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제5세대’시진핑 시대 개막, 미국 오바마 재선, 유럽경제위기 확산, 중동혼란, 일본 우경화 급속”
2012년은 세계 주요 양대국(G2)인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정치권력 재편을 거치면서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킨 한 해였다. 또 일본과 러시아에서도 과거 집권한 인사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한반도 주변 4강의 권력이 모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유럽에서는 경제위기가 지역적으로 확산하면서 유럽연합(EU)이 제도적 차원의 대응을 위해 부심했고, 중동에서는 작년‘아랍의 봄’으로 기존 질서가 무너진 가운데 새 질서를 낳기 위한 산고가 계속됐다.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지난 2012년. 지난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세계 속 핫 이슈들을 재조명 해본다.
동아시아 영토 분쟁
지난 한 해 동아시아에서 중국ㆍ일본ㆍ한국 및 동남아 각국 간의 영토 분쟁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불거졌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과 이곳을 실효지배하는 일본 간의 오랜 갈등은 일본 정부가 센카쿠 국유화를 들고 나오면서 양국 간 문제로 발전했다. 1972년 중ㆍ일 국교정상화 이후 센카쿠는 현상유지한다는 원칙이 양국의 암묵적 합의였으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정권은 추락하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정치적 퍼포먼스’로 센카쿠 국유화를 택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8월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과거사에 대한 일왕의 사죄를 촉구한 것을 계기로 한국과도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노다 정부는 영토 문제에서 강경한 노선을 선택했다. 결국 일본이 9월 센카쿠 국유화를 단행하자 중국 정부는 해양감시선과 어업관리선을 센카쿠 영해에 진입시켜 일본의 실효 지배 무력화에 나섰다. 중국 국민도 분노해 연일 수십만 명 규모의 반일 시위가 중국 전국을 휩쓸면서 중국 내 일본계 기업들이 파괴ㆍ약탈되고 거센 불매운동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일본은 대(對) 중국 수출 감소액만 연간 약 1조엔(약 14조4천억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에다 중국 선박의 거의 상시적인 센카쿠 영해 내 위력시위도 막지 못하는 등 패배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반면 중국은 이번 힘겨루기를 계기로‘G2’로서 자국의 역량을 재확인함에 따라 앞으로 센카쿠와 남중국해에서 한층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 이 지역 갈등의 불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제5세대’시진핑 시대 개막
11월 공산당 제18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지난 10년간 중국을 이끌어온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제4세대 지도부가 물러나고 시진핑(習近平) 차기 주석 등 제5세대 지도부의 시대가 개막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지난 2010년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로 선정하는 등 지도부 교체를 겉으로는 예정대로 안정적으로 매끄럽게 진행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차기 권력의 지분을 놓고 양대 세력인 태자당-상하이방 연합과 공청단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후 주석 휘하의 공청단은 태자당의 떠오르는‘스타’인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 당서기의 비리를 들춰내 그를 실각시키면서 기선을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최고 원로로 군림하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배경으로 태자당-상하이방 연합이 맹렬히 반격,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리커창(李克强) 총리 1인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원 자파 관련 인사로 채워넣는 데 성공했다. 반면 공청단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등 차기 유력 인사들을 상무위원에 진입시키는 데 실패했고, 후진타오도 당초 예상과 달리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시진핑에게 곧바로 넘겨 공청단의 약세가 뚜렷하다. 다만 후진타오가 자신의 완전 은퇴라는 카드를 내세워 그간 중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장쩌민 등 원로들의 정치 개입 차단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져 중국 공산당의‘원로 정치’관행이 사라질지가 관심사다. 시진핑 등 5세대 지도부는 앞으로 안으로는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빈부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사회 안정을 위해 사회안전망 확충과 분배 개선 등 민생 개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밖으로는 세계 제2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이른바‘G2’로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때로는 협력, 때로는 경쟁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서는 강하게 자국 이익 수호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오바마 재선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딘 가운데 높은 실업률이 계속됨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은 매우 힘겨울 것으로 예상됐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후보로 삼아‘경제실패 심판론’을 내세워 오바마에게 거세게 도전했다. 