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학원은 물론 공원 출입도 재제 당하는 후쿠시마 출신 아이들…후쿠시마산 공산품은 소비거부 운동이 일기도”

지난달 3월 11일은 일본대지진 참사가 일어난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본 대지진은 지진, 쓰나미가 남긴 상처도 큰 문제였지만 이후 지진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로 방사능 유출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최초로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이 가장 높은 등급인 7등급으로 분류되었으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사고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은 후쿠시마 주민들이 또 다른 상처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출신 주민들에 대한 다른 지역 주민 및 국제사회의 집단‘이지메(왕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원전사고 그 후 1년
▲ 지난해 3월 대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폭발 사고를 일으킨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지난달 28일 모습. 사고 이후 1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폭발 당시의 참혹한 모습 그대로다.
규모 9.0의 사상 유래없는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들에겐 또 다른 생지옥이 시작됐다. 지난해 3월 1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전날 대지진의 충격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일본 기상청은 사고 당시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세슘 양은 무려 3만~4만 테라베크렐(테라 = 1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20~30%에 해당되는 양이다. 또 이때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편서풍 제트기류를 타고 하루에 약 3000km를 날아 열흘만에 지구 반대편인 유럽전역에까지 도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현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원자로 온도를 낮추고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에 나서는 등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사고 수습은 언제 끝날 지 기약이 없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지난해말 사고 원전의 원자로가 섭씨 100도 미만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사고가 수습됐다고 선언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 사회기술시스템 안전연구소의 다나베 후미야 소장은 이에 대해“핵연료가 훼손된 상태에서 (총리의 선언은) 원전사태가 한 고비를 넘었다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전력도 사고 원전의 원자로 온도가 모두 섭씨 50도 미만의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강진이 발생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사고 원전 반경 20㎞ 이내인‘경계구역’은 인간이 살 수 없는 이른바 죽음의 땅으로 변한 지 오래이며, 1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원전에서는 매일 시간당 6000만∼7000만 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이 방사성 물질 때문에 삶의 터전을 앞에 두고도 귀향하지 못하는 원전 난민이 약 15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에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개현 피난민을 합치면 모두 34만명에 이른다. 열악한 위생 시설과 먹거리 부족 등.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진 피난민들의 현재 생활은 지진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어딜가도 따라붙는‘원전 지역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끔찍했던 당시 기억과도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이들의 삶은 생지옥 그 자체다. 교도통신은 지난 2월 3일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 생활 중 건강 악화 등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이 무려 1300여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대지진 이후 피난 생활 과정에서 건강 악화로 사망해‘지진 관련사’로 인정된 경우가 3개현에서만 1331명에 달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체력 저하로 질병 저항력이 약화한 고령자가 가장 많았으며 정신적 스트레스에 따른 돌연사, 자살 등도 있었다.

왕따, 작년보다 21.8% 증가한 3306건, 이 중 후쿠시마 이주민이 491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지 지난 3월 11일로 1년이 되었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은 불신의 벽에 또 한 번 좌절하고 있다. 방사능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쿠시마 이재민들은 방사능에 전염된다는 풍문에 현지 주민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고, 재해 지역 쓰레기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접수를 거부해 언제쯤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를 처지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 위급한 상황에서도‘매뉴얼’에만 집착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야마나시현 고후 지방법무국은 2월 3일 야마나시현으로 피난해 온 후쿠시마 주민이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며 구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피난민은 아이를 거주지 근처 보육원에 보내려 했으나 방사능 오염을 염려한 다른 학부모들의 반대로 거절당했다. 이에 야마나시현 법무국은 후쿠시마 피난민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을 갖거나 이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관련 포스터와 전단지를 제작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몽 활동은 거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법무성이 2012년 2월 2일 발표한 전국의 집단 따돌림 건수는 3306건으로 전년보다 21.8% 증가했다. 이 가운데 491건이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다른 곳으로 전학한 학생들의 신고 사례다. 특히 산케이신문이 최근 후쿠시마현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7.8%가 풍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후쿠시마 이주민들, 주민들 눈총에 쓰레기 접수도 거부당해…
▲ 사람이 없어 텅텅 비어버린 후쿠시마현의 동부 Namie 거리.
