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 노인 범죄, 고학력자 범죄 크게 늘어”
‘하늘에 별따기’인 취업난이 범죄로 이어져…

5년간 65세 이상 범죄자 30.3% 증가
파지 값이 뚝 떨어지면서 파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졌다. 폐지 1㎏당 가격은 지난해 같은 때의 절반 수준인 50∼60원이다. 2∼3일간 100㎏의 폐지를 주워도 버는 돈은 5천∼6천원이 전부다. 지난 가을 광주시 북구 각화동의 한 도로에서 폐지를 모아 생활하던 80대 할머니가 택시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결혼한 딸의 소득이 확인돼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했다. 이 때문에 소형 영구임대 아파트 관리비조차 내지 못했고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유대운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최근 5년간 65세 이상 범죄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총 범죄자 수는 2007년 5만2815명에서 지난해 6만8836명으로 30.3% 증가했다. 특히 절도범죄자의 경우 같은 기간 2309명에서 4193명으로 81.7%로 가장 많았으며 이는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생계형 절도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유 의원은 전했다. 이 밖에 강력범죄자는 같은 기간 538명에서 759명으로 41.1%, 지능범죄자수는 16.2%, 폭력범죄자수는 13%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 의원은“노인층의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극히 우려스러운 일”이라며“절도 범죄가 크게 증가하는 것은 경제사정이 그만큼 악화돼 생계형 범죄가 늘어났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노인복지 확대 등 정책적으로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극심한 생활고에‘교도소 보내달라’난동, 일가족 자살, 자식 내다 버리기도…
경기 침체와 실업이 빚은 생활고는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4일 청주의 한 인력시장에서“일감 좀 달라”며 난동을 부린 A(40)씨가 입건됐다.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추석을 쇨 돈을 마련하려다가 난동을 부린 것이다. 지난 3월과 4월에도 청주의 한 외진 아파트 주차장에서 강도질하던 30대 남성, 학원 등을 돌며 도둑질을 하던 40대 남성이 각각 구속됐다.“주유소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했다”거나“밀린 월세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 강ㆍ절도에 나선 이유였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생계형 범죄’였던 것이다. 불황 탓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난 1월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서 주택 화재가 발생해 일가족 3대, 5명이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사업 실패로 2억7천여만원의 빚을 진 40대 아들이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끝내 부모와 부인, 아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충북 청원군에서는 40대 남성이 자신의 화물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모를 모시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부산시 동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50대 남성이 교도소에 보내달라며 상가 천막에 불을 지르고 자수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교도소에 가면 적어도‘밥 세끼’는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벌인 일이다.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내다버리는 무정한 부모도 있었다. 지난 9월 청주시 흥덕구의 한 교회 앞에 생후 10일 된 아이가 발견됐는데, 수사 결과 이 아이의 부모는 30대 부부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에서“경제적으로 어려워 셋째를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잘 키워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경찰관은“생계형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들을 조사할 때마다 경제 불황이 선량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내모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없는 사람끼리…’ 노숙인 범죄에‘분유값이라도…’ 여성범죄도 급증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여성ㆍ노숙인ㆍ노인의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빌린 돈 1만5000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을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A(5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1월 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3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용산구 쪽방촌에서 옆방에 사는 B(43)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B씨가 빌린 돈을 제때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B씨의 복부를 흉기로 한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넉 달전 B씨에게 빌려준 1만5000원을 돌려달라고 말했으나 B씨가“다른 사람에게 빌려줬으니 그 사람한테 가서 받으라”고 하자 격분해 자신의 방에서 흉기를 가지고 와 B씨를 찔렀다. 지난 9월 25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를 받던 30대 주부 E(31) 씨가 눈물을 쏟아냈다. 4ㆍ7세의 자녀를 둔 E씨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 200만 원으로 아이들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비용을 내기가 빠듯했다. 그는 자택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거리를 찾다 유명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 음란물을 회원들에게 유포하고 포인트를 벌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E씨는 국내의 한 유명 웹하드 사이트에 음란물 전용클럽을 개설하고 2010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2년 동안 음란 동영상과 사진 3만여 장을 올려 회원 9828명이 다운받을 수 있도록 했다. E씨는 자신의 클럽 회원들이 1000MB당 1000원에 음란물을 다운로드 받으면 그 중 10%를 수익금으로 받았다. 그동안 14차례에 걸쳐 720만 원 상당을 수익금으로 챙겨 아이들의 기저귀, 분유 값으로 썼고 유치원 비용으로도 지불했다. 한 달 평균으로 따지면 50만원의 크지 않은 액수로 전형적인 생계형이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등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주부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 여성아동정책팀이 지난해 발간한 여성통계에 따르면 여성범죄자는 매년 증가해 2009년에 40만8111명으로 전체 범죄의 16.2%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38만1241명으로 전체 범죄의 15.4%, 2007년 30만5325명으로 15.3%, 2006년 30만1366명으로 15.6%, 2005년 30만8443명으로 15.7%를 차지해 5년사이 10만명 가량이 증가했다. 2010년 여성범죄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는 41~60세로 전체 범죄의 49.4%에 달했다. 법무부가 또 여성범죄자의 생활유형을 분석한 결과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전체 여성 형사범죄의 40.4%를, 각종 특별법 범죄의 41.5%를 각각 차지했다.
아동의류ㆍ식료품 등‘생계형 주부도둑’급증

