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희노애락, 삶과죽음,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모든 것이 춤의 화두인 홍신자 그녀의 삶의 흐름에는 무수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성장을 거듭 했으며, 삶의 흐름은 곧 깨달음을 위한 끊임없는 여정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춤을 통해 20세기의 최고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를 만나 자신을 만나고 신을 만났으며, 현대 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케이지를 통해서 예술을 만나고 마지막으로 자연이란 스승을 만나 춤을 통한 본향에 다다른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무르익은 종교와 스승,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할 때를 알게 되니 남은 것은 본래의 고향 ‘자연’이었다고 한다. 춤으로 신과 하나가 되는 홍신자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의 물방울이 바다로 즉, 근원으로 갑니다. 물방울은 찰나의 순간 반짝 거리다가 사라집니다. 그게 나입니다. 그것이 내가 찾은 겁니다. ” 라고 말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낡아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 된다는 것이다. 40여년 동안 쉼없이 춤을 통해 걸어온 홍신자 그녀는 “나이와 함께 오히려 점점 무르익어가는 느낌을 받아요. 춤을 더 이상 못 출 때까지 출 거고, 끝까지 실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관객과 만나 소통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춤은 구도의 길이며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모든 것이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듯 그녀 또한 많은 무대에 섰지만, 마지막 무대는 결국 자연이라고 말하는 그녀야 말로 자연과 인간과 신을 예술로 이어주는 진정한 구도의 춤꾼이 아닌가 싶다.

문화부 고명진기자

 

구도의 춤꾼 홍신자, 내면 지향적이고도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그녀의 춤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시작한지 어느덧 40여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춤이란 삶의 원동력이며 인생이라는 큰 고해 속에서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를 표현하는 도구라고 한다. 일흔을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 순회공연까지 꾸준히 현역 무대에 오르며 의욕적으로 활발하게 활동 하는걸 보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전위예술가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홍신자는 1940년 충청남도 연기 출생의 세계적인 전위무용가이며, 명상 수행자, 안무가, 현대무용가, 보컬리스트, 작가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무용가 이기도 하다.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국립무용원의 외국무용연구 부장이자 무용평론가인 우장핑은 홍신자를 이사도라 덩컨, 니진스키, 마사 그래함 등과 함께 ‘동양 전통에 뿌리를 둔 서양 아방가르드 무용의 꽃’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1998년도 독일 순회공연 당시에 무용 평론가인 레이멘은 “홍신자는 한국의 피나 바우쉬 같은 존재이며 미국과 한국에서 유명한 무용가이다.” 라고 와이마 OTZ 신문에서 언급했다.

동양적 전위무용 선구자
그녀는 숙명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20대 후반에 진로를 바꾸어,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2년 뉴욕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무용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무용가로서 8년여 동안의 치열한 준비 끝에 1973년 만 32세의 나이로 <제례>를 발표, 뉴욕 타임스의 이례적 호평을 받으며 뉴욕 무용계에 데뷔하여 동양적 전위무용의 선구자로 불리며 세계 18인의 무용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같은 해 한국 무대에도 올려져 국내 최초의 전위무용으로 사상 최대의 관객을 동원하는 화제를 낳았다. 1982년 미국 The Union Institut 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뉴욕에서 20여년간 활동하면서 존 케이지를 비롯, 유지 타카하시, 마가렛 렝 탄, 그녀의 예술정신을 확장시켜준 백남준 등 해외 아티스트들과 황병기, 이상봉, 김덕수 등 국내 아티스트들과의 예술적 교감을 통해 동·서양이 융합된 아방가르드 무용의 장을 개척해 왔다. 한국에 영구 귀국한 그녀는 1994년 경기도 안성 죽산에 <웃는돌>이라는 명상센터와 무용단을 설립했다. 웃는돌 명상 센터에서는 비움을 통한 생활 속 명상과 그를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치유와 평안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비정기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꽉 차 있는 스트레스와 고정관념 그리고 과거의 힘든 기억, 욕심, 불안한 미래 등을 명상을 통해 비워내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화되고 순화된다고 한다. 웃는돌 무용단은 예술과 자연, 영성의 조화를 미니멀 움직임 중심의 무용예술로 승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행위자 뿐만 아니라 보는 이 모두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삶의 경계 너머로 존재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게 철학이라고 한다. 현재 웃는돌 무용단은 국내활동을 기반으로 전 세계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한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객원교수로 무용을 지도하며 중국 베이징 댄스 아카데미 객원교수, 풀브라이트 교환교수와 국내 각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크게 열정을 쏟기도 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테마로 한 <죽산국제예술제>를 매년 개최하여 벌써 16회째 해오고 있다. 국내외의 아티스트들이 두루 참여하여 교류하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 주고 있으며, 전위예술, 실험예술을 중심으로 관객과 함께하는 워크ㅤㅅㅛㅍ 프로그램까지 야외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활동을 펼치는 야외형 공연예술축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데 그동안 그녀가 큰 몫을 담당해오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듯싶다.      