원전 사고 이후 다른 지역에 피난 중인 후쿠시마 주민들로부터 택시 승차, 호텔 숙박, 병원 진찰을 거부당했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현 내에 가득 쌓인 쓰레기 처리 문제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겐 시급하다.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지진과 쓰나미로 건물이 부서지면서 발생한 잔해와 생활 쓰레기, 침수된 산업 쓰레기는 모두 2252만 8000t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소각과 매립, 재이용 등으로 처리가 끝난 쓰레기는 약 5%(117만 6000t)에 불과하다. 하지만 피해 지역 쓰레기를 전국에 분산 처리하려는 정부 방침은 지자체의 반발로 난관에 부딪혔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대지진 피해 지역의 쓰레기를 수용할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지자체의 86%가
수용을 거부했다. 피해 주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매뉴얼만 고수하는 정부와 지자체의‘탁상 행정’은 여전하다. 지난달 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과 주변의 지자체 가운데 83%는 원자력 사고 재해 시 갑상선암을 방지하기 위한 안정 요오드제를 비축하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배포 지침과 복용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키노 에이지 호세이대학 교수는“방사능이 전염된다는 풍문 때문에 후쿠시마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방사능은 인체에 전염되지 않는데도 이기적인 사회 풍토로 인해 일본 사회가 근대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왕따’…애들은“보육원ㆍ공원 못 가”,부모들은“일할 곳이 없어”
▲ 대지진 이후 연이은 화재와 폭발로 방사능 누출이 우려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남쪽 코리야마 시의 방사능 노출 테스트 센터에서 15일 엄마 품에 안긴 한 어린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검사요원의 검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후쿠시마현에서 야마나시현으로 피난 온 한 부모는 아이를 보육시설에 입소시키려다 거절당했다며 고후지방법무국에 인권침해 사례로 고발했다. 이 부모는“보육원에서‘다른 아이들 부모에게서 방사능 불안감이 제기되면 대응하기 곤란하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부모는 또“집 근처 공원에서 아이를 놀게 했더니 근처 주민이 피난민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공원에 데려오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지자체장들은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농업, 어업, 관광등의 산업이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후쿠시마 출신 아이들이 피난처에서 방사능을 옮긴다며 차별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피난민의 취업 문제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2월 2일, 3개현에서 대지진으로 직장을 잃고 현재까지 실업 수당을 받아온 3510명을 대상으로 취업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4%가“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위해 유예기간을 두고 실업 수당을 최대한 받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업체들의 잇단 도산과 휴업으로 이 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후생노동성은 오는 4월말까지 최대 1만명에 대한 실업 수당 혜택이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을 통해 원전 난민과 대지진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은 금전적인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면서“이들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혼, 주차거부, 식당출입 거부까지…정부는 안심시키기에만 급급
▲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후쿠시마의 한 슈퍼마켓.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아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전학했지만, 방사능이 전염된다며 왕따를 당하는 게 현실이에요. 결혼을 앞둔 여성은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취소당했죠.”그린피스 등 탈핵 환경단체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 후쿠시마 주민 니시카타 카나코(36)씨는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칼슨홀에서 이같이 털어놓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전했다. 결혼 후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반경 50㎞ 거리에서 생활했다는 카나코씨는 정부의 대피 명령에 보호소에 잠시 거주하다 두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도쿄로 이사한 상태다. 방사능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자동차 번호판에 쓰여 있는 후쿠시마는 지우지 못했다. 그 결과 주유소에서는 진입 거부를, 식당에서는 주차 거부를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이 모든 게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일반인의 피폭한도는 기존 1mSv(밀리시버트).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기준을 10mSv로 올렸고 다시 아이 어른할 거 없이 20mSv로 높였다. 후쿠시마 주변지역에서 10mSv를 초과하는 방산성량이 측정되자, 이를 상향 조정하며 어른에게도 위험한 수치를 어린이에게까지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20년간 체르노빌 피폭자를 치료하며 명성을 얻은 나가사키대학의 야마시타 준이치 교수까지 공개석상에 나서“임산부를 포함해 100mSv까지 안전하다”고 국민을 안심시켜온 것이 화근이 됐다. 사고 원전과 30㎞ 떨어진 곳에서 귀 없는 토끼가 태어나는 등 내부피폭으로 추측되는 2세 가축의 기형이 발견되자 국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나코씨는“전문가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본 채소 방사능 기준치는 1000Bq(베크렐), 달걀은 500Bq, 우유는 200Bq이다. 카나코씨는“이 기준은 핵전쟁으로 제대로 먹을 게 존재하지 않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기준”이라며“이런데도 정부는 안전하다고 안심시키기에 분주하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일본 여기저기에서는 매일같이 탈핵 집회가 열리고 있다. 카나코씨는 “어릴 때부터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교육받아왔던 국민이 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며 “그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무관심을 그만두는 것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두 번 다시 이러한 슬픔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에 이어 음식ㆍ공산품마저 외면
