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MB정부의 민영화 추진
KTX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 지난 달 대학로에서는 극작가 해어의 ‘철로(The Permanent Way)’가 공연되었다.“영국의 철도 조직이 멍청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죠. 요리사랑 웨이터랑 접시닦이가 각각 다른 회사에 소속된 레스토랑과 똑같습니다. 정말 멍청하게 운영하는 거죠”이 연극에는 철도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많은 이들을 통해 민영화의 ‘못된 구조’를 통찰하려는 것이 연극의 지향점이다. 연출가는“무책임하게 결정된 정부의 정책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럼 KTX 민영화는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꼭 경험해보아야만 알 수 있을까?
민영화[privatization, 民營化]
국가 및 공공단체가 특정기업에 대해 갖는 법적 소유권을 주식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외부계약, 민간의 사회간접자본시설 공급, 공공서비스사업에 대한 민간참여 허용 등을 모두 포함하나, 일반적으로는 외부계약 등과 구분하여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의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정권 하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예가 유명하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토지, 주식 등의 공공자산을 매각한다.
(2) 국가 독점기업을 대상으로 이른바 자유화를 촉진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를 촉진하여 경쟁시킨다.
(3) 국민이 공공 서비스에서 '탈출’(opt-out)하여 사적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장려한다.
임기 말 MB정부의 민영화 정책

민영화 추진의 속내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이명박 정부의 공약이었고 인수위 시절에는 대대적으로 민영화를 기획하기도 했다”며“4대강으로 인한 지출, 부자감세로 인한 세입 축소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비즈니스 프랜들리라는 국정방향과도 맞고 세외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촛불 정국이 시작되면서 대대적 민영화 공세가 막혔고 이제 임기 마지막 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며“임기 말년에 민영화의 정당성이 훼손되었음에도 무리하게 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도“임기 말 재벌대기업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동안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기에 저항을 피할 수 있었던 청주공항은 어느새 외국계 자본이 섞인 민간에 매각처리 되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평가되는 청주공항 매각 하한선이 300억 정도였지만,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는 불과 255억원에 청주국제공항관리(주)에 팔아넘겼다.‘졸속 매각’,‘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공공운수노조는 “공공기관들이 하나 둘 민간 기업에 팔릴 경우, 국민들이 져야 할 비용부담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고 공공부문은 돈 있는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경제가 어려워지고, 많은 것이 시장화 될수록 공공부문의 역할은 더욱 큰 가치로 지켜져야만 한다”며“그러나 현 정부는 이를 저버린 채 끊임없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오건호 실장도“애초 민영화 추진 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민영화를 계속하려 할 것”이라며“애초에 리스트에 없었던 KTX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것을 보면 남은 임기까지, 조건이 허락하는 한 공공기관 민영화는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권의 이해득실에 따른 민영화

무리한 민영화에 따르는 부작용
지금 정부의 민영화가 문제시되는 또 다른 이유는 졸속절차에 따른 것이다. 국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민영화 추진으로 인해 국민과의 갈등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 또한 무리한 민영화 추진은 공공기관의 노사관계 역시 악화시킨다. 2009년 인천국제공항 민영화를 둘러싸고, 공항공사와 노조가 대립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월 한국철도공사 직원 1만5700명은 KTX 민영화 도입에 반대한다며 소송을 불사했다. 이러한 노사갈등으로 인해 다수의 공공기관에서 단체협약이 해지되거나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노사갈등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일각에서는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노조 탓으로 돌리기 위한 정부의 불필요한 갈등 야기라고까지 한다. 지는 2009년 철도노조가 파업했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기억하면 이러한 반응이 부당한 것만도 아니다. 국민들의 화합을 위해 힘써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정서를 이용하고 이간질하여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인 파업권을 공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KTX 민영화의 문제
지금 정부는 14조원의 국민의 세금을 들여 만든 KTX를 대자본에 넘기려 하고 있다. KTX는 직원의 10분의 1로 연간 총매출액의 3분의 1을 생산해내는, 그래서 만성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황금알이자, 그 운영 이익금인 3천억원 덕분이 우리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원가의 절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민간기업에 넘길 부분은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목포, 수서~부산 고속철의 경영권이다. 민간과의 경쟁을 통해 철도사업의 경영적자를 탈피하자는 것이 정부의 주장. 그러나 경영 효율성이 떨어져 적자가 나는 부분을 민간의 창의력을 활용해 해결하자는 것이 민영화의 목표다. 그러니 KTX같은 황금노선을 민간업체에 임대료만 받고 넘기는 데는 어떤 의미도 없다. 국민 대다수가 KTX민영화를 1%의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통합민주당 원혜영 의원과 참여연대는 지난 1월 18일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민생경제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들은 KTX 민영화에 찬성의 세 배 이상으로 반대의 뜻을 보였다. 국토부는 KTX 민간 운영에 따른 요금 인하 효과를 강조한다. 운임을 최대 20% 낮춰 새마을호 운임으로 KTX를 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자면, 국토부의 주장을 그리 신뢰할 수는 없다. 