 

존 케이지 아방가르드 정신 재조명 하다

<2012 세계국립국장 페스티벌 공식초청작>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공연 <Four Wall / 4' 33>

 

홍신자는 1984년 미국 뉴욕 동양음악으로 유명한 웨슬리안 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존 케이지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 당시 그녀는 존 케이지가 1944년 작곡한 음악을 바탕으로 안무한 <네개의 벽>을 공연했다. 이 작품은 거친 감정과 비탄을 드러내다가 연민과 동감으로 누그러지는 음악이다. 무용가 머스 커닝햄의 <솔리스키>라는 작품의 음악으로 쓰여진 후 무용 무대에서 거의 잊혀졌던 것을 1985년 홍신자가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공연에서 다시 끄집어내 빛을 보게 되었다. 네 개의 벽은 피아노의 흰 건반만 사용하여 인간의 마음에 대한 작곡가의 집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존 케이지의 깊은 사상적 의미의 단초를 볼수 있다. 1940년대에 존 케이지는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고 일본으로 가서 선을 공부하며 승려가 되려고까지 했는데, 이 작품은 그 시기의 방황, 혼돈, 명상, 슬픔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현대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추모하기위해 작년 10월 18일 ~ 19일 제6회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공식초청작으로 메인 공연 홍 신자의 <네개의벽>과 12인의 <CAGE for 4' 33>를 공연했다. 추모작품 네 개의 벽(four wall)은 네개의 벽 안에 갇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삶의 기로에 선 인간의 갈등과 생명의 근원을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인생여정
이며, 대자연의 포태 속 본향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댄스 드라마다. 소품은 의자와 꽃다발이 전부지만 홍 신자만의 독특한 춤사위로, 꿈꾸는 듯 무언가 깊은 슬픔에 잠긴 듯 천천히 또 긴박하게 움직이다, 여백의 소리에 자연과 합일을 이룬 듯한 완전한 그녀의 몸짓에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된 듯, 자연의 품에 안기는 자유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녀가 네 개의 벽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존 케이지와의 인간적인 교류였고, 그는 수도하는 고승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행위를 통해, 도시속에서, 사람들속에서, 존 케이지는 영원히 아름다운 전위 수도자였으며,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정열을 작품과 삶속에서 보여주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존 케이지 그와 함께 인간의 깊은 고뇌를 어두움과 절박한 긴장감으로 표현한 네 개의 벽을 통해 그녀의 춤 역시 한층 더 승화될 수 있었다고 한다.

존 케이지의 아방가르드 예술

<4분 33초>는 존 케이지가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연주 시간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음악 작품으로 유명하며 1952년 8월 29일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David Tudor의 연주로 초연됐다.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가 몇분 뒤 뚜껑을 닫는다. 피아니스트는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주자와 청중이 소리를 죽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콘서트 홀 에는 소리가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아직도 음악의 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며 음악과 예술의 개념을 뒤흔든 존 케이지의 아방가르드 예술정신이 오롯이 담겨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존 케이지는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한 <4분33초>라는 작품으로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현대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선구자 존 케이지는 우연과 불확실성 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대 예술의 최전방에 선 개척자이며 20세기의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한사람이다.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은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금 존 케이지와 작업했던 유일한 한국 아티스트인 홍신자와 존 케이지에게 사사받은 일본의 아티스트 Masaru Soga와 Tada Masami 등이 참여 했다. 백남준은 존케이지 100주년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생전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을 못 이루고 갔으니 함께 작업한 유일한 국내 아티스트로서의 홍신자 그녀가 그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세 사람 모두 장르는 달라도 지향점은 같았다고 한다. 전위적인 스피릿을 존케이지는 음악으로,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로, 홍신자는 춤으로 풀었을 뿐 근원적인 사상은 같아서 서로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인연을 넘어 존 케이지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좀 더 알리고 재조명하고 싶었고, 전위 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던 예술가로서, 음악의 컨셉 자체를 바꾼 그의 무한한 공헌도 역시 높이 평가받아야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무용, 영상, 연극, 음악, 패션, 공간변형등, 국내 외 4개국 2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그의 대표작 4분 33초를 서로 다른 장르로 재해석한 국제적인 추모 헌정 공연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에 참여했던 국내 아티스트로는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아티스트 김주영, 중견 안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남정호 교수등이 참여했다. 1996년 한국에서 초연했을 당시 움직임이 중심이 되었다면 이번엔 새롭게 리바이벌해서 좀 더 극적인 면을 살리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작년 7월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80주년과 존케이지 100주년을 함께 기리는 <동서양인 존 케이지+백남준+홍신자=251>전을 열었고, 또 10월 11일 베이징 아시안 아트워크 갤러리에서는 홍신자와 중국 아티스트들이 함께 추모공연을 가졌다. 이후 10월 20일-21일 양일간 <오름갤러리>와 홍신자가 만든 실험극장 <머쉬룸>에서 장르를 초월한 국내외 아티스트들과의 워크샵 파티도 지속되었다. 파티에서 시인 김수경은 공연을 본 소감을 이렇게 자작시로 화답하였다.       
      
