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상표 유지해 제조, 판매로
제조기법, 장비 등 수출·한국 빛낸 원조 한류 공신

충절과 보은의 고장인, ‘천안’. 그 역사와 함께 80년의 세월을 보내온 가게가 있다. 가게 뒤편을 수없이 오가던 기차는 귀청을 멍멍하게 울리는 디젤 기관차에서부터, 빠른 속력으로 내달리는 고속철까지 세월에 장사 없이 바뀐 모습이건만 가게만큼은 변함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 가게의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호두과자’이다. 무려 8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이 호두과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맛과 정성에 어느덧 천안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오랜 장인 정신으로 이이진 가게의 역사와 함께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천안에 입지를 마련한 창업주, 故조귀금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호두과자 할머니로 대중에 알려진 故심복순 할머니와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이다. 그리고 심복순 할머니를 수식하는 또 다른 이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김태훈 기자 sangak@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천안 명물,
영양만점, ‘원조 할머니 학화 호두과자’

언론을 비롯한 수많은 각종 매체에 소개된 천안의 명물 원조 학화 호두과자는 1934년 당시 최고의 제과 기술자였던 창업주, 故심복순 여사의 부군인 故조귀금 옹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77년 동안 3대를 거치며 고유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학화 호두과자는 ‘천안의 명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며 우리 생활문화와 제과문화의 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호두에는 특히 원체 많은 양의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비타민 B1, 인, 칼슘 등 두뇌개발 에도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예부터 남녀노소가 즐겨먹던 먹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다 학화 호두과자는 타 업체들과 다르게 매일 팥을 직접 가마솥에 삶고 있으며, 밀가루에우유와 계란, 설탕만을 넣어 반죽을 하고 있다. 덕분에 방부제 역시 전혀 첨가되지 않아,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이것이 원조 학화 호두과자만의 오랜 역사와 전통의 비결인 셈이다. 이밖에도 학화 호두과자만의 가장 큰 특징인‘앙금’은 재료인 팥의 향미가 매우 독특한데, 이는 여러 번 거피한 뒤 곱게 앙금을 내어 사용하는 덕분이다. 이뿐만 아니라 학화 호두과자는 철마다 크고 좋은 호두를 이용해 만들어 아이들의 영양 간식은 물론 그 옛날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던 맛 그대로, 향수에 젖어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곧은 열정과 노력이
원조 호두과자의 비결

학화 호두과자가 천안 명물을 넘어, 전국적으로 사랑받기까지는 9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양복점과 이발소 점원을 전전하다 과자점에 취직하는 등 갖은 시련을 마다하지 않았던 창업자 조귀금 옹과 그 뜻을 이어간 심복순 여사의 노력이 뒷받침 된 덕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두과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숱한 역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창업자 조귀금 옹이 맨처음 과자를 만지게 된 것은 그의 나이 13세, 과자점에 취직하게 된 순간부터였다. 당시 과자점의 주인이었던 일본인 사장은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 봐, 그를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때로부터 4년여 동안 과자기술을 익히게 된 어린 그가 일본인으로부터 겪은 숱한 어려움과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리라. 마침내 그가 18세 되던 1933년, 조귀금 옹은 광덕산 호두를 이용한‘천안명물호두과자’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가 개발한 호두과자는 도지사 봉급 80원, 경찰서장 봉급이 60원에 불과하던 시절, ‘120원’이라는 고액의 봉급을 안겨줄 만큼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그렇게, ‘천안명물호두과자’시대의 초석을 마련한 조귀금 옹의 작고 이후 그의 부인 故심복순 여사의‘할머니 호두과자’로 이어 받아, 학화 호두과자는 오늘 날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천안 원조 호두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할머니 학화 호두과자’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8·15 해방 직후 지금의 홍익회 전신인‘강생회’에 호두과자를 납품하면서부터 였다. 말랑하고 쫄깃한 빵 속에 달콤하고 고소한 팥과 호두가 꽉 찬 호두과자는 기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했던 그 때, 지친 여행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맛이었다. 또한 몇 번을 주고받아도 부담 없는, 남녀노소 누구나 반기는 대중적인 선물이었다. 현재는 ‘할머니 학화 호두과자’의 상징이자 창업주였던 故심복순 여사가 작고(2008년)한 이후, 조카인 심성현 대표가 그 뒤를 이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심 대표는 오랜 단골들 중에는 간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맛이 떨어졌다”고 하며 할머니가 없는‘할머니 호두과자’에 대한 향수를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 대표는“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은 10년에서 30년을 함께 해 온 분들”이라며“그 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과자를 만들고 있다. 고모님이 살아계실 때나 지금이나 맛 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맛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공생통한 나눔 경영으로 환원하다

