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왜곡된 졸속처리로 탄생한‘천연물신약사업’, 전문지식 가진 한의사들만 빼 놓은‘그들만의 축제’

중국은 제11차 5개년 중의약 표준화 발전계획(2006~2010년)으로 중의약 과학화ㆍ국제화ㆍ표준화를 중의약산업 발전 목표로 추진한데 이어 12차 계획에서는 중약의 FDA 인증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중성약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FDA에 신약허가를 위한 임상시험(50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한약재 등 동ㆍ식물성분을 이용해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00년 1월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이 제정된 바 있으나 한의학 원리를 모르는 양의사의 전유물로 둔갑시키는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한의사협회가 천연물신약에 대한 한의사의 처방은 불법이라며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요청해 오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원화된 현재 의료법 상 한의사만이 한약을 처방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여기서의'한약'은 의약품 허가절차상의 분류인 한약제제와 생약제제, 천연물신약을 포괄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천연물신약’의 개념,‘동식물 등 천연산물’에서‘한약 제형 변화한 것’으로 슬쩍 끌어 넣어
[천연물이란 육상 및 해양에 생존하는 동식물 등의 생물과 생물의 세포 또는 조직배양 산물 등 생물을 기원으로 하는 산물로 정의한다.] 천연물과학의 육성 등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의 기반을 조성하고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 연구개발과 그 개발기술의 산업화를 촉진하여 국민건강의 증진과 국가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00년도에 제정된‘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의 첫머리이다. 이 시기 천연물신약의 정의는‘천연물에서 추출한 물질의 성분을 체내 작용하기 좋은 상태로 합성, 변화시킨 의약품’이었다. 버드나무 가지에서‘아스피린’원료를 추출하듯 특정 단일성분을 추출해서 제2의 아스피린과 같은 신약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천연물신약사업의 시초였던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큰 성과가 없자 2000년대 중반 천연물신약 개념에‘기성한의서(동의보감 방약합편 등 11종) 한약처방 중 의학적으로 효능이 있는 한약을 제형 변화한 것’까지 천연물신약의 개념으로 슬쩍 끌어다 넣게 된다. 원래 신약으로 인정이 되려면 독성시험, 대사기전자료, 약물상호작용시험 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하나 이 또한 면제되었는데 그 이유는‘한의사들이 오랫동안 안전하게 써 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약제제로 만들어진 천연물신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의사들이 건강보험급여를 받으며 처방 중인데 한의사는 건강보험적용은커녕 사용가능여부조차 애매하게 소외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한의사 처방’으로 만든‘한약’이‘천연물신약’으로 둔갑
▲ 선종욱 대한한의사협회 천연물신약TF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월 23일 복지부 청사 앞에서 천연물신약에 대한 한의사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인체의 열독을 빼 주는 처방으로, 많은 한의사들이 오래전부터 임상에서 다용하고 있는‘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이 비만치료제로 출시된‘살사라진’으로 둔갑한지는 오래된 얘기다. 이미 많은 성형외과 및 피부과의 의사들이 처방하고 있는‘비그만’이라는 약 또한 마찬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체의 습기와 노폐물을 제거하여 관절통에 잘 쓰이는‘활락탕(活絡湯)’과 궤를 같이 하는 자생한방병원의‘청파전’이‘신바로’라는 약으로 둔갑, 출시되어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듯 한의사들 고유의 전문지식과 오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처방을 추출해 만든 약 78종이‘천연물신약’이라는 껍데기를 쓴 채 출시될 예정이다. 올해 5월에 출시된‘레일라’만 하더라도 한의사 배원식 원장의<한방임상보감>에 나온‘활맥모과주(活脈木瓜酒)’의 13가지 처방 중 하나를 뺀 12가지 약재를 에탄올 추출물로 제약화한 것으로 서양의학적인 약리학적 효능을 입증한 새로운 조성으로 볼 수 없고<한방임상보감>에 이미 관절염과 요통에 쓴다고 주치도 다 나와 있어 새로운 효능으로도 볼 수 없다.‘조인스’도 마찬가지다. 한방에서 관절염의 원인이‘풍한습(風寒濕)’이라는 것에 착안해 풍한습에 사용되는 한약을 스크린해서 만든 것이라고 제약회사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완전히 한방원리에 의해 조제된 것이‘천연물신약’의 대부분이다. 사실 이들 약은 한약을 캡슐에 담은 것에 불과하며 한의학 원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속 안 좋으면 위장약, 머리 아프면 진통제’같은 방식으로 남용되게 된다면 일본의*‘소시호탕 사태’처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시호탕 사태
일본에서 소시호탕(小柴胡湯)복용으로 19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후생성과 전 의료기관에 부작용을 환기시킨 사건이다. 간장병치료 등에 널리 사용돼온 한방약 소시호탕(小柴胡湯)을 복용한 만성간염환자 가운데 92년 4월 이후 125명이 간질성 폐렴을 일으켰으며 19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후생성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같은 부작용에 관해서는 이전부터 의사용 [사용상의 주의]에 기재되어 있었지만 후생성은 발병환자 전원이 의사의 처방으로 복용한 점을 중시하고 [의사에게 인식 부족이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소시호탕을 사용하는 전 의료기관에 [긴급 안정성 정보]를 송부,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일본간장학회와 일본약사회도 회원들에게 적정사용을 엄수하도록 긴급지시했다. 소시호탕의 부작용에 의한 간질성 폐렴 발병은 91년에 [사용상 주의]에 기재된 것 외에 94년에는 인터페론α류와의 병용에 의한 부작용도 판명돼 병용 금지 통지가 나오기도 했다. 후생성에 따르면 만성간염환자에게 장기간 투여하게 되면 발열이나 호흡곤란 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흉부 X선 검사 등에 의한 신중한 경과와 관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서는 투여 후 3주간에 발열을 발견하고 투여를 중지했지만 모두 늦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등 경과관찰이 충분하지 못한 점이 확인됐다. 한의사의 전문분야인‘한약’을 양의사들이‘남발’하여 많은 이의 생명을 앗아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신약’으로 둔갑한‘한약’
현재까지 개발된,‘한약’이 모태인‘신약’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제 품 명
주 성 분 ( 생 약 )
조성성분·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


