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물드는 경북 여행”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 맛, 음악은 라이브로 들어야 제대로, 여행은 무작정 갑자기 떠나야 참 여행이다. 문득 어둠이 내린 저녁에 차가운 밤바람 맞으며 무작정 차를 타고 떠나고 싶어 갑작스레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유유상종, 동기상응이라 했던가. 가을에 동한 7명이라는 대인원이 한 달음에 모이게 되었다. 가을이 주는 마법에 물드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여행기고가 강일모 kang1mo@nate.com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가을 주산지
 

누구에게나 영화를 보면서‘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연풍연가>를 보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교도 빼먹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고, <서편제>를 보고 청산도의 길을 직접 걷고 싶어 떠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도 최근 다시 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였던 주왕산과 주산지였다. 이제는 밤에는 꽤 쌀쌀한지라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올라탄 승합차에선 도란도란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출발 후 5시간 정도 걸려서 주왕산 산자락 밑에 민박집에 도착하자 새벽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새까만 어둠만이 마을을 감싸 안은 시간에 도착한 일행은 2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고 주산지로 떠나기로 계획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장시간 차량을 타고 이동한 탓에 다들 깊이 잠들었다. 짧은 휴식 후 몸을 추스린 우리는 헤드랜턴을 쓰고 주왕산을 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주왕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주산지의 물안개를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물론 주산지에 간다하여 무조건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행운을 빌며 산행에 올랐다. 주왕산은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721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 거대한 암벽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 또는 주방산이라고 불려왔다. 왕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중국 진나라때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산 곳곳에는 주왕에 관련된 전설들이 얽혀있다. 주왕산 입구에서 40분 가량을 올라왔을 때 쯤 푸르스름한 새벽이 찾아오고 눈앞에 주산지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주산지는 원래 사진작가들에게만 입소문으로 알려진 출사지였는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두루 유명해졌다. 이번 주산지 방문에서 기대하던 물안개는 볼 수 없었지만 150년이 넘은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물 위에 떠있는 자태만으로도 이곳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산지는 농업용수를 댈 목적으로 조선 경종 대에 저수지로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바닥을 들어내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주산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년 동제를 지내는데 현재는 예전보다 주산지의 물의 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을 가다보면 심심찮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산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물론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들어가서 나무와 주산지를 훼손시키는 분들의 모습에서 후진적 시민 의식을 보았다.

보물 1570호인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인되어 있는, 대전사
주산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대전사이다. 대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의상이 세웠다는 설과 고려태조 2년인 919년에 눌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대전사의 명칭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하는데 중국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자 이 산에 숨었다고 한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앨 것을 청하였고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잡았으며 그 때 함께 잡힌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대전사로 들어서면 절 뒤로 큰 바위들이 대전사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큰 비석처럼 웅장하게 솟아 있다. 마장군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대장기를 세웠다고 하여 기암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 정상에는 200㎡의 평지가 있고 노송 몇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한가운데 두 조각으로 갈라놓은 듯 금이 가 있는데 마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서 생긴 것이라는 설이 있다. 대전사 본당인 보광전은 화강석 기단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포계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그 안에 보물 1570호인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약간의 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이 눈에 띄고 단청과 벽화로 법당 내부가 매우 화려하며 기품이 있는 곳이었다. 보광전을 나와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있는데 본래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길어오곤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물을 길어서 청수로 사용하였다하고 한다. 한데 얼마 못 가 전각에 불이 나서 소실되었고 훗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말하기를 이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서 떠다니는 부선형의 형국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아서 우환이 생긴 것이라 일러주니 그 말을 들은 승려들이 우물을 메웠다고 한다. 대전사에는 그 외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지장보살과 염라대왕 등 시왕들을 모셔놓은 명부전 그리고 칠성전과 함께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신과 호랑이를 모신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은 특이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으로 산신과 호랑이 신을 모셔두었다.