국토부에서는 이미 수차례 일단 말해놓고, 실제 문제가 발생하면‘아니면 말고’라고 발뺌해왔다. 인천공항 철도 사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항철도는 현대건설과 동부건설 등 민자컨소시엄이 2007년 3월 개통해 운영하다 적자 누적으로 정부가 2009년 11월 철도공사에 떠넘겼다. 민자컨소시엄이 운영하던 공항철도는 승객 수와 수입이 애초 예측치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은? 물론 없다. 또한 민영화 이후 서비스요금이 인상된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철도 원조국인 영국에서도 민영화 이후 5년간 철도 운임비가 2배 이상 오르고, 안전사고는 늘어나 결국은 공영제로 되돌아간 사례가 있다. 정부에서는 민간과의 경쟁이 필요하다는데, 문제는 민간자본에 넘어갈 KTX 노선은 기존 노선과 80%가량 중복되며, 사실상 동일 노선에서 두 사업자가 경쟁을 하게 되는데, 철도의 고정궤도 특수성 때문에 열차 간 운행 경쟁은 불가능하다. 철도가 완전히 민영화된 일본에서도 지리적 분할로 경쟁체제가 유지될 뿐, 간선노선이나 동일노선에서 경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철도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는 산업이다. 이를민영화 할 경우 연극‘철로(The Permanent Way)’에서 말하듯“요리사랑 웨이터랑 접시닦이가 각각 다른 회사에 소속된 레스토랑과 똑같”은 멍청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운영자와, 시설관리자, 유지보수 담당자 등 철도 전문가들이 다원화된 조직에 각각 존재하게 되며, 이럴 경우 선로나 열차 고장 등 비상사태에 대응하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여기에 각각의 사업자가 경영을 위해 비용을 절감하면? 사고 위험은 더욱 커지고 서비스의 질은 저하될 것이 자명하다. 철도 모국인 영국의 민영화 실패 경험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여론조작에 나서다
국토부 산하 한국철도시설공단 KTX 민영화 찬성 여론을 위해 직원들에게 포털사이트 기사, 토론 글 등에 댓글을 달도록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댓글 예문을 제시하여 이를 그대로 옮기도록 지시하고, 댓글을 올린 후 캡처 사진을 제출하게 하는 등 직원들을 강제동원하고 있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내부 문서를 확인하자, 지난달 11일 오전 각 부서 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오전에는 포털과 다음 아고라에 댓글을 달고 오후에는 블로그글에 댓글달기를 해달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단은“시민단체 등의 철도민영화 반대 입장 및 조직적인 홍보에 적극 대처하라는 공단 이사장과 국토부 협조 요구가 있었다”며 전직원이 1개 이상 댓글을 달고 실적 제출을 하라고 요구했다. 실제 다음‘아고라’등에는 공단의 댓글 예문이 그대로 올라와있다. ‘KTX민영화 반대’청원운동 글에 달린“고속철도 민간 개방은 철도운영은 우리밖에 없다는 오만에 경종을 울리고 만성 적자인 철도를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라는 댓글도 그 중 하나다. 공단 공문은 11일 직원들에게 하달됐지만 이 글은 그보다 5일 앞선 시점에 쓰여 댓글 조직이 그 이전부터 실행됐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공단 측에서는 관련문서를 보낸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한 공단 관계자는“각 부서장급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은 맞지만 자율적인 업무협조 요청이었을 뿐 댓글 알바 조직한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물론 부서장이 업무지시를 내리는데, 그것을 자율적으로 받아들일 간 큰 직원이 있을 리는 없다. 또한 공단은 요청문서에 쓰인 국토부 협조 요구사항이라는 부분은 그렇게 해야 직원들이 잘 따라줄 것 같아 기재한 거지 사실 국토부에서 요청한 부분은 아니라고도 해명했다.
전기ㆍ가스까지, 민영화가 몰려온다
지난해 9월15일 유례없는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정전사태로 엘리베이터가 서고, 은행 업무는 일시에 마비되었으며, 병원에서는 응급 환자의 수술을 중단하기도 했다. 전력거래소는 늦더위 이상고온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송유나 연구위원은“전력산업의 발전 부문을 매각하려고 2001년 4월 화력 부문을 5개로 쪼갰고, 경쟁 관계로 바뀌다 보니 보령ㆍ삼천포ㆍ하동 화력발전소에 각각 문제가 생겼다는 정보를 서로가 공유하지 못했다. 결국 민영화를 위한 분할ㆍ경쟁 체제가 유기적인 대처를 불가능하게 했다”고 진단했다. 한미FTA로 인해 앞으로 전력산업의 민영화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한미FTA가 한국전력공사 지분의 40%, 발전설비 부문 용량의 30%까지 외국인 소유를 인정했기 때문. 특히 화력발전 5개사는 외국인 투자자가 30%의 한도 내에서 두세개의 발전회사를 매입할 수도 있다. 전기요금과 직결된 배전ㆍ판매 부문도 지분의 50%까지 외국인 투자가 허용돼 정부의 전기요금 규제가 ISD(투자자 국가 소송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의 가스요금 인상을 거부했다가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가스산업도 이미 소매부문은 민영화되어 안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 천연가스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도시가스 도매는 한국가스공사가 공급하고 있으나, 소매는 민간 사업자 33곳이 전국을 분할해 독점제로 운영해왔다. 또한 도시가스 요금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결정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한다. 요금은 인구 규모나 배관망에 따라 차별적으로 매겨지는데, 수도권 등 인구밀집지역은 보급률이 높아 요금이 저렴하지만, 지방이나 중소도시는 보급률이 낮아 요금이 높은 식이다. 이러한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 FTA에 따르자면 민영 지정독점기업은 요금을‘오로지 상업적 고려에 따라서만’매기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가스산업이 특정지역부터 민영화로 전환하는 식으로 된다면,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공공성은 훼손되고 요금은 인상될 것이라는 것이다. 외국자본의 힘은 완전 민영화된 KT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외국인 지분이 49%에 이르는 KT는 통신비 인하나 설비투자에는 관심이 없고 막대한 이익을 외국인 배당으로 나눠주고 있다. 물론 모든 민영화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민영화를 추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에 대한 대안을 먼저 마련해 놓는 것이 순서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세계적인 철학자인 미국 MIT대학의 노암 촘스키 교수의 말이다. 이 문장에 마땅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면, 지금 우리는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NP>
김엘진 기자
eljin@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