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불황에 미국, 일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경제 대국들 조차 신용 강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 경제에는 연일 주가가 상승과, 한 달 새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모두가 등급을 올리는 등의 청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영국계 금융회사인 HSBC도 최근“전반적으로 한국 경제가 V자 형태로 회복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등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가열차다. 그러나 건설업과 서비스업의 상승세는 둔화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지원은 점차 줄어들어 부담만 늘어 가는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에 성급한‘낙관’은 금물. 혹, 경제가 잘 돌아 가는 듯한 착시는 아닌지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성이 있다.
자린고비 국정운영이 국가신용등급 상향 터뜨렸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A1’에서‘Aa3’로 한 단계 높이고, 등급전망을‘안정적’으로 부여했다. 이로써 한국은 역대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기록하게 됐다. Aa3는 세계에서 네 번째 높은 등급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벨기에, 일본 등이 여기에 해당되며,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홍콩 등 7개국만이 이보다 높은 국가들이다. 한편 무디스가 밝힌 등승 상승의 원인은 ▲양호한 재정건전성 ▲경제활력 및 경쟁력 ▲은행부문의 대외취약성 감소 ▲북한문제의 안정적인 관리 등 이었다. 그는 특히 G20 국가들 중에서 글로벌 재정위기 이후 재정 적자 상태를 1년 만에 벗어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함을 지목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가 확대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재정건전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정부의 외환 유출입 변동성 완화 정책과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 강화 등에 힘입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부문의 단기 외채 비중과 예대율(예금대비 대출비율)이 개선됐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포퓰리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부가 재정건전성 유지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었던 북한리스크 감소에 전력했던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불감증 걸린 한국 경제에‘통 큰’변화 올 것 이번 국가신용등급 상향 평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까? 단순히 한국 사회내 물가, 은행 이자 등과 같은 금리 등의 개선을 기대한다면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 등과 같은 여타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잇따른(신용등급)상승은 국고에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된다. 실제로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조정 바로 다음날인 지난 9월 28일, 최장기 국고채 30년물을 최초로 입찰에 부친 결과 낙찰금리가 연 3.11, 3.14%로 잠정 결정됐다. 이는 직전까지 최장기물이었던 국고채 10년물 금리 연 3.08%보다 각각 0.03, 0.06%포인트 높다. 30년물 총 8,000억원어치는 3.9대 1의 높은 경쟁률 속에서 이뤄졌다. 이어 또다른 국제신용평가사인‘피치사’의 신용등급 전망도 상향 평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한국의 금융시스템 불안정성을 문제 삼아 신용등급 전망을 낮춘 이래, 10개월 만이다. 피치사는 등급 조정에 대해“경상수지 흑자와 단기외채 감소, 외환보유액 확충 등으로 대외채무를 갚지 못할 우려가 현저하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해 11월, 등급 전망을 내린 7개국 중 원위치를 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로써 한국 경제는‘금융 불안국’이라는 낙인을 씻어낸 셈이다. 이 같은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상향은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갈 경우 금융기관 및 일반 기업들의 신용등급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직접적으로 정부·기업·은행·공기업의 외화조달 여건이 개선되고 채권발행 비용이 낮아진다. 이에 김익주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하며“한국경제의 위기 돌파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사회 이미지 상승에 돌파구 열렸다
이에 금융업계의 낙관론이 주를 잇고 있다. 현장에선 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해졌기 때문. 재정 투입 규모가 줄어드는 3분기부터 회복세가 주춤할 것이란 애초 예상과 달리 3분기 성장률이 1%(전 분기 대비)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수출 회복세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체적으로 낙관적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전반적으로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면서“올해 경상수지는 300억 달러 이상 흑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이제 한국 성장 전망치를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다. 노무라 증권이 지난달 8월 31일자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예상치를 기존의 -1%에서 0%로 높이자 곧이어 다이와 증권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종전의 -1%에서 0.1%로 끌어 올렸다. 해외 투자은행이 한국 성장률을 플러스로 전망한 것은 처음이었다. 계속해서 한 나라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프리미엄도 지난 1년 사이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국가 신인도와 반비례하는 외평채가산금리 역시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계속해서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터지고 있다. 지난 달 2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전날 한국 국채(5년물)의 CDS 프리미엄은 102bp(1bp=0.01%포인트)로 지난해 8월(101bp)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이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유럽발 금융위기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파생상품인 CDS에 붙는 일종의 가산금리다. 이 수치가 낮아지면 그만큼 부도위험 가능성도 떨어진다. 우리 정부 채권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2010년 말 96bp에서 지난해 10월4일 229bp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 말 161bp, 올해 7월 말 117bp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위험지표인 외평채가산금리(2019년 만기)도 크게 떨어졌다. 외평채가산금리는 21일 79bp까지 떨어져 2010년 4월28일(77bp)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4년 만기 외평채가산금리는 21일 97bp로 2010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이처럼 한국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크게 하락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ㆍ중국ㆍ유럽 등이 불안해지자‘펀더멘털’Fundamental(한 나라의 경제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 경상수지 등의 주요 거시경제지표)이 튼튼한 한국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외국인들이 올 들어 지난 달 23일까지 국내 채권시장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22조7,904억원에 달하고 주식시장에서도 12조5,000원을 순매수했다. 동시에 해외 투자은행(IB)들의 한국 외화 채권의 안전자산 평가 등 우호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 경제 성장에 청사진이 펼쳐진 셈이다.
안심하기 이르다 한국경제! 제2의 외화 위기에 대응할 때
물론 이와 같은 위험지표 하락 현상이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큰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지금 위험지표들의 하락 현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인다”며“스페인ㆍ이탈리아ㆍ그리스 위기가 잠잠해졌고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대에서 2%대로 낮췄다. 과거 한국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던‘외환위기’의 교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위기 불감증에 빠진 한국 사회를 향한 나무람이다. 실제로 국제사회로부터의 소득은 한국 경제에 큰 기반을 마련해 줬을 뿐, 자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저(低)성장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기업은 종업원을 거리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청년 실업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코앞에 닥친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허상은 언제고 산산조각 나기 마련이다. 펀더멘털이 탄탄하다고, 등급을 올려줬다고 문제가 없다는 식의 낙관론에 빠질수록 외환위기에 이은‘제2의 위’는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몸살에 오랜 시간 앓아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국제사회 내에서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여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어둠 속으로 침몰할지, 아니면 밝은 미래로 나아갈지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