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세대교체기,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목회자들이 간절해”
-성은교회 김인환 목사-

성은교회는 1974년6월2일에 박성로 목사에 의해 대치동 상가 3층에 임대로 세워져 현 재적 1500명에 이르는 교회로 성장했다. 1995년 현 예배당 대지 530평, 건평 1,200평을 봉헌하였고,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하였다. 현 김인환 목사는 초대 박성로, 2대 한진찬 목사를 거쳐 3대 담임목사이다. 김인환 목사는 미국에서 약 20년 목회를 했던 노하우를 가지고,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로 부목회자들이 자율적인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하게 한다. 교회를 사유화하지 않고, 교인들을 한 개인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설교에 중점을 두는 목회로 재미있고 온유한 말투로 설교하지만 Ice Breaker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김인환 목사가 담임목사로 온 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표어가‘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이다. 훈련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어 나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성은교회는 10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예배에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교회, 기도의 영성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훈련된 평신도 일꾼을 세우는 교회, 영혼을 구하는 일에 우선하는 교회, 젊은이들에게 새 비전을 주는 교회, 이웃과 더불어 섬기며 나누는 교회, 10개 이상의 지교회를 세우는 교회, 100명 이상의 교역자와 선교사를 지원하는 교회, 1000명 이상의 각 분야 최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 1000만 수도권 영혼을 책임지는 교회.

Q. 성은교회는?
성은교회는 강남이 막 개발이 될 때 들어섰습니다. 유명한 다른 교회보다 먼저 대치동에 자리를 잡았죠. 당시 대치동은 그리 발전하지 못한 동네였습니다. 1대 목사님께서‘성은이 거룩한 은혜’라는 뜻으로 성은교회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30여년전에는 젊은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중ㆍ고등부 청년들이 많이 배출되었었죠. 그러나 우리 교회 주변으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3, 40대 들이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집값이 폭등하여 더 이상 살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5, 60대의 연로하신 어른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가다 지금은 그분의 자녀들이 손자, 손녀를 낳고 가족들이 함께 오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청소년을 비롯해 사회적인 책임이 많이 따르는 리더그룹들을 복음으로 무장시키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형성케 만들기 위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는지 미국에서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인 프리스턴대학과 뉴저지출입대학사이에 위치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었습니다. 그곳 교회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70여명이 넘었고 그분들이 한국에 와서 대학교총장이 되고, 학회를 이끌어 나가고, 정계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자랑스럽기 그지없었지요. 이에 성은교회도 사회적 지도자를 배출해 내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Q. 김인환 목사의 스토리가 궁금하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 어려움 없이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때 서명을 받아 목사를 하게 되었죠, 처음 시작은 교목으로 시작을 하였는데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막 산업화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구로공단 가리봉공단이 형성되었던 때였습니다. 구로공단에 가서 공단 청년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어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기업들이 더 반기기 시작했어요. 회사의 사장님이 일주일에 한번씩 회사에서 와서 설교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주셨어요. 청년들이 믿음을 가지고 나서 성실히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죠. 주로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 타 지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었고요. 그러나 꽤 명석하고 학교성적도 대부분 좋았어요. 가정형편이 어렵다보니 공장으로 오게 된 것이었죠. 청년들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명문대 학생들과 힘을 모아 야학을 시켰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영어, 수학 독어, 사회 등 열심히 가르쳤지요. 당시 야학을 하던 청년들 중에는 목사가 된 청년도 있고, 야학을 통해 소명을 받아서 목사가 되고, 전도사가 된 이들이 꽤 많습니다. 가리봉동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목회할 때 가졌던 경험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의 첫 번째 목회였으니까요. 그때 신도들 이름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요.

Q. 성은교회에서 진행하는 국내활동, 해외활동은?
우리나라에서 빈부격차의 양극화가 가장 심한 영역이 교회입니다. 미국에서 미국연합감리교에서 목사 생활 20여년을 했지만, 미국교회는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기초 생활을 보장 해주죠.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들은 그렇지 않은 교회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성은교회는 작은 교회를 돕고자 합니다. 농촌교회나 개척교회 즉 어려운 교회는 점점 어려워지는 등 양극화가 너무 심해 성은교회는 어려운 교회, 작은교회 돕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목회포럼에 2년반 동안 몸담고 있었는데 그곳은 모든 교파를 초월한 개신교 목회자 200명이상이 모인 개신교 연합모임입니다. 그곳을 통해서 고향교회 방문하기, 명절에는 개척교회 방문하기 등의 운동을 펼쳤습니다. 현재 도시와 농어촌의 어려운 교회 약 40개 정도를 물질적으로 돕고 있으며, 군에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군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구에 있는 21사단을 지속적으로 선교하고 있어요. 재소자를 위한 교정선교, 장애인 선교도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는 루마니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중국, 몽골 등 여러 나라에 10개의 지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민을 위해 북경과 필리핀 마닐라에 한인교회를 세웠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힘으로 세계 곳곳에 10개의 지성전을 지은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보람을 느낍니다.

