초특급 일요일 만세’를 통해 방송된‘영재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 2006년‘슈퍼스타 서바이벌’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사례는 박진영/JYP엔터테인먼트가 SBS와 공동으로 공개 오디션을 진행한 데에서 생겨났다. 이외에 2001년 MBC의‘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인‘악동클럽’을 통해 5명의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훗날 최근 기적과 같은 시청률 행진을 벌이면 이슈가 되었던‘슈퍼스타K’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실질적 기원으로 대접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해외에서도 가수 데뷔를 목적으로 경연을 벌이는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2000년대에 업그레이드된 해외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꼽아 보자면, 미국의 대표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아메리칸 아이돌(2002~)’이 9시즌을 넘겼고, 영국에서도‘The X Factor(2004~/전신은 2001년의 Pop Idol)’,‘브리튼스 갓 탤런트(2007~)’등이 인기를 끌었으며, 호주에도‘Australian Idol’,‘슈퍼스타를 찾습니다(Deutschland Sucht Den Superstar, DSDS)’등이 존재한다. 이처럼 각국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서바이벌의 한계 - Winner takes it all
우리는 이미 서바이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팍팍한 현실에 벗어나 잠깐 TV프로그램을 즐기며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휴식 시간동안에도 우리는 경쟁에 목을 매야하는 것일까? 서바이벌 프로그램 자체가 가지는 폭력성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미션에도‘NO’하기 힘든 출연자들에게 극한 경쟁을 시키고 느긋하게 푹신한 소파에 앉아 관람하는 우리의 모습은, 검투사들의 피투성이 싸움을 보며 환호하는 로마 시민들과 조금도 통하는 데가 없을까?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경쟁’과‘탈락’이라는 자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서바이벌 방식을 취해야만 가수의 노래에 집중하는 현실과 그렇게 해야만 확보할 수 있는‘시청률’이라는 잣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의식과 성과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다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일반인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고 광고하지만, 오히려 약자들을 이용해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고, 시청률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종 한두 명의 우승자를 위해 수많은 참가자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슈퍼스타K’가 시즌3 도전자를 모집하면서 내건 우승상금 규모는 무려 5억 원. 현금만 3억 원에 음반제작비 2억 원이 더해지고 이에 준하는 부상도 예고했다. MBC‘위대한 탄생’의 우승 상금 규모(현금 2억 원과 음반제작비 지원 등 총 3억 원)를 뛰어넘는다. CJ 계열의 tvN도‘코리아 갓 탤런트’의 상금을 3억 원으로 책정했다. 2009년 온스타일 채널이‘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우승 상금으로 5천만 원을 내걸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수년 새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형적인‘승자 독식 구조(Winner takes all)’다. 수억 원의 상금, 최신식 자동차 등 부상도 모두 우승자에게만 돌아간다. 다른 참가자는 말 그대로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둘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리얼리티로 중계되며 방송사의 시청률 소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서바이벌의 한계 - 더, 더, 더, 자극시켜줘. 그게 편집이든 연기든 상관없으니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방송물이기 때문에 밋밋한 상황을 그대로 내보내기보다는 극적 구성을 가미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참가자의 실력과 능력보다 볼거리와 스토리, 감동거리에 집착해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원자의 사생활과 아픈 상처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줄 뿐 아니라, 오히려 편집을 통해 극대화시키고 있다. 결국 순수한 오디션이 아닌, 방송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시청률의 포로가 되어 참가자들의 도전 정신과 과정을 담기 보다는 가정사나 개인 사생활, 자극적인 합격/탈락 순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큰 폐해다.

서바이벌의 한계 - 더 이상 보여드릴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온갖 장르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방송되었다. 이제는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식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수요도 공급도 아주 떨어진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집 드림’은 이러한 걱정을 현실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집 없는 신청자를 받아, 서바이벌 퀴즈를 통해 1등에게만 집을 선물한다. 신청자들은 다 저소득 무주택자다. 저소득 무주택자라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 누군가에겐 고통일 수 있는 문제기도 한데, 그것을 방송사에서 시청률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집드림에서는 퀴즈를 풀어 한단계한단계 올라가는 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 퀴즈는 토너먼트 식으로 1대 1로 대결하게 되며, 어떤 상식도 필요 없는 마구잡이 문제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런 문제들을 어쩌다가 잘 맞춘 가족이 집을 상금으로 받는 것이다. 앞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공정한 경쟁’이라 했었다. 화려한 배경을 지니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 자체가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 드림 같은 경우에는 서바이벌과, 상금만 있을 뿐 어떠한 감동을 느낄 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다.‘집드림’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이 프로그램의 제작회의 과정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 같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다▶이미 연예인이 나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나는 가수다)와 같이 묶여 편성될 테니 이번엔 일반인 도전으로 가자▶오디션 종류는 너무 많으니 다른 콘셉트를 잡자▶예전에 우리 프로그램에서 했던 집을 고쳐주는 프로젝트 괜찮았는데▶무주택가정에게 집을 준다고 하면 좋아하겠지, 신청도 많이 들어올 테고▶퀴즈쇼는 또 다른 역차별일 수도 있고, 예능적인 요소가 떨어질 것 같아▶집 드림 완성. 이것은 물론 비약이다. 그러나, 정말로 비약은 아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TV프로그램에게 기대하는 것도 완전히 새롭고 참신한 무엇인가는 아니다. 서바이벌 붐이라고 해서, 정말 괜찮은 콘셉트와 아이디어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일부로 만들지 않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제작비를 낭비하고, 도전자를 구경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 정도는, 방송 전문가들도 분명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10주년이 훌쩍 넘은‘인간 극장’이 어떠한 자극적인 설정과, 웃음에 대한 강박 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 지 오늘날 방송국 관계자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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