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도가니’열풍에 이어‘이태원 살인사건’,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부러진 화살’까지, 검찰과 법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화제에 오르며 스크린이 법조계를 흔들고 있다. 이 영화들은 스크린을 넘어 현실 법조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의 관련자들이 사건에 대해 다시 입을 여는가 하면, 이제는 정부 고위관료가 된 당시 사건 담당자들의 책임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시발점이 된 영화‘도가니’는 관객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영화 속에서 그려진 ‘전관예우’건에 대해 실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변호사, 판사의 변이 잇따랐으며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진화에 나섰다. 양 대법원장은“영화는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을 뿐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다”며“법원은 이에 관해 어떤 경로로든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도가니’사건의 관련자들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아직 남아있는 이‘전관예우’관습에 대해서 더 알아보도록 하자.
전관예우(前官禮遇)란 검색 사이트의 정의를 빌리자면 전관예우(前官禮遇)란‘대한민국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판검사를 하다가 물러나 변호사를 갓 개업한 사람에게 법원이나 검찰에서 유리한 판결이나 처분을 내려주는 관행’을 말한다. 즉 판사나 검사로 재직한 사람이 변호사 개업을 할 경우 그가 맡은 소송 사건에 대해 유리하게 판결을 함으로서 변호사 수임료와 성공대가를 보장해주겠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전관예우의 매우 좁은 의미다. 전관예우는 처음 맡는 소송사건에만 해당한다기보다는 광범위하게 수 년에 걸쳐 관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사안이다. 또한 이러한 ‘전관’에 대한‘예우’는 법조계는 물론 오늘날‘관’이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관예우 방지체제
전관예우를 방지할 목적으로 개정된 1998년 변호사법에 따르면, 판검사로 재직하던 전관변호사는 개업 후 2년간은 퇴임 전에 소속되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형사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 정직 이상의 징계를 두 차례 이상 받고도 중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비리를 저지르거나, 두 차례 이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변호사는 영구 제명된다. 2011년 개정된 변호사법은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판검사 등이 변호사 개업 시 퇴직 이전 1년 이상 근무한 곳에서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전 변호사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에 유의하여 금지 기간을 1년으로 하고, 해당 기관을 법원이나 검찰청, 군사법원, 금융위, 공정위 및 경찰관서 등으로 한정하였다. 형사처벌 조항을 두지 않고 대한변호사협회가 자체징계를 하게끔 하였으나, 실제 징계한 사례는 드물고, 처벌의 강도가 경미하여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
전관예우의 실례-김홍수 게이트 2006년‘김홍수 게이트’는 당시 현직으로 근무하던 고등법원의 부장판사가 금품을 수수한 사건으로 전관예우 풍조가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김영광 검사, 경찰서장인 민오기 총경 등이 법조 브로커 김홍수로부터 금품을 받고 해당 재판이나 사건 처리과정에 도움을 준 혐의로 구속되어 실형 또는 집형유예를 선고 받았다.
전관예우의 실례-부산저축은행사태
▲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의 집회
2010년 말부터 올 초까지는 온 나라가 부산저축은행의 불법예금인출사태로 들끓었다. 이 사건은 은행의 경영진이 예금자 예금의 절반인 4조5942억 원을 불법적으로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출하였던 것이다. 현행법상 저축은행이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그들은 대규모 건설공사 등에 뛰어들어 막대한 손실을 입고, 또 그 대금의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등 다양한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이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의 모럴헤저드와 이를 관리ㆍ감독해야 하는 금융감독원의 암묵적방조로 인해 저질러진 범죄행위였다. 금융감독원의 전관들이 감사에 내려가며, 은행을 감독해야 하는 감독관이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다. 또한 해당 저축은행은 경영진을 친인척의 사금고로 전락시켰으며, 파산결정이 났을 때도 친인척과 고위사회지도층에게만 이러한 정보를 알려주어 사전인출을 하도록 했다. 이 사태는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예금자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임이 알려져 부산지방의 국회의원들이 이와 같은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주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주장했으나 형평성 및 법리상의 문제로 잊혀지게 되었다.