▲ 후쿠시마 현 인근 농민들이 농산물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 소비자들이 방사능물질 확산을 우려해 후쿠시마산 농산물 구입을 극단적으로 꺼리거나 일부 수도권 지지체가 후쿠시마 피난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등의 현상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후쿠시마 지역에서 만들어진 폭죽을 사용한 불꽃놀이 축제(마쓰리)마저 취소되는 등 풍평(근거 없는 소문) 피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산 식품과 공산품이‘풍평과 달리 안전하다’며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일본 내에선 후쿠시마를 포함한 도호쿠지역 출신 사람과 이곳에서 나오는 먹거리, 공산품에 대한 유ㆍ무형의 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다. 2012년 2월 22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이치(愛知)현 닛신(日進)시는 같은 달 18일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 위로를 명분으로 개최된 지역 불꽃축제에서 당초 예정됐던 후쿠시마산 폭죽 발사를 갑작스레 취소했다. 불꽃놀이에 사용될 폭죽이 후쿠시마현의 가와마타 공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로부터“왜 하필 방사능 폭죽을 터트리려느냐”,“방사능을 뿌리지 마라”등의 항의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닛신시의 축제 실행위원회는 후쿠시마산 폭죽(80발)을 부랴부랴 아이치현 내 업체가 제조한 폭죽으로 교체해 행사를 진행했다. 폭죽을 생산한 가와마타의 폭죽 공장은 피난구역에서 제외된 저선량 지역이고 방사성물질 오염의 우려가 낮은 곳이다. 후쿠시마 차별은 이것뿐만 아니다. 풍평 피해로 고생하는 후쿠시마현 농민들을 돕기 위해 동현의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후쿠시마 응원숍’이 2월 17일 후쿠오카시내에서 오픈될 예정이었지만 방사능물질 확산을 우려하는 시민들로부터‘불매운동을 하겠다’는 등의 항의전화가 쏟아져 결국 취소됐다. 앞서 지난 2월 교토(京都)에서 열린 지역축제인‘고잔오쿠리비’(五山送り火)에서도 당초 동일본대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의 소나무 장작을 사용하려 했다가 방사능을 걱정하는 지역 주민들 때문에 막판에 포기했다.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 후쿠시마현에서 이주한 어린이에게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저는 원전 사고 때문에 방사능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어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2012년 2월 1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대재앙 1주기 시민 문화행사‘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 열렸다. 일본인 아베 유리카(11ㆍ교토시립 미시노소학교 4학년)양이 무대에 올랐다. 아베양은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로부터 60㎞ 떨어진 곳에 살다가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겪었다.“원전 사고로 고향인 후쿠시마를 떠나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몇 년, 몇 십 년 동안 돌아갈 수 없을지 몰라요. 아버지와도 한 달에 한 번 만나게 됐어요.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후쿠시마에서 아베양이 살던 곳은 정부가 지정한 피난지역은 아니지만 방사선 양이 높아 피난을 가야 했다. 아베양은“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1호기가 수소 폭발하자 아버지는 위험하니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게 짐을 챙기라고 하셨다”며“집안에서도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1년 3월 14일, 3호기까지 폭발하자 가족은 피난 행렬에 오르려 했지만 차에 넣을 휘발유가 없어 16일이 돼서야 아베 가족은 야마가타로 갈 수 있었다. 아베양은 후쿠시마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와 떨어져 3월 18일 어머니, 할머니와 홋카이도로, 5월 10일에는 어머니와 둘이서 기타카타시로, 7월 26일에는 오키나와로 이동해 8월 25일 교토로 갔다.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교토시에서는 자발적 피난민에게도 임대아파트 거주 권한을 주어 그나마 이주가 편했다. 현재 50여 가구가 단지 안에 함께 살고 있고 상황이 같은 아이들이 한 학교에 다녀 적응하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반년 동안 세 번이나 전학을 하며 아베양은“친구가 생길까, 이지메(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공부는 잘 할 수 있을까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에 남아 있는 아베양 친구들의 안부를 묻자 그의 어머니 아베 사유리(44)씨는“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한 우리 가족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며“15만 명에 달하는 원전 피해 난민 중에서 피난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은 정부 보상을 받지 못해 피난민들이 분열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놀라운 침착함을 지닌 일본? 무한 이기주의의 일본!
대지진 발생에도 놀랍도록 차분했던 일본 사회, 요즘은 방사능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간 이재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이지메’, 즉 왕따를 당하고 있다. 방사능 공포가 사회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후쿠시마 출신 어른들조차‘피폭 환자’취급을 당하며 차별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총 500억 엔을 들여 4월 안에 후쿠시마 피난 주민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대상은 모두 4만 8천 세대, 한 가구당 최대 100만 엔, 우리 돈으로 1천300만 원을 받게 된다. 한 달 넘게 계속되는 재난에 지역 차별현상이 불거지면서 일본 국민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지진 당시 침착함을 잃지 않아 전 세계인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이 이제 대지진 여파와 함께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무한이기주의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왕따, 이지메의 원조국가라고 하지만 원전폭발로 인해 집도 땅도 재산도 잃고 고향마저 떠나야 했던 후쿠시마 원전 피해주민들을 왕따시킨다는 소식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일본 대지진 당시 침착함을 잃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일본의 모습에 감동받았던 지난 시간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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