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3당의 대표가 박근혜 의원(새누리당), 한명숙 의원(민주통합당), 이정희 의원(통합진보당) 으로 모두 여성인 2012년, 정치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끝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을‘여성정치인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 현실에선 총선 후보로 등록한 여성 후보의 비율은 채 10%도 되지 않으며 여성 할당제와 가산점 때문에 그마저도 남성 후보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분명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는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가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질 날이 올 것이다. 지금도 사회는 여성과 남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양성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특히 리더는 열정과 지혜,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될 것이다. 리더가 바지를 입었든 치마를 입었든, 온 몸이 근육질이든 의족을 착용했든,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특별시구로구의회 도시건설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곽윤희 의원 Q. 기초의원이 된 계기와 과정 지역 활동을 한 이십오 년 넘게 한 것 같아요. 봉사단체에만 스무 군데 이상 가입해서 활동 했고요. 교도소, 소방서, 청소년 선도, 새마을, 학교운영위원장 등 갖가지 일을 다양하게 꾸준히 해왔습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곳은 고아원이었어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의 고아원이었는데 조금씩 후원을 하고 찾아가 일손도 돕고 하다 보니 점차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봉사활동을 찾다보니 나중에는 스무 군데 이상의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장애인이(저도 지금 3급 장애인이거든요) 자꾸 봉사를 다니니까, 나름 소문도 나고 했는지 지역에서 절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당시 이범례 국회의원님과 지역 어른 분들께서 여성 공천이 있으니 한 번 지역을 위해 일 해볼 생각이 없느냐 권해주셔서 선거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정했어요. 그리고 2011년, 다행스럽게도 이 위와는 큰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Q. 장애를 안고 살아가기
▲ 구청장기족구대회
지금 전 장애 3급입니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심장병에 늑막염에, 병이란 병은 다 걸렸으니 집에서도 사흘돌이로 포기하기 위해 밀어놨다고 해요. 그런데 정말 죽을 것 같다가도 다시 깨어나고, 다시 깨어나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지요. 자라면서 심장 수술도 몇 번, 늑막 수술도 몇 번을 했어요. 열다섯 시간 이상의 대수술만 일곱 번을 했습니다. 매번 수술대에 올라갈 때마다 수술대 아래 벗어둔 신발을 보며‘저걸 다시 신고 걸을 수 있길’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을 다시 그 신을 신을 수 있었어요. 그건 너무나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수술 외에도 작은 수술은 몇 번을 했는지도 몰라요. 몸의 오른쪽에 마비가 와서 오른 다리는 모두 철을 박아 넣은 상태라 장시간 걷기는 불가능해요. 늑막수술을 하면서 오른쪽 갈비도 세 대나 잘라냈고요. 그렇게 몸이 아픈 것이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아파봤기에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만 한다면 꼭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해왔습니다. 그래서 봉사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던 거고요. 저도 장애인이지만 저보다 더 중증 장애인들은 많습니다. 몸은 건강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언제나 그런 분들을 섬기고 챙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는데요(지금은 7남매만 남았어요), 부모님은 12명의 자녀를 키우시는 데도 너무 벅차셨을 텐데 제 수술비까지 해서 우리집은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단 한 번도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간 적이 없고 어렸을 때니까 친구들도 몸이 아픈 저랑은 안 놀아줬거든요.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건 집에서는 항상 챙겨주는 형제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안 그랬으면 정말 지금과 성격도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비록 몸은 좀 불편했지만 많은 이들의 따뜻한 사랑과 도움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도 그런 사랑을 나누고 싶고 감사한 마음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Q. 선거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는 데 지장은 없는지 지금 보기에는 사실 멀쩡해 보이죠? 제 자랑 같지만 사실 전 그래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표정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어요. 누구에게 징징거리거나 불평을 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그렇지만 옷을 벗으면 몸이 엉망진창입니다. 온 몸이 다 꿰맨 자국이고, 실제로 지금도 많이 걷지도 못하고, 쉽게 숨이 차고, 부종으로 매일매일 약을 먹고 있으니까요. 한 달에 서너 번을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데, 그렇게 평생을 해야 합니다. 물론 치료가 아니라 더 나빠지는 속도를 지연하기 위함이에요. 이런 상태니까 선거운동 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은 걸어 다니면서 유세를 하는데, 저는 그럴 수가 없어서 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잠깐 내려서 조금 걸었다가 다시 차에 타고, 그런 식으로요.