전관예우의 실례-과징금미납사건 또한 지난 9월에 보도된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서 4대 정유사의 담합을 적발해 4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한 정유사만 과징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로펌 소속 전직 공정위 간부의 자문을 받아 과징금 부과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경실련이 국내 대형 법률회사 여섯 군데의 고문 등의 출신 기관을 분석하자, 90%가까이가 공직자 출신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퇴직 공직자의 전관예우 관행을 끊기 위한 대책을 확정했다. 현행법상으로는 로펌 소속 퇴직 공직자가 자문 등을 했을 경우 해당 지방 변호사회에 업무활동 내역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껏 자문한 내용만 제출하면 통과되었지만, 앞으로는 전관이 받은 보수까지 신고하도록 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액수까지 신고하도록 해야 전관예우의 폐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 방침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전관들이 신고한 돈의 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보완책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행위들은 수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을 뿐,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익이 있다면, 전관예우도 좋다
전관예우 풍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민 대다수는 민ㆍ형사 소송에서 실력보다는 전관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19일 법무부가 이춘석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전관예우 관행 근절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보다 전관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법무부가 정책 자문을 위해 선정한 정책고객 2,64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실시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송 발생 시 선임을 원하는 변호사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3%가‘수임료가 비싸도 전관변호사를 택하겠다’고 답했다. 반면‘전문성 있는 변호사를 택하겠다’는 비율은 40%에 그쳤다. 나머지 7%는‘수임료가 저렴한 비 전관 변호사’를 택했다. 전관을 선호하는 이유로는‘사건에 승소할 확률이 높아서’가 47%로 가장 많았으며‘전관이 담당 판검사에게 사건을 유리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는 31%로 두 번째였다.‘최소한 불리한 판결을 받을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도 20%나 차지했다. 반면‘전관 변호사가 전문성이 높을 것 같아서’라는 응답은 5%에 그쳤다. 실제 소송에서 의뢰인들은 변호사의 실력이나 전문성보다는 전관예우 효과를 더 기대한다는 의미다. 조사 대상자들이 기대하는 전관의 특혜로는‘보석 석방, 구속영장 기각 등 신병처리 관련’이 45%로 가장 많았다.이 밖에는‘집행유예 등 가벼운 판결(32%)’,‘수사과정 편의(14%)’,‘기소유예 등 경미한 검찰처분(9%)’ 등이 뒤를 이었다. 전관예우 근절 방안으로는 44%가‘양형ㆍ구속 및 사건처리의 투명한 기준 정립’을 꼽았다. 이어‘전관 변호사의 수임제한(20%)’,‘법조계 의식개선(18%)’이 뒤를 이었다. 이 의원은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법조계에 전관예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고 꼬집었다.
전관들이 털어놓는 전관예우
우리에게 전관들은 재임 시절 쌓은 연줄을 이용해 사건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존재로만 인식돼 있다. 하지만 막상 전관들은 전관예우 풍조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는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법원 안에서 전관예우 문제는 그동안 많은 시정이 이뤄져 이제는 오히려 역차별을 걱정할 정도로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변호사 개업한 후에 1호로 맡은 사건이 바로 기각된 사례를 본 일이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전관들에게 역차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향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예컨대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로펌에서 1주일에 맡는 대법원 상고 사건이 30건은 족히 돼 웬만한 사건 아니면 염치상 법원에 일일이 전화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전관에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 가운데 30% 정도만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관예우는 제대로 통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는다. 모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의 말이다.“사무실에서 의뢰인이 공범이면 형을 낮출 수 있는데 주범으로 기소됐으니 영 힘들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듣고 검찰 출신 전관이 좀 움직이더니 바로 다음 기일에 검사가 주범에서 공범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놀랐습니다”전관들은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정보력만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에게 고용된 L변호사는“다른 건 몰라도 구속만 면하게 해달라는 의뢰인들이 찾아오면 전관이 검찰에 전화를 걸어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안 할지를 확인한다”며“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확인하면 억대의 성공보수를 부르며 사건을 맡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 수임을 거절한다”고 털어놨다. 일반 변호사들이 전관을 가장하기도 한다. 개인 변호사 C씨는“수도권 신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허위 분양광고 사건을 다른 변호사가 담당하다 해임돼 맡게 된 적이 있다”며“그 변호사는 자신을 재판을 맡은 법원의 판사 출신이라고 의뢰인들에게 소개했는데 나이만 많을 뿐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사실이 나중에 들통났다”고 전했다. 