학화 호두과자가 천안을 대표하는 전국적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비단 크고 실한 호두과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업주인 故심복순 여사의 오랜 지역 사회로의 나눔과 실천도 학화 호두과자의 전국적인 유명세에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화 호두과자를 창립한 故조귀금 옹과 심복순 여사는 창립 시기부터 호두과자 수익을 통해 오랜 사랑 나눔을 실천해 왔으며, 어느덧 그 역사도 반백년이 넘어 심 여사의 도움을 받았던 어린 학생들이 벌써 장년이 됐을 정도. 더욱 놀라운 것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고운 심성을 지닌 심복순 여사에겐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 중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심 여사 생전부터 작고 후 오늘날까지 함께 호두과자를 만들어오고 있는 직원들 역시, 저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었다. 한 직원은“한번은 호두과자를 사간 한 여인이 역 근처에 맡겨 놓은 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에, 그 날 전 직원이 아이를 찾아 나선 일도 있었다”며“결국 그 아이는 찾았지만 그 날의 손해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때 찾은 아이 또한 벌써 대학원생이 됐다고 하니 천안을 지켜온 75년 세월만큼 심복순 여사의 고운 마음의 역사도 길고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와 함께 천안을 비롯한 지역엔 신실한 기독신자 였던 심복순 여사는 10여 개의 교회를 세운 것으로도 천안지역에선 이미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녀는 저술가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여‘나는 다윗왕보다 행복합니다.’와‘다윗왕 보다 행복해지려면’ 등의 간증집은 그녀가 만든 호두과자가 아니고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한 외국인 선교사는‘나는 다윗왕보다 행복합니다.’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영문으로 번역하여 출간할 것을 제안해, 실제로 한영대역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심복순 여사의 열정과 나눔을 통한 공생경영은 호두과자뿐 아니라, 과자를 만드는 직원들조차 무려 30여 년 이상의 경력과 세월을 함께했을 정도로 각별했다. 이렇듯 한 자리에서 무려 80여 년 세월을 보내온 천안 명물, 학화 호두과자는 오늘 날, 한국을 대표해 그 옛날 심복순 여사의 열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원조의 뚝심,
“백년 역사 이어갈‘천안의 맛’ 이어나갈 터”

현재는 심 할머니의 이런 뜻을 받들어 그 자손들도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심복순 할머니의 조카이자 학화 호두과자를 이끌어가고 있는 심성현 대표는“정직한 가격으로 장사하고 그 돈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려 한다”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쇄도하는 간식 지원 사업에 열심히다. 심 대표는 향후에도“선대의 어진 뜻을 이어받아, 현대에서도 여력이 닿는 한 후원하고 싶다”는 신념으로 나눔을 통한 경영 철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 대표의 경영 원칙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였다. 일꾼으로 가게에 왔다 기술만 익혀서 나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그들은‘원조’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특허권을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심 대표는“가구가게가 많은 곳에 가구를 사러가듯이, 천안에 호두과자가 특화되면서 여러 곳이 함께 잘되는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선의의 경쟁으로 지역 특산물로 오래 사랑받는다면 바랄게 없다”는‘선의’로 응수해 왔다. 눈앞의 이익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변함없는 천안 호두과자의 맛을 나누는데 비전을 두고 있는 탓이었다. 향후에도 심성현 대표가 이끄는 학화 호두과자는 기차에서 사업이 날개를 달았지만 단가 경쟁으로 맛을 유지하기 힘들어 납품을 포기했던 선대의 맛에 대한 뚝심처럼‘천안의 맛’에 대한 고집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한다. 심성현 대표는 오늘도 88세 되던 해 만학도로서 박사학위를 받아 주위를 놀라게 한 심복순 여사의 올곧은 열정과 뚝심으로 만들어진 호두과자, 그 역사(驛舍) 앞에서 80년 역사(歷史)를 안은 호두과자를 굽는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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