주왕산이 준비한 선물, 제1~3폭포
주왕산을 오르면 빼놓지 말고 봐야할 것이 주왕산 제1~3폭포이다.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바위산으로 불릴 만큼 장한 바위와 폭포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대전사를 나온 우리는 계곡을 따라 걷다가 미리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1폭포를 향해 나아갔다. 대전사에서 나와 40분 정도를 걷다보니 주왕암이 나왔다. 주왕암은 눌옹이 대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이곳에 은거한 주왕을 기리기 위해 주왕암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주왕굴로 가려면 이 주왕암을 거쳐 가야하는데 주왕굴은 길이 2m, 높이 5m 너비 2.8m의 동굴로 주왕이 숨어있던 곳이라 하며 그가 굴 입구에서 세수를 하다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주왕굴에서 멀지않은 곳에 무장굴이라는 굴이 잇는데 이곳은 주왕의 군사들이 훈련을 하며 무기를 은닉했다하여 무장굴이라 불린다고 한다. 무장굴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제1폭포 쪽으로 향하였다. 20분 정도를 걸었을까 멀지않은 곳에서 세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제1폭포의 규모는 상상보다 작았지만 주변 암석과 나무들이 어울려져 풍기는 기운은 과연 주왕산 제1절경이라 할 만 했다. 가을을 알리듯 조금씩 변해가는 나뭇잎과 차가운 바람을 타고 오는 물방울들이 아침의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제 1폭포에서 2폭포까지는 약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아 산행을 하는 내내 양쪽으로 늘어서 감싸 안은 듯한 석벽과 괴석들을 구경하며 산행을 이어갔다. 내천을 따라 걷다보니 곧 제2폭포가 모습을 드러냈고 계곡 안쪽으로 자리 잡은 모습은 흡사 수줍은 많은 아이가 엄마 뒤에 숨은 모습과 같았다. 우리가 제2폭포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골바람이 불었다. 골바람은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을 말하는 것으로 곡풍이라고도 한다. 산을 오르는 객들에게 쉬어오라며 주왕산이 주는 선물 같았다. 충분히 쉰 우리는 다시 제3폭포로 발길을 옮겼다. 앞서 폭포를 봐서인지 3폭포에 다다를 때쯤엔 솔직히 반응이 크지 않았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전망대로 향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연화봉과 병풍바위가 한눈에 보였는데 역시 우리나라 3대 암산이라 불릴 만한 절경이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청송 얼음골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민박집에 도착하여 요즘 제철인 송이로 끓인 소고기무국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몸이 녹자 전날 제대로 자지 못한 피곤과 산행의 피로가 겹쳐 몰려오기 시작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멀지않은 청송 얼음골에 가기로 하였다.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자 민박 주인아주머니께서 커다란 노란 플라스틱박스에 사과를 한가득 담아 오시면서 가지고 가면서 먹으라고 주시는데 낙과한 과일이라 팔지는 못하고 버리기엔 아까운데 맛은 좋다며 잔뜩 주셨다. 정말 맛있는 사과는 가운데 꿀처럼 맺혀있는데 이 사과가 그러했다. 다들 입에 사과 하나씩 베어 물고 민박집에서 20분 거리인 청송 얼음골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국화가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는 차를 멈추고 내려서 쉬기도 좋았다. 청송 얼음골에 도착하니 높은 암벽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서있고 그 밑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62m나 되는 암벽으로 물을 끌어올려 인공폭포를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겨울철이면 이곳으로 빙벽 등반 애호가들이 많이 찾아 겨울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멋졌지만 겨울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빙벽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근처 개인이 전시목적으로 만든 한옥에 들려 청송 얼음골 막걸리에 국화로 만든 화전을 안주삼아 풍류를 노래하니 이곳이 무릉도원이었다.

작지만 풍족한 항구마을, 강구항
근처가 영덕이니 회와 대게를 먹자는 의견에 우리는 영덕으로 향하다가 주왕산을 같이 올라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강구항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강구항은 규모가 작지만 어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 활기 넘쳤다. 강구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어시장으로 달려갔다. 강구항에서 가장 유명한건 바로 영덕대게이다. 강구항에는 대게집만 100개는 되는 듯 하였다. 어시장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에게 가서“7명이 회 좀 먹으려는데 얼마면 되나요?”했더니“4만원만 줘”하시면서 갑오징어 오징어 광어 쥐치 등 7종류의 해산물을 담아주셨다. 엄청난 양의 싱싱한 회를 보니 이런게 인심인가?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무언가를 살 때는 의심부터 하고 보는데 푸짐하게 퍼 주는 통에 오히려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진다. 우리는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회와 대게를 먹고 강구항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들 피곤해서인지 방에 들어가고 같이 온 형님 한 분만이 나와 어시장 한 구석에서 간단한 해산물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밤을 보내었다.