     
         - 시낭송 중에서 일부인용 -

우주의 광활한 시간 속을 우리가 함께 걸었다는것을
행복하고 아름답고 슬프게 기억할 거예요
모든 소리는 음악이라고 죤 케이지가 그랬었죠.
모든 움직임은 춤이라고 죤 케이지를 빌어 홍신자가 말했지요
모든 사는 순간은 춤이고 음악이라는 것이고요.
그것은 홍신자 그녀의 Epitaph 였고
그리고 나와 여러분 모두의 죽음의 시간에 이르는 아름다운 여로였습니다.

그리고 11월 20일 - 21일 홍신자 단독 앵콜공연 <네개의 벽>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다시 가졌다. 이 작품은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이었으며 예술 애호가 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볼 수 있는 추모공연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홍신자 주요 수상경력 , 공연작품, 저서
 

주요 수상 경력

1982년 ‘오늘의 여인상’, 1989년 ‘중앙문화대상’, 1996년 ‘김수근 문화상’, 1997년 ‘우경문화예술상’, 2003년에는 대한민국 문화대상을 수상 하였다. 미국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Hawaii State Foundation on Culture and the Arts, Asian Cultural Council, Japan Foundation 등 미국과 일본의 주요 기관으로부터도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주요 공연작품

제례(MOURNING) / 1973 초연, 뉴욕 댄스시어터 워크숍
미궁과 문, 그리고 voice work / 1975 초연, 서울 명동예술극장
나선형의 대각선(SPIRAL STANCE) / 1984 초연,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
네 개의 벽(FOUR WALLS) / 1985 초연,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섬(ISLE) / 1986 초연, 뉴욕 라마마극장
명왕성(PLUTO) / 1982 초연, 뉴욕 라마마극장
세라핌(SERAPHIM) / 1988 초연, 뉴욕 조이스시어터
순례(PILGRIMAGE) / 1998 초연, 서울 예술의전당 개관 10주년 기념
(전세계 15개국 공연화제작)
시간 안으로(Into the Time) / 1999년 초연
웃는 여자(THE WAMAN LAUGHING) / 2001 초연, 뉴욕 라마마극장
시간밖으로(Out of the Time) / 2003 초연,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그밖에 탄생, 민담, 웃는 돌, 입에서 꼬리까지, ISLE 여러공연작품 등이 있다.
년 초연 이후1997 전세계 15개국에서 공연되며 화제를 모았던 안무가 홍신자의 ‘순례'가
순례자/ 2009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순례-순례자로 거듭났다)

주요 저서

번역서 <마하무드라의 노래>(1980), <사하라의 노래>(1981)이 있다. 그 인도 수행생활 체험기인 <홍신자-라즈니쉬와의 만남>(1985), <푸나의 추억>(1993), <자유를 위한 변명>(1993)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1998),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2001),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2003)가 있으며, 그 외에도 영시 사진집 <Dance of Silence>(1983), <The Path>(1993)이 있으며, 작품사진집 <입에서 꼬리까지>(1994)와 번역서 <마하무드라의 노래>(1980), <사하라의 노래>(1981)이 있다. 그녀의 자전적 저서 ‘자유를 위한 변명’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베스트셀러이기도하다. 익숙한 무용가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삶의 메시지. 자유로운 춤꾼으로 거듭 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회고와 딸 희에 대한 무한한 사랑, 자유로운 삶과 명상 에 대한 이야기들을 호소력있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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