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알고 계셔서 그런 모습도 이해해 주셨죠. 그때 함께 다녀주고 제 전단지를 나눠주고 항상 옆에 있어줬던 남편과 조카들과 후배들, 그리고 같이 일해주신 여러 주민들에게 감사드려요. 봉사단체에서 같이 일하던 많은 엄마들도 와서 도와주셨는데, 정말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일하며 뿌듯했던 적 언제나 일처리를 하고 나면 행복해지는 편입니다. 민원이 들어오고 제가 그 일을 처리한 후 주민의 기쁜 모습을 보면 함께 기뻐져요. 실은 제가 좀 줄반장기질이 있거든요. 주변에서도 항상 저에게 이 일이 천직이라고 해요. 제가 원래 오지랖도 넓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앞장서고 그런 스타일이에요. 단체며 행사 등에는 컨디션이 아무리 안 좋아도 절대 빠지지 않고요. 마당쇠 타입이랄까요.(웃음) 이 일을 하기 전에도 봉사활동을 하며 즐거웠는데 이제는 대놓고 어려운 주민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더 뿌듯하고 기쁘더라고요. 특히 구로구에는 일자리창출부가 있거든요. 일이 필요한 주민들을 모셔가 일을 찾게 해드리는 일은 언제나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도시건설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푸른 도시과 등 건설의 심의를 하고 예산을 책정하는 등의 일을 처리하지만, 언제나 일부로라도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고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 일은 정말 하기 나름입니다. 의원자리만 차지하고 대충대충 일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서 하려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일이에요. 물론 우리 16명 의원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일 할 겁니다. 지켜봐주세요.(웃음)
Q. 자신만의 정치 철학이 있다면
▲ 노인회관복지회관기공식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일하고 싶고, 또한 그럴 자신도 있습니다. 처음 시작이 명예나 돈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위한 마음이었던 것처럼 끝까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저는 의원이기 이전에 주민들과 같은 주민이자 엄마입니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요(말 나온김에 자랑하자면‘가수 고은’이 제 둘째랍니다. 첫째는 아직 공부중이에요), 이 아이들을 키우던 심정으로 일하고 싶어요. 엄마의 마음으로 주민들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여성정치인은 확실히 특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여성은 꼼꼼하고 세심한 편이에요. 간단한 전화 한 통에도 여성들은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며, 지역의 큰 소리뿐 아니라 작은 소리까지 다 듣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들도 흘려보내는 일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여성들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치 역시 다수뿐 아니라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잖아요. 또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을 할 때, 훨씬 조화롭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며 좀 더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든 여성과 남성이 조화를 이루어 일할 때, 훨씬 일이 부드럽게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또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일을 하는 여성은 일반적으로 더욱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보통 편견을 가지는 정말 여성스러운 여성들은 잘 없더라고요.
Q. 꿈이 있다면
▲ 바른지도자상수여
정치인 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잖아요. 사실 그럴만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끝까지 누가봐도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항상 주민들과 어우러지고 항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꿈이 그거에요. 초심을 간직하고 끝까지 임기를 마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공천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라요. 그래서 지금 벌여놓은 일처리도 제 손으로 마무리 하고 싶고요. 정말 욕심을 부리자면 시의원으로 나가고 싶기도 합니다만, 이건 큰 꿈을 꾸며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죠.
Q. 마지막으로
▲ 동신년인사회
아직도 사회에선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이나 건강한 분들은 모두 똑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물론 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느릴 뿐이지 꾸준하게 걷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뛰어야만 하나요. 천천히 걸어도 도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많은 불이익을 당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왔을 것이므로 건강한 분들보다 더욱 양심 바르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차 장애인 복지가 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장애인들을 위한 제도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설 곳이 점차 넓어지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모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으며,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두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만큼 갚으면서 살아가겠습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