바람이 머무는 언덕, 영덕풍력발전단지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출발하면서 이야기했던 해맞이 공원으로 향했다. 해맞이 공원은 영덕의 대표 상징인 대게의 모양이 형상화된 등대가 있는 공원인데 언덕위에 조성되어 경사가 가파른 편이었다. 거기다 이 날은 바람과 파도가 거세어서 밑에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언덕에서 공원의 모습만 보고 와서 아쉬웠다. 이렇게 다른 곳을 가야하나 아쉬워 할 때 언덕 너머로 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수십 개가 산을 따라 돌아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 위치한 영덕풍력발전단지는 사계절 내내 바람이 세서 풍력발전단지로 최적의 조건이다. 여기서는 2005년 3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하여 24기의 풍력발전기로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9만6,680MWh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한다. 산등성이마다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 풍력발전기들 외에도 공원과 체육시설 그리고 풍력발전전시관등이 조성되어있어 데이트 장소나 가족끼리 나들이 오기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항일운동과 워낭소리의 고장, 봉화군
다음 목적지는 봉화군인데, 운전하던 일행의‘워낭소리 촬영지를 가보고 싶다’는 말에 얼떨결에 시작된 봉화군 여행이다. 그동안 오지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봉화군으로 가는 내내 꼬불꼬불한 산길은 꽤나 힘들었다. 가는 길은 험하지만 첩첩산중이 만들어 내는 절경은 무엇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봉화군의 첫 여행지는‘바래미마을’이다. 바래미마을은 일제강점기시대 항일운동을 한 의성김씨의 집성촌으로 영남유림의 요람이라 불린다. 일제 강점기시절 바래미 주민중 일본형사들에게 잡혀가 고문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항일운동이 활발한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바래미마을 만회고택에 가면 당시에 수난을 생생히 겪은 산 증인, 김정진 옹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맘때 봉화로 여행을 간다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송이버섯이다. 봉화에는 송이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송이돌솥밥과 송이부침개는 송이향이 살아있어 자연산 송이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송이돌솥밥 한 그릇에 강행군으로 소모된 원기가 보충되는 느낌이었다.

한과로 유명한 닭실마을과 한국의 10대 정자로 손꼽히는 청암정
닭실은 경상도 방언으로 금계가 알을 품는 형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닭실마을에는 경북내륙의 유교문화권으로 일가를 이룬 안동권씨 일가의 집성촌과 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충재 권벌선생은 조선중기의 문인으로 중종 15년 기묘사화에 연루, 파직되어 이곳에 정착하며 이곳에 안동 권씨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영남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닭실마을에서 가봐야 할 곳이 안동 권씨 집성촌이라면 다른 한 곳은 바로 한국의 10대 정자로도 꼽힌다는 청암정이다. 청암정은 1750년경 원남면 매화리에 거주하던 만둔 윤상건의 동생 윤상일이 형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그 후 유실되었다가 1989년 후손 윤현수가 사재를 들여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양쪽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마루를 두고 평난간을 둘렀다. 정자의 서쪽에 송로봉 남쪽에 칠성봉 동쪽에 향로봉이 솟아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닭실마을에서 유명한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한과다. 방문 시기가 추석 전이었는데 이미 한과 만들기로 마을이 분주했다. 닭실마을 한과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한과의 맛과 멋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행의 대단원을 장식한 곳은 워낭소리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관객 300만 이상을 기록한 영화로 얼마 전 조성되었다는 워낭소리 공원도 둘러보고, 일하다 돌아오신 영화의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님도 뵐 수 있었다. 뭔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고단함이 보이는 얼굴에 그냥 미소와 인사로 대신하였다.

즉흥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모아 충동적으로 떠난 경북 북동부 여행. 가을향기 물씬 나는 절경과 자연의 축복과 같은 맛있는 음식은 짧은 일정 내내 일행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산들을 뒤로 하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은 맑은 가을 기운으로 충만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그 누군가가 여럿이라면 기억과 추억은 그만큼 오랫동안 남는 뜻깊은 여행이 된다. 짧은 가을을 쫓아 겨울이 오기 전에 아름다운 우리나라 어디로든 떠나보는 건 어떨까.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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