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행정에 희생당한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논란

국립의료원은 의사와 의료요원의 훈련 양성을 위하여 전쟁 당시 의료지원을 수행하던 한국정부와 운크라(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 및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3국이 의료원 설치를 합의하고 1958년 11월 28일 개원하여 10년간 공동으로 운영되었다. 1959년 7월 6일 국립의료원 부설 간호학교를 신설하였으며 1968년 10월 1일 정부에서 운영권을 인수하였다. 1977년, 혈액원을 개설하고 1986년, 응급구조사 양성기관으로 지정되었다. 1991년엔 한방진료부를 개설, 1991년엔 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됐다. 1997년 3월 11일 의약품 임상실험 실시기관, 1998년 4월 27일 장기이식정보센터 시범기관으로 지정되고, 2001년 4월 개방병원 시범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의료원으로 환자진료는 물론 의료 수준과 의료기술 수준의 향상을 위한 조사연구, 의료요원의 훈련, 환자의 영양에 관한 사항을 주로 맡고 있으며,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건강관리를 위해 매주 무료 건강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 암등록 사업본부 및 중독관리센터, 장기이식 관리센터(KONOS)를 운영으로, 국가의료정보망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안과, 치과, 일반내과, 신경과, 정신과, 흉부내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진단방사선과, 치료방사선과, 해부병리과, 임상병리과, 마취과, 약제과, 간호과, 한방진료부(한방과·침구과) 등 27개 진료과목이 있으며, 총 613병상 규모로 부설기관으로 국립의료원간호대학이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乙支路) 6가 18-79번지에 있다.

방치된 공공의료서비스
스칸디나비아 3국은 1968년에 병원 운영권을 넘겼다. 약속했던 지원 기간보다 5년을 더 머문 뒤였다. 그때부터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정부의 지원은 박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진료 수입만으로 병원은 오래 버텨야했다. 입원 환자의 20%를 차지하는 빈곤층에 대한 진료는 덤이었다. 근근이 유지하던 병원의 위기는 1990년대 말에 도래했다. 정부는 1997년 국립중앙의료원을 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의료의 구색마저 허물자는 정부의 결정은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반발을 샀다. 공공의료의‘국가대표’는 쉽게 존폐를 논할 만큼 만만했다. 병원은 그렇게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시들어갔다. 2009년 보건복지부가 낸‘국립중앙의료원 법인 운영 계획안’은 병원의 참담한 현황을 보여준다. 100병상에 대한 평균 투자 금액은 국립중앙의료원이 427만원으로, 비슷한 규모의 다른 일반 병원의 1761만원보다 형편없이 적었다. 노후한 의료장비(46%)도 다른 병원 평균(30%)보다 많았다. 의사들도‘찬밥’신세였다. 전문의 5년차의 월급을 기준으로 보면 다른 국립대병원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상 버림받았다는 말이었다. 일부 사명감을 가진 의료인들만이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010년 정부가 시들어가던 국립중앙의료원에 처방을 내놓았다. 법인화였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는‘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병원’등 화려한 수사가 붙였지만, 메시지는 간단했다.‘자력갱생’이었다. 병원은 별도 법인으로 독립되고 경영 책임도 떠안게 됐다. 직원들은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2010년 새로운 법인으로 태어난 국립중앙의료원은 경찰서와 소방서 등에 공문을 발송했다. 행려환자들이 아프더라도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실로 데려오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이 공공의료기관의 본분을 망각했다고 두들겼다. 병원으로서는 경영‘합리화’를 위한 대책이었다.