한 방 원 리
아피톡신 주사
봉독
골관절염

蜂毒
조인스정
위령선, 과루근, 하고초
(30% 에탄올 엑스)
골관절염

威靈仙,?樓根,夏枯草
스티렌정
애엽
(95% 에탄올 엑스)
위염

東醫寶鑑 湯液文 “止腹痛 止赤白痢”
신바로캡슐
오가피, 우슬, 방풍, 두충, 구척, 흑두
골관절염

五加皮, 牛膝, 防風, 杜仲,
狗脊, 黑豆
시네츄라시럽
황련, 아이비엽
(30% 에탄올 엑스)
기관지염

黃連, 아이비엽
모티리톤정
현호색, 견우자
(50% 에탄올 엑스)
기능성 소화불량증

玄胡索, 牽牛子
레일라정
당귀, 목과, 방풍, 속단, 오가피, 우슬,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
(25% 에탄올 연조 엑스)
골관절염

當歸, 木瓜, 防風, 續斷, 五加皮, 牛膝, 威靈仙, 肉桂, 秦?, 川芎 , 天麻, 紅花


천연물신약 사태 이면에 숨은 논리들
누가 봐도 당연히 한약제제인 약들이‘천연물신약’이란 이름의 양약으로 탈바꿈하고 이런 사태로 진행된 것은 결국 실적논리, 힘과 경제논리에 의해서이다. 실적 우선주의에 따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초기 천연물신약사업의 성과가 미비하자 어떻게든 실적을 내고자 관계 법령의 미비를 틈타 한약처방을 신약의 원료로 쓰자는 의료체계를 무시한 정책이 입안된 것이며,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제약회사 카르텔이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받으며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한약제제들이 양약으로 탈바꿈되고 건강보험에 편입되어 의사들이 널리 쓰게 되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것 또한 이들이다. 또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 한약의 전문가이며 한약에 대한 사용권이 법으로 보장된 한의사들이 건강보험 비중이나 정책 입안 영향력에서 약자라는 이유로 이름만 바뀐 한약임이 분명한 천연물신약의 처방권과 건강보험에서 배제된 것은 전적으로 힘의 논리로 보인다. 이런 흐름에 따라 의사들은 일부 의사들이‘간에 나쁘다’며 음해하고 폄하하던 한약을 제약회사 권유에 따라 쓰고,‘철저한 임상실험에 따라 나온 양약과 달리 효과와 안정성에 근거가 없다’며 무시하던 한약을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썼다는 근거와 효능에 따라 쓰게 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되었다.