대학원생 이상 강력범죄도 4년새 6배 이상 늘어
경제 범죄나 생계형 범죄뿐 아니라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고학력자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울산해양경찰서는 국가기술자격증을 불법으로 빌린 해양관리업체 6곳을 적발하고 돈을 받고 자격증을 빌려준 대학원생 강모(33) 씨 등 부산과 전남 지역 해양학과 대학원생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강 씨 등은 학비와 생활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해양조사산업기사 자격증 등을 해양관리업체에 매달 30만 원 또는 연간 500여 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월 말에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모교에서 후배들의 물건을 훔친 취업준비생 김모(26)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의 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던 김 씨는 생활비가 떨어지자 9월 모교 동아리방에 들어가 후배들의 노트북 등 2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월에는 철도무임승차권을 위조해 256차례에 걸쳐 본인이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30% 할인가격에 팔아온 서울대 대학원생 김모(30) 씨가 입건되기도 했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던 김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4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대학원 이상 고학력자는 지난 2007년 79명에서 지난해 484명으로 6배 이상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졸 이상 학력으로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역시 같은 기간 1031명에서 2005명으로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같은 기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중졸 및 고졸 학력의 범죄자는 각각 3.5%와 2.5% 증가에 그쳐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적었다. 특히 폭력범죄의 경우 중졸이나 고졸 출신이 저지른 범죄는 줄어든 반면 대학원생 이상 고학력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7년 2065명에 그쳤던 폭력을 저지른 대학원 이상 학력의 범죄자는 지난해는 4667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중졸 출신 범죄자는 2007년 3만7285명에서 지난해 2만2778명으로 39% 감소했고 폭력을 휘두른 고졸 학력의 범죄자도 같은 기간 15만8633명에서 11만9619명으로 24% 이상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금속만 노린 절도 기승…대개 생계형 범죄
국제 철ㆍ구리 등 금속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금속만을 노린 생계형 절도범들의 절도 행각은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강원 횡성경찰서는 지난 6일 맨홀덮개와 교통표지판 등을 훔친 홍모(30)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홍씨는 지난 5일 오후 10시40분께 횡성군 우천면 상대리 도로변에서 맨홀덮개를 훔친 것을 비롯 공사현장 2곳에서 112만원 상당의 철근 1.4t과 교통표지판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고물수집상인 홍씨는“생계가 어려워 돈이 될만한 물건을 훔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선경찰서는 지난 6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교량 명판과 설명판을 닥치는 대로 훔친 K(36)씨 등 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1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최근 영서지역에서는 홍씨 등과 같은 절도범들이 활개를 쳤지만 경찰은 단서조차 못 잡고 있다. 지난 8월 한달 사이 양구ㆍ홍천군에서만 뜯겨져나간 명판ㆍ설명판은 약 60여개. 그러나 관할 지자체 등 관련기관들은 절도사건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등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인적이 드문 야간, 국도 및 지방도의 교량 명판과 설명판을 싹쓸이했다. 구리 재질의 명판을 만드는 데는 개당 20만~3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생계형 범죄로 보고 있으며 양구 등 3개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며 "추가 범죄 예방을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좀도둑서 흉기 든 강도로… 생계형 범죄의‘씁쓸한 진화’

박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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