이에 맞서 오바마 재선 캠프는 부유한 경영전문가 출신의 롬니를‘일자리를 외국으로 빼돌리고 대량해고를 일삼는 무자비한 경영자’로 몰아붙여 집요하게 공격했다. 여기에 지난 9월, 롬니가 서민층을‘세금을 내지 않는 47%의 무임승차자’라고 비하한 발언이 공개된 것은 오바마에게는 공세를 뒷받침하는 최고의 호재가, 롬니에게는 치명타가 됐다. 앞서가던 오바마는 10월 1차 후보 토론에서 방심했다 롬니에 일격을 얻어맞고 지지율이 한때 근소하게 역전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고용지표 등 경제여건이 소폭이나마 개선되고 오바마가 허리케인‘샌디’피해에 잘 대응하는 등 막판 호재가 잇따르면서 오바마는 주요 경합주를 모조리 손에 넣으며 재선에 성공, 앞으로 4년 더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성공의 근본 요인으로는 오바마 행정부가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ㆍ여성ㆍ중산층ㆍ청년층 등 다양한 유권자층을 상대로 맞춤식 정책을 내놓아 이들을 끌어들인 것이 꼽힌다. 반면‘티파티’로 대표되는 극우 성향이 주류인 공화당은 백인ㆍ남성ㆍ노년층에 편중된 노선을 고수하다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참패해 당분간 암중모색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경제위기 확산
그리스발 경기 침체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유럽은‘경제 위기의 일상화’를 경험했고 이에 대응하는 유럽연합(EU)의 제도적 장치는 아직 역부족이다. 연초부터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로존 9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1~2단계 강등했다. 6월에는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으며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할 것이라는‘그렉시트(Grexit)’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경제위기 확산을 막고자 유로존 각국 지도자와 경제기구 수장들은 3월 회원국의 재정 운용 규제를 강화하는 신(新) 재정협약을 마련했다. 이어 9월에는 유로존 상설구제금융인 유로안정화기구(ESM)를 출범시키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단일 채권‘유로본드’발행,‘유로존 은행연합’추진은 각국의 의견차이로 간신히 합의점을 찾아가는 상태다. 더불어 재정난을 겪는 유럽 각국 정부가 연금체계 손질과 공공분야 인력 감축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정부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임없이 발생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중동 혼란
지난해 중동·북아프리카의 여러 국가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아랍의 봄’을 맞이했으나 새로운 질서 구축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1년 9개월간 내전으로 4만명 넘게 사망한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이 끊이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가운데 시리아 반군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반정부 연합체 시리아국가연합(SNCORF)을 출범시켰다. 반군은 서방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지만 미국 등 서방은 아직 군사개입을 꺼리고 있다. 철권통치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민주 선거를 통해 6월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가운데 무르시 대통령의‘현대판 파라오 헌법’발표는 양측간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으로 이 지역 최대 동맹을 상실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가자지구 공습이라는 초강경책으로 맞서 가자지구 주민 164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11월에는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확보해 양측의 평화협상이 새 국면을 맞게 될 예정이다.
자민당 재집권과 일본 우경화 급가속
장기 불황과 만성적인 정치 불안을 경험한 일본은 이명박 대통령의 8월 독도 방문, 중국과의 센카쿠 영토 분쟁,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을 계기로 급속히 보수ㆍ우경화됐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일본 우익의 각종 망언과 말뚝테러도 일본 사회의 쏠림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 가운데 12월 총선에서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하고 평화헌법 폐기를 공약으로 내건 극우 일본유신회도 약진해 국제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 결과는 경제회복을 바라는 일본 국민의 열망을 자민당이 적절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외교적 무능을 노출한 집권 민주당에 일본인이 가진 실망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강한 정치’와‘국가주의’를 강조해온 보수세력에 비해 한국과 중국간의 영토분쟁에서 무기력하게 대응한 민주당의‘약한’외교력이 아베의 자민당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관측된다. 