천연물신약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피해는 고스란히 한의사에게
이렇듯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한의약계가 천연물신약과 관련 한의사만 처방토록 요구하는 등 정부 대책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9월 6일 한의약 관련 단체장협의회(대한한약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서울약령시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한약도매협회, 한국한약산업협회)는“한약제제인‘천연물신약’은 한약재와 한약처방을 활용하여 제조된 한약제제임을 분명히 확인하고 정부는 천연물신약이 한약제제임을 조속히 선언할 것”을 촉구했다. 단체장협의회는“천연물신약을 한약제제로 선언하고 양방의료계의 사용중지, 한약제제 연구ㆍ개발 촉진과 함께 국내 한의약산업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 천연물신약의 용어를 한약제제로 규정하고 관련 법규정 정비 등의 사항”을 정부당국에 요청했다. 이어“정부는‘한의약 육성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2차례에 걸쳐 수립해 천연물신약의 연구개발과 상품화에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왔지만, 그 결과는 한의약계가 아닌 양방의료계와 제약회사로 돌아가 활용되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드러냈다. 실례로“한약제제인‘천연물신약’을 양방의사들이 버젓이 처방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양방에는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되고 있으나, 한방의료기관에서는 비급여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정부는 한약 산업 활성화를 위한 연구보다, 수입 한약 시장만을 넓혀주고 있어 국내 한약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의약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매우 부족해 한의약 관련 법제도가 비현실적이고 매우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밥그릇 싸움’아닌‘국민 건강’이 직결된 문제, 신중해야
복지부가 천연물신약의 처방권 범위를 놓고 고심 중이다. 의협과 한의협으로부터 유권해석을 받고 의견을 청취한 지 석 달에 육박하나, 결론 도출이 지연되고 있는 것.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으로부터 천연물신약 처방권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받았으나, 10일 현재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유권해석을 요청받은 복지부는 지난 6월 22일 의협과 한의협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의협은 천연물신약이 과학적 검증을 거쳐 의사가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와 치과의사만 처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한의협은 천연물신약이 약사법상 한약제제로 한의사 처방 범위라는 주장. 천연물신약은 한약 효능과 한약처방을 활용해 조금 바꾸거나 또 다른 효능을 임상실험을 통해 확인한 아류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의협과 한의협이 첨예한 반대 주장을 내놓자 복지부는 부내 법률 검토는 물론 복지부 고문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요청했다. 요청 내용은 천연물신약 처방 범위와 소송 제기 가능성 등이었다. 그러나 현재 법률 자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고문변호사로부터 전달 받지 못한 상태이며, 내부적으로도 보건의료정책과와 법제점검단, 의약품정책과, 한의약정책과 등 4개 부서가 이 건에 매달려 있다. 보건의료정책과는 의료법, 법제점검단은 총체적 법률, 의약품정책과는 약사법, 한의약정책과는 담당 부서로 석 달 가량 협의와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고문변호사로부터 답변도 못 들었으며 민감한 사안이어서 고위층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면서“다른 현안도 많아 검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천연물신약 연구개발촉진법도 있지만 정작 처방권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결론 도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이익관계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이니 만큼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은 앞으로도 험난할 것이라 예상된다. 힘과 이익논리에 따라 절차와 순리, 의료법 체계까지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는 천연물신약 문제. 과연 이렇게 진행된 천연물신약사업이 신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음과 동시에 엄청난 갈등비용을 조장하고 있는 천연물신약 처방권 문제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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