Q. 설교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항상 교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이야기를 삶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하다 보니 늘 교인들에게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은 설교를 한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민자 목회입장에서 성경을 읽어보니까 성경이 이민자의 이야기였어요. 아브라함이 첫 번째 이민자죠. 지금으로 말하면 현재 이라크땅에 살던 사람인데 하나님은 그를 가난한 팔레스타인으로 이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요셉 때 와서 요셉이 애굽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서 강제로 이민를 가게 되었지만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요셉덕분에 아브라함의 후손 70명이 애굽으로 이민을 갈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나라가 형성이 되려면 우선 백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죠. 고센의 비옥한 땅에서 그래서 400년 동안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이스라엘이 인구가 200만으로 증가 하게 된 것입니다. 한나라가 된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애굽에서 이스라엘백성이 400년을 산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400년의 애굽에서 의 노예생활은 무의미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비옥한 고센땅으로 이주시켜 번성하게 만든 것입니다.

Q. 본인의 목회철학은?
목사는 말씀이 무기니까 성경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설교도 성경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목사는 자신의 생각을 성경을 이용해서 전달해선 안 됩니다. 성경의 진정한 메시지를 찾아서 그 시대에 맞게 전해야 하며 자기사상을 성경을 이용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항상 강조합니다. 선교를 충실히 하여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미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사는 가난한자에게 항상 나눠줘야 합니다.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최대한 베풀려고 노력합니다. 작은교회, 시골교회, 지방교회, 연합집회 등에 가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어려운 교인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성은교회의 사역방식은?
성은교회는 감리교이며 저는 감리교를 전파하는 목사입니다. 감리교의 특징 중 하나는 영혼구원과 사회봉사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감리교 설립자인 존 웨슬리(영국 감리교 창설자)는 항상 강조했습니다. 또한 교회가 구원한사람들은 사회에 나가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성은교회는 해마다 하는 추수감사절 행사에서 힘든 이웃들을 먼저 챙깁니다. 예를 들어 금년에 과일이 흉년이라면 교인들에게 집에서 과일을 조금씩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것을 모아서 어려운 양노원이나 고아원이라든지 복지관에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9년 전에는 미얀마 정치 난민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단도 미얀마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돌봄을 받지 못한 미얀마의 난민들이 떠돌고 있음을 알고나서 성은 교회에서는 신길동에 집한채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삶의 쉼터로 제공했고 현재까지도 미얀마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성은교회에서 식량과 전기는 물론 김장을 해서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유흥을 조금만 자제하고, 성형수술을 자제하고, 골프를 자제하고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자’란 말을 많이 합니다. 현재도 러시아와 조선족학생이 신학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모든 자금을 다 대면서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Q. 한국교회의 위기론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미래 목회포럼’의 대표 생활을 2년 반 동안하며 강조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친절과 일치입니다. 다투지 말고 하나가 되자는 의미죠.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해 타 종교에 밀리는 상황입니다. 제 생각에는 기독교의 목소리가 작다고 생각해요. 사실 불교든 천주교든 약점이 없는 종교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들은 하나로 뭉쳐있어 언론게임에서도 강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점이 없을 수는 있지만 서로 힘을 모아 서로를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약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게 아닐까요? 또 하나는 도덕성 문제입니다. 목회자가 성적인 문제로 스캔들이 나는 일이 자꾸 터지는 것 말입니다. 영화 도가니에서도 그렇고요. 또한 기독교의 세습제도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 모르지만, 교회가 앞장서 세습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분명 득보다는 실이 되겠지요. 저는 20년 간 미국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것은, 한국교회가 아무리 부패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한국 교회는 아직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해서 기도원에서 한국 교인들만큼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교회의 좋은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주의 민영교도소는 감리교에서 세웠습니다. 교회는 교소도의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한다
‘언행일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해야 한다는 건데요. 사실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항상 믿음과 행함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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