국립의료원을 둘러싼 졸속행정
시장으로 떠밀린 국립중앙의료원은 이제 졸속행정의 희생양으로 내몰렸다. 서울시가 서초구 원지동에 추모공원을 건립하며 이에 반발하는 주민 여론을 무마하려고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원지동에 마련된 부지는 약 2만2천 평에 불과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규모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병원의 위치도 공공병원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고, 그나마 부촌에 가까웠다. 이에 변광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국립의료원 매각은 스칸디나비아 3국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한 바 있다. 타인이 선의로 준 선물을 내다판 격임과 동시에 한국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다. 한편, 일부 주민들이 추모공원 건립 반대 소송을 제기해 2007년에야 겨우 종결되었고, 그 이후 추모공원은 계획대로 추진돼 올 1월 제대로 그 역할을 하게 됐다. 그 동안 국립의료원 이전은 서울시와 국립의료원 간에 서울추모공원 부지 내 국립의료원 신축ㆍ이전에 관한 상호협약(MOU)이 체결돼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접어드는 듯 했다. 하지만 추모공원 내 부지 사용 문제를 놓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복지부가 추모공원 내 부지를 무상임대하거나 임대료를 장기분납하기를 원하는 반면, 서울시는 시유지 무상임대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부해 협상이 지지부진해진 상황이다.
책임회피VS약속이행 위반이다
이에 서울시와 복지부, 국립의료원 측 모두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이전을 둘러싸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전 당사자인 국립의료원 관계자는“협상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며“서울시와 복지부의 협의만 기다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현 부지를 매각해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라며“국립중앙의료원이기도 하지만 실질적 이용자가 서울시민이니 서울시도 일정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국립의료원 이전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라며"하지만 재원 문제 때문에 진척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담당기관들의 미온적인 태도에 서초구민들만 답답할 뿐이다. 한 구민은“화장장 등을 세울 때는 당연히 국립의료원이 들어올 것처럼 약속하더니 아직까지 이러는 건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얘기냐”라며“신속히 협상을 마무리 짓고 (국립의료원) 이전을 서둘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국립의료원은 그동안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공공 의료분야의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이전 문제는 중구를 비롯한 종로·성동·동대문구 등에 거주하는 수많은 서울 시민과 2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에 커다란 불편을 예고하고 있다. 의료 공동화(空洞化) 현상도 자명하다. 무엇보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지역 내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때문에 도심에 자리한 공공의료기관 이전은 결국 서울 중심부의 응급의료체계 약화를 예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원지동 부지의 입지조건상 고속도로에 인접해 소음이 심하고 도로에서의 가시성이 떨어지는 점, 도로형태가 복잡해 의료원 진출입로 용도로서 불리하다. 이는 환자접근성이나 대중교통 접근성 또한 현저히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에 전문가들은“요양시설이나 정시의료센터와 같은 특수 전문병원 이외에는 활용하기 어려운 부지”라고 지적했다.

이전 계획은 공공의료 후퇴정책, 의료계 반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국립중앙의료원(국립의료원)“국립의료원이 매각·이전을 함으로써 졸속행정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한미정 본부장은“국립의료원은 공공보건의료를 선도하고 국가 공공보건의료정책을 수행하는 중추적 공공의료기관”이라며,“공공의료기관이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국립의료원은 국가공공보건의료정책을 수행하는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본부장은“국립의료원 현 부지를 매각하고 원지동 부지로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 우리는 국립의료원의 기능과 역할 축소, 공공의료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라며,“국립의료원이 명실상부한‘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시설·장비를 최고의 시설·장비로 현대화하고 양질의 의료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국립의료원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설 확충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 본부장은“국립의료원이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려면 최소한 10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으로서 최상의 시설과 장비, 우수한 인력을 갖춰야 한다”라며,“현재 부지를 매각하고 원지동 부지로 이전하는 것은‘명백한 축소이전’으로서 국립의료원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기는 커녕 축소하게 될 것이고 공공의료를 후퇴시키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의료원을 국가중앙병원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는 가운데 추진되는 매각·이전은‘공공보건의료를 선도하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공공병원’으로 위상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고, ‘공공성을 훼손하고 수익성만 추구하는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한 본부장의 주장이다.

요지부동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이전 계획에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을지로 부지의 효율적 매각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용역을 추진하는 등 매지 부입에 관한 사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전 후 야기되는 의료 서비스에 관한 축소와 같은 문제, 국립중앙의료원 향후 발전성에 관한 계획과 책임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마련토록 하는 모습이다. 어쩐지 이번 사안은 일만 벌여놓고 책임은 전가 하는듯한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에 국립중앙의료원 내부에선 그동안“이전보다는 투자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국유지인 현 의료원 부지 매각과 관련된 사안이 이미 복지부 검토를 마치고 소관 부서인 기획재정부로 넘어가 이전 백지화 등 재검토가 사실상 어렵다”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역시 과거, 공청회를 통해“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다른 대책을 검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밝혀 온 탓에,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원 관계자는“이전과 관련해 수차례 로드맵을 제시했고 이를 뒷받침할 연구 등도 나와 있는 만큼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다릴 뿐”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공공의료'축소 아닌 강화해야 할 때
서초구 원지동 이전 부지는 실제 이용 가능한 면적이 1만평에 불과해 현재 부지와 큰 차이가 없고 환자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단점 등에서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 또한“공공의료기관이 강남으로 이전하면 상대적으로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최근 서울시의회는“서초구 원지동 부지는 국립외상센터로 전환, 부지에 헬기 이착륙장을 갖춘 중증외상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전에 따라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축소가 우려되는 현 위치에선,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보단 이전 부지에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해 분원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냐”는 주장인 것이다. 최근 서울시장 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결과를 낙관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 또한 언제 어느 시점에서 구체화 될 지 역시 알 수 없다. 이렇듯 설립목적에 걸 맞는 규모와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 없는 이번 이전 정책은 서울추모공원 설립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무마용 국립의료원 매각·이전 논란은 졸속행정에 희생되는 공공의료서비스의 현 주소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공공의료가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NP>
박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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