전관이라고 해서 사건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은 누가 전관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 K변호사는 올해 개업 후 3개월 동안 사건을 한 건도 수임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들이 사건을 물어다 주는 브로커들을 애용하는 이유다. 브로커들은 보통‘영업 사무장’이라는 직함으로 뛴다. 일부 검찰 직원들과 검찰 전관 사무장의‘커넥션’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소환된 피의자가“변호사로는 누가 좋겠느냐”고 눈치를 살피면 직원 대부분은“아무나 찾아가세요”라고 대응하지만 일부는 검찰 전관 사무실의 사무장 명함을 주거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식이다. 커미션은 수임료 가운데 사무장이 5~10%,이어준 직원이 20~25%를 가져간다고 전해졌다. 변호사법 위반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사무실을 개업할 때 이런 용도로 직원을 데리고 가려는 검찰 전관이 일부 있다”고 귀띔했다. 전관의‘약발’은 다른 전관이 나오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경쟁자를 막기 위한 눈치전도 치열하다. 경기도의 한 지검에 있는 A부장검사는“지난달 검찰 인사가 나기 전 난데없이 한 전관 선배가 찾아와‘요즘 변호사 시장이 어려우니 개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며“순수한 의도 같아 보이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개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A부장검사는“한 부장검사는 지난해 개업하려고 했는데 바로 옆방의 부장검사가 먼저 사표를 써서 못 그만두고 아직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전관예우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변호사법이 지난 5월17일부터 시행되면서 중도 퇴직을 고민하는 판검사들의 선호지도 바뀌고 있다. 올해 초 개업한 판사 출신 C모 변호사는“중도 퇴직을 고민 중인 판사들 사이에선 서울중앙지방법원보다 서울 외곽 소재 법원이 인기”라고 귀띔했다. 개정 변호사법은 최근 1년간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사건이 가장 많은 서울중앙지법에 있다 퇴직하면 이곳 사건을 못 맡기 때문이다. <출처▶2011/09/14 한국경제>
전관의 노하우와 중재능력
관습적이든 공식적이든 모든 제도와 사회 규범은 동전이나 칼날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어떻게 활용하고 운용해 나가느냐,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될 수도, 유익한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사건들의 경우에는 전관이 본인의 책임감과 임무를 망각하고 이권을 찾아 움직이며 결국은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 경우였다. 전관예우 관행의 폐단은 주로 이 같은 청탁이나 상황 왜곡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불합리ㆍ불평등한 고용행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 동전의 다른 면은 무엇일까. 먼저 광범위한 공사영역에서 오랜 시간 경험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민간영역에서 활용함으로써 민간영역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공동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나아가 민간과 관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돕고, 양 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중재하는 교각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하거나 근절할 수 없다면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외에도 물론 전관예우의 관행이 있다. 영미나 일본의 경우에도 우리처럼 법조계에 있던 사람이 대형 로펌으로 이직을 하거나 낙하산 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에는 분명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전관의 이직은 자유로우나 이직 이후의 활동은 엄격히 제한하며 활동을 감시ㆍ감독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의 제제는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직자체에 제약이 많다. 물론 이직 이후의 활동 역시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위반할 경우 실형에 처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 외에도 연금박탈이나 연금삭감까지 실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정기간의 취업만을 제한하며, 취업 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방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앞에서 밝혔듯 2011년에 개정한 변호사법에 따르면 전관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보장을 위해 퇴직 이전 근무한 곳에서의 사건수임 제한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며 해당 기관 역시 줄이는 등 지금까지보다 더욱 느슨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취업 후 활동에 대한 관리감독의 부재는 결국 지속적인 활동통제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행위로 연결되기 쉽다. 그리고 전관예우의 관행은 더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취업제한 분야를 강화하고, 취업 후 관리감독을 맡을 전문적인 조직의 신설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제도적 입법 활동으로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제도적인 조치 이외에도 전관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관료들을 먼저 계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관예우의 폐해는 결국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입게 된다. 오래된 관행을 뿌리째 뽑아낼 수 없다면,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 아닐까.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