자민당이 평화헌법 개헌을 통한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집단적 자위권 확보 등 우경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 중국ㆍ한국 등 주변국과 마찰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금융계, 비리 스캔들로 몸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금융계에 대한 각국 규제 당국의 감시가 강화됨에 따라 숨겨져 왔던 세계 금융계의 비리들이 올해 잇따라 드러났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 조작 사건으로, 바클레이즈ㆍUBS 등 세계적 거대 은행들이 리보 산정을 위해 제출하는 금리 데이터를 조작해 부당한 이익을 챙겨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바클레이즈는 혐의를 인정하고 4억5천300만 달러(약 4천800억원)의 벌금과 함께 회장ㆍ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이 일제히 물러났으며, UBS도 16억 달러(약 1조7천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보는 세계적으로 단기 기준금리로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여서 리보 조작은 세계 금융시장의 신뢰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이 밖에 JP모건, 시티그룹 등 여러 세계 은행들도 리보 또는 유리보(유럽 은행간 금리)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한편 유럽 최대은행인 HSBC는 멕시코 마약조직의 돈세탁 통로 역할을 한 사실이 미국 의회의 조사로 드러나 벌금 19억2천만 달러를 냈으며,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도 이란 자금 돈세탁 혐의로 벌금 3억4천만 달러를 미 당국에 냈다. 바클레이즈는 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력시장을 조작한 혐의로 4억3천500만 달러의 과징금을 얻어맞는 등 세계 은행들의 도덕성 부재를 입증하는 사건이 줄이어 더 강력한 규제ㆍ감시를 촉구하는 여론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되풀이되는 총기난사 사건 악몽
올해 미국에서는 총기난사 참사가 유난히 자주 일어나면서 대량살상의 비극이 되풀이됐다. 2월에는 애틀랜타주의 한인 사우나에서 한인이 총기를 난사해 한인 일가족 5명이 숨졌고, 4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오이코스 신학대에서 퇴학당한 한인 학생이 동료 학생 7명을 총기로 살해했다. 7월에는 콜로라도주 덴버의 영화관에서 영화 속 악당을 흉내 낸 듯한 살인마의 흉탄에 관객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8월에는 백인 우월주의자가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시크교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해 6명이 숨졌다. 그러나 12월 14일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가 무차별 사격을 가해 28명이 희생된 사건은 그 어느 사건보다도 미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인명피해 규모도 엄청났지만, 희생자 대다수가 무방비의 연약한 어린이였다는 사실에 많은 미국 국민은 분노하면서 총기에 관대한 자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에 따라 한동안 주춤하던 총기 규제 강화 노력이 되살아나, 오바마 대통령과 여러 민주당 의원들이 자동소총과 같은 공격용 무기 금지 등의 규제를 지지하고 나섰고 일부 공화당 의원들과 미국총기협회(NRA)도 태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헌법과 국민의 의식에 뿌리 깊은 총기 선호 문화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바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함마드를 모욕하지 마라”… 이슬람, 분노의 반미 시위
이슬람교를 모욕하는 영화 한 편으로 촉발된 반미 시위가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하며 세계인을 긴장시켰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살인자, 동성애자로 묘사한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은 세계 이슬람 신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리비아, 이집트, 예멘,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각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특히 9월 11일 리비아 벵가지에서는 과격 시위대와 무장 단체가 미국 영사관을 습격,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 대사가 숨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미 정부는 이 사건을 명백한 테러로 규정하고 신속히 조사위원회를 꾸렸으나 판단 착오와 안보 불감증이 사고를 만들었다는 책임론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이슬람의 반 서방 시위와 테러는 계속됐고 무함마드 풍자만화가 프랑스 잡지에 실리면서 서방을 향한 이슬람의 분노는 정점에 달했다. 이번 시위가 단순한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아랍권에 잠재해 있던 서방세계에 대한 분노, 미완성에 그친‘아랍의 봄’을 바라보는 중동인의 좌절감, 경기 침체에 따른 무력감이 뒤섞여 폭발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슬람의 복잡한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나갈 국제사회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몬스터 허리케인‘샌디’미국 동북부 강타
카리브해 국가를 강타하고 10월 29일 미국 동북부에 상륙한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는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와 함께 미국 대통령 선거 판도까지 뒤흔들었다. 샌디가 상륙하자 수십만 명의 미국인이 대피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뉴욕 지하철은 나흘 동안 운행을 중단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틀 연속 휴장에 들어갔다. 800만 가구 이상이 정전으로 고통을 겪었고 총 사망자는 131명으로 집계됐다. 샌디 피해가 예상보다 컸던 이유는 피해지역인 미 동북부 지역의 인구밀도가 미국에서 가장 높고 정전 지역의 범위가 넓었기 때문이다. 피해액이 500억 달러(약 53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전망 속에 샌디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은 최악의 미국 태풍피해로 기록됐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대선을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샌디 피해 복구에 초당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막판 승기를 굳혔다. <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